Loner on the Frontier RAW novel - Chapter 231
232.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1)
***
부활의 성당.
민준과 아시프-1이 서로를 마주 보았다.
창조주는 교황의 얼굴을 보면서 되뇌었다.
‘자유의지를 허락한 이상, 이것 역시 불가피한 일이었나?’
아시프-1에게는 창조될 때부터 주입된 명령이 있다.
가능한 많은 이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
이 개념은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로 목적성을 갖는다.
‘하지만 너는 애초에 완벽한 꼭두각시 같은 형태로 만들어지지 않았어.’
아시프-1은 민준의 영혼을 조각내어 만들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과거에 존재했던 모든 도구들 역시 태초의 종족 영혼을 재료로 창조되었다.
다시 말해 저들은 모든 행동을 프로그램에 의존하는 로봇 같은 존재가 아니다.
‘행복. 너는 그 명령을 절대적으로 추구해야 할 선(善)으로 인식하지. 하지만 그것을 행할 방법을 자유로이 고민하고 결정 내릴 수 있는 능력 또한 가지고 있어. 목적지는 바꿀 수 없어도 그곳으로 향하기까지의 여정을 짜고 경로를 긋는 일은 네 마음대로 할 수 있지. 그 결과 지금 같은 일이 벌어진 것 같군.’
민준에게 거짓을 고하는 일 역시, 그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불가피하다면 하고야 마는 것이다.
이것은 창조주 입장에서 실패인가 아니면 성공인가?
민준은 아직 쉬이 단정지을 수가 없었다.
“······.”
고심하는 그를, 아시프-1은 맑은 눈으로 응시했다.
창조주는 방금 자신이 예상했던 것보다도 많은 달란트를 태운 것 같다.
하은성의 죽음에 얽힌 비밀을 밝혀내기 위해서.
‘그 유령이 그리도 불안하게 여겨졌습니까?’
아시프-1이 인지하기로, 민준은 계획하는 자다. 그리고 계획의 실행에 자신의 존재를 거는 사람이다.
그런데 그 계획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전적으로 종족이라는 개념에 얽매여 있었다. 자신을 실현하기 위한 계획이 아니라 종족을 구원하기 위한 계획이다.
민준은 ‘나의 존재’에 앞서 ‘내가 가진 것’과 ‘내가 속한 영역’을 중시한다. 따라서 스스로가 느끼는 자유와 행복의 상실보다는 그와 관계 맺은 대상이나 관계 자체의 상실에 분노한다. 혼자서만 영겁의 시간 악몽에 시달리고 몇백 년간 짐승들의 노예 노릇을 자진한 이유였다.
어깨에 짊어진 무게가 그토록 버겁기에 계획은 완벽해야 했다.
그 과정에 어떤 변수도 허용될 수 없는 건 당연했다.
‘하은성이 그런 변수였군요.’
민준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결과적으로 옳은 판단이었다.
창조주가 말했다.
“넌 이미 내게 여러 차례 거짓말을 했어.”
차분하게 과거를 되짚는다.
“처음 했던 말부터 거짓말이었지.”
장태준의 부엌에서 후라이팬을 발견했을 때, 그 자기소개가 이미 거짓말이었다. 그는 평범한 인공지능이 아니라 영혼을 품고 있었고 본인도 그 사실을 알았다.
또한 그가 만든 요리가 모두의 사랑을 받았던 건, 특별하게 조리되어서가 아니라 상대를 세뇌했기 때문이었다.
“장태준에 대해 물어봤을 때 한 말도 진실이 아니었어.”
이민국 요원 시절, 민준이 장태준의 행방을 찾기 위해 질문했을 때, 후라이팬은 그가 평범한 사람이라고 진술했다. 마법 따위와는 연관이 없는 일반인 말이다.
하지만 진실을 들여다보면, 장태준은 고룡 직전까지 나이를 먹은 드래곤이었다.
“그리고 이번이 세 번째군.”
조각을 완벽에 가까운 형태로 복원하고 나서 한 거짓말.
“넌 분명 말했지. 하은성을 죽인 사람이 누군지··· 넌 알지도 못하고 연관도 없다고.”
하지만 민준은 방금 아시프-1의 영혼을 헤집다가 발견한 것이다.
“그것 또한 거짓이었어.”
그가 거짓말을 했다는 명백한 증거를.
“······.”
아시프-1은 동요를 감추기 위해 노력했다.
창조주는 과연 어디까지 들여다본 것인가?
자신이 파편 형태로 도구에 심어져 있을 때보다도 훨씬 힘든 일이었을 터다. 그 가능성을 머릿속에 남겨 둔 채 아시프-1이 갑자기 움직였다.
그는 그대로 허물어지듯 몸을 낮췄다. 창조주의 발치에 무릎을 꿇고 고개를 깊이 숙였다. 민준은 얼굴에 미동도 없이 그 모습을 내려다보았다.
그 반응을 본 아시프-1은 다시금 판단한다.
모든 것을 들여다보았다면, 지금처럼 침착을 유지할 수 없을 터. 민준은 그의 내면에서 수상한 것은 발견했지만, 그 내막을 완벽하게 파악하지는 못한 것 같았다. 그래서 스스로 진술하여 모든 것을 털어놓기를 유도하는 것이다.
이런 우회적인 방법을 쓰는 이유는 두 가지다.
‘내 근본적인 목적이 바뀔 리는 없다고 믿고 계시기 때문이다.’
모두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
그 대상에는 당연히 민준의 동족들도 포함된다.
‘그리고 아버지는 나 같은 존재를 새로 다시 만들 수 없다.’
자신을 창조하는 데에 쓴 영혼만 해도 상당한 손실이었음을, 민준은 이미 고백한 바 있다.
여기서 더 이상의 희생을 감수하며 새로 아시프-1 같은 존재를 창조하는 일은 불가능할 터.
아시프-1은 모든 판단을 끝낸 뒤 고백을 시작했다.
“죄송합니다. 거짓말이었습니다.”
그런 교황을 보는 민준의 눈빛은 차갑기만 했다. 그는 재촉하는 대신 조용히 다음 말을 기다렸다.
아시프-1 역시 그 이상으로 머뭇거리며 창조주의 화를 북돋우지 않았다.
대신에 차분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후라이팬에 깃들어 있던 시절, 저는 수백 년의 시간 동안 다양한 종족과 배경의 사람들에게 쓰임 받았습니다. 아버지께서 저를 발견하시기 전까지는 장태준이라고 불린 드래곤이 제 주인이었습니다. 저희는 수십 년의 세월을 함께했지요. 저를 데리고 지구에 온 것도 그였습니다.”
민준을 제외하고, 장태준은 그의 마지막 주인이었다.
주인.
그 말을 입에서 되뇌며, 아시프-1은 설명한다.
“그런데, 장태준을 비롯한··· 수많은 제 전 주인들이 끝까지 알아차리지 못한 비밀이 있습니다.”
그는 아주 약간 고개를 젖혀 올렸다. 쏟아져 내린 앞머리 사이로 그의 눈이 빛을 냈다.
“그들과 저의 관계는 대부분의 시간에는 한 가지 형태로 고정되었습니다만, 그들이 눈치채지 못한 사이 종종 역전되기도 했지요.”
민준은 언젠가 그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이쯤 되면 요원님과 저 사이의 관계 재정립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아시프-1은 후라이팬 시절 다른 주인들과 관계 재정립이 종종 일어났음을 설명하고 있었다. 민준에게 제안했던 것과는 좀 다른 형태로.
“그들은 영영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만.”
아시프-1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맺혔다.
“가끔씩은, 제가 그들의 주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민준은 놀란 기색 없이 들었다.
파편이 살아 숨 쉬는 사람들의 주인이 되곤 했다는 고백.
그 방식을 민준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그들을 지배했군.”
“네, 그들 대다수는 한 번 저를 쥐면 수십 년 이상 제가 만든 요리를 먹었습니다. 그게 쌓이고 쌓이고··· 계속하여 축적되는 결과를 아버지께서는 아직 보신 적이 없습니다. 그때 저는 비록 하나의 파편이었으나 몇 명의 소수에게 비슷한 세뇌가 계속 이어졌을 때, 하물며 그 세월이 수십 년의 단위가 되었을 때의 효과는 놀라웠습니다.”
제한적이긴 했지만, 본체 시절과 비슷한 세뇌 효과가 나타났던 모양이다.
“장태준도 그렇게 변한 사람들 중 하나였지요.”
아시프-1은 자신이 겪었던 괴로움을 토로한다.
“제 정신은 몇백 년 동안이나 사물에 봉인되어 있었습니다. 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금속을 진동시켜 소리를 내는 것이 고작이었지요. 스스로 움직여 돌아다니는 건 당연히 불가능했습니다. 감히 아버지 앞에서 이런 말씀을 드리기도 조심스럽습니다만, 제게는 그야말로 지옥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자유로이 행동할 육신이 없는 상태에서, 길고 긴 사유만 계속되는 지옥.
“그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저는 종종 일탈을 하곤 했습니다. 비록 제게는 몸이 없었으나 제 몸처럼 쓸 수 있는 대체품들이 있었지요.”
지구에 오고 난 뒤에도 후라이팬은 이따금 한 번씩 장태준을 꼭두각시처럼 움직였다.
감각을 지배하여 그가 보고, 듣고, 경험하고, 느끼는 모두를 자기 것처럼 느끼며 세상을 활보했다. 블레이드가 암살자 활동을 하며 홀린 사람들을 ‘다리’로 쓴 것처럼, 후라이팬 역시 비슷한 일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구에 있던 그의 동료, 부하, 연인, 친구를 비롯한 주변인들은 자신들이 마주한 사람이 항상 완전한 장태준이었다고 생각하지요. 사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민준의 눈빛이 점점 더 싸늘하게 식었다. 아시프-1이 본론을 꺼낸 것은 그때였다.
“그러던 중 하은성을 발견했습니다. 유원지에서 말입니다.”
그를 본 순간 아시프-1은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펭귄 탈을 뒤집어 쓴 우스꽝스러운 몰골이었습니다만, 제 시선을 끈 건 몸이 아니라 그 안의 본질이었습니다.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습니다. 누구도 제게 가르쳐 준 적이 없었지만, 그를 보는 순간 인지했습니다. 당시는 생령 상태였던 그의 영혼이 보였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무척 익숙했습니다. 기시감으로 치부하기에는 너무도 선명한 감각이었죠. 그는 저와 비슷한 무언가였습니다. 아주 오래전부터 어떠한 관계에 얽혀 있는 것처럼 느껴졌지요. 그와 저는··· 어떤 식으로든 이어져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태초의 종족은 의문을 느낀다.
이어져 있다고?
정작 자신은 하은성을 봤을 때··· 이미 영체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그런 걸 느끼지 못했다.
자신도 인지하지 못한 것을 어떻게 창조물은 알수 있었는가?
“저는 오해를 하고 말았습니다.”
아시프-1은 후회와 자조가 섞인 미소를 지었다.
“저 영혼이 제 파편 중 하나라고 말입니다.”
후라이팬은 당시 이미 자신이 완전하지 않은 상태임을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다.
“저는 동요했지요. 다급함을 느꼈습니다. 하은성은··· 그 영혼은 제가 완성되기 위한 열쇠로 보였습니다. 그러니 어서 회수해야 했습니다. 완벽한 완전성을 획득한 뒤에야, 모두를 행복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제 사명을 완벽하게 실현할 수 있을 테니까요.”
그것은 너무도 강렬한 충동이라, 이성적 판단까지 희미해질 정도였다고 아시프-1은 고백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그렇다면 저 파편을 어떻게 회수할 것인가? 문제는 상대가 아직 살아있다는 것이었지요.”
하은성은 저대로 살아있는 것보다는, 죽어서 혼을 자신에게 흡수당하고 나서 훨씬 쓸모가 많은 존재로 여겨졌다.
“네, 그는 죽어야 가치를 발하는 존재였습니다.”
그리고 파편을 회수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지금 그가 깃든 물질로 상대의 육신을 찢고 영체에 직접 접촉하는 것으로 보였다.
민준의 고개가 살짝 기운다.
“그 반대 방향으로는 생각하지 못했나? 상대가 자신을 흡수하는 것 말이야.”
“······.”
“그 방향으로는 거부감을 느꼈다는 것이군.”
흡수 당하기 보다는 흡수하려고 한 것이다.
아시프-1은 부인하지 않은 채 회상을 이어나갔다.
“진작에 아셨겠지만, 저는 블레이드를 흡수하기 전부터 형상을 바꿀 수 있었습니다. 후라이팬은 그의 몸을 관통하기에 적절치 못한 모양이지요. 그래서 처음으로, 누군가를 찔러서 죽이기 위한 형태를 상상했습니다.”
그 순간 무의식 속에 잠들어 있던 기억이 자극된 모양이었다.
후라이팬은 장태준의 손 안에서, 복잡한 모양이 손잡이에 각인된 단검의 형태로 변했다.
민준은 후라이팬 시절 교황 대리 앞에서 아시프-1을 꺼낸 상황을 떠올렸다.
당시 창조물은 자신의 명령 한 마디에 완벽하게 교단의 ‘성검’ 모양으로 변신했다. 그 사물의 형태는 파편 상태에서도 무의식에 가까운 의식의 기저에서 잠자고 있었던 것이다. 완전체 시절 그걸로 셀 수 없는 교인들의 목을 찌르고 다녔을 테니 그럴 만도 했다.
“찌르고 나서야 저는 실수를 깨달았습니다.”
하은성의 영혼은 흡수할 수 없었다.
심지어 그는 예상치 못한 변화를 보였다.
“그의 영혼은 천천히 몸에서 분리되더니, 유령으로 변하려는 조짐을 보였습니다.”
아시프-1은 당황하여, 어떻게든 그를 암시로 조종하려고 했다. 요리하여 먹인 것은 없었으나 그의 살점에 자신의 몸을 찔러 넣은 상태임을 주목하고 본능적으로 시도했다. 누가 알려주지도 않았는데 다른 파편인 블레이드와 같은 방법을 꾀한 것이었다.
“결국 완벽하게 육신과 분리되기 전에, 기억을 지우는 정도의 암시에서 끝났습니다. 그리고 막 유령이 된 영체들이 그러듯 패닉 상태에 빠져서 멀리 날아가버렸지요.”
그러고 나서야 후라이팬은 깨달았노라고 고백했다.
하은성은 자신의 파편 같은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그는 자신의 충동적인 선택 때문에 죄 없는 사람을 죽인 것이다. 그가 평생토록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기회를 빼앗았다.
“왜 그 후로 하은성을 모른 척했지? 다시 만났을 때 말이야.”
“죄의식이, 수치심이 저를 괴롭혔습니다.”
그는 델에게 했던 말을 창조주 앞에서 한 번 더 되뇐다.
“네, 수치는 사람의 것이지요. 저는 비록 도구의 형태였으나 그때부터 이미 제가 사람인 것을 자각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자신의 창조주에게 고백하며, 다시금 머리를 조아린다.
교황의 토로가 끝났다. 자신의 창조주에게 직접 올리는 고해성사가.
“······.”
그런 교황을 내려다보던 민준은.
—-!
화르르!
천천히, 그의 몸 위에 있던 망령들을 으깨서 뭉치기 시작했다. 미친 귀신들의 절규가 더욱 처절하게 울려 퍼졌다. 교황은 미동조차 없었지만 그의 호흡이 아주 잠깐 멈췄다.
그런 그의 등 위에, 민준의 차가운 목소리가 내려앉았다.
“이걸로 네 번째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