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er on the Frontier RAW novel - Chapter 249
250. 사람의 자격 (15)
***
골드 드래곤의 울부짖음을 개발자들이 들었다면 몹시 억울했을 것이다.
그들에게 개발 의뢰를 넣은 지휘관은 적어도 자신이 뭘 원하는지는 안다는 점에서 최악의 클라이언트는 아니었다. 종종 많은 의뢰인들이 자기가 뭘 바라는지도 모르면서 의뢰를 넣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환영할만한 일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를 좋은 의뢰인으로 볼 수도 없었다. 개발자에게 잘못된 정보를 전달했기에.
– 침투조가 보고하기를, 폭탄은 불량이었다더군. 개선이 필요하네.
첫 침투에서 멀쩡한 폭탄이 불발탄 취급 당한 사건 진상을 들여다보면 이렇다. 그곳에 갇혀 있던 누군가 용혈을 전부 흡수해버려 카바이트가 중독 증상을 보일 기회마저 빼앗아버린 것이었다.
이런 진실은 당연히 개발자들에게 전해지지 않았고, 그들은 골머리를 앓다가 여러 이유를 추측해 냈다.
그 결과, 후속 모델은 용혈 농축도를 높이고 코팅 성분의 함량을 줄이는 쪽으로 개량되었고.
– 밸런스는 일정 부분 포기한다. 더 강하게, 더 빨리 터지는 것을 목표로 하자!
그러자 촉박한 일정과 성과 압박에 갈린 개발자들이 성능을 위해 안정성을 포기할 때 수반되는 부작용이 나타났다.
수율이 낮아진 것이다.
개량된 폭탄을 구출조에게 인도하고 나서도, 개발자 일부는 불안감 속에서 웅얼거렸다.
– 이거··· 정말 괜찮을까요?
괜찮지 않았다.
“젠자아아앙!”
쾅! 콰콰쾅!
엘프로 폴리모프한 젠킨슨은 벽을 부수며 달렸다.
고대 종족이 나중에 증축한 영역은 쉽게 부서졌지만 그보다 먼 옛날 태초의 종족이 손을 댄 부분은 그조차 쉽게 파괴할 수 없었다. 또한 왜곡된 공간 때문에 텔레포트는 불가능했다.
그래서 그는 종종 같은 길을 두 번 왕복하거나 가까운 거리를 돌아가야 했다. 그럴 때마다 카바이트들이 따라붙었다.
“젠장, 또 따라잡혔어!”
그가 주문을 외우자 빛이 모여 검날을 만들었다. 손짓과 함께 총탄처럼 튕겨 나간다. 섬광이 공기를 찢으며 적을 향해 쇄도했다.
쐐애애액!
“케에엑!”
거머리를 닮은 종족들이 동강 난 채 바닥에 뒹굴었다. 이미 수도 없이 반복된 과정이다.
젠킨슨의 은닉이 깨지고 침입 사실이 들통난 그 순간부터.
‘이런 말도 안 되는 불량품을 넘기다니!’
그랬다. 다섯 개 중 하필 젠킨슨이 받은 폭탄이 불량품이었다.
이번에는 드래곤의 착각이 아니라 진짜 불량이다.
몇 분 전. 살충제 살포기처럼 무색무취의 용혈을 뿌리던 젠킨슨은 이변을 알아차렸다. 그가 이미 지나온 길목에 카바이트의 비명이 이어졌다. 곧 분위기가 몹시 어수선해지더니, 방독 아티팩트로 무장한 자들이 기지 내부를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상대가 작정하고 수색한 이상 들통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침입자! 여기 침입자가 있다!”
다른 구출조들도 하나둘씩 발각되어 탈출을 꾀하는 중이다. 젠킨슨은 끔찍한 기분을 느꼈다.
‘이번 작전마저 실패라니!’
심지어 살아나갈 확률이 희박하다는 점에서 더욱 끔찍한 참패였다.
화르륵!
달려드는 마지막 카바이트의 길죽한 몸뚱아리를 구워버리며, 고룡은 살길을 모색했다.
‘마력이 떨어져 간다.’
그가 몰이사냥을 당하며 엉뚱한 장소까지 다다른 찰나였다.
“아니?!”
공기의 냄새를 맡듯 젠킨슨의 시선이 한 곳에 몰린다. 긴장 때문에 한계 가까이 각성된 주의력이 무언가를 포착했다. 설마? 이런 타이밍에? 의심하듯 곱씹더니, 갑자기 두 눈을 크게 떴다.
“이 파동은···!”
동공이 흔들렸다.
아주 가까이서, 그가 착각할 수 없는 익숙한 마력 흐름이 느껴졌다.
드래곤 하트는 각각 고유의 마력 파장을 지니며 다른 드래곤의 그것과 융합되기 전에는 쉽게 변하지 않는다.
그리고 젠킨슨은 수천 년을 함께 해 온 가족의 파장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착각할 리 없었다.
‘저번 침투 때는 이렇게 선명하게 느껴지지 않았는데!’
그가 2차 침투조에도 자원한 이유는, 저번 작전 때도 이 파동을 느꼈기 때문이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드래곤 하트.
하지만 그때는 감도가 나쁘고 매우 희미했다. 닿을 수 없는 깊숙한 곳의 결계에 숨겨 놓은 듯이.
반면, 지금은···.
‘결계 밖으로 꺼낸 건가? 왜?!’
이유야 어찌 되었건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작고한 양친이 남긴 고귀한 유산.
특별한 드래곤에게 전달되어야 할, 가장 오랜 시간 계승된 힘의 증표.
그가 생각하기에 이것은 운명이었다. 저세상에서 부모가 안배한 기적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아버지, 어머니··· 감사합니다. 반드시 당신들의 유지를 되찾고, 여기에서 살아나가겠습니다!’
젠킨슨의 얼굴에 결연한 의지가 맺혔다.
***
“사고가 생긴 것 같군요. 잠시 다른 곳으로 모시겠습니다.”
통신을 마친 카바이트는 각종 보호구를 꺼내 무장하더니 민준을 카바이트로 폴리모프시키려고 했다. 그의 존재는 동족 사이에도 극비인지라 격리실 밖으로 나갈 때는 필수적인 절차였다.
우웅!
카바이트의 융모가 움찔거리며 마력을 뿜고, 민준은 조심스레 마법 저항력을 낮췄다. 예전 같으면 이럴 필요 없었겠지만 최근 ‘기적’ 덕분에 힘을 약간이나마 찾은지라 스펠을 반사적으로 튕겨낼 염려가 있었다.
미리 준비한 덕에 주문은 저항 없이 스며들었다.
파앗!
평범한 인간과 다를 바 없는 남자가 사라지고, 대신 그가 조류 생식기로 비유하곤 하는 생물이 나타났다.
민준은 치욕감을 참으며 카바이트가 내미는 보호구를 찼다. 생화학무기를 방어하는 종류임을 그는 한눈에 알아보았다.
‘침입자라고 했지.’
누가 고대 종족의 기지를 침입하겠는가?
‘드래곤이겠군.’
“자, 가시지요.”
카바이트는 지금까지 민준의 출입을 허락하지 않았던 중심부 방향으로 인도했다.
그들은 호위병들과 함께 으슥한 길목을 따라 급하게 움직였다.
교신에 따르면 침입자들이 이 근처에서 난동을 부리고 있었다. 들켜서 도주 중이라고 하니 아마도 출구 쪽을 향할 것이다. 상대적으로 더 깊숙한 곳에 있는 자신들과 동선이 겹치진 않겠지만, 혹시나 하는 염려 때문에 대피시키려는 것이었다.
마주칠 확률은 희박했다.
분명, 그래야 하는데.
쾅! 콰쾅!
“뭐··· 뭐야?!”
도망치던 카바이트는 경악했다.
굉음이 빠른 속도로 가까워지고 있었다. 통신기에서 미친 듯이 고성이 오갔다. 태초의 종족을 당장 그곳에서 대피시키라는 통제실의 고성이었다.
침입자 중 한 명이 그들을 향해 가공할 속도로 접근 중이었다!
“왜 여기로···?!”
설마 우리가 타깃인가?!
콰쾅!
그들 왼편의 벽이 날아갔다. 파편과 가루가 사방에 튀고, 분진 너머로 낯선 실루엣이 보였다. 몸 곳곳에 상처가 가득하고 의복이 넝마가 된 엘프의 모습이었다. 물론 온 몸이 근육질에 신장 3미터가 넘는 그의 정체가 정말 엘프라고 생각하는 이는 없었다. 그 종족 따위가 흉내낼 수 없는 거대한 마력이 살기와 뒤엉켜 춤을 췄다.
‘드래곤···!’
난폭한 시선이 쏟아져 내리고, 카바이트는 극심한 혼란을 느꼈다.
왜 출구를 향하는 대신 여기까지 쫓아왔는가. 혹시, 태초의 종족을 노리고? 그들의 존재도 모르는 짐승들이 어떻게?
카바이트 관리는 그 의문의 답을 영영 알 수 없게 되었다.
쐐애액!
검푸른 선이 허공에 그어졌다. 카바이트는 시야가 절반으로 갈라지더니 그 사이의 어둠이 부푸는 것을 보았다.
그의 의식이 마지막으로 포착한 장면이었다.
쫘아아악!
체액이 폭포수처럼 터지고, 뱀을 닮은 몸이 두 결로 양단되어 뒹군다. 저 벌레가 좀처럼 쉽게 죽지 않는 걸 젠킨슨은 알았다. 카바이트의 위로 빛의 칼이 빗줄기처럼 쏟아지며 그의 육신을 가로세로로 다졌다. 빠르고 확실한 죽음을 위해서.
드래곤의 의도는 성공했다. 카바이트가 사망함과 동시에 귀속된 아공간이 터지며 내용물이 쏟아져나왔다.
와르르!
고룡은 달려드는 호위병들의 공격을 여유롭게 피하며, 아공간에서 나온 내용물 중 가장 고귀한 보물을 포착했다.
손을 휘젓자 염동력이 채찍처럼 뻗어나와 그것을 낚아챘다. 케이스 안에 담겨 있었지만 열어볼 필요도 없었다.
그것은 양친의 드래곤 하트였다.
‘되찾았다!’
이곳에 침투한 개인적인 목표는 달성했다.
진짜 문제는 다음부터다.
‘이제, 여기서 어떻게 빠져나가지?’
그런 그의 눈에 아직 숨이 끊어지지 않은 카바이트들이 보였다.
호위병들 몇몇이 악을 쓰며 달려드는 가운데, 나머지 다수는 뒤로 빠져서 누군가를 보호하듯 감싸고 있다.
‘······어라?’
드래곤은 카바이트의 생김새를 구별하지 못한다. 인간이 지렁이의 외모를 분간하기 힘든 것처럼.
하지만 젠킨슨은 지금 알아보았다. 퇴로가 막혀 도망치지 못하는 카바이트들이, 필사적으로 등을 지고 지키려 하는 한 명의 이종족을.
생긴 것은 다른 카바이트와 별 다를 바 없지만···.
‘저 빛!’
둘의 눈이 마주친다.
저들이 보호하려는 카바이트는 첫 번째 침투 때 목격한, 연락선에서 내린 이들 중 한 명이었다.
오직 젠킨슨만이 목도할 수 있었던, 눈부신 빛에 휘감긴 개체.
드래곤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빛의 정체야 뭐든 간에, 그때 열병식을 보면 엄청난 고위직인 것만은 분명하다. 지금도 필사적으로 싸고 돌잖아!’
여기서 살아나갈 길이 보이는 것 같다.
결단은 빨랐다.
‘저놈을 인질로 잡자!’
그때, 젠킨슨이 부순 벽 뒤에서 증원군이 몰려들었다. 태초의 종족을 마중하여 호위하려던 병력이 뒤늦게 도착한 것이다.
“잡아라!”
젠킨슨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감돌았다.
팟!
그의 몸이 잔상을 남기며 움직인 순간.
파파팟!
“으아아악!”
주변의 호위병들이 순식간에 갈려나갔다.
엘프로 변신한 드래곤은, 카바이트로 변신한 태초의 종족을 움켜쥔다.
서로의 진짜 모습을 알지 못한 채 두 종족은 인질범과 인질로 처음 조우했다.
“······!”
젠킨슨은 열병식 때의 장면을 기억한다.
자체 발광하는 특기를 지닌 이 거머리는 움직임이 불편하고 신체에 장애가 있는 듯 했다. 그 짐작이 맞는 듯, 인질은 반항하는 대신 꼼짝도 못하고 굳어버렸다.
드래곤은 모여든 군사들을 향해 포효한다.
“더 가까이 다가오면, 이 자식의 신경삭을 날려버리겠다!”
윙! 위이잉!
당장이라도 머리를 터뜨려 버리겠다는 듯 주변 공기가 날카롭게 진동했다.
목소리와 표정은 위협적이었지만.
‘······통할까?’
반딧불과 거머리가 교접한 듯한 이 벌레가 고위직이라는 것은 짐작이다. 사실 젠킨슨은 상대의 정체조차 알지 못한다.
알고 보면 인질로서의 가치가 없는 것이 아닐까? 혹은 여차하면 포기할 수 있는, 딱 그 정도의 고위직이라면?
젠킨슨의 그런 고뇌는 한순간이었다.
“이이익!”
카바이트들은 주저하며 달려들지 못했다. 무기만 겨냥할 뿐, 혹시라도 인질이 다칠까 공격 못하는 낌새가 역력했다.
젠킨슨은 쾌재를 부른다.
‘통했다!’
젠킨슨은 눈앞이 환하게 밝아지는 것을 느꼈다. 바로 곁에 있는 카바이트가 뿜어내는 빛 때문만은 아니었다. 살길이 보였기 때문이다.
한편 그 순간, 민준 역시 눈앞이 환하게 밝아지는 것을 느꼈다. 바로 곁에 있는 엘프가 뿜어내는 무언가 때문이었다. 그는 몸속 세포가 힘으로 들끓는 걸 느꼈다.
‘대체, 뭐하는 놈이야, 이 자식?!’
방금 민준은 두 번째 기적을 목도했다.
인질극에 심취한 엘프(로 변신한 드래곤일) 침입자는, 등에 기괴한 장비를 짊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서는···.
솨아아아아!
물안개보다 옅은 습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비록 무색무취의 액체로 가공된 상태이지만, 민준은 그 본질을 알 수 있었다.
한 뼘 거리에서 뿜어져 나오는 그것은 분명 용혈이었다.
잠들기 전에도 본 적이 없는 기이한 광경이었다.
‘예삿놈이 아니군. 왜 등에 용혈 분수를 짊어지고 다니지?!’
어쨌거나 이 기회를 놓칠 수는 없다. 드래곤에게 제압당한 채, 민준은 조심히 보호구를 비활성화했다. 살결에 감미로운 용혈의 습기가 맺힌다. 그것은 방울을 만들며 흘러내리기도 전에 바로 살갗 아래에 흡수되었다.
“길을 터라!”
용이 포효한다.
카바이트들은 낭패를 느꼈다.
“그··· 그를 내놓아라, 이 비린내 나는 짐승아!”
차마 인질의 정체를 밝히지는 못한 채 카바이트들이 쭈뼛거린다. 그러자 젠킨슨만큼이나 민준의 머릿속도 바빠졌다.
인질범은 이대로 행성 밖으로 탈출하려 할 것이다. 민준의 목표도 바로 그것이었다.
‘내게 인질 가치가 있다는 확신을 깨서는 안 돼!’
이 상황에서 사실 내가 카바이트가 아니라는 걸 밝힐 필요도, 태초의 종족이니 뭐니 하는 비밀을 털어놓을 필요도 없다.
그러는 대신 민준은 위엄이 가득한 목소리로 외쳤다.
=“이게 뭣하는 짓이냐? 이 더러운 손 당장 놓지 못할까?!”=
“······!”
그 목소리에는, 한때 한 종족의 머리 위에 군림한 지배자의 오만과 권위가 실려 있었다. 드래곤조차 한순간 움찔했을 정도였다. 잠깐이나마, 정말 놓아줘야 하는 게 아닐까 생각할 정도로.
하지만 그것도 찰나였다. 다음 순간 드래곤은 확신하게 되었다.
‘이 놈··· 어쩌면 내 상상을 초월한 고위인사일지도 모른다! 탈출한 뒤에는 포로 교환에 써먹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면 오늘 작전도 완전한 실패는 아니다. 포로 구출을 기약할 열쇠를 얻었으므로.
민준이 외친 문장의 의미와는 상관없이, 드래곤의 머릿속에는 인질을 데리고 탈출해야겠다는 충동이 가득 찼다. 원래 하려고 했던 일이기에 저항은 없었다.
젠킨슨은 카바이트를 어깨에 짊어졌다. 거머리는 반항하듯 꿈틀거렸지만, 우연의 일치인지 힘의 방향이 엇갈려서 침입자 어깨 위에 자기 힘으로 올라타는 꼴이 되었다. 그 어색한 움직임을 관찰자들은 눈치채지 못했다. 긴장한 젠킨슨도 마찬가지였다.
파앗!
양친의 드래곤 하트와 정체불명의 카바이트 최고위층(추정)이라는 일석이조의 성과를 쥔 채, 젠킨슨은 기습적으로 주문을 터뜨렸다.
콰쾅!
“으악! 자, 잡아!”
젠킨슨은 마지막 남은 마력을 끌어모아 도주했다. 그는 추적자들을 가까스로 따돌리면서 엄청난 속도로 움직였다. 배경이 선처럼 늘어지며 휙휙 스쳐 지나간다.
그리고 민준은 당황했다.
‘······아, 이 자식. 이쪽 방향이 아닌데.’
정신 없이 쫓기던 탓에 젠킨슨은 미리 염탐한 적 없는 통로를 내달리고 있었다. 그때문에 가까운 길을 두고도 험로를 택한 것이다. 어깨 위의 민준은 고뇌에 빠졌다.
납치당한 카바이트가 출구 방향을 알려주는 것도 어색할 것이다.
그러는 대신······.
‘이제 가능하지 않을까?’
민준은 조용히 주문 하나를 만든다. 건물 곳곳에 피를 흘리며 쓰러진 카바이트가 제물이 되었다.
사르르!
죽어가던 카바이트가 숨을 거두고 시신 그림자가 흔들렸다. 거기에서 빠져나온 검은 형상은 어둠을 타고 젠킨슨을 앞서 나갔다.
잠시 후, 골드 드래곤이 교차로에 다다른 순간이었다.
콰쾅!
그의 전방에서 폭발음이 울렸다. 그림자 조각이 벽을 부순 것이다.
젠킨슨이 흠칫, 몸을 굳혔다. 그와 동시에 추격자들의 고성이 들렸다.
“이쪽! 이쪽에서 소리가 들렸다. 여기로!”
“···젠장!”
소음 때문에 그쪽으로 추적자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젠킨슨은 어쩔 수 없이 방향을 틀어 다른 길목으로 내달렸다. 민준이 의도한 출구 방향이었다.
‘그래, 옳지. 잘한다. 계속 가라.’
그 순간 민준은 자기도 모르게 오래전의 기억을 떠올렸다.
왜 하필 옛날 길잡이 용의 훈련 과정이 떠오른 것인지, 그로서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스으으으!
드래곤이 짊어진 폭탄에서는 멈추지 않고 무색무취의 용혈이 분출된다. 민준은 이제 눈치도 보지 않고 그것을 충실하게 흡수했다.
용은 부모의 유산을 찾고, 살길을 찾고, 포로들을 구할 전략까지 찾아서 기뻤고.
태초의 종족은 연달아 기적이 선물처럼 찾아온 덕분에 기뻤다.
각기 다른 생각을 품은 도망자들은 가로막힌 벽 너머의 자유를 향해 나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