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er on the Frontier RAW novel - Chapter 300
301. 업(業) (6)
***
젠킨슨은 바로 상황파악을 끝냈다.
정신파가 도달하지 못한 것은 민준이 있는 지점 주위에 강력한 결계가 생성되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를 가두는 목적.
그리고 지금 들린 목소리의 주인공은 아직 건물 밖에 있었다. 마법으로 음성만 보낸 것이다.
젠킨슨은 멀리 있는 상대와 거칠게 몇 마디 주고받은 뒤.
팟!
바로 텔레포트 주문을 외웠다.
사라졌던 그가 다시 등장한 곳은 육지와 적당한 거리를 둔 바다 위였다. 젠킨슨이 부른 좌표를 따라 상대도 곧 모습을 나타냈다.
망망대해에서 두 남자의 시선이 교차한다.
“이리 멀리까지 부를 필요는 없었는데. 어차피 네 영지를 망가뜨릴 생각은 없으니.”
그리 말한 자는 백발의 엘프였다. 하지만 이 모습이 본체가 아님을 젠킨슨은 안다.
“어느 차원이지?”
“차원 #33-010의 로드를 맡고 있지. 페르센이라고 한다.”
젠장!
하필이면 젠킨슨보다 나이가 많은 고룡이다.
레드 드래곤은 날 세운 어조로 추궁했다.
“사전 협의 없이 지구에 들어온 이유는? 저 먼 바다의 소란에도 당신이 연관되어 있을 것 같은데.”
페르센은 밀입국자나 마찬가지다. 위원회의 통제가 사라진 틈을 타, 다른 종족으로 위장하여 지구로 온 것. 용족의 범차원적 관습에도 어긋난 일이다.
“25개 차원의 드래곤 로드가 논의한 결과, 지구에 사전 통보를 했다가는 작전이 실패할 거라는 공감대가 형성되었거든. 그 점은 안타깝게 생각해. 하지만 불가피했다구. 너와 아시프-666 사이 관계에 대한 소문이 워낙 자자해서 말이야.”
타깃은 역시 민준이다.
젠킨슨은 끓는 증기같은 날숨으로 말했다.
“25개 차원? 이 미친 놈들이 정말···!”
그가 분노한 이유는 너무 많은 차원이 지구의 뒷통수를 쳤기 때문이 아니었다.
겨우 25개의 차원이 공모했다고 한다.
그럼 동원된 드래곤은 고작 수천 명일 것이다.
“그 인원으로 민준··· 아시프-666을 노리는 거냐?”
페르센은 여유로운 표정을 짓는다.
상대의 말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다.
“나머지 드래곤들은 전함을 포위하고 맹공을 펼치는 중이지. 보시다시피.”
빛이 번쩍이고 마력파가 휘몰아치는 방향을 가리킨다.
“그리고 나는 이 별의 드래곤 로드··· 그러니까 너와의 교섭을 맡았고.”
“교섭?! 내 등 뒤에서 일을 꾸미고 다 저지른 뒤에야 다가와서 교섭이라고?!”
“늦게나마 손을 내밀겠다는 뜻으로 이해하라구.”
해풍에 휘날리는 앞머리를 넘기며 페르센이 웃었다.
“그를 추적해 온 건가?”
“그래. 우리는 우주 모함 한 대가 차원 #00-001에서부터 열 번이 넘는 차원 이동을 한 걸 확인했어. 터미널을 경유하지 않고 도약 마법을 사용했더군. 위원회 붕괴 후 차원 방벽이 약해졌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야. 물론, 저 큰 모함을 통째로 옮긴 기술은 경이롭지만.”
입가의 미소는 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최신식 전함도 영계의 흔적을 완전히 지우진 못했더군. 출발지의 자국을 지우려면 그 차원으로 다시 돌아와야 하고, 결국 도돌이표가 되니까. 그런데 나중에 보니, 굳이 힘들게 추적을 할 필요도 없었더라는 거야? 어리석게도, 이렇게 지구에 당당히 모습을 나타냈으니. 그리고 우리 측 첩자들은 탑승자의 정체를 확인했지.”
아시프-666.
“절호의 기회 아니겠는가? 이 타이밍을 놓치면 그게 드래곤이겠냐고?”
젠킨슨은 목구멍 아래에서 치미는 절망을 느꼈다.
“민준, 그가 어떻게 위원회를 이겼는지는 궁금하지 않았나? 덤비기 전에 아시프-666의 전력을 먼저 분석해야겠다는 생각은 안 들던가? 드래곤이 질 거라는 생각은 못했냔 말이야!”
페르센은 손을 내저었다.
“당연히 파악이 끝났지. 아시프-666은 아시프-1을 부활시켰어. 그래, 그 우주 최악의 범죄자 말이야. 그에게는 세뇌 능력이 있거든. 백 척이 넘는 우주 모함이 그들 손에 넘어간 기적이 이걸로 설명되지. 승무원들을 몽땅 세뇌한 거야!”
이계의 드래곤은 과장스러운 제스처로, 비밀을 말하듯 속삭인다.
“그런데, 첩보에 의하면 그 아시프-1이 아직 차원 #00-001에 남아있단 말이지? 아시프-666은 고작 한 척의 모함을 이끌고 지구에 넘어온 거야. 세뇌능력자도 없이! 이 정도면 해볼 만하지. 이 기회가 아니면, 언제 그를 해치우겠어?”
본부의 붕괴 후 외계 드래곤들이 포획한 위원회 잔당은 대부분 고대 종족보다는 그들 아래에서 일하던 다른 종족들이었다.
그들은 교단 본부나 차원 #00-001에서 전쟁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상세히 알지 못했다.
제한된 정보로 시나리오를 짜 맞춘 페르센을 향해, 젠킨슨은 억장이 무너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에게 우리 상상 이상의 능력이 있을 거라는 생각은 못 해봤나?!”
페르센은 인상을 찌푸렸다.
“비이성적 상상에 근거해 전략을 짜는 지휘관이 어디에 있어? 너 같으면 내일 지진이 일어날까 두려워서 항복하겠나? 오늘 오후에 운석이 떨어질까 무서워서 주둔지를 포기하겠냔 말이야.”
“좀 더 그를 관찰하다 협상을 진행하겠다는 생각은?”
“관찰은 이미 충분히 했어. 전쟁은 타이밍이야. 이 순간을 놓칠 수 없다고 모두 동의했네. 위원회는 사라졌고, 승자인 아시프-666만 처리하면 우주는 다시 정상으로 돌아갈 거야.”
“···정상으로?”
“그래. 계급 피라미드 최상위 층에 드래곤이 당당히 선 세계. 고대 종족이 돌아오기 전, 그 평화롭고 아름다운 세상으로 돌아갈 거야! 우리는 완벽무결한 위대함을 되찾을 거란 말이다!”
“대체···”
“음?”
젠킨슨은 더이상 참을 수 없었다.
“대체······.”
그것은 갑작스러운 외침이었다.
레드 드래곤은 입이 아니라 몸 전체를 써서 소리쳤다.
“ㄷ-ㅗ-ㄷ-ㅐ-ㅊ-ㅔ-ㄱ-ㅏ!”
굉음이 터졌다.
콰쾅!
콰르르르르!
압축되었던 공기가 폭발하듯, 원형의 충격파가 주변을 휩쓸었다.
페르센은 잠시 인상을 찡그리는 데 그쳤지만.
해수면에는 그들 위치를 중심으로 둥근 파도가 생겼다. 거친 물결이 수평선을 향해 휩쓸며 나아갔다. 하늘에는 구름이 찢기고 밀려나며 푸른 허공을 만드는 장면이 보였다.
구르르르릉!
메아리가 잠잠해질 때까지 기다린 뒤.
페르센은 조롱하는 투로 중얼거렸다. 귓바퀴를 긁적이며.
“꽤나 시끄럽군.”
젠킨슨의 눈에는 핏발이 섰다. 온몸에서 열기가 쏟아져 나온다.
그는 격분하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채 으르렁거렸다.
“대체 우리는 뭐가 문제인 거냐?!”
“문제라니?”
그 순간.
젠킨슨과 전대 로드의 인격은 각기 육성과 생각으로 같은 말을 외치고 있었다.
“내가 ‘우리’를 위해 지금까지 얼마나 노심초사하며 고생했는지 아나?”
– 내가 ‘우리’를 위해 지금까지 얼마나 노심초사하며 고생했는지 아나?
페르센은 어이없는 표정을 짓는다.
“뭐?”
레드 드래곤과 골드 드래곤은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절규했다.
“‘우리’가 사람 다운 미래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 ‘우리’가 사람 다운 미래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오직 그 목표를 위해.
“‘우리’를 위해 내 모든 걸 바치고 할 수 있는 모든 걸 했단 말이다!”
– ‘우리’를 위해 내 모든 걸 바치고 할 수 있는 모든 걸 했단 말이다!
페르센의 옅은 한숨이 흐른다.
“정신이 좀 온전치 않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이 정도일줄은 몰랐군. 아니면, 혹시 이미 세뇌당한 건가?”
젠킨슨은 고래고래 소리질렀다.
“‘너희’가 망쳤다!’
대명사가 바뀐다.
“너희뿐만 아니라··· 수많은 드래곤들. 그들 모두가 망쳤다. 지금도 망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다. 희망이 없어! 희망이··· 희망이 없어!”
젠킨슨은 가슴을 손으로 찢어 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렇게 급했나? 위원회가 사라지자마자 그 자리를 차지해야 하니 몸이 달아오르던가? 드래곤이라는 종족은 대체 왜 그 모양이지? 어찌하여 용이 아닌 모든 종족을 일단 짓밟고 나서 생각이라는 걸 시작하냔 말이다. 아시프-666과 대화를 나누고 설득하기도 전에 일단 공격해야 했나? 대체 왜?”
“정말 단단히 미쳤군.”
페르센은 진정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너도 드래곤이다. 네 눈에는 동족이 악마처럼 보이나? 괴물처럼 보이냔 말이야.”
“그래, 이제는 그렇게 보인다!”
“우리는 끔찍한 짓거리만 저지르는 악독한 종족이다?”
고래를 절레절레 흔들며.
“나도 소문은 들었어. 이상한 소리를 자주 지껄이는 드래곤이라고. 과거 다른 차원에서는 용외종족 착취를 중단해야 한다고 헛소리를 하다가 쫓겨나 망명까지 했다지. 그런데 말이야···. 우리가 왜 그런 일을 한다고 생각하지?”
“드래곤은 욕망을 절제하지 못하는 괴물들이니까!”
“아니, 그렇지 않아. 이 친구야.”
페르센은 상대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우리가 그런 일을 하는 이유는 그럴 능력이 있기 때문이야.”
“······?!”
“드래곤이 왜 우주를 지배하려 하냐고? 드래곤이 다른 종족을 자원 취급하며, 가장 효율적이고 경제적인 방식으로 소모하는 이유가 뭐냐고? 간단해. 우리에게 그럴 힘이 있기 때문이야.”
젠킨슨은 바로 반박하지 못했다.
“만약 고블린이 용의 힘을 지닌 가상의 우주가 존재한다고 생각해 봐. 그 세계에 드래곤은 없어. 거기에선 모든 종족이 동등한 권리를 인정받을까?”
그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결국은 비슷한 세계가 펼쳐질 거야. 용의 이능을 얻은 고블린들이 어떻게 행동할까? 지금처럼 지하에 처박혀 서로의 구역질나는 냄새나 맡으며 행복해할 것 같나? 천만에! 더 생산적인 일에 전념하겠지. 예를 들어, 우주를 지배하는 일 같은!”
확신에 가득한 목소리가 계속 흘러든다.
“아니면, 수준을 좀 더 높여볼까? 인간이 최상위종인 가상 우주라면? 각 종족의 능력은 현실과 똑같아. 그런 세계에서 고블린은 어떤 취급을 받을까. 지금보다는 나을까? 이 우둔한 드래곤아. 제발 꿈 좀 깨.”
“꿈을··· 깨라고?”
“스스로를 비도덕한 무리에서 유일하게 선을 추구하는, 계몽된 드래곤으로 생각했나? 남들을 보며 난 다르다는 우월감을 느끼고 싶었어? 99.9%가 악하게 태어나는 종족에서 희박한 확률을 뚫고 태어난 존재. 나만은 특별하다는 자의식에 푹 취했겠군? 미안하지만, 우리가 잘못된 게 아니야.”
페르센은 손가락을 내밀었다.
“잘못된 건, 바로 너야.”
이계의 드래곤이 그쯤에서 대화를 마무리해야겠다고 생각한 무렵.
콰콰쾅!
태평양 쪽에서 연속으로 터지던 폭음과 마력파가 최고조에 달하고.
단단한 것이 깨져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 !
그리고 누군가의 정신파를 읽은 페르센은.
씨익.
흡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방금 소식이 들어왔네. 우리 용족 전사들이··· 아시프-666의 우주 모함을 격추시켰다는군.”
젠킨슨은 놀라지 않았다.
페르센도 그 반응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준비는 철저했다. 수천의 드래곤이 결계를 짜고 포위하여 습격한 이상, 지원군이 없는 우주 모함 한 대 정도는 무너뜨릴 수 있기에. 그는 젠킨슨의 반응도 같은 결로 이해한 것이다.
하지만.
“···격추시켰다고?”
젠킨슨은 페르센이 했던 말을 그대로 그에게 돌려준다.
“아아.”
한탄하듯이.
젠킨슨은 읊조린다.
“이··· 우둔한 드래곤아.”
진심으로 안타깝다는 어조였다.
“여전히 정신 못 차리는군.”
페르센은 혀를 찬다. 그는 젠킨슨을 향해 뻗은 손가락을 거두지 않았다.
그 순간.
우우우웅!
젠킨슨의 주위에 복잡한 마법진이 떠올랐다.
이계의 용은 지금까지 대화하는 척하면서 레드 드래곤을 타깃으로 덫을 치고 있었다. 엘프로 변신을 유지한 것은 상대의 방심을 유도하기 위해서였다.
혹여 작전 도중 아시프-666이 탈출할 경우, 그는 젠킨슨을 포섭하여 새 작전을 수행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정작 그를 보니 도저히 함께할 정신 상태가 아닐 뿐더러, 오히려 방해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안하지만 잠시 여기서 쉬고 있게. 미친 용은 집나간 엔델리온만큼 위험하지. 우리가 아시프-666을 데리고 떠날 때까지만···.”
그는 말을 끝마치지 못했다.
“···어?”
두둑!
페르센은 순간 비현실적인 장면을 보았다.
엘프로 변신한 새하얀 손.
젠킨슨을 향해 치켜 내민 손가락.
덜렁.
그 검지가 부러져서, 비정상적인 각도로 휜 채 덜렁거렸다.
용은 놀란 나머지 아픔도 느끼지 못했다.
곧이어 그는 손가락이 꺾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몸이 움직인다. 의지와 상관 없이.
콰직!
“으··· 으어?”
앞은 여전히 장애물 하나 없는 허공.
하지만 불가시의 작은 구멍이 생긴 것처럼, 그의 손가락이 어떤 영역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뼈가 꺾인 이유는 그것에 가장 가까이 있었고, 살짝 옆쪽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 가공할 흡입력은 페르센의 몸을 잠시 오른쪽으로 휘청거리게 만들었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구멍에 빠진 손가락은.
콰지직!
잘게 다져진 살과 뼛조각으로 변해 구멍 반대편으로 둥글게 밀려 나왔다.
구멍은 계속 페르센을 빨아당겼다. 그 안으로 들어가는 부분이 많아지는 만큼, 동일한 질량의 고깃덩어리가 그 너머로 쏟아져 나왔다.
젠킨슨은 그 장면을 보며 정육점을 떠올렸다.
정확히는 육가공 분쇄기라고 부르는 기계를.
콰직! 콰지직! 캬르르륵!
“아, 아···!”
페르센은 본능적으로 폴리모프를 풀었다.
그제서야 젠킨슨은 상대가 화이트 드래곤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해냈다.
그것은 1초도 안 될 찰나에 벌어진 사건이었다. 여타 종족이라면 눈 깜빡할 사이 놓칠 정도로.
하지만 젠킨슨의 동체시력과, 폴리모프 상태에서도 기능을 발휘하는 신경계는 모든 장면을 슬로우 모션처럼 관찰했다.
콰르르르!
구멍에 흡입되는 부분부터, 엘프의 몸이 흰 비늘의 드래곤으로 변한다.
하지만 그 상태에서도 페르센은 흡입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거대하게 부푼 근육과 피부가 출렁이며 파도친다. 물이 가득 찬 욕조 마개를 뽑은 것처럼, 용의 비대한 몸이 소용돌이를 만들며 빨려 들어간다.
그리고 ‘재료’의 부피와 질량이 늘어난 만큼 허공에 생긴 구멍 역시 커졌다.
문, 혹은 투입구라고 불러야 할 그것은 측면에서 보면 직선에 가까웠다.
그 선을 경계로 오른쪽은 일그러지며 흡수되는 백룡의 몸, 왼쪽은 힘차게 터져 나오는 핏빛 폭포.
“페···!”
젠킨슨은 자신이 뭘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는 이미 용의 본체로 돌아갔다. 왜 그러는지 이해하지 못한 채 두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발버둥치는 페르센의 꼬리를 잡았다.
그런 다음, 온 힘을 다해 잡아당겼다. 저 문이 페르센을 빨아들이지 못하도록.
하지만 시도는 무의미했다. 화이트 드래곤의 몸은 계속 줄어들고, 바다 위로 떨어지는 붉은 폭포의 양은 늘어나고 있었다. 이미 경계는 어깨까지 왔다. 페르센이 필사적으로 목을 뒤로 튼다. 젠킨슨은 그와 눈을 마주쳤다. 이계의 용은 무슨 말인가를 하려고 했다.
곧, 그 머리마저 구멍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동시에 근육이 잔뜩 부풀었던 페르센의 꼬리가 꿈틀거림을 멈췄다. 그래도 젠킨슨은 그것을 놓을 수 없었다.
콰르르르르!
힘껏 쥐었던 밧줄이 미끄러지듯, 꼬리가 손과 마찰하며 끌려 들어간다.
젠킨슨은 백색의 꼬리 끝까지 구멍 안으로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다음 순간, 흡입구는 그 기능을 멈췄다.
그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젠킨슨에게는 영향력을 끼치지 않았다.
마치 그는 ‘재료’가 아니라고 선언하듯이.
“······아.”
젠킨슨은 멍하니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물거품이 부글거리는 수면에는 검붉은 이물질과 기름이 둥둥 떠다녔다. 물결을 따라 드문드문 덩어리가 엉겨 붙었다.
시선을 천천히 돌려 자신의 두 손을 본다. 부러지고 갈린 페르센의 흰 비늘이 손바닥 곳곳에 박혀 있었다. 날은 춥고 하늘은 청명했다. 방해물 없이 도달한 햇살이 비늘과 부딪쳐 보석처럼 반짝이며 빛났다.
방금 전까지 쥐고 있던 꼬리의 온기와 질감이 생생했다. 하지만 뇌의 착각일 뿐, 이제 페르센이라는 ‘사람’은 없다. 신기루처럼 사라진 것이다. 그의 희망처럼.
젠킨슨은 백룡의 드래곤 하트가 어디로 갔는지, 그것마저 분쇄되었다면 마땅히 뒤따라야 할 대폭발이 왜 없었는지에 대해 생각했다.
그가 참지 못하고 구토를 시작한 건 그때였다. 토사물은 바다 위로 떨어져, 사람이었던 것의 파편과 섞이며 허무하게 흐트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