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er on the Frontier RAW novel - Chapter 5
5. 직장상사를 살해하는 세 가지 방법 (2)
똥오줌 냄새가 코를 찔렀다.
민준은 나무 그림자 아래 미동도 없이 매달려 있는 시신을 바라보았다. 꽉 조인 밧줄 위, 엉망으로 부은 얼굴은 정령이 대체 어떻게 사진과 동일 인물이라고 알아본 것인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상태를 보니 하루 이틀 정도 지난 것 같다.
지문을 확인했다.
‘일치하는군.’
정령이 확인하고 레이크필드가 알려준 장소는 서울 근교의 작은 산 속이었다.
이곳에서 민준은 나무에 목을 맨 시신과 마주했다.
뒷주머니에는 곱게 접힌 종이가 꽂혀 있었다. 펼쳐서 빠르게 읽었다. 주변 사람들을 향한 사과의 말로 시작하는 편지에는 장태준 사장이 오래 전부터 우울증을 앓아 왔고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은 채 치료 및 약 처방을 받았으나 더 이상 버틸 수 없다고 생각한 끝에 극단적인 선택을 내리게 되었다고 적혀 있었다.
장례를 어떻게 치를지, 상속은 어떻게 진행할지 등의 내용은 생전에 변호사와 상의하여 별도 장소에 ‘법적 효력이 있는 정식 유언장’을 보관하였으니 그것에 따라 달라는 본론도 잊지 않았다.
‘그만한 회사 대주주이자 대표이사가 개인적인 이유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라.’
민준은 다시 한번 시신을 올려다본다.
“참···.”
나지막한 중얼거림.
“잘 만들었어.”
레이크필드는 정령을 보낼 때 사진과 똑같이 생긴 대상을 찾으라는 간단한 명령을 내렸다. 지금 저 끔찍한 얼굴은 사진과 닮은 점을 찾기 힘들지만, 정령에게는 망가지기 전 상태를 유추하는 능력이 있는 것 같았다. 또한, 일반인은 눈치챌 수 없는 미묘한 기운을 파악하는 능력도.
늙은 정령사는 말했다. ‘그런 것’을 인간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고. 정령과 감각을 일체화한 그는 금방 알 수 있었다.
이 시신은 인간처럼 보이지만, 인간의 것이 아니다.
“호문쿨루스.”
플라스크의 배양인간.
장태준 사장의 DNA로 등록된 것과 같은 정보를 활용했을 테니 이대로 검시하면 그가 맞다는 결과가 나올 것이다. 호문쿨루스 육신 자체는 진짜 인간과 다를 바 없다.
한편, 정령은 결국 재시도 후에도 진짜 장태준은 찾지 못했다. 이것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민준은 머릿속에 떠오르는 의문을 나열했다.
‘왜 실종이 알려지고 일주일을 기다린 후에 가짜 시신을 걸어 두었지? 그리고, 집 놔두고 왜 굳이 거리가 떨어진 이곳 야산을 골랐고?
이걸 추측하기 위해서는 더 근본적인 문제부터 해결해야했다.
‘애초에 무엇 때문에, 누가 이런 짓을 했을까?’
민준은 일단 장태준이 외계인이라는 가정 하에서 사고를 펼치기로 했다.
그렇다면 그의 죽음이··· 더 정확하게는 ‘인간으로서의’ 죽음이 지금 시점에 밝혀지면 가장 이득을 보는 이는?
‘유언장에 언급 되었으리라 추측되는, 그의 피가 이어지지 않은 상속자.’
반면 피해를 보는 쪽은?
불법으로 인간 행세를 한 외계인 재산을 국고로 환수할 수 없는 국가다.
‘그렇다면, 누가 했는가?’
장태준의 의사가 반영된 것이든 아니든, 이건 시총 3천억 회사에서 꾸밀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요즘 세상에 정말로 호문쿨루스를 플라스크에 배양하는 경우는 없다. 어마어마한 리소스가 필요하며 실행에 옮길 수 있는 것은 한국에서는 7대 재벌 정도.
‘판이 너무 커지는 걸?’
또 하나의 의문은, 저 회사의 주식이 액면가 이상의 어떤 가치가 있기에 이런 일까지 꾸미냐는 거다. 민준은 이 일을 계속 맡아야 할지 잠시 고민했다.
그리고 곧 잠정적인 결정을 내렸다.
‘조금만 더 파 보고, 외계인이라는 증거를 찾기 어려울 것 같으면 발을 뺀다.’
지금 단계에서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단순했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이 정도로 큰 판에 외계인이 얽힌 사실을 입증한다면 이민국 쪽에 상당히 두둑한 보수를 뜯어낼 뿐만 아니라 큰 빚을 지울 수 있다. 물론, 진짜 고용주에게 달란트도 받을 것이고.
민준은 시계를 봤다. 저녁 5시. 아슬아슬했지만, 일단 전화를 몇 통 돌려 보기로 했다.
“어, 수영아. 여기 관 하나만 보내라. ······이제 일어날 시간 다 됐잖아. 해 거의 다 졌으니까 그만 투덜거려. 응. 맞아. 위치 찍어 보낼게. 아니, 깨끗해. 별로 안 썩었어. 아니야, 언데드 아니야. 아니라니까! 내가 보증한다. 관 안 망가져. 어, 그래. 부탁한다.”
다음은 캐시에게.
“이민국이 장태준 사장 유언장 아직 확보 못 했댔지?”
“네, 힘든 것 같더라고요.”
이대로 호문클로스 시신이 경찰에 인도될 경우, 그의 죽음이 확인되고 유언장도 공개될 테지만 그것은 민준의 고용주가 바라는 일이 아니다.
다만, 공개 전에 내용을 미리 확인할 수 있다면 단서가 나올지도 모른다. 물론 엄밀히 말해서 불법행위다.
“유언장이 어디에 보관되어 있는데?”
이민국은 적당히 변칙적인 수단을 동원하여 시도 중이겠지만, 민준은 파격적으로 변칙적인 수단도 쓸 수 있다. 그래서 여차하면 직접 움직여 볼 생각이었지만······.
“창천은행 본점 VIP 금고요.”
그 말을 듣자 마자 민준은 머릿속에서 계획을 지워버렸다.
“이민국이 애를 먹는 이유가 있었군.”
저번에 강도 사건이 있었던 그 수준의 은행이라면 민준도 어떻게 비벼 볼 수도 있을지 몰랐다. 하지만 저곳은 무슨 수를 써도 뚫을 수 없다. 죽었다 깨어나도 안 됐다.
“알았어, 유언장은 일단 지금 시점에서는 포기다. 대신에, 장태준 사장 집을 한 번 봐야겠어.”
***
그의 요청은 이민국을 통해 자택을 관리하는 회사로 전해졌다. 다음 날, 약속 시간에 맞춰 고급 주택가로 향한 민준은 의외의 인물과 조우하게 되었다.
“어? 형님이 왜 거기서 나와요?”
“뭐야, 정팔이?”
상대는 며칠 전 은행 강도 사건에서 마주쳤던 박정팔 경위였다.
두 기관이 동시에 집을 보고 싶다고 하자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관리회사 직원은 난처한 눈치였지만, 둘이 알아서 해결할 테니 나가서 일 보라는 말에 화색이 되어 사라졌다.
정팔은 바로 상황을 눈치챈 듯했다.
“이거 뭐야, 따블 부킹이구만?”
정팔도 장태준 사장 실종 사건을 조사하고 있었다. 이민국과 경찰청이 각자 다른 루트로 수사에 착수한 것이다.
“잠깐만 기다려. 상황 정리할게.”
“정리할 게 뭐 있어요? 나 보고 형님 보조하라고 하겠지. ······아! 그래서 2팀장 그 새끼가!”
정팔은 뭔가를 눈치 챈 듯이 허탈한 웃음을 터뜨린다. 그 사이 민준은 캐시에게 전화 한 통을 넣고 차분히 기다렸다. 그러자.
“···네, 네. 알겠습니다.”
걸려온 전화를 받은 뒤 살짝 어두워진 표정으로 정팔이 말했다.
“지금부터 저는 형님 따라다니면서 전적으로 협력하랍니다.”
이민국과 경찰청 사이 교통 정리가 끝났다. 정팔은 왜 2팀장이 계장을 구슬려 사건을 자신에게 떠넘겼는지 알게 되었다. 미리 냄새를 맡은 것이다.
‘사건을 해결해도 자칫하면 공적이 이민국으로 넘어갈 염려가 크니까 아예 손 뗀 거군. 따까리 짓 하기 싫다는 거였어.’
그 볼멘소리를 계장은 다 들어주고 정팔에게 떠넘긴 것이다. 이유는 설명해 주지도 않은 채.
사실 이민국과 협조하는 건 큰 일이 아니었다. 상대가 모르는 사람도 아니고 신세를 몇 번 진 민준이니까. 하지만, 계장과 2팀장을 향한 감정은 좋을 리가 없었다.
‘씨벌놈의 새끼들.’
오크로 경찰 생활을 하면서 서운한 일이 이것뿐이겠는가? 정팔은 애써 감정을 가라앉혔다. 민준 역시 돌아가는 정황을 눈치 챈 것 같았다.
“서운하게 들리겠지만 내 입장에서는 네가 붙어서 다행이다. 개념 없는 놈들이랑 같이 다니는 것 보다는 너 같은 프로랑 손발 맞추는 게 낫지. 이번 일 잘 해결되면 보상금은 나눠 갖자고.”
“에이, 됐어요. 술이나 거하게 한 번 쏴요. 우리 사이에 뭐.”
말을 마친 두 사람은 집 곳곳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민준은 마법적인 흔적을 주로 뒤졌고, 정팔은 각종 전자기기에 남겨진 데이터를 추출했다.
“형님, 하드 디스크 복사 뜬 건 내일 중으로 내용 공유 드리겠습니다.”
“응, 부탁해.”
그러다가 부엌 옆의 방으로 들어섰을 때였다.
“이게 무슨 소리지?”
“뭐요?”
민준은 소리를 따라 방 구석구석을 뒤졌지만 특별한 것이 없었다.
“방금 못 들었어? 뭔가 웅 하고 울리는 소리.”
“못 들었습니다.”
하지만 민준은 나지막한 소리를 분명 들었다.
“음, 지금은 그쳤군. 설마 잘못 들었나? 그럴 리가··· 아 잠깐!”
민준은 급히 입술에 손가락을 대며 말했다.
“쉿, 조용히 해봐.”
아까 보다 소리가 조금 커졌고 웅웅거리는 공기의 떨림이 집안 어딘가에서 맴돌았다. 의아한 표정으로 귀를 기울이던 정팔도 눈치챈 것 같았다.
우우웅!
“어라? 형님, 이거 검명(劍鳴) 비슷한 데요?”
경찰일을 하기 전에는 칼도 좀 잡았다더니, 익숙한 소리처럼 들린 것 같았다.
“그래? 집 안에 에고 소드라도 있는 모양이지. 역시, 돈도 많네.”
‘아, 잠깐만!’ 민준의 머릿속에 전구가 환하게 켜지는 것 같았다.
“단서가 될 수도 있겠는데?”
정팔의 눈빛에도 기대감이 차올랐다. 그는 청각에 모든 신경을 기울이며 조용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소리 울림을 쫓아 나온 정팔의 시선이 한 군데에 멈췄다.
“······설마 저거?”
그가 바라보는 것은 예상했던 검이 아니라 부엌의 싱크대 위에 걸린 편수(片手) 후라이팬이었다.
“흐음.”
다가가서 관찰하니 틀림없었다. 누가 건드리지도 않은 후라이팬 표면에 미세한 진동이 발생하면서 잔잔한 울림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정팔은 조심스레 하나뿐인 손잡이를 잡아본다.
“흐억!”
그리고 1초만에 기겁하며 놓아버렸다. 불에 데이기라도 한 듯 다급하게 손을 뗀 덕분에 후라이팬은 타일 바닥에 떨어져 귀에 거슬리는 금속 충돌음을 냈다.
“깜짝이야! 왜 그래?!”
“혀, 형님!”
“왜? 설마 말하기라도 했어?”
“네! 말했어요!”
“······.”
민준은 속으로 중얼거린다. 에고 소드가 아니라 에고 후라이팬이었나?
버튼 누르면 녹음된 음성이 나오는 밥솥처럼, 그와 비슷한 수준의 저급한 에고를 부여하는 것은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민준이 원하는 대로 증언이 가능한 수준이 아닐 확률이 높다.
“말하면 말하는 거지 왜 집어 던져?”
“아니 저 새끼··· 아니 저 후라이팬이 이상한 소리를!”
닭살이 돋는 듯 팔을 훔치는 정팔 곁으로 다가선 민준은 땅에 떨어진 후라이팬을 주웠다.
그리고 바로 다시 집어 던졌다.
“아우, 씨발!”
절로 욕이 나왔다.
“뭐야 이 새끼!”
정팔이 왜 그런 반응을 보였는지 충분히 이해가 갔고, 그 또한 똑같이 따라할 수밖에 없었다. 손잡이를 잡은 순간 머릿속에 묘한 열기를 담은 텔레파시가 흘러든 것이다.
=아흣!=
그것은 무언가를 자연스레 연상할 수밖에 없는 정신파였다. 민준은 비누로 손을 빡빡 씻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며 다시 후라이팬을 집어 들었다.
그러자 비슷한 텔레파시가 또 한 번.
=아잉!=
음성 언어로 치환하면 농염한 콧소리와 애절한 신음소리가 뒤섞인 탄성이었다. 이번에는 간신히 던지지 않은 채, 민준은 몹시 불쾌한 말투로 후라이팬에게 물었다.
“너, 뭐야?”
한국어를 익힌 것인지, 아니면 정신 감응 기능이 있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후라이팬은 그 질문에 답했다.
=아, 흐흑! 죄송합니다. 누군가의 살결이 닿는 것이 너무 오랜만이라···.=
“······뭐?”
=너무 오랫동안 여기서 먼지만 쌓여가고 있던 터라서 자제가 안 되었네요. 죄송합니드으으흐윽!=
민준은 조용히 생각했다. 그냥 버려 버릴까?
하지만 이 집에 계속 방치되어 있던 후라이팬이라면 여기서 벌어진 사건을 목격했을 지도 모른다. 또한, 민준은 몇 마디의 대화로 여기 깃든 자아가 상당히 완성도가 높다는 점을 알아차렸다. 불쾌감과는 별개로 말이다.
거의 어지간한 에고 소드에 견줄 만한 완성도였다.
‘이걸로 장태준이 평범한 인간일 확률은 더 희박해졌다. 이건··· 지구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야!’
어떤 미친 지구인이 검도 아니고 후라이팬에 이런 정성을 기울이겠는가?
따라서 민준은 심리적 저항감을 억누르며 계속 대화를 시도했다.
“다시 묻는다. 너는 뭐지?”
=물어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흑흑··· 제가 누구냐고요? 저는 엘리돔 차원을 대표하는 명(名)쉐프, 디그노브 알챠-테이큐의 의식과 기억 일부를 복사한 인공지능 탑재형 조리도구입니다!=
그 순간 민준의 머릿속에는 영상화된 텔레파시가 어떤 요리사의 이목구비를 그려냈다. 이 후라이팬을 들고 빙긋 웃고 있는 털복숭이 중년 트롤이었다. 온 몸이 단단한 근육으로 덮인 그는 남성미를 상징하는 뿔을 과시하며 웃고 있다. 보아하니 광고용 프로필 사진 같았다.
‘지금 떠들고 있는 녀석은 저 요리사의 자아와 기억을 복사한 인공지능이라는 거군.’
후라이팬은 질리지도 않고 연신 정신파를 쏟아냈다.
=저는 무려 245개 차원을 대표하는 192만개의 레시피를 탑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초미세 진동파 발산 기능을 통해 요리의 문외한이 저를 쥐고 흔들어도 그 결과물로 완벽하고 탁월한 맛을 내는 걸작 요리가 탄생하는··· 일명 주부들의 비밀병기, 주방의 마법사입죠! 이게 다가 아닙니다. 반경 3미터 내 사물을 보고 기록할 수 있기 때문에 재료를 고르실 때 최적의 선택을 위해 함께 보면서 조언을 드릴 수 있습니다. 또한, 비접촉 정신 교감을 통해 그 어떤 언어도 이해하고 해석할 수 있으니 의사소통은 걱정 마세요! 아흐흥!=
대체가 저 괴상한 신음소리를 내지 않으면 말을 끝맺을 수가 없는 것인가? 민준은 깊은 짜증이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장태준이 널 직접 사용했었나?”
=네! 자주 애용해 주셨죠··· 흐흐흐!=
인간이든 외계인이든, 장태준 또한 정상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장태준에 대해 좀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는데.”
=네! 물론이죠. 그런데 그 전에··· 부탁 하나만 드리면 안 되겠습니까?=
민준은 퉁명스럽게 묻는다.
“뭔데?”
=저어···.=
놈의 정신파가 수줍은 감정으로 물들었다. 민준은 불길한 예감을 느꼈다.
=방금 전에 두 분이 하셨던 것처럼, 저를 한 번만 더 바닥에 내팽개쳐 주시면 안될까요? 오랜만에 느껴보니 엄청나게 짜릿해서···. 이런 가차없고 매몰찬 취급, 너무 반갑고 은혜롭습니다.=
“······.”
=참고로 제 본체는 암광철 주물 제품이기 때문에 있는 힘껏 내던지셔도 절대 구부러지거나 깨지지 않으니 안심하십시오. 아, 그래도 혹시 모르니 저희 세이프 워드(Safe word)부터 정할까요?=
“······.”
=네? 제발 한 번만요···. 부탁드립니다. 방치 플레이도 나쁘지는 않지만 이번에는 너무 길었어요. 자극이 필요해요.=
아무래도 인공지능을 만들 때 디그노브 알챠-테이큐라는 유명쉐프의 은밀한 취향도 함께 복사된 모양이었다. 민준은 진지하게 다시 한번 고민했다.
이대로 버려버릴까, 이 새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