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er on the Frontier RAW novel - Chapter 83
83. 불신지옥 (11) >
***
‘아시프라고?!’
그것은 위원회가 직접 나서서 제압할 정도로 흉악한 죄를 저지른 자들, 그런 수형자들을 분류하는 인식번호다. 그동안 누구도 어원에 대해 의문을 표하지 않은 명칭.
그 뜻이 경전에서 일컫는 대로, ‘가장 큰 악을 행한 죄인’이었나?
‘선지자의 정체가 뭐지? 설사 아시프라고 불린다고 해도 수형자는 아닐 텐데. 적어도 저 종족과 접촉했을 당시는.’
수형자가 자유롭게 외계로 포교 활동이나 하고 돌아다니게 방치할 위원회가 아니니까.
‘경전에서 묘사하는 시기가 얼마나 옛날인지 모르겠군. 아시프라는 단어가 극악한 죄인을 뜻하는 일반명사인 동시에 선지자를 일컫는 고유명사로 활용되었던 시기라···.’
생각이 이어진다.
‘적어도 수형자 시스템이 만들어지기 전이라고 추측하는 게 타당하겠어.’
그렇다면 나중에 수형자들에게 부여된 인식번호는 저 자의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것도 지나친 비약은 아닐 터다.
어떤 방식으로든 역사에 족적을 남긴 중요한 인물.
‘그렇다면 최초의 수형자를 명명할 때도 영향을 끼쳤겠군.’
아시프-1.
위원회 특수 임무 리스트의 가장 아래에 언급되는 인식번호.
민준은 빛이 자아내는 문자열에 시선을 던졌다.
– 443. ((대외비)) 죄수인식번호 ‘아시프-1’의 영혼 파편을 입수하여 제출. 보상: 700만 달란트
생각이 깊어진다.
‘아니지,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명명법을 생각할 때··· 명칭 뒤에 숫자가 붙는 건 두번째가 탄생할 때부터다. 오롯이 혼자 존재할 때는, 다시 말해 최초의 존재에게는 따로 숫자를 붙이지 않아.’
전 우주에 수형자가 ‘아시프-1’만 존재하였을 때 그는 ‘아시프-1’이라고 불렸을 것인가?
아니면···.
그냥 아시프라고 불렸을까?
‘그래봤자 증거 같은 건 없지만.’
다양한 가능성을 고려하는 사이 주교가 다음 문장을 읊어 나갔다.
“촌부가 감격과 환희 속에 말하되, 선지자이시여. 아시프여. 아뢰나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위대한 존재를 어떻게 섬기나이까? 태초의 종족을 무엇으로 찬미하리까?”
“선지자 아시프가 답하되, 끊임없는 기도로써 그들의 무의식을 두드리라. 깊은 잠 속에 파묻힌 그들을 흔들지어다. 그들이 너희를 직시하도록 하라. 꿈결 속 시선이 너희에게 머물도록 하라.”
“촌부가 혼란 속에 되묻되, 그 다음은 어찌하리까? 그들의 눈길을 끈 다음에는 무엇을 하리까?”
“선지자 아시프가 답하되, 지나치게 달콤한 꿈은 깨기 힘든 법이라. 너희가 섬길 자들은 가장 행복한 꿈 속에 잠겨 있으니 그것을 악몽으로 흐릴지다. 그러하여 잠이 옅어지게 하리라.”
“촌부가 주저하며 묻되, 종국에 그들이 잠에서 깨면 어찌되리까?”
“선지자 아시프가 웃으며 답하되, 모든 거짓이 무너지리라.”
민준은 요하임에게 들었던 드림랜드 세계관과 경전 내용이 완벽하게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서로 대치된다기보다는 요하임이 말한 버전에 훨씬 살이 많이 붙어 있었다. 아마도 후대의 교리연구자들이 이런 저런 해석을 추가한 것이리라.
‘선지자가 말한 팩트만 골라내면 이거잖아. 태초부터 존재한 종족이 지금은 잠들어 있고, 그들은 꿈을 통해 어떤 것도 만들어 낼 수 있는 능력을 지녔으며, 그들이 잠에서 깨면 거짓이 무너진다.’
현대 드림랜드 교단은 그들을 창조주로 해석한 것이다. ‘어떤 것도’의 개념이 확장되어 ‘모든 것,’ 즉 세계로 간주하기로 했을 터.
또한 이 세계가 꿈의 결과물이라면 상대적 개념에서 거짓된 것이기에, 거짓이 무너진다는 말은 곧 세계가 붕괴한다는 뜻으로 여긴 듯했다.
‘예배가 끝났군.’
강단의 주교가 다시 한번 선창하고.
“비로소 당신의 꿈 속에서 우리는 당신을 꿈꾸나이다.”
사제들이 제창했다.
“비로소 당신의 꿈 속에서 우리는 당신을 꿈꾸나이다.”
***
강단에 섰던 주교가 건물 내 자신의 방으로 돌아간다. 그 뒤를 민준은 은밀하게 따라갔다.
그리고 문이 닫힌 순간.
“허억! 누, 누구냐!”
반사적으로 대항하려했지만 민준의 행동이 더 빨랐다.
화르륵!
그의 등에서 뿜어져 나간 그림자가 아주 작은 틈도 없이 실내를 가득 덮는다. 방문과 벽, 창과 각종 집기까지 어둠 속에 묻혀서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사방이 검은 물결에 덮인 기묘한 공간 속에 민준이 있었다. 단검을 든 채 주교를 바라보았다. 고저가 미미한 목소리로 선고한다.
“여기서 무슨 짓을 해도 밖에서는 들을 수도, 느낄 수도, 볼 수도 없다.”
“당신은···!”
민준은 주교의 낯빛을 읽었다. 저 표정은 상대의 정체를 짐작하지 못해서 혼란에 빠진 자의 것이 아니었다. 그가 누구인지 알지만 왜 이곳에 있는지 이해할 수 없어서 놀란 표정이었다.
“나를 아는군?”
주교가 의연하려고 애쓰는 목소리로 답했다.
“당연하지. 요하임 주교가 고용한 요원이잖나. 아버지··· 총대주교를 영면으로 이끌기 위해서.”
교단 고위직이니 당연히 정보가 공유되었을 것이다. 주교는 꿀렁거리는 그림자를 쏘아보더니 말했다.
“우리 교단은 고룡의 후원을 받고 있다. 아무리 당신이라도 나를 해하거나 죽이면···.”
용은 엘프와 함께 신성력을 각성할 확률이 거의 없는 종족에 속한다. 전자는 용보다 위대한 존재를 숭배하는 개념을 받아들이기 어려워서 그렇고, 후자는 살아있는 자들도 못 믿고 의심하는 판에 실존이 완벽하게 증명되지 않은 존재를 믿기 힘들어서 그렇다.
그렇기에 드래곤은 가려운 부분을 긁어 줄 교단을 후원한다. 기능과 효용이 입증된 한 칼리에테르가 함부로 드림랜드를 내칠 리는 없었다. 또한 그녀가 맺은 후원 계약은 어디까지나 지구교구에 한정된 것이니 본단과의 갈등 여부는 신경쓰지 않는다.
“죽일 생각은 없어. 순순히 질문에만 답해주면.”
죽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칼리에테르와 마찰을 감수하고라도 과격한 방법을 동원할 각오는 하고 있다.
성직자에게 해피 버그가 통할 리 없다. 그러니 원시적인 수단을 써야 하는데, 성직자를 고문한다는 건 티스푼으로 화강암을 조각하는 것 같은 노가다다. 그러니 민준은 오늘이 매우 긴 하루가 될 것이라 짐작하고 있었다.
요원은 단검을 내밀며 묻는다.
“요하임, 어디에 있지? 그리고 그 작자가 왜 총대주교 머리를 가지고 튀었는지··· 그걸로 뭘 할 작정인 건지 아는 대로 모두 말해.”
주교의 얼굴이 복잡한 감정을 드러내며 일그러졌다.
“당신도 뭔가를 알고 있나?”
“질문은 내가 한다.”
“요하임을 찾아서 본단 외계인들에게 넘길 생각인가?”
“······.”
대답하는 대신 검을 들고 한 걸음 다가간 순간. 주교의 입에서 예상치 못한 답이 튀어나왔다.
“좋아, 다 말해주지.”
“······?”
거짓말로 상황을 모면하려는 건가? 라는 의미를 담아 노려보자 주교는 부인한다.
“나는 남은 자들 중 신성력이 가장 강하다는 이유로 총대주교 대행을 맡고 있지. 누구도 딴지를 걸 수 없는 절대적인 기준이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사제가 나를 따르는 건 아니야.”
“지구교구 내부적으로도 분열되었다는 건가?”
주교는 침묵으로 긍정했다.
그제서야 민준은 약쟁이 엘프를 시켜서 요하임 추적을 방해한 지구교구의 소속원이 왜 그에게 협조적으로 나오려는 것인지 알 수 있었다.
“당신은 지구교구가 이계의 본단과 등지는 것을 원치 않는군.”
“맞아.”
그의 얼굴에 매우 지친 듯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그깟 머리··· 그냥 이단재판관들에게 넘겨버리는 것이 나아. 이대로라면 지구교구 전체가 이단으로 낙인 찍히게 될지도 모른다. ‘협상’은 그 다음에 해도 돼.”
하지만 어떤 사제들은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총대주교의 머리를 지키고 요하임을 계속 도피시키겠다고 결정을 내렸다는 뜻이었다.
민준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럼 요하임과 그를 따르는 무리들은 왜 머리에 집착하는 거야?”
“그것은 기적의 증표이니까.”
그는 민준이 총대주교를 살해한 다음 일어난 일을 말했다. 요하임은 넋이 반쯤 나간 상태로 잘린 목을 들고 프랑크푸르트로 돌아왔다고 했다.
“혹시 자신이 죽더라도 시신의 두부(頭部)는 매장하거나 화장하지 말고 보관하고 있으라고, 그가 살아 있는 동안 몇 번이나 강조했지. 요하임은 그가 미쳐버린 뒤에도 유지를 지키려고 노력했던 거야.”
고위 주교들은 그의 사인을 비밀에 부친 채 장례를 준비했다. 그러던 중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죽은 외계인이 다시 눈을 뜨기라도 했나?”
시큰둥하게 던진 질문이었지만.
“······”
주교의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었다.
“설마, 그럴 리가!”
민준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소리쳤다.
그의 목을 자른 것은 자신이다. 그 순간 분명 영혼이 몸 밖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확인했다. 더군다나 그 종족은 목을 자른다고 부활할 수 있는 자들도 아니다.
주교는 확신을 담아 말했다.
“총대주교님은 다시 눈을 뜨셨다.”
그 과정은 매우 복되고도 장엄했다고 한다. 눈꺼풀과 입이 열리며,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는 성스러운 빛이 폭발하여 방 안을 가득 채운 것이다. 그 광경을 본 고위 사제들은 하나같이 감동하여 목놓아 통곡했다고.
“그것은 이 거짓된 세상에는 존재할 수 없는 진실의 서광. 진정으로 아름다운··· 내가 본 것 중에 가장 아름다운 광채였다!”
그 표현을 들은 민준은 무언가를 떠올렸다.
‘달란트?!’
하지만 말이 안 된다.
그의 영이 달란트를 품고 있었다면 민준이 진작 확인했을 터. 더군다나 이미 혼이 떠나버린 머리에 그것이 어떻게 머문다는 말인가?
주교는 말을 잇는다.
“요하임은 감격하여 아버지의 머리에게 말을 걸었지. 신의 기적으로 되살아 난 것이냐고. 죽어 있는 순간 무엇을 보았냐고. 앞으로도 계속 우리와 함께 머물 것이냐고.”
그런데 정신을 차린 총대주교의 머리는 그 모든 질문에 답하는 대신 이렇게 말했다.
– 내가··· 왜 아직도 지구에 있지?
민준의 눈빛이 사나워진다.
“총대주교님은··· 자기 시신이 당연히 고향 차원에 인도되어 있을 거라고 예상했던 눈치였다.”
요하임과 사제들은 머리를 추궁했고 아직 정신이 완전히 돌아오지 않은 총대주교는 결국 입을 열었다. 그리고 이어진 말은 요하임을 비롯한 몇몇 주교들을 분노하게 했다.
죽기 오래 전부터 그는 어떤 사이클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시기가 다가올수록 외계인은 고향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렸고 초조함은 광기로 진화했다.
그의 최우선적인 목표는 살아있는 채로 고향에 돌아가는 것이었다.
“사이클이라면, 무슨?”
그의 손에 목숨을 잃기 전 외계인이 그런 말을 중얼거렸던 것 같기도 했다.
“잠들어 있는 신들의 수면이 얕아지는 사이클이 온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우리는 충격에 빠졌지. 그전까지 그 분은··· 평신도는 물론이고 우리 사제들에게도 그런 이야기를 한 번도 한 적 없었거든. 또한 우리에게 필사하여 건넨 그 어떤 경전에도 그런 말은 없었다.”
추궁이 이어지자 머리는 진실을 토해냈다.
“미쳐버린 총대주교는 그래서··· 죽기 전 세 명의 고위 사제를 그토록 처참하게 살해하여 제사를 지낸 것이었다. 그걸 본 신이 기적을 일으켜서 고향으로 되돌려 보내주길 기원하면서. 그리하여 사이클이 돌아오기 전 고향 땅을 밟을 수 있도록.”
“아무리 미쳤어도 그런 방법을···.”
주교는 고개를 젓는다.
“죽은 셋은 모두 어렸을 때 그가 거둬서 자식처럼 키웠던··· 아니, 실제로 자식과 같은 이들이었다. 신을 위해 자식을 살해하여 바치는 아비보다 더 끔찍한 것이 무엇이겠나? 더군다나 그들 모두 신의 은총을 듬뿍 받은 사제들이었다. 그 정도는 되어야 신의 눈길을 끌고 큰 기적을 일으킬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거지.”
민준이 그들 교리를 듣고 느꼈던 꺼림칙함과 걱정했던 부작용이 광인(狂人)을 통해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하지만 결국 요하임이 제동을 걸었고 총대주교는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지. 부활한 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는 마지막 순간을 절망 대신 환희로 받아들였던 모양이다. 죽음 또한 고향으로 돌아가는 방법의 차선책으로 생각했기에.”
“이해할 수 없군.”
“최선책은 살아서 돌아가는 것이지만, 여의치 않으면 죽어서라도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던 거지.”
요원의 표정이 굳었다.
“그래, 예상하고 있었던 거다. 자신이 숨을 거두면 얼마 지나지 않아 고향 차원이 폐쇄를 풀 것이라고.”
“총대주교가 그렇게 중요한 사람이었다고? 그렇다면 왜 진작에 폐쇄를 풀고 불러들이지 않고?”
“그런 뜻으로 들리지는 않았다. 폐쇄 상태에서는 모든 통신이 막혀 연락을 주고받을 수 없는 모차원의 동족들이, 그가 죽고 나면 어떤 이상을 발견하게 될 것이라 예측했던 거다. 그리고 그 원인을 파악하는 수단은···.”
“락다운을 해제하고 외차원의 모든 동족을 불러들이는 것?”
“그래. 이미 죽었다면 시신을 인도해 갈 것이라고 예상했던 거지. 머리가 말한 것은 여기까지다. 부활 후 시간이 지나면서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다시 입을 다물어 버렸어.”
민준은 지끈거리는 두통을 가라앉히려고 노력하며 물었다.
“그래서, 요하임은 지금 어디에 있지?”
주교는 지친 표정으로 주소 하나를 읊었다.
“요하임은 총대주교의 머리가 기적의 증거라고 여기며 본단에 빼앗기지 않으려 애쓰고 있다. 같은 교인임에도 불구하고 지구인들이 차별당했다고 생각하거든. 본단은 ‘사이클’을 비롯한 숨겨진 교리에 대한 우리의 질의를 모두 무시한 채 그저 머리를 돌려 달라는 일방적인 요구만 반복하고 있다.”
그들 생각에, 총대주교는 수십 년 동안 교리 일부를 감추고 말해주지 않았던 위선자다. 주기적으로 신의 잠이 얕아지는 것 말고도 비밀이 더 있을지 모른다는 의혹이 자연스레 따라왔다.
일부 사제들이 머리만 남은 그와 외계의 본단에 분노한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신 아래 모든 교인은 평등해야 할 터인데, 본단과 총대주교는 우리가 그들 종족이 아니라는 이유로 차별했다는 거지.”
교인을 상대로 범한 종족차별.
“그들은 진리를 온전히 전수하지 않으려고 한다. 당신은 알고 있나? 그 외계인들은 왜 그리 머리를 탐하는 것이며··· 다가오는 사이클에 뭘 준비하는 것이지?”
민준은 대답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나도 지금부터 그걸 알아볼 작정이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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