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er on the Frontier RAW novel - Gaiden 15
외전#1. 수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15)
***
마녀들의 쉘터.
“무슨 내용이었어? 마리얌이 그 고양이와 무슨 말을 했는데?”
어지러운 머리를 진정시키며 야라는 다시 나디아에게 묻는다.
그 대화가 패밀리어의 몸을 빌린 사하르와 마리얌 간의 대화가 맞았는지 확인하려는 것이다.
“모르겠어요.”
“모르겠다니? 분명히 들었다며. 사람 목소리였다면서?”
“네, 고양이가 사람의 목소리를 낸 건 맞는데···.”
나디아의 표정이 혼란으로 물든다.
“그건 제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가 아니였어요.”
“뭐?”
이상한 이야기였다.
사하르는 마리얌과 분명 아랍어로 대화했을 터인데?
“그 둘은 제가 생전 들어본 적 없는 이상한 말로 이야기했어요. 아마도··· 악마들이 쓰는 말 같았어요.”
“아니 잠깐! 잠깐만!”
야라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복도로 달려가서 무언가를 애타게 찾는다.
잠시 후.
“냐아아오옹!”
야라는 한 손으로 간신히 고양이 한 마리를 감싸 안은 채 돌아왔다.
그 품에 안긴 흑묘는 사하르가 키우는 샤샤였다.
이곳 마녀들이 부리는 패밀리어 중 유일한 고양이다.
“이 고양이였니?”
그러자 나디아는 고개를 젓는다.
“아뇨. 그건 검은 고양이잖아요. 검은 털의 고양이가 학교 부지에 돌아다녔으면, 진작에 관리인들이 때려 죽였겠죠.”
이슬람 교리에 따라 쿨라파 내 애완견 사육은 불허된다. 약 1400년 전 어떤 개가 사도 무함마드를 향해 짖었다는 기록이 쿠란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반면 고양이는 키울 수 있지만 검은 털은 예외다. 검은 고양이는 사탄의 사자로 인식된다.
“그럼?”
나디아가 말했다.
“그 고양이는··· 그냥 평범했어요. 쿨라파 거리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갈색 털의 고양이요.”
***
민준은 포획한 외계인을 즉시 저주로 잠재웠다. 마지막으로 발악하는 과정에서 남은 힘을 다 써 버렸는지, 놈은 더 이상 불길을 일으키지 못했고 저주에도 반항 못 한 채 바로 곯아 떨어졌다. 몸은 마지막으로 변신한 갈색 고양이의 모습 그대로였다.
민준은 생각했다.
‘기절해도 본래 모습으로 돌아가지 않는군. 아니, 애초에 본래의 모습이라는 게 없는 건가? 그렇다면 이 녀석은···.’
민준과 사하르, 그리고 결계를 만드는 데 협력했던 마녀들은 바로 폐차장을 떠났다.
잠시 후 그들이 도착한 곳은 어제 저녁을 먹은 쉘터가 아니라 민준과 사하르가 처음 만났던 지하의 쉘터였다. 그곳은 지금도 비어 있었다. 사하르가 보호하는 다른 여인들이 있는 곳에 외계인을 데려가는 건 위험하기에 대신 선택한 장소였다.
“그럼, 깨우겠습니다.”
마녀들이 쉘터 주변에서 호위를 서 주는 사이, 민준은 사하르와 함께 외계인을 취조하기 시작했다.
몸은 여전히 그림자 채찍으로 꽁꽁 묶은 채.
입을 꾹 다물어버리면 어쩌나 걱정했지만 기우였다. 외계인은 침묵으로 일관하는 대신 꼬박꼬박 대꾸했다. 그 답변이 무의미한 고양이 울음소리도 아니었다. 비록 겉모습은 고양이로 변신을 했으나 내부 구조까지 완벽하게 그 동물을 흉내낸 것은 아닌 듯했다. 성대 등의 발성기관은 인간과 거의 다름이 없어 보였다.
정작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넌 누구냐? 이름과 소속, 출신 차원은?”
“#%^!@%!”
“언제 지구에 왔지?”
“#*^*!#!”
“마리얌과는 어떤 관계지?”
“#!@^#)#(#%#!!”
“왜 마리얌의 모습으로 변신을 했나?”
“#@%^#_#!@!”
“불은 왜 냈고, 사람들은 왜 죽였지?”
“*(#$%@^@!”
민준은 난처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미치겠네. 이게 대체 어디 말이야?”
답변이 고양이 소리는 아니었으나 민준 입장에서 무의미한 점은 별 다를 바 없었다.
왜냐면 그는 저 언어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심문을 계속하며 민준은 위원회가 지정한 차원 공용어를 비롯해 지구의 여러 언어로도 질문해봤지만, 저 외계인은 민준이 모르는 언어로만 답변을 고수했다.
사하르가 미심쩍은 듯 속삭였다.
“혹시 일부러 모르는 척 하는 게 아닐까요?”
“지금까지 반응을 볼 때 간단한 아랍어는 좀 알아 듣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말은 아예 못하는 것 같고요.”
물론 얼마 전 체포한 슈탄인 공주처럼 연기를 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해피 버그를 써 볼까 하다가 민준은 일단 보류했다.
“희한하게도 눈빛에 저항의 의지가 없어 보입니다. 방금 전까지 도망칠 때는 그렇게 필사적이었던 놈이 말이죠. 이제 전부 포기한 눈치예요. 다만, 정말로 말이 안 통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여러 차원을 돌아다녀 본 민준이지만 드넓은 차원계의 모든 언어를 알 수는 없다.
“대체 어떤 변방에서 뒹굴다가 여기까지 흘러 들어온 건지, 원.”
사하르가 아이디어를 떠올렸다는 듯 말했다.
“일단 어떤 종족인지 밝혀내면 되지 않을까요? 그런 다음 그 종족 모국어를 찾아보면 되니까요.”
“아, 종족은 이미 알아냈습니다.”
“네?!”
민준은 턱을 쓰다듬으며 설명했다.
“저렇게 자유자재로 모습을 바꿀 수 있는 종족은 세 부류 정도입니다. 키아삼 인, 메이포르 인, 그리고 아브젤 인이죠.”
사하르는 전부 처음 들어 보는 종족이었다.
“일단 키아삼 인은 아닙니다. 놈들은 아직 살아 있는 상대의 싱싱한 뇌를 먹어 치운 다음 그 기억과 외모를 복제하거든요. 하지만 마리얌은 참수당했다고 했죠. 머리는 온전한 상태로 땅에 묻혔고요. 이미 죽은 후라면 뇌를 먹어도 복제할 수 없습니다.”
처음 듣는 기괴한 이야기에 사하르는 입을 쩍 벌렸다.
“그리고 메이포르 인도 아닙니다. 그들은 신체조직의 색을 변형시키고, 전신에 퍼진 숨구멍에서 내뿜는 독특한 가스를 통해 환영을 만들어 상대를 흉내냅니다. 그 환영은 당연히 만질 수 없지요. 하지만 저 외계인은 확실한 실체와 질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메이포르 인도 탈락이다.
“남은 것은 아브젤 인이죠.”
“그럼 그들의 모국어를 찾아보면···?”
“그게 문제입니다. 아브젤에겐 모국어가 없어요. 아니, 애초에 고향 차원이라는 개념도 없죠.”
그건 또 무슨 소리인가?
사하르의 표정이 혼란으로 물들었다.
“위원회는··· 아니, 차원계의 학자들은 아브젤 인이 어디에서 기원한 종족인지 밝혀내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생태는 아직 확실치 않은 부분이 많죠.”
하지만 위원회는 딱히 그게 궁금하지도 않은 모양이다.
그 규명에 현상금으로 달란트를 걸지 않은 걸 보면 말이다.
“단적으로 말해서, 앞에 언급한 두 종족은 본체가 있습니다. 키아삼 인은 입에 호두까기 망치와 비슷한 부리가 붙은 갑각류이고, 메이포르 인은 피부와 체액, 장기가 투명한 양서류죠. 하지만 아브젤 인에게는 본체가 없습니다. 아니, 본체의 모습을 아직 누구도 발견하지 못했어요.”
민준은 그림자에 묶인 고양이를 가리킨다.
“지금 상태로 제가 저 녀석을 죽이면, 그 시체는 고양이인 상태로 남을 겁니다. 다른 아브젤 인도 다 마찬가지였습니다. 놈들은 여러 세계를 떠돌면서 그곳 생명체들을 흉내냅니다. 그런데 처음 누군가를 복제하기 전의 육신, 그러니까 본연의 모습이 어떠했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더군다나 그들은 애초에 무리 짓는 종족도 아니다.
언어도 고유의 말이 있는 것이 아니라 각 개체가 떠돌다가 머물게 된 곳에서 익히게 되는 모양이다.
“아마 지구에 오기 전까지 촌구석··· 그러니까 변방 차원에 오래 머무르며 언어를 습득한 것 같습니다. 그러니 제가 알아 들을 수 없죠.”
“따지고 보면 지구도 변방이라고 들었는데요. 그럼 이곳과 가까운 차원에서 온 것 아닌가요? 이웃 차원에서 쓰는 언어들을 검토해 보면···.”
“사하르, 북극과 남극 간의 거리를 생각해 보십시오.”
“아아!”
그제서야 사하르는 자신이 잘못 생각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변방이라고 서로 다 가까운 것이 아니라, 차원계 중심을 기준으로 지구와는 완전히 다른 방향의 변방일 수도 있는 것이다.
민준은 눈을 가늘게 떴다.
“확실한 건, 지금까지 꽤나 사람을 많이 죽여봤다는 겁니다.”
“그런 건 어떻게 아세요?”
민준은 사하르는 볼 수 없는, 고양이 위의 상공을 응시하며 말했다.
“달라 붙은 것이 많거든요.”
“네?”
“악귀. 혹은 귀신, 망령이라고 불리는 것들 말입니다.”
이 고양이의 머리 위에는 다양한 종족의 망령들이 부유했다.
그 중에는 민준이 아예 모르는 종족도 있다.
“보통 망령은 자신이 살해당한 장소에 머무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 중 매우 희박한 확률로 자신을 살해한 존재를 따라 다니는 종류가 있죠. 그 확률을 뚫고도 저리 많이 붙었다면,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이 죽였다는 뜻입니다.”
물론 보통은 저렇게 되기 전에 영능력자나 신성력 능력자에게 부탁해서 제령을 한다. 민준의 경우는 스스로 악령을 제압하고.
이 외계인은 그럴 여유까지는 없었던 것 같다. 아마 필요를 못 느꼈을 수도 있다. 영감이 강하지 않다면 가끔씩 환청을 듣거나 악몽을 꾸는 것에 그쳤을 테니까.
“그럼 그 유령들의 모국어를 조사해 보면···.”
“가능한 일이긴 한데 시간이 아주 오래 걸릴 겁니다. 말씀드렸지만 제가 본 적 없는 종족들도 다수 섞여 있습니다.”
더군다나 지나치게 우회적인 방법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저 망령들을 다 붙잡아서 기억을 읽어 봐?’
하지만 방금 죽은 케이스가 아닌 이상 망령들의 기억이란 원래 엉망진창이다. 더군다나 수도 너무 많아 다 둘러 보려면 며칠이 걸릴 판이었다.
민준이 고민에 빠진 사이.
사하르가 약간 감탄한 듯이 말했다.
“그나저나 요원님은 정말 외계의 정보에 박학다식하시군요. 도움을 요청드리길 정말 잘 했어요.”
사하르는 민준 때문에 오늘 몇 번을 놀랐는지 모른다.
“게다가, 흑마법만 쓰시는 게 아니라 영능력도 있으셨군요.”
귀신을 보고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능력.
사실 민준은 그 단계를 넘어 귀신을 수족처럼 부리는 사령술도 익혔지만, 굳이 그 사실까지는 사하르에게 밝히지 않았다.
‘참, 영능력이라면···.’
사하르는 문뜩 한 여성을 떠올렸다. 예전에 조합에서 접촉했던 여인 중 그런 능력을 지녔던 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해외로 망명을 보내주겠다고 제안했으나 마리얌처럼 그녀도 거절했었다. 그렇다고 조합에 가입하지도 않고 능력을 숨기며 평범하게 사는 쪽을 택했다. 지금은 잘 지내고 있을까?
그녀는 곧 잡념을 떨치고 다시 중요한 일에 집중했다.
“이대로 취조를 포기해야 할까요?”
민준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래도 신경 쓰입니다. 그냥 죽이기엔 찝찝해요.”
여태 살해한 사람이 그토록 많다면 혹여 위원회가 다른 신분으로 이 녀석을 지명수배했을 수도 있다.
상대가 아브젤 인임을 모른 채 변신한 모습과 이름만 인지한 상태로 말이다.
그렇다면 달란트를 벌 좋은 기회다.
“혹시 마녀들 중 정신 감응 능력자는 없습니까?”
“아쉽지만 없어요.”
민준은 자신이 알고 있는 능력자들을 떠올려 보았다.
하지만 지금 당장 이곳으로 달려 올 수 있는 사람은 생각나지 않는다.
너무 멀리 있거나, 다른 임무를 수행 중이거나, 민준의 부탁을 들어줄 이유가 없는 자들 뿐이다.
‘아, 잠깐만.’
민준은 순간 자신이 뭔가를 놓친 느낌을 받았다.
‘누군가 또 있는 것 같은데?’
누구였더라?
너무나 당연한 무언가를 잊어버린 것 같은 느낌.
마땅히 떠올려야 할 이름을 지금 생각해 내지 못하는 것 같은···.
뇌가 간질간질해지는 초조함과 안타까움, 답답함을 동시에 느끼며 민준은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다가 문뜩.
“아!”
민준은 드디어 기억해 냈다.
주먹으로 손바닥을 내려치며 큰 소리로 외친다.
“맞다, 후라이팬!”
사하르와 민준 사이에는 잠시 정적이 흘렀다.
“······네?”
마녀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되묻는다.
“갑자기 후라이팬이라니, 무슨 말씀이세요?”
민준은 그 말에 대꾸하는 대신 생각에 잠겼다.
예전에 슈탄의 공주가 지구에 방문했을 때, 악어를 닮은 그녀는 사실 영어를 능숙하게 구사할 수 있었음에도 한 마디도 못하는 행세를 했다.
그래서 민준은 그녀와 대화를 하기 위해 그 공주의 손에 후라이팬을 들려 줬었다.
그 팬의 인공지능에는 한낱 조리도구에 장착하기에는 지나칠 정도로 훌륭한 ‘의사소통 능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 그 녀석에게 통역을 시키면 되겠군!’
하지만 민준이 한국까지 다녀올 수는 없다. 그 사이 마녀들이 이 외계인을 놓치기라도 하면 곤란했다.
‘누군가를 시켜서 가져오라고 해야 하는데.’
젠킨슨의 수하들을 부리면 간단한 일이다. 문제는 민준이 아직 후라이팬의 존재를 그 드래곤에게도 밝히지 않았다는 점이다.
지금 시점에서 후라이팬을 아는 사람들은 민준 및 그의 상가에 정기적으로 모이는 친구들밖에 없다.
‘그럼 그 중 한 명에게 부탁을 해야···.’
몸이 불편한 레이크필드는 열외다. 캐시가 오기에는 적합한 나라가 아니었다. 동철도 무리가 있다.
‘지금 한국이 몇 시지?’
시간을 확인한 뒤 민준은 핸드폰을 꺼내들고 전화를 걸었다.
– 네, 형님?
민준이 수화기 너머 상대에게 말했다.
“어, 정팔이냐? 갑자기 미안한데 뭐 하나 부탁 좀 하자. 사례는 서운치 않게 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