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g-awaited RAW novel - Chapter 349
349
# 샤레프Ⅱ
일행이 탄 경비행기는 다행히 해가 떨어지기 전에 목적지인 이스켄데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옛 이름인 알렉산드레타에서 알 수 있듯이 고대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승리를 기념해서 세워진 도시로 1차 세계 대전 이후 프랑스의 위임 통치령으로 있다가 1939년 터키로 반환된 곳이었다.
그 때문에 지금도 프랑스의 색채가 도시 곳곳에 강하게 남아 있었다.
지금은 NATO(북대서양 조약 기구)의 동지중해 최대 해군 기지가 위치해 있고 내륙 유전 지대와 연결된 송유관이 뻗어 있어 공업 도시로도 크게 융성했다.
시내로 들어온 일행은 우선 숙소부터 잡고 휴식을 취했다.
비행기를 타고 편하게 움직였다고 하지만 홍콩에서 이스탄불까지 그리고 다시 이스켄데룬로 오느라 몸에 피로가 많이 쌓여 있었다.
다음 날 룸서비스로 아침을 간단히 때우고 쉬고 있을 때 자말이 가까이 다가왔다.
“보스, 우려하던 일이 터졌습니다.”
“뭔데 그래?”
자말이 리모컨으로 텔레비전을 켰다.
검게 꺼져 있던 액정 화면에 불이 들어오자마자 앵커의 흥분한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왔다.
화면에선 계속해서 육중한 탱크가 뿌연 흙먼지를 일으키면서 국경선을 넘어가는 영상이 반복 재생되고 있었고, 아래에선 갑작스러운 속보에 밀린 뉴스들이 한 줄 자막으로 꾸물꾸물 기어갔다.
“설마…….”
혁권이 눈에 힘을 주며 쳐다보자 자말이 굳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했다.
“오늘 아침에 터키군이 전격적으로 시리아 북부 국경을 넘어가 IS가 장악하고 있는 알바브 지역을 향해 진격을 시작했습니다.”
“제길. 결국 일이 이렇게 되고 말았군.”
이미 몇 달 전부터 터키 공군기의 폭격이 있었고 지상 병력을 투입하겠다는 선언도 한 상태였기에 어느 정도는 예견된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곤혹스럽게 만드는 건 하필이면 지금 이 시점에 터키군이 시리아 내전에 본격 개입을 한 거였다.
며칠 뒤에 대규모 군수품을 가지고 시리아 국경을 넘어가야 되는데, 내전이 더욱 격화되는 건 그리 달가운 상황이 아니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이야기는 경비행기를 타고 오면서 들었지만 가능하면 이번 거래가 모두 끝나고 난 뒤에 일이 벌어지기를 바랐다.
하지만 이미 일이 터지고 말았으니 이제는 최대한 혼란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들지 않고 거래를 성사시킬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 급선무였다.
“샤례프하고는 언제 만나기로 되어 있지?”
“내일입니다.”
“그래 가지고는 너무 늦어.”
“다시 연락을 할까요?”
눈치 빠르게 속마음을 헤아린 자말이 묻자 그는 머리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당장 보자고 해.”
“알겠습니다.”
몸을 뒤로 기댄 혁권은 길게 대열을 이룬 터키군이 국경을 넘어가는 뉴스 화면을 바라보면서 낮게 침음을 흘렸다.
얼마 뒤 혁권은 수행원들과 함께 샤레프가 머물고 있는 해안가 호텔에 도착했다.
지중해풍으로 지어진 2층짜리 호텔로 그리 크지는 않았지만 주변 풍광이 아름답고 시내와 약간 떨어져 있어 조용히 쉬고 가기에 좋은 곳이었다.
현재는 샤레프가 호텔을 통째로 빌려서 부하들과 함께 사용하고 있는 중이었다.
이번 거래를 위해서 고용한 용병들까지 인원이 많은 데다 이러는 것이 보안에 더 유리했기에 나쁜 선택은 아니었다.
차 문을 열고 내리자 안면이 있는 모센이 미리 나와서 기다리고 있다가 그를 맞이했다.
“어서 오십시오, 존슨 씨.”
“오랜만이오.”
“도련님께서는 안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절 따라오시지요.”
가볍게 악수를 나눈 혁권은 앞장서서 안내를 하는 모센을 따라 호텔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한눈에 봐도 용병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사내들이 군데군데 눈에 띄자 혁권이 지나가는 투로 물었다.
“인원이 꽤 되는 것 같소?”
“아무래도 현지 상황이 그다지 안 좋다 보니 호위 인원을 늘렸습니다.”
용병들이 얼마나 제 역할을 해 줄지는 의문이었으나 어찌 됐건 숫자가 많은 건 좋은 일이었다.
곧장 이 층으로 올라간 모센은 복도 걸어 왼쪽 끝 방 앞에 멈추더니 뒤에 서 있는 혁권을 돌아봤다.
“여깁니다.”
그러고는 먼저 노크를 한 뒤에 조심스럽게 객실 문을 열었다.
객실 안으로 들어서자 누군가 아랍어로 통화를 하고 있던 샤레프가 전화를 끊고는 그에게 다가왔다.
“존슨 씨, 오랜만이오. 그때 트리폴리에서 보고 처음인 것 같소.”
“그런 것 같군요.”
상대가 먼저 손을 내밀어서 악수를 청했다.
근육이 잔뜩 붙어 있는 데다 여기저기 크고 작은 상처가 남아 있는 손이었다.
또 다른 아들인 나사세르하고 달리 상당히 거칠고 몸을 먼저 쓰는 성격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안 와도 되는데 아버님 때문에 괜히 고생을 하는 것 같소.”
마음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샤레프가 대놓고 달갑지 않은 티를 내자 그는 속으로 혀를 끌끌 찼다.
우두머리로서 갖춰야 될 것 중에 하나가 바로 감정을 밖으로 잘 나타내지 않는 거였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샤레프는 실격이었다.
그리고 좋게 말하면 거침이 없는 거지만 직선적이고 오만한 성격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 같아 이번 일이 그리 순탄치는 않겠다는 걸 직감했다.
“다 생각이 있으시니 그렇게 하신 것이 아니겠습니까. 전 옆에서 보조만 할 테니 거래를 잘 이끌어 보시기 바랍니다.”
괜히 불필요한 기 싸움을 벌이기 싫었던 혁권이 먼저 선을 긋자 샤레프는 입가에 득의만만한 미소를 지었다.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모센은 몰래 한숨을 내쉬었다.
“한잔하시겠소?”
한쪽에 있는 미니바를 턱으로 가리키면서 묻자 그는 작게 머리를 끄덕였다.
“그러죠.”
직접 온더록스 잔에 얼음을 넣고 위스키를 채운 샤레프는 혁권한테 한 잔을 건네고는 소파로 가서 마주 보며 앉았다.
“터키군 때문에 온 거요?”
혁권이 머리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큰 변수가 생긴 만큼 하루 정도 출발을 늦추고 상황을 지켜본 다음에 움직이는 것이 어떻습니까?”
그러자 약간의 머뭇거림도 없이 샤레프가 머리를 가로저었다.
“그럴 수는 없소.”
“상황이 이런데도 예정대로 출발을 강행하겠다는 겁니까?”
얼굴을 굳힌 채 쳐다봤지만 샤레프는 단호한 태도를 보였다.
“당연한 거 아니오. 하루 늦게 떠난다고 해서 상황이 바뀌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똑같이 위험을 감수해야 된다면 차라리 터키군의 개입으로 분위기가 어수선할 때 빨리 거래를 끝내 버리는 게 더 나을 거요.”
한쪽 다리를 꼰 채 온더록스 잔을 입으로 가져간 샤레프는 위스키를 한 모금 마시고는 말을 계속 이었다.
“내키지 않으면 지금이라도 이번 거래에서 빠져도 좋소.”
“도련님.”
모센이 중간에 끼어들려고 하는 것을 샤레프가 한 손을 들어 막았다.
“어차피 여기까지 그쪽이 원해서 온 것도 아니잖소.”
그는 은근하게 속을 떠보려는 듯한 눈길로 혁권을 바라보았다.
“아버님한텐 내가 잘 말해 줄 테니 원하는 대로 하시오.”
이에 혁권이 그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말씀이 너무 심하시군요.”
“그런가?”
턱을 세우며 거드름을 피우는 모습에 혁권은 정색을 한 채 말했다.
“샤레프 씨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약속을 함부로 어긴 적이 없습니다.”
“호오. 신용을 생명처럼 여긴다, 이건가.”
“그리고 먼저 이야기를 했다시피 전 그쪽이 아니라 압둘라흐만 씨의 부탁을 받고 이곳에 있는 겁니다. 그러니 최소한의 예의는 지켜 주시기 바랍니다.”
은근히 무시하는 태도를 취하던 샤레프는 혁권의 말에 코를 벌름거리면서 그를 날카롭게 쏘아봤다.
“지금 뭐라고 했소?”
객실 안 분위기가 삽시간에 차갑게 굳어지자 더 이상 지켜보지 못한 모센이 황급히 나서 양쪽을 진정시켰다.
“왜들 이러십니까? 두 분 다 진정을 하시지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샤레프는 성격 같아서는 당장 권총을 뽑아 들고도 남았지만 아버지인 압둘라흐만의 당부가 있었기에 차마 그러지 못했다.
거칠게 숨을 들이마시며 분을 삼키는 샤레프를 보면서 혁권도 내심 후회했다.
아무리 도발적인 언사를 들었어도 참고 넘겼어야 했는데 일을 시작도 하기 전에 내부 분란이 일어난 꼴이었으니 앞으로가 걱정이었다.
솔직히 샤레프하고 관계가 틀어지는 건 그다지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혁권이 염려하는 건 샤레프의 독단적이고 성급한 행동으로 인해서 이번 시리아 행에 함께 움직이는 부하들이 위험에 처하는 거였다.
모센은 힐끗 샤레프를 쳐다보곤 맞은편에 앉아 있는 혁권을 설득했다.
“존스 씨의 말씀처럼 상황이 복잡해진 건 사실이지만, 터키군의 개입이 나쁘기만 한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무슨 소리요?”
그는 이맛살을 찌푸리면서 고개를 들었다.
“크게 보면 터키군은 저희와 같은 편이지 않습니까. 거기다가 터키군이 알바브 지역으로 진격하며 IS와 전투를 벌이면 자연스럽게 저희가 가야 되는 이들리브 쪽은 사람들의 이목에서 조금은 빗겨나 있게 될 테니, 물자를 가져가는 것이 한결 쉬워질 겁니다.”
“맞아.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바로 그거야.”
금방 기가 살아서 맞장구를 치는 샤레프를 보며 혁권은 얼굴을 구겼다.
같은 편까지는 아니더라도 터키 정부가 이번 거래를 다 알고 있으면서도 그냥 묵인해 주고 있는 건 맞았다.
그게 아니라면 제아무리 압둘라흐만이 손을 썼다고 해도 군수품을 대규모로 터키 국내로 들여와 다시 국경 너머로 넘기는 걸 놔두고 있을 리가 없었다.
같은 수니파인 사우디아라비아와 협력을 하는 것도 있었지만 근본적으로 이번 거래가 터키 정부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지원을 받는 세력은 이들리브를 주요 근거지로 한 온건파 시리아 반군이었다.
이들은 시리아 정부군과도 싸움을 벌이고 있지만 동시에 과격한 행동으로 악명이 높은 IS하고도 적대적인 관계에 있었다.
시리아 내전에 적극 개입을 선언한 터키군의 주목표가 바로 IS였고, 이들리브의 온건파 반군들이 측면에서 함께 공격하기로 되어 있었다.
결국 온건파 반군의 전력이 향상되는 건 터키군 역시 나쁠 것이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터키군이 이쪽을 지켜 주는 건 아니었고, 무엇보다 적은 IS뿐만이 아니었다.
잠시 가만히 상대를 바라보던 혁권은 무겁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꼭 내일 가야 되겠소?”
“내키지 않으면 안 따라와도 상관없소.”
끝까지 신경을 긁는 태도에 그는 짜증이 치밀어 오르는 걸 억지로 눌렀다.
그러고는 작게 한숨을 내뱉으면서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알겠소. 그렇게 합시다.”
원하는 대로 된 샤레프는 득의만만한 표정을 지었다.
“늦지 않게 집결 장소로 오도록 하시오. 그러지 않으면 안 오는 걸로 알고 그냥 출발할 거요.”
더 이상 이야기해 봤자 서로 기분만 상할 뿐 아무런 소득이 없다는 걸 깨달은 혁권은 바로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럼 이만 가 보겠소.”
샤레프는 예의상 건네는 작별 인사도 하지 않고 그를 보냈다.
자말과 함께 객실을 나와 길게 이어진 복도를 걸어가는 동안 혁권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이번 시리아행은 아무래도 험난한 길이 될 것 같으니까. 준비를 단단히 해 놔.”
“알겠습니다.”
자말이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