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g-awaited RAW novel - Chapter 501
501
마지막 끝맺음이나 다름없는 문영표 국장의 말에 더 이상 이걸 가지고 설전을 벌이지 않았다.
대신 세부적인 사항에 대한 논의가 이어졌다.
여기서부턴 정동식 이사와 박세형 부장의 몫이었는데, 이미 큰 틀은 합의가 됐기에 그리 큰 어려움 없이 일사천리로 이야기가 진행됐다.
가능한 한 편의를 봐 주라는 윗선의 지시가 있었기에 문영표 국장은 따로 결재를 받지 않고 그 자리에서 바로 드라마 제작 외주 계약까지 다 체결했다.
계약서에 서명을 끝낸 문영표 국장은 미소를 띤 얼굴로 한쪽 손을 내밀었다.
“이제 한배를 타고 됐으니 부디 좋은 결과가 나오길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실망시켜 드리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그런 자신감이 아주 마음에 드는군요.”
악수를 나눈 그는 손을 떼면서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마음 같아선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 선약이 있어서 오늘은 여기까지밖에 함께 못 하겠군요.”
“괜찮습니다. 다음 기회가 있을 테니 그때 천천히 대화를 나누도록 하죠.”
“하하하. 그럽시다.”
“그럼 이만 가 보겠습니다.”
소파에서 몸을 일으킨 혁권은 정동식과 함께 국장실을 나갔다.
문이 닫히자 박세형 부장이 걱정 가득한 얼굴로 문영표 국장을 보며 말했다.
“정말 이대로 드라마 제작을 맡겨도 괜찮을지 모르겠습니다.”
찻잔을 들어 입으로 가져가던 문영표 국장은 그새 커피가 차갑게 식어 있자 다시 탁자에 내려놓고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대본도 나와 있고 대부분의 스태프를 우리 쪽에서 붙여 줄 텐데 뭐가 걱정인가. 더군다나 제작비도 저쪽에서 떠안는다니 손해 볼 것이 없지 않겠나?”
“그렇기는 하지만 제작 경험이 한 번도 없는 곳이라 일정을 제대로 맞추지 못해 방송을 펑크라도 내는 건 아닌지 걱정입니다. 그리고 솔직히 제작비를 다 부담하겠다고 한 것도 믿음이 안 가고 말입니다.”
문제가 생기면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지는 것이 박세형 부장이었기에 이런 걱정을 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문영표 국장이 부드러운 얼굴로 박세형 부장을 다독였다.
“그러니까 자네가 신경을 좀 쓰도록 해. 감독도 똘똘한 놈으로 붙이고 말이야. 대신 윗선에서 오더가 내려온 거니까 문제가 생기더라도 문책은 없을 테니 안심하고.”
국장이 이렇게까지 말을 하는데 더 이상 그 앞에서 툴툴거릴 수가 없었던 박세형 부장은 입을 꾹 다물고 앓는 소리를 내었다.
“자네만 믿네.”
“하아. 너무 무거운 짐을 맡기시는 거 아닙니까?”
“다 자네 능력을 믿기 때문에 하는 일이지.”
“어쨌든 기왕 계약까지 다 마무리된 거, 방송 일정에 차질이 없도록 노력해 보겠습니다.”
“그래. 그 정도면 됐네.”
문영표 국장이 앞으로 수고하라는 듯 그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고 격려했다.
대기하고 있던 차를 타고 회사로 돌아가는 도중, 정동식 이사는 분명 자기가 계약을 체결하는 자리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꿈을 꾸는 것 같아 연신 서류가 든 봉투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렇게 계속 노려보고 있으니 종이에 구멍이라도 뚫겠군.”
“예?”
반사적으로 고개를 든 정동식 이사는 이내 혁권이 하는 말뜻을 알아차리고 민망한 표정을 지었다.
“하하. 아무리 생각해도 믿기지가 않아서 말입니다.”
그래서 꿈인가 생시인가 하고 뺨이라도 꼬집어볼 셈이었다며 정동식 이사가 말했다.
그러다가 살짝 얼굴을 굳히고는 조심스럽게 그의 눈치를 보면서 입을 열었다.
“저. 대표님…….”
“할 이야기가 있으면 괜히 뜸 들이지 말고 어서 해.”
“주말극도 아니고 아침 일일 드라마라서 PPL도 잘 들어오지 않을 텐데, 제작비를 어떻게 충당하실 생각이십니까?”
얼떨결에 드라마 제작을 하게 됐지만 수십억이 넘게 들어가는 비용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진행 중인 사옥 건설을 잠시 중단시키거나 아니면 부지를 은행에 담보로 맡기고 자금을 조달해야 되나 하는 생각까지 했다.
이런 정동식의 걱정을 아닌지 모르는지 혁권은 푹신한 가죽 시트에 몸을 기댄 채 심드렁한 목소리로 말했다.
“돈은 이미 다 준비되어 있으니까 신경 쓸 필요 없어.”
“정말이십니까?”
“내일 50억을 입금시켜 줄 테니까 확인해 봐.”
“……!”
그런 거액을 한 번에 넣어 준다니 혁권의 배포에 정동식은 다시 한 번 크게 놀랐다.
그리고 아까 방송국 간부들과 만난 자리에서 왜 그렇게 자신만만한 태도를 보였는지 이제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번은 처음이니까 어쩔 수 없더라도, 다음에는 좀 더 주도적으로 제작을 진행할 수 있도록 최대한 많은 경험을 습득해야 될 거야.”
“그 말씀은 앞으로도 드라마 제작을 계속하시겠다는 겁니까?”
“당연하지. 단발성으로 끝낼 것 같으면 이렇게까지 공을 들일 필요가 없잖아. 그럴 바에야, 차라리 적당히 제작비를 투자하고 배역이나 몇 개 챙기는 것이 훨씬 이득이지.”
“그, 그건 그렇지요.”
“전에도 이야기를 했지만 이쪽 계통에 대해서 잘 모르기도 하고 무엇보다 다른 할 일이 많아 내가 여기에 신경 쓸 시간이 거의 없을 거야. 그러니까 정 이사가 책임을 지고 사업을 이끌어 가도록 해. 뒤는 내가 확실히 밀어 줄 테니까 말이야.”
살짝 당황스러운 표정을 짓던 정동식은 이내 커다랗게 숨을 내쉬고는 의욕에 가득 찬 얼굴로 말했다.
“제가 능력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최선을 다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그거면 돼.”
옆에 나란히 앉은 정동식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면서 혁권이 말을 이었다.
“참, 그리고 우리 회사 연예인들이 전부 다 불필요한 잡음 없이 괜찮은 배역을 맡을 수 있도록 미리 신경을 쓰고.”
“염려하지 마십시오.”
큰돈을 들여서 드라마를 제작하는 목적이 바로 소속 연예인들의 인지도를 높이는 거였기에 당연한 일이었다.
“여주인공은 소현 씨로 하면 되겠군요.”
“그러면 좋겠지만, 아직 여주인공을 맡기에는 조금 부족하지 않겠어?”
성공적인 첫 연기 데뷔를 한 데다, 개인적으로 연인 사이였기에 무조건 소현을 여주인공으로 내세울 거라고 생각했던 정동식은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될지 몰라 눈만 껌뻑였다.
“경력이 오래돼야 연기를 잘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제 두 번째 작품인데 바로 주연을 맡게 되면 뒷말이 많을 수 있으니까, 이번에도 조연으로 가도록 하지. 대신 분량을 확실히 챙겨 주고 말이야.”
“말씀을 듣고 보니 그게 더 나을 것 같기도 합니다.”
“여주인공은 얼마 전에 새로 계약한 은신영으로 가자고.”
정동식도 이야기를 듣고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소속 연예인들 중에서 인지도가 제일 높고 연기력도 뛰어나니, 여주인공을 맡기에 부족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럼 그렇게 일을 진행시키도록 해.”
“알겠습니다.”
그 뒤로도 두 사람은 드라마 제작을 어떤 식으로 진행할 것인지 한참 동안 진지하게 대화를 나눴다.
이런 가운데 시에라리온에서 운영 중인 다이아몬드 광산의 수익성을 한층 높여 줄 주얼리 브랜드 론칭도 이제 코앞으로 다가왔다.
브랜드를 성공적으로 안착시키고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심어 주기 위해서 론칭과 함께 주얼리 쇼를 벌일 장소로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특급 호텔로 장소를 잡았다.
그와 동시에 주요 신문과 잡지에 대대적인 브랜드 광고를 내고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 모을 수 있는 셀러브리티Celebrity들을 대거 주얼리 쇼에 초청했다.
국내뿐만 아니라 거액을 주고 할리우드 유명 배우인 나탈리 포트만Natalie Portman까지 섭외하는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바람에 날아가지 않게 단단히 묶어!”
아침부터 청담동 명품 거리에 위치한 미리내 매장 옥상에서는 인부들의 고함 소리로 시끄러웠다.
“고정 다 끝냈지? 그럼 천천히 내려!”
머리에 안전모를 쓴 중년 사내의 외침에 옥상 양옆에 서 있던 인부들이 굵은 줄을 두 손으로 잡고는 균형을 맞춰 조금씩 풀었다.
“조심해서 내려! 그렇지.”
그러자 브랜드 론칭을 광고하는 대형 걸개가 매장 건물 한쪽 벽에 조금씩 모습을 드러냈다.
크기가 가로세로 7미터나 돼서 명품 거리 어디에서나 눈에 확 들어올 정도였다.
검은색 배경에 라는 브랜드 네임이 세련된 영문 폰트로 박혀 있고, 그 아래에는 이틀 뒤로 예정된 오픈 일이 작은 글자로 함께 표시되어 있었다.
정식 오픈 전의 티저 광고이니만큼 많은 정보가 나와 있진 않지만, 검은색 바탕에 금빛 모래를 뿌린 것처럼 약간 반짝이는 효과를 준 로고가 빛을 받을 때마다 화려하게 눈에 띄어 적어도 지나가는 이들의 주의를 끌 것은 분명했다.
“제법 깔끔하게 잘 나왔군.”
회사 간부들과 함께 밖에서 이 광경을 바라보고 있던 혁권이 만족한 표정으로 칭찬했다.
“이제 진짜로 시작이라는 느낌이야.”
“주얼리 쇼와 함께 기사를 대대적으로 쏟아 내면 미리내라는 이름이 소비자들의 머릿속에 확실히 각인될 겁니다.”
옆에 선 김덕현 전무의 이야기에 그는 머리를 끄덕였다.
“그래야지. 참 나탈리 포트만은 언제 도착한다고 했지?”
혁권의 물음에 행사 준비를 맡은 최정욱 과장이 뒤에 있다가 얼른 대답했다.
“오늘 오후에 김포 공항으로 입국할 예정입니다.”
“기자들한테 다 알려 줬겠지.”
“물론입니다. 벌써부터 관련 기사가 우후죽순처럼 포털 사이트에 올라오고 있습니다.”
“거액을 주고 부른 만큼 확실히 홍보 효과를 뽑아낼 수 있도록 해.”
“알겠습니다.”
2박 3일 동안 한국에 머물면서 주얼리 쇼에 참석하고 공식 석상에서 미리내 브랜드의 주얼리를 착용하게 하는 데 6억 원의 돈을 지급하기로 되어 있었다.
억 소리가 날 정도로 많은 몸값이었지만 나탈리 포트만 정도의 할리우드 유명 여배우를 데려오기 위해서는 어쩔 수가 없었다.
여기에다가 각종 광고와 브랜드 론칭을 겸한 주얼리 쇼를 특급 호텔에서 개최하는 데 들어간 비용도 만만치가 않았다.
하지만 돈을 들인 만큼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고 무엇보다 처음부터 고급 브랜드라는 인식을 심어 줄 수 있었다.
“관심이 단발성으로 끝나지 않도록 광고를 꾸준히 내보내고 이미지 관리에 더욱 신경을 써야 될 거야.”
“명심하겠습니다.”
“참, 매장을 늘리는 건 어떻게 하기로 했나?”
혁권이 옆을 돌아보면서 묻자 김덕현 전무가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백화점들하고 입점 협상을 하고 있습니다만 서두르지 않고 당분간은 강남 본점 운영에 집중할 계획입니다.”
“하긴 지금 입점을 하게 되면 나중에 브랜드 인지도가 높아졌을 때보다 여러 가지로 불리한 계약이 될 수밖에 없겠지.”
“맞습니다. 그래서 만족할 만한 조건이 아니라면 백화점보다는 직영 매장을 늘리는 방향으로 일을 진행할 생각입니다.”
“직영 매장이라…….”
팔짱을 낀 채 잠시 생각을 해 본 혁권은 이내 머리를 끄덕이면서 긍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 같군. 매장 관리나 이윤 측면에서는 오히려 더 나을 테고 말이야.”
“주얼리 쇼가 성공적으로 끝나고 미리내가 고급 주얼리 브랜드로 안착하면 우선 서울과 부산에 직영점을 하나씩 추가로 더 내는 걸 고려 중입니다.”
“회사 업무는 김 전무한테 일임을 했으니까 소신껏 경영을 해 나가도록 해.”
“예.”
회사 간부들이 전부 모여 있는 자리에서 오너인 혁권이 신임을 나타내자 김덕현 전무는 절로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