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g-awaited RAW novel - Chapter 823
823
“저기 왔어.”
낡아서 녹이 잔뜩 슬어 있는 철제 담장 옆에 승용차를 멈춰 세워 놓고 있던 유키오는 운전석에 앉은 혼다의 말에 눈을 번득였다.
정면을 쳐다보자 아니나 다를까 눈에 확 띄는 최고급 대형 세단이 경호 차량을 앞뒤에 두고 막 사거리를 지나서 넓은 공터 한쪽에 마련되어 있는 착륙장으로 향하는 것이 시선에 들어왔다.
넓은 착륙장에는 혁권이 섬과 육지를 오갈 때 사용하는 중형 헬리콥터 한 대가 엔진을 끈 채 대기하고 있었다.
“저기에 놈이 타고 있는 것이 확실하겠지.”
“아니라면 우린 정말 엿 되는 거고.”
“끄응.”
자조적인 투로 혼다가 대답하는 걸 들은 유키오는 자신도 모르게 입에서 낮은 침음성을 내뱉었다.
정보원을 통해 혁권이 섬 밖으로 나왔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두 사람은 고용한 킬러들을 데리고 달려와 함정을 파고 매복했다.
헬리콥터 착륙장 주변은 물론이고 밀착 수행을 하는 인원까지 열 명이 훌쩍 넘는 경호원들이 있었지만, 지금이 아니면 언제 또 이런 기회를 잡을 수 있을지 몰랐다.
부두에서도 인적이 거의 없는 외곽이었기에 목표를 제거하고 재빨리 현장을 벗어나 준비해 놓은 어선을 타고 이탈리아로 빠져나간다는 계획이었다.
급조한 작전이기는 해도 나름 성공 가능성이 꽤 높다는 판단이었다.
유키오는 킬러들이 몸을 숨기고 있는 빈 창고 건물을 힐끔 살피며 무릎에 올린 손을 쥐었다 폈다.
어느새 땀으로 축축하게 젖은 손바닥을 바지에 닦고 살짝 심호흡을 하면서 긴장을 풀려 애썼다.
그러는 사이에 헬리콥터 착륙장 안으로 들어선 대형 세단이 선두에 선 경호 차량을 따라 천천히 속력을 줄이더니 이내 완전히 멈추어 섰다.
잠시 뒤 건장한 체격의 경호원이 주위를 둘러보곤 뒷좌석 차 문을 열자 짙은 색 선글라스를 쓰고 무릎까지 내려오는 코트를 입은 혁권이 모습을 드러냈다.
숨소리도 죽인 채 눈에 댄 쌍안경으로 상황을 주시하던 유키오는 혁권의 얼굴을 확인하곤 손에 쥔 무전기를 재빨리 입으로 가져가며 말했다.
“놈이야. 어서 쏴!”
그와 동시에 정적을 깨는 날카로운 총성이 울렸다.
타아앙~!
발을 내딛는 혁권은 코트 주머니에 손을 넣고 차가운 겨울 공기에 어깨를 살짝 움츠렸다.
코에 와 닿는 짭짜름한 바다 냄새를 느끼며 막 걸음을 옮기려던 찰나, 멀리 부두 반대편 끝자락에서 선박의 뱃고동 소리가 크게 울리자 모이를 찾고 있던 갈매기 떼가 한꺼번에 날아올랐다.
하늘을 크게 선회하는 갈매기 떼의 움직임을 따라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옆으로 비튼 순간 볼에 화끈한 감촉이 느껴졌다.
“크흑!”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목표를 맞히지 못한 탄환이 차창에 박혀 거미줄 같은 금을 순식간에 만들어 냈다.
뒷목이 서늘해지는 감각에 혁권은 본능적으로 이명이 울리는 귀를 감싸며 몸을 숙였고, 뒤이어 근처에 있던 하킴과 다른 경호원들이 얼른 그의 몸을 거의 덮다시피 하면서 무기를 뽑아 들었다.
“저격이다!”
“보스, 맞으셨습니까?”
함단이 상반신을 부축한 채 바닥에 주저앉아 있던 혁권은 하킴의 외침에 잔뜩 구긴 얼굴로 대답했다.
“으윽. 난 괜찮아.”
오른쪽 관자놀이에서 시뻘건 피가 나오는 걸 함단이 얼른 손수건을 꺼내 지혈하고 있는 것 말곤 다행스럽게도 큰 이상이 없어 보였다.
피슝! 퍼퍽. 퍽.
재차 날아온 탄환이 엄폐해 있는 차체에 맞으면서 섬뜩한 소리를 내며 불꽃을 튀기자 혁권은 함단의 부축을 받아서 일어나 트렁크 뒤로 얼른 몸을 피했다.
착륙장 반대편에 세워 둔 차 안에서 그 모습을 지켜본 유키오는 한쪽 손에 무전기를 움켜쥔 채 욕설을 내뱉었다.
“제길. 그걸 하나 못 맞혀!”
“이제 어쩌지?”
아랫입술을 꽉 깨문 채 혁권이 몸을 숨긴 고급 세단을 노려보던 유키오는 이내 허리에 차고 있던 베레타 권총을 꺼내 들며 말했다.
“이렇게 된 이상 직접 놈을 끝내는 수밖에.”
틀어진 작전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 혼다는 이내 아랫입술을 피가 날 정도로 깨물곤 차 문을 열고 나가는 유키오의 뒤를 따랐다.
“아무래도 오늘 일진이 사나울 것 같군.”
저격은 실패했지만 자동 화기를 난사하면서 매복해 있던 빈 창고 건물에서 뛰쳐나오고 있는 킬러들이 있었기에 아직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타탕! 탕!
한쪽 무릎을 꿇은 채 어느새 글록 권총을 꺼내 양손으로 잡고 저격수가 숨어 있는 걸로 짐작되는 창고 지붕을 겨누고 방아쇠를 당기던 혁권은 총구 화염을 번뜩이면서 달려드는 적을 발견하돈 이를 악물었다.
“좌측에 적이다! 다가오지 못하도록 저지해.”
헬리콥터 근처에 있던 경호원 두 명이 권총을 쏘며 상대를 막으려고 했지만, 화력에서 밀려 두 팔을 허공에 내저으면서 뒤로 널브러졌다.
습격을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방금 쓰러진 경호원을 포함해서 혁권이 눈으로 확인한 것만 벌써 다섯이나 적에게 당하고 말았다.
먼저 기선을 제압당한 데다가 화력까지 열세여서 이대로는 오래 버티기 어려웠다.
그때 바로 옆에서 쇠를 긁으면서 탄환이 연속으로 발사되는 소리가 들렸다.
투타타탕!
고개를 돌리자 하킴과 백성균이 경호 차량에 실려 있던 M4A1 카빈 자동소총을 꺼내 어깨에 개머리판을 단단히 붙이고는 적을 향해 마구 쏴 대는 것이 보였다.
방아쇠를 당길 때마다 탄피가 어지럽게 튀어나와 쇳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졌다.
지척에서 울리는 총성에 귀가 먹먹할 지경이었으나 효과는 확실했다.
총을 쏘며 거침없이 헬리콥터 착륙장을 가로질러 오던 적들이 주춤하면서 땅에 엎드리거나 황급히 엄폐물 뒤로 몸을 숨겼다.
“좋았어!”
그걸 보고 같이 사격을 해 주기 위해 트렁크 위로 상체를 들던 혁권은 위쪽에서 날아온 총탄이 바닥에 맞아 흙먼지를 피워 올리자 얼른 머리를 숙였다.
총탄이 날아온 곳을 향해 함단이 권총을 쏘고는 고개를 돌려 혁권을 봤다.
“저격수가 있으니 조심하십시오!”
혁권은 관자놀이에서부터 흘러 핏자국이 번진 뺨을 차가운 차체에 바싹 붙이고 몸을 둥글게 말아 움츠린 자세로 거칠게 내뱉었다.
“저 새끼부터 잡아야 돼!”
저격수가 계속 자신을 노리고 있다는 생각만 해도 뒷골이 서늘해질 뿐 아니라 간간이 쏴 대는 총탄 때문에 이쪽이 수가 훨씬 많음에도 불구하고 그걸 다 활용할 수가 없었다.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저격수를 잡아야 되는데 그게 쉽지가 않았다.
그때 혁권의 눈에 뜨인 물건이 있었다.
바로 부하들이 경호 차량 트렁크에서 꺼낸 무기를 숨겨 놨던 검은 색깔의 가방이었는데, 활짝 열린 지퍼 사이로 예비 탄창에 섞여 깡통 캔 모양을 한 물건이 하나 삐죽 머리를 내밀고 있었다.
“그거 수류탄이야?”
그러자 막 가방에서 새 탄창을 꺼내 갈아 끼우던 백성균이 그를 보며 대답했다.
“예.”
“이리 줘 봐.”
“창고 옥상까지 거리가 먼 데다가 이건 소이수류탄이라 저격수를 잡을 수가 없습니다.”
“나도 알아.”
둥근 공이 아니라 캔처럼 생긴 모양새만 봐도 일반적인 수류탄이 아니라는 걸 혁권도 알 수 있었다.
의아한 표정을 지으면서 백성균이 건네준 건 M14소이수류탄이었다.
안에 3천 도가 넘는 고열을 발생시키는 테르밋이 들어 있어 이름 그대로 뭐든지 다 태워 버리는 물건이었다.
“그걸 가지고 뭘 하시려는 겁니까?”
함단의 물음에 등을 자동차 타이어에 기댄 채 가지고 있던 권총을 바지춤에 꽂아 넣으면서 말했다.
“저기 급유차 보이지?”
“예.”
턱짓으로 혁권이 가리킨 곳에는 트럭을 개조해서 만든 급유차가 세워져 있었다.
“저걸 터트려서 저격수의 시선을 분산시킬 거야.”
얼굴이 땀에 젖은 함단은 그때서야 혁권의 의도를 알아차리고는 낮게 탄성을 내뱉었다.
“시야를 가리고 적을 처리하자는 말씀이시군요.”
“맞아.”
이제부터 당한 걸 그대로 되돌려 줄 생각에 그는 입가에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
눈치가 빠른 함단은 계획을 다른 부하들한테도 재빨리 알리고는 혁권을 엄호하기 위해 일제히 집중사격을 퍼부었다.
타타탕! 타탕! 탕!
쏟아지는 총탄에 흙먼지가 피어오르고 적이 엄폐해 있는 상자가 부서지면서 나무 조각이 떨어져 내렸다.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몸을 벌떡 일으킨 혁권은 안전핀을 뽑은 소이수류탄을 있는 힘껏 급유차를 향해 집어 던졌다.
“이거나 먹어라!”
소이수류탄을 손에서 놓자마자 그대로 몸을 낮췄고 거의 동시에 섬뜩한 파공음을 내며 저격수가 쏜 탄환이 날아왔다.
피슝.
조금만 움직임이 늦었으면 그대로 머리가 관통될 뻔한 아찔한 순간이었다.
가슴을 쓸어내릴 틈도 없이 혁권이 던진 소이수류탄이 정확하게 급유차 보닛에 부딪쳐 터지면서 삽시간에 시뻘건 불길에 휩싸였다.
펑!
그리고 얼마 있지 않아 묵직한 굉음이 울리면서 급유차 뒤에 실린 연료탱크가 폭발하며 커다란 불기둥을 만들어 냈다.
콰쾅!
화염이 일렁거리며 시커먼 연기가 피어올라 삽시간에 주변 하늘을 뒤덮었다.
불길이 얼마나 거센지 꽤 거리가 떨어져 있는데도 뜨거운 열기가 느껴질 정도였다.
솟아오른 연기가 저격수가 숨어 있는 창고 지붕을 완전히 가린 걸 확인한 혁권은 몸을 벌떡 일으키며 외쳤다.
“저 개자식들을 다 쓸어버려!”
그러자 부하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엄폐물 밖으로 나와 적을 향해 달려 나갔다.
급유차 가까이에 있어서 폭발 충격을 더 크게 받았던 상대는 곧바로 대응 사격을 하지 못했다.
뒤늦게 총탄이 날아왔지만 그때는 이미 기세가 기울어진 후였다.
투타타탕! 탕! 탕!
“으악!”
“크흑.”
마치 아까 당한 걸 분풀이라도 하듯 부하들은 가차 없이 방아쇠를 당겼고 그때마다 적이 비명을 내지르며 고목나무처럼 쓰러졌다.
혁권 역시 가만히 뒤에서 구경만 하고 있지 않고 교전을 벌이는 곳 한가운데로 과감하게 뛰어들었다.
시커먼 인영 하나가 빈 드럼통 옆으로 모습을 드러내자 혁권이 든 글록 권총 총구에서 불이 뿜어져 나왔다.
피를 뿌리면서 상대가 뒤로 넘어지자 그는 다른 적들을 향해 탄환을 있는 대로 마구 갈겨 댔다.
탄창에 든 탄환을 완전히 다 쏴 버릴 기세였는데 총성이 연달아 리드미컬하게 울릴 때마다 탄피가 약실에서 튕겨져 나와 날카로운 쇳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졌다.
철컥.
빈 쇳소리가 나며 권총 슬라이드가 뒤로 젖혀지는 걸 보고 혁권이 미간을 좁히는 순간, 언제 다가왔는지 유키오가 붉게 충혈된 눈동자로 그를 노려보며 총구를 겨눴다.
“위험합니다!”
옆에서 들리는 외침에 반사적으로 상체를 숙이자 날카로운 파공음이 머리 위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와 동시에 하킴의 M4 자동소총이 불을 뿜자 가슴에 여러 발을 맞은 유키오가 앞으로 엎어졌다.
“너무 앞으로 나서지 마십시오.”
하킴이 매서운 눈으로 주위를 경계하면서 말하자 양손에 권총을 든 채 옆에 바짝 붙어 선 함단도 그를 만류했다.
“하킴 말이 맞습니다. 이제 상황이 거의 종료됐으니 뒤로 물러서시죠.”
주위를 둘러 본 혁권은 작게 머리를 끄덕이곤 권총을 윗도리 안으로 집어넣었다.
간간히 총성이 울렸지만 승패가 결정 난 것이나 마찬가지인 데다가 아직 저격수가 남아 있었기에 조심할 필요가 있었다.
얼마 안 있어 집중사격을 받아서 엉망으로 부서진 벤츠 대신 지병하가 끌고 온 경호 차량에 올라탄 혁권은 현장을 벗어나 안전한 장소로 이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