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g-awaited RAW novel - Chapter 834
834
오랫동안 야전에서 구른 사람답게 두툼하고 굳은살이 박여 단단한 손바닥으로 상대가 먼저 인사를 건넸다.
“반갑소, 무세베니요.”
“존슨입니다.”
혁권이 손을 맞잡고 함께 악수하자 무세베니 장군이 집무실에 마련된 접대용 소파를 가리키며 말했다.
“자, 그럼 일단 앉아서 얘기합시다.”
무세베니 장군은 당연히 가장 상석에 앉아 테이블에 있던 시가 케이스를 들어 먼저 입에 물고는 혁권에게도 권했다.
“하나 피우시겠소? 여기 있는 건 죄다 좋은 물건뿐이라오.”
불과 며칠 전만 해도 이 집무실의 주인이 다른 사람이었다고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극히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감사합니다.”
두툼한 시가를 하나 건네준 무세베니 장군은 옆에 놓인 커터로 한쪽 끝을 자른 뒤 라이터를 켜서 불을 붙였다.
쿠데타가 성공해서인지 무세베니 장군의 얼굴에는 여유와 자신감이 가득했다.
“먼저 대업을 이루신 걸 축하드립니다.”
“하하하! 이제 시작일 뿐이오. 앞으로 할 일이 태산처럼 많이 남았소이다.”
“잘하실 거라 생각합니다.”
“고맙소.”
직접 얼굴을 맞대는 건 처음이었지만 그렇게 꽉 막힌 느낌이 아니라 혁권은 걱정과 달리 일을 쉽게 풀어 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길게 시가 연기를 내뱉은 무세베니 장군은 소파 등받이에 몸을 기댄 채 말을 이었다.
“나한테 할 이야기가 있다고 들었는데, 뭔지 지금 말해 보시오.”
“칼리바 전 대통령을 축출하고 킨샤사까지 손에 넣으셨으니, 처음 약속한 대로 콜웨지에 있는 코발트 광산 소유권을 넘겨받기 위해서 왔습니다.”
물 흐르듯 담담하게 하는 이야기에 무세베니 장군은 약간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 보니 그런 약속을 했었지.”
역시나 화장실 들어갈 때하고 나올 때 마음이 다른 것처럼 쿠데타에 성공해서 정권을 잡고 나니까, 가치가 큰 코발트 광산을 넘겨주는 게 아까운 모양이었다.
“이것저것 신경 쓰실 일이 많으실 것 같아서 제 고문 변호사를 통해 계약서를 만들어 왔습니다.”
그가 손짓을 하자 뒤편에 서 있던 하킴이 손에 든 가방에서 서류철을 2개 꺼내 테이블에 올려놨다.
“계약서까지 준비해 오다니 철저하구먼.”
무세베니 장군의 말에 혁권은 미소를 띤 채 담담하게 시선을 받아넘겼다.
“뭐든 확실한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그러자 표정을 찌푸린 무세베니 장군이 손가락 끝으로 계약서를 툭툭 두드렸다.
“코발트 광산의 가치가 족히 수십억 달러는 넘는다는 걸 알고 있나.”
“물론입니다.”
“그럼 지금까지 그쪽에서 해 준 일에 비해서 가져가는 게 과하다는 것도 알고 있겠군.”
“그건 위험을 감수하고 장군님한테 베팅한 대가라고 생각합니다.”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서로 날카롭게 부딪쳤다.
잠시 무거운 침묵이 이어진 후 무세베니 장군이 피식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좋아. 어찌 됐건 내가 약속한 거니까 지켜야 되겠지.”
그러고는 안주머니에서 만년필을 꺼내 계약서에 시원하게 서명을 했다.
“감사합니다.”
이제 정식 계약서까지 받았으니 이걸로 콜웨지에 있는 코발트 광산은 완전히 그의 소유가 됐다.
약간의 신경전이 있었지만 일을 잘 마무리 지은 혁권은 계약서를 챙겨 넣으면서 시가를 입에 물고 있는 무세베니 장군을 봤다.
“선물을 하나 가져온 것이 있는데, 마음에 드실지 모르겠습니다.”
하킴이 가지고 있던 가방을 테이블에 내려놓자 무세베니 장군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이게 뭔가?”
“약소하지만 앞으로도 좋은 관계를 이어 나갔으면 하는 제 성의입니다.”
“······.”
물끄러미 그를 쳐다본 무세베니 장군은 두 팔을 뻗어서 가방을 앞으로 끌어당겼다.
“선물이라니, 뭐가 들어 있을지 궁금하군.”
양쪽에 달린 잠금 버튼을 눌러 가방을 연 무세베니 장군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동석해 있던 마틴 대령 역시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는데,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가방 안에는 누런빛을 내는 1킬로그램짜리 순금 골드바 10개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창문을 통해 들어온 햇빛이 반사돼 집무실 안이 온통 환해지는 기분이었다.
금이 주는 마력이 있어서 그런지 확실히 같은 값의 현금보다 훨씬 더 크고 가치 있게 느껴졌다.
“이건 생각지도 못한 거군.”
“동양에서 금이 복을 불러온다는 이야기가 있어서 이렇게 준비를 해 봤습니다.”
“고맙군. 잘 쓰도록 하지.”
방금 전 껄끄러웠던 것들이 모두 씻겨 내려갔는지 무세베니 장군의 얼굴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가방을 다시 닫은 무세베니 장군은 그를 보며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난 자네처럼 경우가 바른 사람을 좋아해. 앞으로도 잘해 보자고.”
골드바를 마련하느라 적지 않은 돈이 들었지만, 정권을 쥔 무세베니 장군과 돈독한 관계를 만들고 코발트 광산을 넘겨주는 것에 대한 반감을 해소한 걸 생각하면 이쪽이 훨씬 더 큰 이득이었다.
손가락 사이에 시가를 끼운 무세베니 장군은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고개를 돌려 마틴 대령을 봤다.
“무기하고 보급 물자를 다시 보충해야 된다고 그랬지?”
“예. 킨샤사를 함락시키는 과정에서 탄약을 비롯한 보급품 소모가 커서 현재 재고가 거의 바닥인 상황입니다.”
“들었지. 필요한 물자를 자네가 공급해 줬으면 하는데, 할 수 있겠나? 대금은 콜탄Coltan 광석으로 주도록 하지.”
쿠데타에 성공해 정권을 잡기는 했지만 완전히 다 토벌되지 않은 정부군 패잔병들이 남아 있고, 동맹민주군(ADF)을 비롯한 여러 반군 세력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어, 아직은 불안한 상태였다.
그걸 알기에 시가전으로 엉망이 된 킨샤사를 재건하는 것보다 자신의 친위 부대인 남부군의 전력을 서둘러 보충하려는 거였다.
머릿속으로 빠르게 계산을 끝낸 혁권은 웃으면서 대답을 했다.
“뭐든 구해 드릴 테니 말만 하십시오.”
“시원시원해서 좋군. 그러면 자세한 건 마틴 대령하고 의논을 해서 결정하도록 해.”
“그러지요.”
얼마간 더 대화를 나누고 집무실을 나온 혁권은 마틴 대령과 함께 다른 조용한 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장군님께서 존슨 씨를 아주 잘 보신 것 같습니다.”
“다 대령이 중간에서 이야기를 잘해 준 덕분이죠.”
“칭찬으로 듣도록 하지요.”
지난번에 거래를 하면서 한몫 단단히 챙겨 줘서 그런지 마틴 대령은 그에게 상당히 호의적인 태도를 보였다.
“정확한 건 나중에 다시 목록을 정리해서 넘겨드리겠습니다만 품목하고 수량은 지난번하고 비슷할 겁니다. 몇 가지 추가되는 것이 있다면 여러 종류의 군용 차량을 비롯한 전차와 장갑차입니다.”
소파에 앉아 이야기를 듣던 혁권은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전차하고 장갑차라고 했습니까?”
“그렇습니다. 장군님께서 중대 규모의 기갑부대를 구성하길 원하고 계십니다.”
“그럼 대략 각각 10여 대 이상이 필요하다는 거군요.”
“가능하겠습니까?”
예상했던 것보다 큰 거래에 그는 자리를 고쳐 앉으면서 말했다.
“신형 장비를 구하려면 가격도 비싸고 납품을 받는 데 시간도 꽤 오래 걸릴 텐데, 괜찮겠습니까?”
“중고품도 상관없고 성능은 T-72 정도 수준만 되면 됩니다. 대신 최대한 빨리 장비를 가져다주고 부대를 운용할 수 있도록 도와줄 교관과 정비 기술자를 함께 최소 1년간 파견해 주는 조건입니다.”
복잡하고 다루기 어려운 기갑 장비들을 쓸모없는 고철 덩어리로 만들지 않고 제대로 운용하기 위해서는 사용법을 가르쳐 줄 숙련된 인력이 필요했다.
루마니아 창고에 잉여 물자로 분류된 구소련제 무기와 장비 들이 가득 쌓여 있고, 일자리를 찾는 퇴역 군인들 역시 널렸으니 요구 조건을 들어주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하면 액수가 꽤 커질 텐데, 괜찮습니까?”
“보마 항구 창고에 수출용으로 쌓아 둔 광석들이 충분히 있으니 상관없습니다.”
정산만 제대로 해 준다면 필요한 건 무엇이든 구해 줄 수 있었다.
작게 머리를 끄덕인 혁권은 이제부터 진짜 중요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 진지한 태도로 상대를 다시 바라보며 물었다.
“광석 가격은 어떻게 책정하면 좋겠습니까?”
“국제 시세대로 하는 게 무난하겠지요.”
짐작한 대로 일반적인 방법을 제시하는 마틴 대령에게 혁권이 슬쩍 음성을 낮추며 말했다.
“광석을 직접 운반하고 처분까지 해야 되는데, 그렇게 하면 아무래도 밑지는 장사를 하는 거 아니겠소?”
“그건······.”
마틴 대령이 혁권의 말속에 숨은 뜻을 모를 리가 없었다.
하지만 상대는 먼저 이야기를 꺼내지 않고 짐짓 의문스러운 척하면서 그를 보며 넌지시 물었다.
“그럼 어떻게 하자는 겁니까?”
혁권이 몸을 앞으로 당기면서 말했다.
“국제 시세에서 딱 10%를 낮춘 가격으로 거래를 합시다. 최근 변동 폭이 컸던 걸 감안해 기준점은 한 달 전 시세로 해서 말이오.”
얼핏 들으면 합리적인 것 같지만, 공급 우려로 코발트와 콜탄 시세가 폭등하기 전이었기에 현재 시세하고 비교해서 격차가 아주 컸다.
아무리 따로 들어가는 여러 가지 비용을 제한다고 해도 혁권한테 상당히 유리한 조건이었다.
마틴 대령이 미간을 좁히자 그가 미소를 지으면서 은근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했다.
“그렇게 해 준다면 이익금에서 10만 달러를 대령 몫으로 주겠소.”
처음부터 이런 걸 기대하고 있었는지 제안을 들은 마틴 대령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나름 타당성이 있고 현물로 거래를 하는 거니까 그렇게 하도록 하지요.”
“역시 대령하고는 말이 잘 통하는 것 같소.”
“그럼 지금부터는 세부 내역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 볼까요.”
“그럽시다.”
원하는 걸 다 얻어 낸 혁권은 속으로 크게 만족하면서 마틴 대령에게 의미심장한 시선을 던졌다.
평일 오후였지만 인천 국제공항 입국장은 이용객들로 혼잡스러웠다.
수많은 사람들이 오갔지만 대리석 바닥은 거울처럼 반질반질 윤이 날 정도로 잘 닦여 있었고 쓰레기 하나 보이지 않을 만큼 실내가 깨끗했다.
입국장 문이 열리면서 쏟아져 나오는 한 무리의 사람들 속에 긴 모직 코트를 입고 선글라스를 낀 츠토무가 있었다.
한 손에 여행용 캐리어를 끌고 걸어가는 모습이 전혀 위화감이 없이 평범하게 보였다.
“츠토무 상.”
건장한 사내 두 명이 앞으로 다가와 일본어로 말을 걸자 바로 걸음을 멈춘 츠토무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상대를 훑어봤다.
“마에다라고 합니다. 한국에 계시는 동안 옆에서 보필하라는 히로시게 사장님의 지시를 받고 왔습니다.”
“타카시입니다.”
한국에 진출해 있는 조직원이 마중을 나올 거라는 이야기를 들었기에 츠토무는 고개를 작게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가지.”
“짐은 저희한테 주십시오.”
그러면서 마에다가 먼저 손을 뻗어 짐을 넘겨받으려 하는데 츠토무가 도중에 그를 가로막았다.
“아니.”
얼음같이 차가운 음성에 마에다가 순간 어깨를 움찔거렸다.
“미리 말해 두는데 앞으로 내 물건에 함부로 손을 대지 말도록 해.”
“아, 예.”
마에다는 허공에 그대로 멈춰 있는 제 손을 어색하게 거둬들이고는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나름 예의를 갖춘 것인데 이렇게 단호하게 거부하니 당황스럽고 살짝 반감도 들었지만, 겉으로 내색을 하진 않았다.
마에다는 재빨리 얼굴을 가다듬곤 그럼, 하면서 옆으로 물러섰다.
살짝 어색한 분위기가 감돌았지만, 츠토무는 신경 쓰지 않고 다시 발걸음을 옮겼고 두 사람은 얼른 앞에 서서 안내를 했다.
그렇게 청사 밖으로 나온 츠토무는 주차장에 세워 둔 승용차를 타고 공항을 빠져나와 곧장 서울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