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g Live the Drama King RAW novel - Chapter (206)
나는 궁지에 몰려 있었다.
누가 보기에도 상황은 절망적이었다.
배우며 작가가 죄다 적으로 돌아선 지금 과연 나 혼자 밀어붙여 막장으로 선회하는 것이 가능할까
그건 이미 디에고로드리게즈를 뛰어넘었다고 자부하는 나조차도 쉽게 확언할수 없는 문제였다.
“이렇게 된 이상 체스판을 뒤집는수밖에 없겠습니다.”
최대웅마저 날뛰기 시작한순간, 나는 모든걸 내려놓고 곧장 김철 선배와 상의에 나섰다.
“상황이 이렇게 된 이상 계속 밀어붙여봤자 막장도가올라가는 건 요원할 겁니다.”
[뭔가 생각이 있냐?]“일단 얌전히 멀쩡한 물건을 만드는 게 어떻겠습니까?”
[……?]기묘한 표정이 된 선배를 보며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나 역시 달갑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것밖에 없었다.
“설마요. 제가 무릎을 꿇는 건 추진력을 얻기 위함입니다.”
눈을 끔벅이는 김철 선배에게 나는 주먹을 꾹 쥐어보였다.
“생각해 보십시오. 그냥 막장으로 생각하던 드라마가 더 막장이 되는 것과 재평가되던 드라마가 다시 꼬라박히는 것, 어느 쪽이 더 임팩트가 크겠습니까?”
[…그야 후자겠지.]“바로 그겁니다.”
이제 대세가 결정되었다 싶은 상황에서 내리꽂히는 막판 뒤집기.
제대로 먹혀든다면 시청자들은 그야말로 눈 뜬 채로 코를 베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내 완벽한 논리에 김철 선배는 잠시 혹하는 표정이었으나 이내 헛기침을 하고 표정을 바꾸었다. 이어진 지적은 날카로웠다.
[김경숙이가 보내온 대본은 이미 꽤 괜찮은 물건이잖냐. 그걸로 뭘 어떻게 하려고?]나는 살짝 말문이 막혔다.
최근 김경숙 작가의 각성 아닌 각성은 실로 놀라운 것이었다.
본래 막장드라마란 캐릭터간의 얽히고설키는 갈등을 위해 다른 모든 걸 등시하는 부류의 창작물 이다. 따라서 그대모로 불리는 김경숙 작가는 본래 그쪽으로는 빼어난 솜씨가 있었고, 나도 그사실을 잘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터진 포텐셜은 설마하던 내 상상을 아득히 뛰어넘는 것이었다.
설마하니 최고의 지원군이 그대로 최악의 적으로 돌아설 거라고는 내 눈으로도 읽을 수 없었다…
[솔직히 지금 걸 압축해서 쓸 수 있다면 나도 시나리오를 맡겨봤을지도 모르겠어 .]“예?”
[아, 그냥 초안 말이야. 당연히 내가 손을 봐야겠지.]툴툴거리는 김철 선배에게 나는 멍하니 입을 벌렸다.
영화감독은 대개 시나리오를 경시하게 마련이며, 김철 감독은 개중에서도 그 최고봉에 있는 인물이다. 애초에 모든 작품올 스스로 쓰고 연출했던 걸로 유명하기도 하고.
그간 선배는 서예린 작가와 지아를 상대로도 쓴 지적을 아끼지 않았다. 가끔 괜찮은 물건이 나오더라도 ‘드라마니까 필요하다’고 생각할 뿐 딱히 어떤 감명을 받는 기색이 아니었다.
바꿔 말하자면 그런 선배가 괜찮다고 말할 무언가가 지금의 김경숙 작가에게는 있는 셈이었다.
“…뭐, 이제 스토리 전반에 직접 관여할 생각은 없습니다.”
나는 애써 당황을 수습하고 헛기침올 했다.
중요한 건 부드럽게 흘러간 후의 후반의 진상이다. 모두의 기대가 최고조에 올랐을 때 그걸 그대로 무너뜨린다.
그 한 수면 모든 것을 뒤집기에 충분할 것이다.
“좋거나 싫거나『삼세번』은 지금 일종의 추리 드라마가 되어 있는 상황이지 않습니까?”
[그렇지.]“그리고, 추리물에는 지켜야할 법칙이 있지요.”
흔히 녹스의 10계니 반 다인의 20칙이니 하는 것들이다.
그리고 그 모두가 입을 모아 독자를 우롱하는 짓거리니 절대로 하지 말라고 하는것이 있다.
바꿔 말하자면, 그것이야말로 내가 가야 할 길이었다.
내가 선언했다.
“『삼세번』안에서 일어난 사건의 진상을 미리 말씀드리겠습니다.”
[음?]“사망자들은 모두 마법으로 살해당했습니다.”
긴 침묵이 흘렀다.
이어진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다.
[……뭐?]“아, 딱히 어떤 비유가아니라 진짜 마법입니다.”
[……]녹스의 2계, 초자연적이거나 불가사의한 수단을 써서는 안 된다.
반 다인의 8칙, 범죄의 수수께끼는 엄연한 자연의 법칙을 통해 풀려야 한다.
그리고 그 둘이 입을 모아 말하는 사항, 전제를 뒤엎는 반칙을 저질러서는 안 된다.
모든 사항을 완벽하게 위반한 비장의 한수.
이 이상 완벽한 반전은 없을 터라고 콧김을 뿜는데 어째선지 선배는 미치광이를 보는 눈이 되어 있었다.
최근 잘보지 못했던 표정에 멋쩍어진 내가 물었다.
“그… 어딘가문제가 있습니까?”
[……대체 어디서부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냐?]“……?”
한동안 침묵이 흐르고, 김철 선배가 재차 무어라 입을 열려던 순간이었다. 문득 내 전화가 울렸다.
이설에게서 문자가 도착했을 무렵이었다.
#
이현석이 그렇게 꿍꿍이를 품고 있는 가운데서도 드라마는 순항하고 있었다.
『삼세번』은 마치 롤러코스터와 같았다.
이설로 한 번, 최대웅으로 한 번 소란스러워졌던 드라마는 이어 재평가가 이루어지며 제작진에게도 포커스가 옮겨가기 시작했다.
본래부터 파천황적인 행보를보이던 이현석은 누구나 역시나, 하고 받아들였다. 하지만 김경숙은 그야말로 신선한 이름이 었다.
30년차 원로, 자기복제의 달인. 그리고 막장드라마의 대모.
그 어떤 타이틀로 비추어 보아도 지금과 같은 물건이 나올 거라고 생각한 이는 거의 없었던 것이다.
“생각해보면 요즘 말로… 낚였다고 하지요? 그런 것 같더군요.”
최근의 인터뷰 역시 항시 까칠하던 그 전과는 달리 꽤나 온화한 것이었다. 그 한탄에 인터뷰어는 눈을 빛내며 장단을 맞췄다.
“낚였다고요?”
“처음 저를 설득할 때는 이런 스토리가 될 거라고는 전혀 말하지 않았었거든요.”
“어이쿠, 사기를 당하셨군요.”
“그렇지요.”
김경숙이 쓴웃음을 지었다. 딱히 속이랄 게 없는 미소였다.
“생각해보면 초기부터 대본을 이리저리 갈아엎는 걸 요구하는 것도 많이 피곤했지요. 왜 이렇게 까탈스럽나 생각하기도 했고.”
“까마득한 후배인데 자존심도 상하지 않으셨습니까?“
“조금은요.”
김경숙 작가는 고개를 끄덕인 후에 덧붙였다.
“하지만 이 피디는… 뭐라고 해야하나, 가만히 이야기를듣다보면 사람을 동하게 하는부분이 있어요. 화는 나는데 저 말대로 하는 게 확실히 더 재미있겠다 하는.”
“감화된다는 걸까요?”
“그럴지도요.”
본래라면 노성이 쏟아질 상황에 설마하던 긍정이 돌아왔다. 인터뷰어는 웃으면서도 내심 놀라움을 감출수 없었다.
본래 김경숙은 PD 알기를 키우는 개보다 못하게 알기로 유명한 작가다. 어디까지나 자신의 대본 을 그대로 영상화시키는 것을 요구하며, 거기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려면 그대로 불호령이 떨어졌 다는 이야기도 파다하다.
그런 의미에서는 국내 드라마계의 최고참인 서수현 작가와도 나름 통하는 면이 있었다.
그런 김경숙이 이 정도로풀어진 태도를보인 건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심지어 상대는 연차로는 아득한 햇병아리가 아니던가.
“생각해보면 이 피디는 계속새 대본을 요구하면서 뭔가 발견하기를 바라고 있었던 것 같더군요.”
“현재의『삼세번』을.”
“그렇겠지요.”
“애초에 지금의 스타일을 그리고 김 작가님을 그쪽으로 몰아갔다고보시진 않으십니까?”
살짝공격적인 질문이었다.
인터뷰어 스스로도 실수했다 싶어 낯빛을 바꾸는데 김경숙 작가의 표정은 어째선지 더욱 온화해 졌다.
“그건 이현석이라는 친구를 전혀 모르고 하는 말이네요.”
“예?”
“그사람 입봉작은 보셨나요?”
“그야……”
인터뷰어는『연극처럼 살다』도『연구일지 속보석함』도제법 흥미롭게 보긴 했지만 별반 큰 인상은 없었다.
“입봉작을 보면 극은 전체적으로 통통 튀면서 쉼없이 사건이 일어나지요. 하지만 그 후속작은 같은 배경인데도 정적이라고 할까, 내면적인 묘사가 두드러지고.”
고개를 끄덕이던 인터뷰어가 순간 멈칫했다. 그 두 작품을 보고 분석했다고? 다른 사람도 아니고 김경숙 작가가?
그가 놀라거 나 말거 나 김경숙 작가의 어조는 담담했다.
“유지아 작가는 당시에 고등학생이었으니 그 강점을 최대한 살린 것이고, 서예린 작가는 원숙해 질 필요가 있으니 그쪽을 강조한 거겠지요.”
“그러니까……
“작가에 맞춰 스타일을 바꾸면서 장점을 키우고 잠재력을 끌어낸다. 이 피디에게는 그런 힘이 있다는 뜻이에요.”
그 김경숙에게 나왔다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의 찬사였다.
바꿔 말하자면 이번 경우도그자신의 힘이 아니라 이현석의 도움이 크다는뜻이 아닌가?
“그래요.”
그 의문에 김경숙은 긍정했다.
“이현석 피디를 만나지 못했다면 나는 아마 퇴물로 잊혀지고 있었겠지요.”
“그건 좀 지나친……”
“지금의 내가 보기엔 그렇다는 뜻이에요.”
“……”
“앞서 한 질문에 대답하자면, 이 피디는 자기가 길을 정하고 끌고 가는 스타일이 아니에요. 길게 펼쳐진 갈림길을 보여주고 스스로 택하게 하는 쪽이지요.”
유지아였기에『연극처럼 살다』가되었고,서예린이기에『연구일지속보석함』이 되었다.
그리고 김경숙이기에 지금의『삼세번』이 되었다.
인터넷에서 ‘스릴러 추리극’에 대한 소문이 돌았을 때 김경숙의 감정은 자신의 작품을 함부로 예단한 데 대한 짜증이 아니었다. 반대로 아, 하는 일종의 깨달음에 가까웠다.
그건 일종의 본능에 가까웠다.
나는 이걸 잘 쓸수 있다. 누구보다도, 그 서수현보다도 잘.
이현석은 분명히 알면서도 답을 내기를 기다렸을 것이다一 김경숙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 이현석 피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러네요.”
김경숙이 빙그레 웃었다.
“은퇴하기 전까지 두 작품쯤은 같이 하고 싶군요.”
“오, 라이벌이 많을것 같은데요?”
“그렇겠지만 연이 깊은 유지아나 서예린 작가를 놔두고 나에게 온 건 그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인터뷰는 그렇게 끝났다.
사람들은 김경숙 작가의 일방적인 찬사와 이제껏 없던 부드러운 태도에 놀라며 이현석에 대해 재차입방아를 찧기 바빴다. 때문에 마지막의 한마디에 대해서는 특별히 화제가되지 않았다.
하지만 뭐, 언제나 장본인만큼은 예외인 법이었다.
“…치사한 할머니네요.”
유지아의 입술이 삐뚜름해졌다.
“웃기지도 않는 소리에.”
그녀는 여태껏 ‘착한 아이’를 고집해왔다. 그건 성인이 되어 대학에 입학한후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역린을 건드리기에는 이만한 상황이 없었다.
#
이설의 문자를 읽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재차 핸드폰이 울렸다.
“지아?”
발신인을 본 나는 다시금 고개를 갸웃거 릴 수밖에 없었다.
이설은 그렇다 치고 이 녀석까지 문자라니, 별 일이네. 평소라면 냉큼 전화부터 했을 녀석이.
김철 선배가 재차 목을 뺐다.
“그러 니까 이쪽도 꽤 장황한데 줄이자면… 한번 시간 낼 수 있냐고 묻는군요.”
[…또?]“그러게요.’
…유행인가?
끝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