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g live the protagonist! RAW novel - Chapter 52
52화. >
52화.
광활한 대우주.
인류가 존재하기 전부터, 수억 년의 시간 동안 드넓은 우주 어딘가에 존재했던 거대한 항성은 한순간도 쉬지 않고 격렬한 핵융합 반응을 반복하며 엄청난 빛과 에너지를 내뿜었다.
우우우웅.
하지만 어느 순간, 영원할 것만 같았던 그 항성에 이변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거대했던 항성이 수축을 시작하며 그 밀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쿠구구구궁
미친 듯이 높아지는 밀도에 항성 핵의 중력이 불안정하게 뒤틀리기 시작했다. 무한에 가까워지는 질량과 함께 거대한 항성이 블랙홀로 변화하려는 순간, 항성 안에 존재하던 다량의 중성미자가 격렬한 반응을 시작했다.
콰아아앙
항성을 구성하는 모든 물질들이 일제히 핵융합 반응을 시작했다. 조금씩 발산되어야 할 에너지가 일순간에 폭발하듯이 주위에 퍼져나가며 만들어지는 초신성 폭발 (Super Nova).
그 폭발이 만들어낸 절멸의 빛. 그 빛의 폭발이 일어난 항성의 수 광년 거리에 있던 모든 행성은 우주의 먼지로 화했으며, 수십 광년에 이르는 행성들의 모든 생명체를 정화했다.
우우웅
초신성 폭발이 만들어낸 빛은 은하계 전체를 강렬하게 비추었으며, 그와 동시에 하나의 거대한 파장을 만들어냈다. 전 우주의 시공간을 왜곡시키고 뒤흔드는 중력파를. 가늠할 수 없는 오랜 시간 동안 우주 전체로 퍼져간 그 중력파는 예고도 없던 어느 날 지구가 있는 태양계를 스쳐 지나갔다.
– 삐이익
요란하게 울리는 기계음에 책상에서 단잠을 자고 있던 베론은 침을 흘리며 눈을 떴다.
“아오······. 갑자기 이건 또 왜 이래?”
갑자기 잠에서 깬 그는 신경질적으로 반응하며 소리를 끄기 위해 기계를 조작했다. 이 상황이 예전에도 여러 번 있었는지, 베론이 태연하게 컴퓨터를 이리저리 몇 번 조작하자 방 안 전체에 울리던 신호음이 금방 사라졌다. 자신을 성가시게 하던 소리가 사라지자 베론은 만족한 표정으로 기지개를 쭉 켜며 크게 하품했다.
“으하암. 도대체 몇 시지?”
입맛을 다시며 시간을 확인한 그는 아직 새벽 3시라는 것을 깨닫고는 또다시 밀려오는 노곤함에 눈을 감았다. 대충 교수님이 오시기 전까지는 시간이 꽤 있으니 잠이나 더 자두려는 속셈이었다. 그렇게 다시 책상에 엎드리려고 하는데 누군가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어이 베론. 당직 근무 서는 것 아니었어? 잠이나 퍼질러 자고 참 여유 넘친다?”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커피 두 잔을 들고 와 책상 위에 하나 올려놓으며 이죽거리는 남자를 보며 베론은 한탄하듯 중얼거렸다.
“아······. 좀 봐 줘라. 내가 이번에 교수 임용 면접 준비 때문에 밤에 잠도 제대로 못 자고 개고생하고 있는 거 너도 알잖아.”
앓는 소리를 하는 베론을 보며 남자는 한심하다는 듯이 혀를 찼다.
“뭐래? 교수님들 뒤만 쫓아다니면서 어떻게든 잘 보이려고 이번 연구 당직도 네가 자진한 거 아니었어? 자기가 제 무덤을 파 놓고 무슨 한탄이야?”
“네가 교수 임용에 허덕이는 자의 절박함을 알기나 해?”
남자는 베론의 말에 어깨를 으쓱했다.
“글쎄다? 나는 프린스턴에서 제 발로 찾아와서 교수직을 제의받아서 잘 모르겠는데?”
베론은 자신과 동갑인 그가 이미 천재적인 능력을 인정받아 젊은 나이임에도 교수로, 그것도 세계적으로 알아주는 프린스턴의 강단에 서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재수 없었지만, 그걸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그의 사고방식이 더더욱 재수 없었다.
“······. 너 어디 가서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마라. 진짜 EQ 떨어지는 싸이코 새끼야.”
그는 분하다는 듯이 자신을 노려보는 베론을 보며 피식 웃었다.
“너무 걱정하지 말라니까? 어차피 이곳에 와 연구를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능력을 인정받았다는 증거라고. 게다가 네 지도교수가 폰 알베르토님 아니야? 세계적인 석학의 노벨상 수상자 밑에서 온갖 총애를 다 받으면서 가르침을 받았는데 그깟 교수 임용이 대수냐?”
“그······그렇지?”
그의 위로에 베론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자신감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그런 베론을 바라보던 그가 한 마디 더 내뱉기 전까지 말이다.
“글쎄······. 근데 하버드에서 교수 임용을 하겠다면 좀 힘들지 않을까······? 거긴 진짜 괴랄한 천재들의 소굴이라서 말이야.”
베론은 자신을 들었다 놨다 하는 그의 말에 관자놀이에 핏줄이 돋아났다. 그가 자신을 놀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베론이 뭐라 하려 했지만, 그가 씁쓸함이 배어 나오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게 진짜······.”
“어차피······. 여기서 너도, 나도 천재라고 하기에는 칭호를 붙이기에는 너무 오만하지 않아? 여기 이 시설과 우리가 지금 진행하는 이 실험을 설계한 그 아이에 비교하면, 우리는 그냥 멍청한 원숭이에 불과해.”
“······.”
그의 말에서 베론은 그가 느끼고 있는 감정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다른 사람들보다 열심히 달리고 또 달리며 넘어선 여러 장애물과 벽들. 무수히 많았던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올라온 이 자리에서 마주친 민수라는 벽은 지금껏 만나보았던 벽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드높고 또 단단했다.
마치 촛불 앞의 태양처럼, 도무지 저항할 엄두조차 낼 수 없을 압도감에 빠져버린 그들은, 그저 민수가 써 내린 논문을 읽고 또 읽으며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마치 무에서 유를 창조해낸 것만 같은 그의 창조성과 기발함에. 그리고 채 10살도 되지 않은 짧은 시간을 살아온 그가 이룩해낸 업적에.
“에휴······. 이 프로젝트도 거의 3년이 다 되어가는데 어째 별 성과가 없네.”
“안 그래도 알베르토 교수님이나 다른 연구진들도 연구비 지원 문제 때문에 요즘 고민이 심하신가 봐. 대학교들의 압박이 이번에는 좀 심한가 봐.”
3년이란 시간을 아무런 성과도 없이 허송세월하기에는 각 대학의 이사진들은 인내심이 그리 좋지 않았다. 이제는 무조건 프로젝트를 마무리 지으려는 그들의 태도 때문에 연구진들의 분위기가 흉흉해진 상태였다. 음울한 이야기에 분위기가 어색해지자, 그는 분위기를 환기하려는 듯 베론에게 물었다.
“그런데 아까 뭔 소리였어? 뭔가 시끄럽게 울리던데?”
“응? 아아······. 갑자기 센서에서 오작동이 일어난 것 같던데?”
“······그래?”
베론의 말에 그는 커피를 홀짝이며 눈을 빛냈다.
“가끔 그런 경우가 몇 번 있었잖아. 저번에서 오작동을 중력파 검측에 성공한 줄 알고 교수님들 전부 불러서 온갖 설레발을 다 떨다가 된통 깨진 거 기억 안 나냐?”
베론은 그때 기억을 하기도 싫다는 듯 몸을 떨었다.
“그랬던 적도 있긴 했지······. 그래서 데이터는 확인해 봤어?”
“으응······? 아니, 잠결에 끈 거라서 아직 확인을 안 했는데 잠깐만······.”
넌지시 던진 그의 말에 베론은 문득 깨달은 듯, 잠결에 경고음을 끄며 넘겨둔 데이터 자료를 열어보고 수치를 확인했다. 화면에 나타난 수치를 확인한 베론의 눈동자가 급격히 커졌다.
“어?”
자기 자신도 믿기지 않는다는 듯 두 눈을 비비며 다시 수치를 확인하며 당황하는 베론을 보며 그는 의아한 듯이 물었다.
“왜 그래?”
“이럴 리가 없는데······?”
그는 베론의 옆에서 화면에 나타난 데이터 수치를 보며 아주 작지만, 언제나 한결같이 일정해야 할 빛의 시공간의 위상이 약간이지만 뒤틀렸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경악에 가득 찬 표정을 지었다.
“시공간 왜곡 현상의 증거······. 정말 그 아이의 가설이 옳았다니······.”
얼빠진 눈으로 멍하니 화면을 바라보며 중얼거리고 있는 베론의 말에 퍼뜩 정신을 차린 그가 베론의 등을 세게 두드렸다.
퍽
“아! 왜!”
갑자기 등에 얼얼한 고통이 느껴지자 정신을 차린 베론이 소리쳤다.
“축하한다. 인마.”
진심이 담긴 그의 말에 베론은 어이없다는 듯이 물었다.
“축하하긴 뭐가 축하해?”
“뭐긴? 네가 중력파의 존재를 최초로 목격한 발견자이자 이 실험의 성공을 세상의 알리는 시발점이 된 거잖아?”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을 바라보는 그의 말에 베론은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모르긴 몰라도, 네 교수 임용 이력서 아주 의미 있는 한 줄의 경력이 추가된 것 같은데?”
“그······그런!”
자신이 얼떨결에 거머쥔 커다란 행운을 깨달은 베론의 얼굴에 화색이 피었다.
“뭐 하고 있어? 빨리 교수님한테 연락하지 않고?”
2002년 2월 28일 새벽 3시 40분. 세계 과학사에 영원히 기록될 거대한 업적에 관련된 일화가 그렇게 두 사람에 의해 새겨졌다.
*
시카고에 있는 국제연구센터 CIC. 아직 이른 새벽 시간이었지만, 갑자기 긴급 기자회견을 한다는 공지에 몇몇 기자들은 피곤한 낯빛을 한 채로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어떠한 사전 내용도 없이 부른 탓인지, 기자회견장 안에는 비어있는 의자들이 대부분이었다.
“아니······ 도대체 무슨 새벽 6시부터 기자회견을 한다는 거예요? 진짜 미친 거 아니에요?”
머리도 제대로 검지 못한 듯 부스스한 머리를 한 여기자가 투덜댔다. 그러자 카메라를 들고 대기하던 선배 기자가 한탄하듯 그녀를 달랬다.
“난들 알겠냐······. 어쩌겠어? 아쉬운 건 저쪽이 아니라 우리잖아.”
“어차피 이렇게 빈자리 많은 거 보면 우리도 안 와도 됐을 것 같은데. 선배는 이럴 때 보면 진짜 너무 꽉 막혔다니까요.”
“취재라는 건 말이야······. 자기가 편한 시간과 장소에만 골라잡듯이 하는 게 아니야. 남들이 기피 하고, 또 하지 않으려 하는 것들에서 정말 특종이 만들어지는 거야.”
선배의 말에 그녀는 뭔 꼰대 같은 소리를 하냐는 듯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그녀가 원한 것은 자기 말에 공감해 주는 것이었지, 별 시답잖은 충고를 바란 것이 아니었다. 계속 투덜대고 있는 와중에, 기자회견장이 열리고 누군가가 들어왔다.
“어? 저 사람은 폰 알베르토 아니야?”
“저 작자가 이 시간에 여긴 웬일이야? 설마······?”
폰 알베르토가 기자회견장에 모습을 나타내자, 기자회견장 안에 짜증 가득한 표정으로 대기하고 있던 기자들 사이에서 눈에 띄는 술렁임이 일어났다. 긴장된 표정으로 단상에 서서 아무 말 없이 회견장에 앉아 있는 몇 안 되는 기자들을 바라보며 알베르토는 목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마이크에 입을 가져가 역사에 남을 첫 마디를 꺼냈다.
“Ladies and gentlemen. We have detected gravitational waves. We did it.”
(신사 숙녀 여러분. 우리가 중력파를 검출해 냈습니다. 우리가 해냈습니다.)
그 말과 함께 기자들의 얼굴에는 여러 감정이 떠올랐다.
충격. 경악. 희열. 기쁨.
조금 전까지만 해도 짜증 가득한 얼굴로 앉아 있던 여기자는 자기도 모르는 새에 엄청난 특종을 잡았다는 어안이 벙벙하면서도 희열 가득한 얼굴로 알베르토가 말하는 내용을 하나도 빠트리지 않겠다는 듯이 전투적으로 받아적었다.
“그거 봐. 특종은 이렇게 힘든 곳에서 만들어지는 거라니까.”
정신없이 카메라 플래시를 터트리는 선배 기자의 말에 그녀는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방금까지만 해도 꼰대처럼 보이던 그가 깊은 식견을 가진 선배로 보이는 순간이었다.
알베르토는 꽤 오랜 시간 동안 중력파를 검출을 위해서 이용한 실험 방법과 과정, 그리고 이번에 발견된 중력파에 대해서 심도 있고, 전문적인 내용을 최대한 알기 쉽게 기자들에게 설명했다. 중력파로 인해 발생한 시공간 왜곡과 빛의 위상변화에 관해 설명할 때는, 어느새 긴장되었던 그의 얼굴에도 희열이 가득 찼다.
“마지막으로 이번 실험을 위해서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인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3년이라는 길고 긴 시간 동안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 준 여러 대학 관계자들과, 교수진들 및 대학원생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 가능케 했던 획기적인 논문을 쓰고 또 실험 준비에 많은 기여를 했던 천재 소년, 김민수가 없었다면 중력파를 검측하는 것은 불가능했을 겁니다. 빠른 시일 내에 다시 그를 만나볼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알베르토가 민수의 이름을 직접 언급하자 기자회견장은 또다시 달아올랐다. 기자들은 그의 말을 들으며 자신들이 착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번 중력파 검측에 관한 실험은 알베르토가 아니라, 저 멀리 한국에 있는 어린아이가 썼던 논문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크게 술렁이기 막무가내로 질문을 던지기 시작한 기자들의 말을 무시하며, 알베르토는 마지막 말을 하고 기자회견장을 떠났다.
“이번 실험에서 얻은 데이터를 정리하여, 이전에 김민수가 저술했던 Gravitational-wave Hypothesis & Detection Experiment를 보강하고 최대한 빠른 시일 내로 사이언스 지에 등재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그 논문을 통해 앞으로 중력파와 우주에 대한 비밀을 열렬히 풀어내고 있는 연구자들에게 많은 영감을 줄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그가 떠나고 난 후, 기자회견장에 남아 있던 기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손에 거머쥔 엄청난 특종을, 일분일초라도 먼저 세상에 알리기 위해서.
끝
ⓒ 군만두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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