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rd of the Alter Lands RAW novel - Chapter 226
226화. 드래곤 길들이기 (1)
약 일주일에 걸친 하알룬 신년 축제는 성공리에 마무리되었다.
“영주님. 사람들의 반응이 엄청 좋아요.”
“밖에서 영주님 이름밖에 들리지 않아요.”
애들이 애들답게 까르르거리는 게 보기 좋군.
에일리와 앨리스는 축제 기간 내내 여기저기를 쏘다니며 영지민들의 반응을 내게 전해주었다.
마치 축제를 자기들이 다 만든 것처럼 신이 난 채로.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에일리와 앨리스도 축제 준비에 한몫했기 때문이다.
역시 애들한테는 현장 체험 학습이 가장 즐거운 걸까?
어쨌든 이렇게 곁에서 좋은 소리만 해 대면 기분이 나쁠 수가 없다.
쌍둥이의 기분도 좋고, 내 기분도 좋고.
영지민들의 기분도 좋고.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있을까?
역시 축제 최고!
그런데 거기에 찬물을 끼얹는 존재가 있었다.
“영주님. 비용 결산서가 완성되었습니다.”
“….”
돈이 많이 든다는 것만 빼면.
이런저런 협찬으로 지출을 줄이긴 했지만 몇 달 치 영지 운영비가 증발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영주님. 화산룡은 어떻게 할 것입니까?”
거기에 그치지 않고 안 그래도 골치가 아파서 계속 미루고 있는 문제를 마주크가 지적했다.
이제야 암군들의 마음이 이해가 간다.
“…너 귀양.”
“예?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아니다….”
“영주님. 몬스터, 그것도 용족을 언제까지 이렇게 놔둘 수는 없는 일 아닙니까? 하알룬을 떠나시기 전에 결정하셔야지요.”
나는 곧 하알룬을 떠날 예정이었다.
하알룬 상단과 무희단을 이끌고 바르둠, 베르트, 엘튼 타워를 거쳐 제국의 벨루크 영지까지.
마주크가 가리킨 영주 관저 한구석에는 금고처럼 생긴 특수한 우리가 놓여 있었다.
새끼 화산룡 다르킨은 저 안에 들어 있었다.
마주크는 내가 이대로 화산룡을 놔두고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하알룬을 떠날까 봐 두려운 거였다.
“결국 죽일 수밖에 없나? 그게 깔끔하긴 할 텐데.”
새끼 용이다 보니 어떻게 길들여 보려고 했는데.
몬스터는 몬스터라고 도저히 답이 보이지 않았다.
“일월성교회나 마법 학회와 거래를 하는 편이 좋지 않을까요?”
마법사인 마주크는 연구 가치가 높은 화산룡을 죽이는 게 못내 아까운 듯했다.
하긴 새끼 화산룡을 어떻게 구하겠어?
만약 이걸 판다고 하면 아카데미 학장인 대마법사 칼로스 미켈란도 돈을 싸 들고 올 게 틀림없는데.
정체는 숨긴 채겠지만.
“그러면 조사단이 나올 테고, 내가 악마를 잡았다는 사실도 알려지겠지.”
“현재 하알룬은 각 단체의 수뇌부와 직접적인 인맥이 있습니다. 마법 학회는 페이지 경이, 일월성교회에는 주교 헤브리를 통해 회주와 자리를 만들 수 있겠지요.”
케이서스 본상을 받은 덕에 하엘린 페이지의 명성은 크게 높아졌다.
페이지 가의 망나니, 주사위 도박 중독자, 바르둠 마탑의 막장 인생, 폭탄마 등으로 불리던 과거는 이제 안녕인 것.
축제 기간 내내 수많은 귀족이 하알룬으로 축하 사절을 보냈다.
덕분에 협찬도 빵빵하게 받았지만….
하엘린이 고개를 뻣뻣하게 들고 다니는 모습을 보면 괜히 본상을 노렸나 하는 생각도 든다.
[고트발 상단 계좌 : 990,000길]…절대로 하엘린이 송금 수수료 1만 길을 빼고 줘서는 아니다.
새삼 의문이 들었다.
가레스는 케이서스 본상 수상자에게도 수수료를 받아먹는 고트발 상단에게 1등급 계좌를 어떻게 받아 낸 걸까?
설마 협박이라도 한 건 아니겠지…?
바르둠 지점장의 겁먹은 태도를 생각해 보면 왠지 높은 확률로 그럴 것 같지만.
“수뇌부에게만 알린다? 세상에 완벽한 비밀은 없는 법이야.”
하엘린과 마주크 등.
내 편이라 할 수 있는 이에게는 정령을 부리는 것과 악마를 잡았다는 사실까지 공유했다.
마검의 존재는 게헤른에게만 공유했지만, 차차 다른 이에게도 밝힐 생각이다.
그러나 환생자란 사실과 마검을 통해 악마의 힘을 쓸 수 있다는 사실은 끝까지 아무에게도 밝힐 생각이 없다.
지금 말한 것처럼 세상에 완벽한 비밀은 없으니까.
내가 이 세계에 환생한 이유는 분명 사교와 관련되어 있다.
‘그놈들이 냄새를 맡고 다가오면 골치가 아플 거야.’
그때를 대비해 전력을 숨겨 둘 필요가 있다.
나는 쌍각룡 에르나스의 오른쪽 뿔에 깃든 기억 속에서 일월성신이 환생의 비밀을 캐내기 위해 사교를 쫓고 있음을 보았다.
그래서 에밀 백작에게서 쌍각룡 에르나스의 왼쪽 뿔을 얻어 내려는 것이고.
왜냐하면 추적의 주체는 마법사인 월신, 김아진이 아니라 전사였던 일신 김호진이었기 때문.
추적자인 일신, 호진이가 갖고 있던 왼쪽 뿔은 오른쪽 뿔보다 사교와 관련된 기억이 더 많이 깃들어 있을 것이다.
에밀 백작이야 골동품 정도로 생각하니 그리 어렵지 않게 얻어 낼 수 있을 것 같긴 하지만….
또 모를 일이다.
뭔가를 요구할지.
“영주님께서는 마법 학회나 일월성교회의 수뇌부에도 마계의 첩자가 있으리라 생각하십니까?”
“당연히. 나는 제1 악마 바알이 이전의 마계 지도자보다 조용한 이유가 바로 그것이라고 생각한다.”
결계 장치의 기억 속에서 봤던 머리로 결계를 박아 대는 모습을 보면 전투형 악마로 보였는데.
하는 행동을 보면 지능 캐가 틀림없다.
그렇다는 건 바알이 문무를 겸비했을 확률이 높다는 것.
조심해서 상대할 필요가 있었다.
“지금까지 마계는 몇 번이나 인간계를 두들겼지만 결국 손에 넣지 못했다. 그렇다면 다른 전략을 쓰지 않을까? 나는 그 수단이 바로 사교 집단을 이용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 아니면 갑자기 역사에서 모습을 감췄던 놈들이 다시 우후죽순 발호할 리가 없겠지. 그 뒤에는 마계의 지원이 있을 것이다.”
즉, 사교는 테러 단체고 마계는 테러 지원국이다.
이번 여정의 종착지는 제국, 벨루크 영지.
거기서 엔델리안 벨루크의 사교 퇴치 퀘스트를 클리어하게 된다면 단서를 잡을 수 있을 터였다.
물론 그 전에 화산룡부터 어떻게 해야겠지만….
끙. 여기다 두고 갈 수도 없고, 계속 아공간에 넣고 다닐 수도 없다.
아공간에 넣은 생물체는 일주일이 지나면 죽는다는 걸 ‘변경 땅의 영주님’을 통해 알고 있으니까.
게임의 규칙이 이 세계에도 적용되긴 하지만, 생명과 관계된 일이니만큼 실험도 해 보았다.
역시나 일주일이 한계였다.
그래서 웬만하면 아공간에 생물체는 넣지 않으려 하고 있었다.
만약 넣어 뒀다가 까먹으면 큰일 나니까.
게임의 인벤토리처럼 리스트를 훤히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뭘 넣었는지 기억하지 못하면 영원히 아공간에 갇히게 된다.
“이번에 제국에 가 보니 확실히 제가 라-스페스에 다닐 때와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져 있더군요. 이런저런 흉흉한 이야기가 많이 나왔습니다.”
그렇게 마주크가 제국의 귀족들에게 들은 소문을 내게 말하고 있는데 라무르 호지슨이 관저로 찾아왔다.
“영주님. 부르셨습니까?”
“아. 왔나, 라무르.”
“예. 무슨 일로 저를 찾으셨습니까?”
“이걸 좀 보게.”
나는 라무르를 화산룡을 가둬 둔 우리 앞으로 데려갔다.
천을 치우고 잠금장치를 열자, 마법 구속 장치를 단 화산룡 다르킨이 기진맥진한 채로 엎드려 있었다.
마법을 쓸 수 없도록 마나를 흩어지게 만드는 이 구속 장치는 게헤른, 엘라힘에게 주문해 만든 아이템으로 ‘마나 족쇄’라고 했다.
?허어. 내가 제자 하나는 잘 골랐군.
마공학 기술의 발전도가 높아지면 대중화되는 아이템으로 원리와 기본 설계를 해 주었더니, 게헤른은 나를 천재로 오해하게 되었다.
이 녀석이 1살만 됐어도 이런 장치 따위로 잡아 두는 건 불가능했지만, 태어난 지 한 달도 안 된 놈이라 가능한 일이었다.
그걸 어떻게 알았냐고?
이 녀석의 발목에 채워진 마법 발찌의 기억을 통해 알아낼 수 있었다.
마법 발찌는 다르킨의 어미인 다르함의 지식이 담긴 아이템이었다.
하엘린이 분석해 본 바, 이 녀석이 성체가 되어야 해제되는 주문이 걸려 있다고 했다.
?이 발찌에는 아마 다르함의 화신체가 들어 있을 거예요. 곧 죽을 것을 예감하고 새끼에게 마법을 가르칠 수 있게 안배를 해둔 거죠. 마신이나 일월성신이 부활하지 않는 이상 제거하는 건 무리예요.
드래곤의 마법 교육용 아이템!
그야말로 대륙의 보물급 아이템이지만, 하엘린 정도 되는 연구 마법사가 이렇게 말할 정도면 답이 없었다.
그래서 더 이놈을 길들이려고 노력한 것이고.
새끼 화산룡 다르킨을 통해서 안에 뭐가 들어 있는지 알 수 있을 테니까.
하다못해 화신체라는 절대 경지의 마법에 대해 조금이라도 힌트를 얻을 수 있다면?
케이서스 본상의 백투백 수상도 꿈이 아니었다.
그래서 몬스터에 대해 박식한, 뼈대 있는 악마 사냥꾼 집안의 라무르를 부른 것이다.
“흠. 이건 뭐지요? 강아지입니까?”
새끼 화산룡 다르킨을 본 라무르가 내게 물었다.
그와 동시에 마주크의 안색이 백지장처럼 변했다.
“이, 이게 무슨! 영주님 큰일입니다! 놈이 마법을 써서 도망간 게 분명합니다!”
-어떤가? 용족이라 해도 내 환영은 먹힌다고 말했잖나.
둘의 모습을 보고 엔드라가 우쭐댔다.
이 녀석도 어째 점점 시크리를 닮아 가는 느낌.
‘그게 그렇게 좋으면 평생 마검에 갇혀 있어라. 풀려나면 못 쓸 테니.’
-….
한 방에 엔드라의 입을 다물게 한 후.
마주크와 라무르에게 말했다.
“이놈은 강아지가 아니다.”
“그렇습니까? 흠… 늑대 새끼 같기도 하군요.”
“영주님! 지금 속 편하게 계실 때가 아닙니다! 용족을 살려 보내서는 안 됩니다! 아깝, 아깝지만 얼른 추적해서 잡아 죽여야 합니다!”
미련이 뚝뚝 떨어지는 얼굴로 사살을 외치는 마주크의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풉.”
“영주님…? 혹시 놀라서 실성하신 건 아니지요?”
못 참고 웃음을 터트리자, 마주크가 날 미친놈 보듯 쳐다봤다.
“큭, 크흑. 그만 좀 웃겨라. 마주크. 우리를 다시 살펴봐라.”
“…어?”
“…음?”
이번에는 둘의 반응이 반대로 바뀌었다.
“영주님… 그 모습을 바꾸는 주술을 쓰신 거였군요. 놀랐잖습니까?”
마주크는 가슴을 쓸어내렸고, 경악을 금치 못한 라무르는 비틀거리다 자리에 주저앉았다.
“드, 드래곤…!”
아니, 드래곤 피어도 못 쓰는데 뭘 저렇게 놀라지?
“진정해라. 완전히 제압했으니.”
내 말에도 라무르는 두려운 듯 다르킨을 쳐다보려 하지 않았다.
“용족이 그렇게 무섭나?”
나는 웃으며 다리가 풀린 라무르를 일으켜 세웠다.
“대체 영주님은….”
라무르는 차마 말을 다 잇지 못하고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정말 문제없는 게 맞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관저 안에 저놈을 들일 이유가 없지.”
“….”
그래도 미심쩍은 듯 라무르는 한참이나 새끼 화산룡을 살폈다.
“이건… 화산 내부의 용암지대에서 산다는 화산룡이군요.”
“역시 악마 사냥꾼답군. 화산룡을 바로 알아보다니.”
“한 개의 뿔과 부드러운 선홍색 가죽이 바로 화산룡의 특징입니다. 비늘이 아직 여물지 않은 걸 보면 아직 해츨링인 것 같군요. 대체 이놈을 어디서 데려온 것입니까?”
“데려왔다기보다는 이놈이 스스로 함정으로 뛰어들었지.”
나는 제70 악마 세에레와 화산룡 다르킨의 사건을 라무르에게 설명했다.
“…맙소사. 쿠멜라 숲에 또 악마가 나타났단 말입니까?”
“그래. 아무래도 몰랐던 모양이군.”
“그 시각에는 순찰 중이었습니다만 전혀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라무르는 자책했지만, 이동형 마기 감지 장치도 세에레가 군단장을 소환한 후에야 울렸으니까.
악마나 용 정도 되면 내가 마련한 감시체계를 무력화할 수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아무튼 라무르, 오늘 자네를 부른 이유는 마물을 길들이는 주술이 있지 않을까 싶어서 묻기 위해서야.”
내 말에 라무르가 표정이 이상하게 변했다.
“…설마 해츨링을 길들이겠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래.”
라무르도, 이동형 마기 감지 시스템도 악마나 용은 발견하지 못한다?
그럼, 그중 하나를 영입하면 되는 거 아닌가.
대화를 듣고 있던 마주크가 기가 막힌 표정으로 날 타박했다.
“영주님. 아무리 주술이 심오한 힘이라지만 그런 형편 좋은 것이 있을 리가….”
하지만 라무르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아셨는지 모르겠지만… 분명 그런 주술이 존재하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