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rd of the Alter Lands RAW novel - Chapter 234
234화. 첫 공연을 위한 축포 (4)
외줄 위에서 텀블링하는 르베를 보며 젊은 관리원이 탄성을 터트렸다.
“이야. 레도스 님, 정말 대단하지 않습니까? 저런 건 처음 봅니다.”
“그런가?”
“그런가라뇨? 무희 르베의 균형감각이 뛰어난 거야 바르둠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만… 저건 인간의 영역을 넘어선 것 같습니다.”
젊은 관리원의 말에 레도스는 흠칫하며 그를 쳐다보았다.
“인간의 영역을 넘어섰다? 그렇다면 저 여자가 마인이라는 뜻인가?”
“예? 마인이요? 그게 뭡니까?”
평범한 왕국민들은 몬스터의 존재는 알아도 마인의 존재는 모르고 있었다.
“아니, 아니다. 헛소리가 나왔군. 아무튼 이상한 일이 생기지 않는지 잘 지켜보고 있어라.”
“어라, 공연 안 보십니까? 이런 걸 돈도 안 내고 볼 수 있다니 놓치기 힘든 기회 같은데요.”
“멍청한 녀석. 우리는 공연을 지켜보러 이 자리에 있는 게 아니다.”
레도스에게 한 소리를 들은 관리원이 머쓱하게 웃었다.
“…죄송합니다.”
“임무에 집중하도록.”
그 자리를 벗어난 총관리인 레도스는 무대 주변을 돌며 관리원들이 위치를 지키고 있는지 점검했다.
그리고 아무도 없는 관리실로 들어가 문을 잠갔다.
그 순간 허공에서 그림자가 나타났다.
-데로우스. 진행 상황을 보고하도록.
갑작스레 들린 목소리에 레도스, 아니 마인 데로우스는 급히 바닥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바르둠 예술 극장의 무대에 충분한 화약을 설치했습니다.”
-화약을? 내가 명령한 건 바르둠 남작에게 심대한 타격을 주라는 것이었을 텐데. 예술 극장 따위를 날려 버리는 것과 그게 무슨 상관이지?
“미리 보고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설명해 봐라.
서슬이 퍼런 목소리에 데로우스는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만약 그의 주인을 제대로 이해시키지 못하면 한 줌의 마기로 화하게 될 테니까.
“저번에 보고드렸다시피, 바르둠 남작은 장남인 에릭을 쳐내고 에틸드를 후계자로 삼으려 하는 중입니다.”
-그래. 그 둘을 충돌시켜 바르둠 남작에게 타격을 주겠다고 하지 않았나?
“예. 이번 일은 그 계획의 일환입니다. 혹시 하알룬의 영주 카민 리스트레토를 알고 계십니까?”
-카민 리스트레토…? 아아, 그런 자가 있었지. 저번 작위 수여식에서 칼춤을 추었던 기사다.
“이유는 모르지만, 바르둠 남작은 그를 사위로 맞이할 생각인 듯합니다.”
-사위라면 에틸드와 짝지어 줄 생각이란 말이냐?
“예. 맞습니다.”
-이해할 수 없군. 작위 수여식에서 그가 에틸드를 대신해 나섰지만, 둘의 실력을 비교하면 차이가 심하다. 솔직히 검을 모르는 나로서는 왜 그가 승리했는지 알 수가 없어, 메룬디아에게 물어보았지. 그녀도 직접 전투를 지켜보지는 않았지만, 당시 경비를 서고 있던 기사의 말을 전해 주었다. 단지 마나를 사용하지 않는 순수한 검술 대결이기에 상성이 앞선 것 같다고.
“주인님. 카멜리아 바르둠의 속을 그 누가 알겠습니까?”
-…흠. 그것도 그렇군.
“그간 에릭은 남작이 에틸드에게 바르둠의 성을 하사한 것을 마음에 들지 않아 하면서도, 행동하는 건 주저하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에틸드를 어찌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겠지. 에릭의 힘은 결국 브리스톨 백작가에서 나오는 것이니.
“제 생각입니다만, 남작은 에틸드에게 지원 세력을 붙여 주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조사해 보니 카민 리스트레토는 베르트 공작가의 가신이라고 하더군요.”
-베르트 공작가? 으음. 전혀 모르던 사실이군.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네 생각이 맞는 것 같다.
“맞습니다. 이번 하알룬 무희단의 공연은 하알룬 영주가 몇 달 동안 심혈을 기울여 준비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는 경고의 의미로 그것을 망치라고 명령했습니다.”
-바르둠, 그리고 에틸드의 일에 관여하지 말라는 의미로군.
“저는 예술 극장 전부를 폭약으로 날려 버릴 생각입니다. 이 안에 있는 바르둠의 유력자도 카민 리스트레토, 그리고 무희단과 함께 한 줌의 흙으로 변하겠지요.”
-그 모든 일은 에릭이 지시한 것이 되는 거고? 훌륭한 생각이군. 그렇게 되면 바르둠은 큰 혼란에 빠지게 될 것이다. 카멜리아도 그냥 지켜볼 수만은 없게 되겠지.
“예. 그렇게 되면 에릭도 궁지에 몰린 쥐처럼 모든 것을 걸고 날뛰게 될 것입니다.”
-호오. 역시 데로우스, 너에게 일을 맡기기를 잘했다. 다른 녀석들과 다르게 머리를 쓸 줄 알아.
“감사합니다.”
-그래서. 결과는 언제 나올 예정인가?
“몇 시간 후, 공연이 절정에 달했을 때 폭발을 일으킬 생각입니다. 최고의 순간에 죽음을 맞게 된 인간들은 엄청난 마이너스 감정 에너지를 내뿜게 될 것입니다.”
-거기까지 생각한 것이냐? 정말 장하구나. 바르둠 예술 극장은 2천석 규모라고 들었다. 만약 에너지를 손실 없이 흡수한다면 악마의 좌를 노릴 수도 있겠어.
언뜻 들으면 칭찬 같지만, 데로우스는 넘어가지 않았다.
“그럴 생각은 없습니다. 이번 일로 얻은 마기는 당연히 주인님께 바칠 것입니다.”
그의 주군은 아주 음험한 자였기에.
***
“시크리를 데려왔으면 편했을 텐데.”
내 투덜거림에 라무르가 동의했다.
“바람의 정령께서 계셨다면 화약이 어디에 숨겨져 있는지 순식간에 파악해 내셨을 겁니다.”
“정말 방법이 없었다면 그렇게 했겠지.”
말은 이렇게 해도 화약이 숨겨진 위치를 찾기는 쉬웠다.
내 곁에는 정령 하나가 더 있었으니까.
-끝났다. 놈이 밖으로 빠져나가는군.
나는 공연 내내 「암흑 군단」의 힘을 쓰고 있었다.
무희들에게 버프를 걸어 주기 위해.
하지만 「암흑 군단」의 힘을 직접적으로 펼치는 것은 다름 아닌 엔드라.
즉, 엔드라는 예술 극장 전체를 발아래 두고 관조하고 있었다.
-잘 보면 무대 근처에 서 있는 인간들이 보일 것이다.
엔드라의 말을 듣고 아래를 내려다보니 수상한 놈들이 보였다.
관리원으로 보이는데, 쓸데없이 무대 근처에서 얼쩡대고 있다.
마치 콘서트 경호 인력처럼.
무대와 관중석은 연결되어 있지 않아 경호가 필요 없는데도.
“라무르. 저 아래에 있는 관리원들이 보이나?”
“예. 이래 봬도 사냥꾼입니다. 눈은 야만족들 못지않지요.”
야만족이란 말에 차르족의 테무르가 떠올랐다.
반년이나 지났으니, 검술에 성취가 있겠지?
시간이 나면 찾아가서 상태를 봐야겠다.
잘만 키우면 십존에 들 만한 재능을 가지고 있는 녀석이니까.
“수면독은 있나?”
내 말에 라무르가 외투를 펼쳐 보였다.
안쪽에 여러 개의 작은 주머니가 매달려 있는 게 보였다.
“좋아. 동시에 여섯 놈을 맞춰라. 할 수 있겠지?”
“…영주님. 제 팔이 열두 개도 아니고, 어떻게 여섯을 동시에 맞춥니까? 물론 한 번에 세 발 정도는 쏠 수 있지만, 그것도 적이 한 곳에 몰려 있어야 노려볼 만하지요. 지금처럼 곳곳에 흩어져 있는 게 아니라요.”
“쯧. 네가 말했듯이 곳곳에 흩어져 있으니, 도달 거리가 각각 다를 것이 아니냐? 그걸 계산해서 먼 놈부터 먼저 쏘아 맞히면, 동시에 쓰러트릴 수 있겠지.”
“아….”
멍청한 얼굴로 탄성을 터트리는 라무르를 보니, 물리학을 가르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과 거리의 개념만 가르쳐도 엄청난 실력 상승이 이루어질지도.
“으음.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할 수 있을 것 같다가 아니라 해야 한다.”
왜냐하면 한 놈이 눈치채면 마인도 알아챌 게 뻔하니까.
특성을 다 터트리면 몰라도, 지금 상황으로 여섯 개의 화약 무더기를 동시에 제거하는 건 무리다.
특성을 다 터트리려면 피투성이가 되어야 하는데, 그 상태로 무대 아래를 돌아다니면 관중들이 패닉에 빠지고, 공연은 엉망이 될 터였다.
이 공연을 위해 얼마나 공을 들였는데.
내 손으로 망칠 수는 없지.
-이런. 마인이 다가오고 있다.
그 말에 무대를 보니 마임이 화염을 지배할 수 있도록 무희들이 불타는 고리를 작동시키고 있었다.
이놈 봐라.
클라이맥스를 노리듯 나타난 걸 보면 공연을 망칠 계획이 분명했다.
그걸 두고 볼 수야 없지.
“내가 내려가서 신호하면 쏴라.”
“예, 영주님.”
***
“억.”
“미안하군.”
귀빈실을 빠져나온 나는 지나가는 관리원 한 명을 제압한 후, 옷을 갈아 입었다.
그리고 곧바로 달려 무대로 들어섰다.
반대쪽 입구로 총관리인 레도스의 모습을 한 마인이 들어오는 게 보였다.
인간이라면 당연히 불의 고리로 뛰어드는 마임에게 눈이 갈 텐데, 저놈은 가장 가까운 관리원을 쳐다보고 있다.
-저놈. 변신하고 있다.
“그런가? 나는 구별 못 하겠군.”
-아주 정교하다. 나도 겨우 눈치챌 수 있을 정도니 네게는 무리겠지. 아무래도 악마에게 강력한 힘을 받은 놈 같다.
“저놈을 잡으면 꽤 쓸모 있는 정보를 캐낼 수 있겠군.”
-잡을 수 있다면.
“날 뭘로 보고.”
나는 단검을 꺼내 내 심장을 쿡 찔렀다.
「고통 경감」을 비롯한 특성들이 연이어 발동하며, 주변의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물론 착각에 불과하고, 실제로는 내 인지능력이 크게 상승한 것뿐.
“간다.”
손을 머리 위로 들었다가 확 내리자, 위에서 화살이 날아들었다.
특별한 화살이라더니 쐐액, 하는 소리도 없이 관리원들에게 적중했다.
“억.”
숨을 삼키는 소리와 함께 쓰러지는 관리원을 스쳐 지나가듯 달려 무대 아래로 들어갔다.
“허.”
그 안에는 생뚱맞게 웬 포대 몇 개가 놓여있었다.
마검으로 갈라보니 매캐한 냄새가 났다.
-화약이 맞군.
엔드라의 말에 대답할 틈도 없이 그걸 전부 아공간으로 쓸어 넣었다.
오직 나만이 가진 필살기는 바로 이 아공간.
만약 아공간이 없었다면 폭발은 무슨 수를 써도 막기 어려웠다.
당장 이 많은 양을 어떻게 옮긴단 말인가?
하지만 나에게는 아공간이 있었다.
화약 한 톨도 남김없이 아공간에 처넣고 무대를 지지하는 기둥을 이리저리 피해 달렸다.
굉장히 넓고, 캄캄한 공간이었지만.
이미 머릿속에 지도를 그려 놓은 상태.
순식간에 네 무더기를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마지막 무더기를 쓸어 넣는 순간.
총관리인 레도스가 무대 아래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
나와 시선이 마주친 놈은 순간 인지부조화가 온 듯 아무 행동도 하지 않고 멈춰 섰다.
그러다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주인님께서 여기에 어쩐 일로….”
“잘하고 있나 보러 왔다.”
“예?”
내 말에 레도스가 잠깐 멈칫하더니 얼굴을 확 구겼다.
“넌 누구냐! 주군이 아니구나!”
“…끙. 이름으로 불러 주면 안 되냐? 주인님이 뭐야, 주인님이.”
이놈의 뒤에 어떤 악마가 있는지 쉽게 알아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환영을 걸었는데.
다 텄다.
나는 그대로 마검을 뻗어 놈의 목을 베어 버렸다.
“무, 무슨?”
몸과 분리되어 떨어지는 머리가 입을 열었다.
나는 그걸 페널티 키커처럼 뻥 걷어찼다.
그대로 날아간 머리는 무대의 벽에 맞아 커다란 소리를 냈다.
“어마!”
“뭐지?”
무대 위에서 무희들이 놀라는 게 느껴졌지만, 큰 소리는 아니었다.
“집중해! 공연이 안 끝났어!”
단장인 르베가 다그치는 목소리가 들렸다.
역시 프로는 프로다.
이상을 감지했을 텐데도 공연에 집중하는 걸 보면.
그때였다.
아공간에서 엄청난 에너지 방출이 느껴진 것은.
“…!”
…깜박 잊고 있었다.
아공간에 화산룡 다르킨을 넣어 놨다는 것을.
아공간 안에서 일주일이 지나면 생명체는 죽는다.
시간은 멈춘 것이나 다름없지만, 미세하게 흐르긴 한다는 뜻.
화산룡이 있는 곳에 대량의 화약을 집어넣었으니, 폭발이 발생한 것이다.
물론 이 안에서 폭발이 일어난다고 무슨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니다.
용암 속에서 사는 화산룡이지만, 다르킨은 쇠약해진 해츨링.
예술 극장을 날려 버릴 정도의 폭발에 무사하리라 확신할 수가 없었다.
“…제기랄.”
나는 눈을 질끈 감고 그대로 위로 검기를 발사했다.
밖으로 쏘아 낸 검기는 예술 극장의 천장을 관통해 하늘 높이 사라졌다.
그렇게 만들어진 구멍으로.
나는 불붙은 화약을 모두 내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