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1000
우리도 이 세상 속의, 자연 속의 존재다.
타샤는 손에 쥐고 있던 창을 들어 올렸다.
쏴아아-
거대한 장창이 바람을 가로질렀다.
그녀의 창날 끝이 정확히 피터슨에게로 향했다.
“선을 넘었구나.”
하!
피터슨은 비웃음을 흘렸다.
“지금 나를 가르칠 땐가? 너나 네 동료 걱정을 해야 될 때 같은데?”
피식.
그때, 타샤가 비웃음을 흘렸다.
그에 피터슨의 눈썹이 일그러지며 그의 입이 열렸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다른 이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어떻게-!”
야니였다.
피터슨은 고개를 돌렸다.
그의 시선이 향한 곳엔, 지렁이가 폭발하고 남은 공간이 있었다.
촤르르르-
물소리가 울려 퍼졌다.
눈이 녹아 물방울을 만들었고, 그 물방울이 물결치며 커다란 반원을 만들었다.
그 반원에는 수많은 흙 가시가 박혀 있었다.
투둑투둑.
그리고 그 흙 가시는 물과 섞여 진흙이 되어 땅으로 곤두박질쳤다.
촤르르르-
반원을 이루던 물도 아름다운 물결을 서서히 거두며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그리고 작은 물웅덩이를 만들었다.
그 웅덩이 위에 위티라가 서 있었다.
주륵.
여기저기 피가 흐르는 그녀의 뺨에 흙 가시가 하나 박혀 있었다.
그녀는 이를 무심한 손길로 뽑았다.
피가 한 줄기 흘러내렸지만 위티라는 무심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안 돼!”
야니의 외침이 들려왔다.
“어떻게 저걸-!”
취이이익-
그리고 물이 기화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위티라는 다른 한 손을 바라봤다.
취이이—
그녀의 손이 타들어 가고 있었다.
고통이 상당할 법도 한데,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는 그녀의 손안에는 거대한 기운이 쥐어져 있었다.
꽈악.
위티라가 손에 힘을 주었고.
취이이이–
그만큼 기운이 요동치며 끔찍한 소리를 내었다.
씨익.
위티라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그녀는 야니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이거 네 정령 맞지?”
잔잔한 웃음기를 머금은 목소리는 평온했다.
“이게 영 거슬려서 말이야.”
야니를 잡고 싶은데, 거대한 지렁이가 신경 쓰였다.
그리고 지렁이 안에 숨어있는 거대한 기운도.
콰직,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기운을, 정령을 알아챈 순간 위티라는 마음 먹었다.
“그래서 이거부터 잡고, 너 잡으려고.”
촤르르르.
위티라 발밑의 웅덩이가 움직였다.
그리고 주변의 눈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눈이 녹았다.
촤르르르–
그리고 작은 길을 만들었다.
물로 만들어진 길.
그 시작점에 올라선 위티라는 걸음을 옮겼다.
길은 야니를 향해 있었다.
“이제 널 잡을 차례네.”
야니의 얼굴에 경악이 서렸고, 위티라는 웃었다.
쏴아아아—
그리고 바람이 불었다.
위티라는 툭 내뱉었다.
바다에 사는 이상, 어떤 존재보다도 잘 알아야 하는 존재가 느껴졌다.
“바람.”
그래, 바람.
그것도 하나가 아닌-
“바람들이 몰려오는구나.”
그 바람이 향하는 곳엔 타샤가 있었다.
다크엘프 타샤는 엘프 피터슨의 말을 떠올렸다.
‘지금 나를 가르칠 땐가? 너나 네 동료 걱정을 해야 될 때 같은데?’
타샤는 처음으로 굳은 표정의 피터슨을 보며 입을 열었다.
“나나 내 동료들 걱정은 할 필요가 없을 거 같은데.”
타샤의 귓가로 친우인 바람 정령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친구들을 데려왔어!
-케일 님 구경하러 왔던 애들이 같이 싸우겠대!
-용서할 수 없대!
쏴아아아—
황량한 에르게 산맥.
그곳엔 아름다운 꽃도, 화려한 숲도 없지만.
이곳도 자연이었으며, 어떻게 보면 천연의 환경이었다.
그렇기에 눈과 함께.
쏴아아아–
바람이 존재했다.
즉, 바람 정령이 에르게 산맥에는 어떤 곳보다도 많이 존재했다.
쏴아아—
거대한 바람이 타샤의 곁으로 모여들었다.
아니, 비록 그녀와 계약하지는 않았지만, 친구인 바람 정령들이 그녀와 함께했다.
타샤는 홀로 싸우는 게 아니었다.
바람이 모여든다.
에르게 산맥 아래 마을 주민들은 2차 토벌대가 두려워 집에 숨은 채로 바깥 동태를 살폈다.
그중 창을 열어 밖을 보던 이가 입을 열었다.
“촌장님, 바람이 이상합니다.”
에르게 산맥에서부터 바람이 불어왔다.
높고 험준한 산맥을 타고 내려온 바람이 마을을 지나쳐 유일한 들판으로 향했다.
그 바람 줄기가 한둘이 아니었다.
“…바람이 마치 살아 있는 것 같습니다.”
마을 사람의 말에 촌장은 창밖으로 손을 내밀었다.
싸아아—-
제 손을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을 느낀 그는 입을 열었다.
“나쁜 상황은 아닌 것 같구나.”
그는 텅 빈 제 손을 내려다봤다.
“바람이 날카롭지가 않아.”
찬 공기를 머금었음에도, 칼날처럼 시린 바람이 아니었다.
오랜 세월을 살아온 촌장은 이런 바람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어린 시절 들었던 기억이 존재했다.
“정령이야.”
“네?”
“바람 정령님들이 지금 움직이는 거다.”
그 말에 마을 사람의 눈이 커졌다.
“…격변기 이후로 정령은, 보기 힘든 존재가 아닙니까?”
아피토유는 격변기 전만 하더라도, 엘프와 정령이 그렇게 머나먼 존재는 아니었다. 물론 그들은 인간들과의 교류가 극히 드물었지만, 자연경관이 아름다운 숲이나 산 근처에 가면 이따금씩 만날 수 있는 존재였다.
더불어 엘프 마을과 교류하는 상인들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러나 격변기 이후, 엘프는 보기 힘든 존재가 되었고 나아가 정령은 더 보기 힘들었다.
정령이 사라졌다.
그런 소리마저 나돌 지경이었다.
촌장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원래도 정령은 보기 힘들지. 하지만 어디든 존재하는 것이 바람이지.”
그러니 바람 정령 역시도 어디든 존재해야 맞다.
촌장은 격변기 이후 변해버린 진실 혹은 상식이라고 믿는 것을 정정하며 말했다.
“우리 쪽 엘프님들이 움직이신 것 같구나. 아니면 다크엘프님들이거나.”
크고 작은, 셀 수 없는 바람이 한 방향으로 움직였다.
그럼에도 신기한 것은 지붕 위에 쌓인 눈조차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부드러운 바람이었다는 점이었다.
촌장은 이상하게 심장이 떨려왔다.
거칠고 자유분방하게 에르게 산맥을 휘젓고 다니는 칼날 같은 바람들.
그 바람이 은밀하면서도 부드럽게 움직이는 모습이 오히려 공포로 다가왔다.
“뭔 일이 벌어지는지…….”
그의 시선이 저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얼음 장벽으로 향했다.
“촌장님, 저 얼음 장벽이 무너지면 모든 게 끝나겠죠?”
“…아마도.”
굳건한 얼음 장벽을 향해 움직이는 바람들.
이를 보던 촌장은 침묵 속에서 기도했다.
부디, 모든 것이 잘 해결되기를.
그리고 이 세계에 변화의 바람이 불어오기를.
그는 제 바람을 바람 속에 묻어 보냈다.
그때였다.
마을 사람이 창밖을 가리키며 저도 모르게 외쳤다.
“촌장님, 저기- 저기-”
하늘로 솟구치는 무언가가 보였다.
“뱀-”
그는 떠오르는 단어가 그것뿐이었다.
촌장의 눈이 커졌다.
“바람이-”
바람이, 하늘로 치솟고 있는 것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쏴아아아–
불어온 바람들은 한곳에서 멈췄다.
쏴아아아—
타샤를 중심으로 뭉쳐든 거대한 바람은 하나의 회오리가 되어 땅에서부터 하늘까지, 끝을 모르고 이어졌다.
뭉친 바람들은 서로 얽히고 부딪치며 하나가 되어갔다.
그 모습은 마치 한 마리의 뱀이 하늘을 향해 솟구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케일만큼은 뱀이 아닌 다른 존재를 떠올리고 있었다.
“이무기 같네.”
으레 들었던 옛날이야기처럼, 오래 산 이무기가 하늘로 승천하는 것과 같았다.
“인간아, 타샤가 안 보인다!”
라온의 말대로 타샤의 모습은 시야에 안 담겼다.
하지만 케일은 조금도 그 사실에 염려를 드러내지 않았다.
‘…바람.’
저 하늘로 승천하려는 것 같은 이무기의 중심.
바람의 중심에 타샤가 있을 테니까.
“하.”
그는 저도 모르게 실소를 흘렸다.
기가 막혔다.
“언제 이렇게 강해졌지?”
다크엘프 타샤.
그녀가 저렇게 강했던가?
“아니지.”
케일은 생각을 바꿨다.
타샤가 강한 것이 아니다.
그는 그녀가 택한 방향을 알 수 있었다.
‘주변을 이용하기 시작했어.’
케일은 입을 다문 채 가만히 거대한 바람 소용돌이를 바라봤다.
그러다가 멈칫했다.
스스—
또 다른 바람이 불어온다.
아니, 치솟아 올랐다.
콰아아아—
들판에 자리한 눈들이 하늘로 솟구쳤다.
이단심문관.
타샤와 대적하고 있던 피터슨.
그의 몸에서 거대한 바람이 뿜어져 나왔다.
“인간아, 인간아! 저 엘프 분명 바람이 몸에서 튀어나왔다!”
라온이 놀란 목소리로 내뱉은 말처럼, 분명 피터슨의 몸에서 바람이 튀어나왔다.
쏴아아—
녹색을 머금은 바람이, 휘몰아치며 타샤 주위에 모여든 바람처럼 하늘로 솟구치기 시작했다.
“라온.”
케일은 입을 열었다.
“바람에 휩쓸리지 않게, 사람들보고 조심하라고 해.”
“알았다, 인간아! 나 최한한테 말하고 온다!”
바람과 바람.
두 거대한 기둥의 대치는 심상치 않았다.
케일은 그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여차하다가 안 되면 끼어든다.’
동료에 대한 믿음과 별개로.
그는 동료가 다치는 꼴은 보기 싫었다.
케일의 시선이 잠시 바람을 떠나 다른 쪽으로 움직였다.
서걱.
그곳엔 붉은 마나가 거침없이 베이고 있었다.
“으윽.”
로잘린의 입에서 신음과 함께 거친 말이 튀어나왔다.
“제길.”
콰앙!
굉음과 함께 로잘린은 형편없이 튕겨지듯 뒤로 밀려나며 땅을 굴렀다.
눈밭을 구른 그녀는 곧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의 온몸은 하얀 눈과 진흙으로 엉망이었다.
“…….”
케일은 그곳에 두었던 시선을 돌렸다.
쏴아아아—
바람의 소리가 달라졌으니까.
녹빛 바람이 먼저 움직이기 시작했다.
“드래곤이 왜 강하다고 생각하나?”
피터슨은 유들유들한 미소를 지은 채 이 말을 내뱉었다.
하지만 그 눈빛은 깊이 가라앉아 있었다.
그가 한 발을 내디뎠다.
쏴아아아—
녹빛 바람이 그를 따라 움직였다.
그는 거대한 회오리바람 속에 있는 타샤가 정확하게 보였다.
더불어 그녀가 부린 수작도.
“드래곤은 본래부터 가진 재능이 엄청났으니까. 그래서 강한 거야.”
쏴아아아아—
두 개의 바람이 서로 휘몰아치는 와중이었지만, 피터슨은 자신의 말이 타샤에게 온전히 닿을 것이라 확신했다.
“강함에는 특별한 이유가 필요 없지. 그냥 내가 강하면 강한 거야. 그게 끝이지. 특성처럼 말이야.”
피터슨은 드래곤을 동경했다.
“정말로, 그래서 드래곤은 아름다운 존재지.”
때문에 피터슨은 그렇게 되고 싶었다.
“나는 드래곤이 될 수 없어. 하지만 비슷하게 강해질 수는 있지. 그들이 가진 본질을 나도 가지면 되니까.”
그때, 피터슨에게로 타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쏴아아—
바람이 서로 부딪치느라, 다른 소리들이 하나도 들리지 않는 와중에 또렷하게 들려오는 목소리였다.
“그래서 네 몸속에 바람을 품었나?”
“그래.”
세계의 근원.
이를 이단심문관 야니는 자신의 정령에게도 일부 나눠주며 자신과 정령을 모두 강화시켜 강해지는 쪽을 택했다.
반면에 피터슨은 다른 선택을 했다.
“정령은 강해져 봤자야. 왜냐면 내가 아니니까.”
결국 내가 강해져야 한다.
이 세계를 살아가는 드래곤의 그 고고한 자태처럼.
결국 오롯이 나 스스로가 고귀한 자리에 올라야지, 다른 것의 힘을 빌려서 강해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나는 근원을 바람으로 바꿨어.”
피터슨은 짙은 미소를 지었다.
“일종의 나만의 특성을 만든 것이지.”
드래곤처럼. 다른 엘프들과 다르게, 그는 제 몸속에 바람을 만들었다.
세계의 근원.
근원은 수많은 자연의 기운이 담긴 것이었고, 더불어 모든 것의 시초이기도 했다.
때문에 그 시초를 어떻게 바꾸는지는 피터슨 본인의 선택이었다.
“다크엘프여.”
그는 보이지 않는 적을 향해 말했다.
“다른 것의 힘을 빌려 강해지는 것은 무의미해.”
피터슨에게 적이 만든 저 회오리바람은 일종의 장벽과 같았다.
그것도 아주 두껍고 단단한 성벽.
웬만한 이들은 저 벽을 넘지 못하리라.
하지만 벽을 넘을 생각을 할 필요는 없다.
“결국 온전하지 못한 하나는 빈틈이 존재하는 법이고.”
수많은 돌과 벽돌로 이루어진 성벽은 그 틈이 존재한다.
그것도 똑같은 크기의 벽돌이 아닌, 중구난방으로 모여든 돌덩이들이 합쳐진 성벽이라면.
분명 약한 부분이 존재한다.
즉, 저 거대한 바람도 결국 하나가 아니기에.
수많은 정령들이 모여든 것이기에.
약한 정령이 만든 벽돌은 쉬이 부서지리라.
“그 빈틈은 언젠가 온전한 하나에 의해 무너지는 법이니까.”
즉.
“너는 무너진다.”
피터슨이 걸음을 옮겼다.
그를 따라 녹빛 바람이 움직였고.
콰아아아아아——!
바람과 바람이 부딪치기 시작했다.
녹빛의 회오리바람과 반투명한 회오리바람이 맞부딪쳤다.
정확히 말하면 녹빛 바람이 밀어내려 했다.
“크큭. 역시!”
피터슨은 미소를 지었다.
웃고 있는 입과 달리 냉철한 그의 눈동자에는 선명하게 보였다.
“약한 구멍이 있구나!”
녹빛 바람이 만든 회오리는 타샤의 바람 중 유독 약한 부분에 집중적으로 부딪쳤다.
콰아아아—
타샤의 바람이 흔들린다.
그 모습이 피터슨에게는 정확히 보였다.
“바람 정령의 비명이 들리는구나!”
바람 정령 중 하나가 괴로운 듯 몸을 휘저으며 바람이 줄어들어 갔다.
“나의 바람은 단순한 바람이 아니라고!”
자그마치 세계의 근원에서 탄생한 바람이다.
“겨우 정처 없이 떠도는 바람 정령들과는 질이 달라!”
태어난 근본부터 다르다고!
저 고귀한 드래곤들처럼, 자신도 근본이 다른 존재가 되었다.
그러니 아무리 저 바람들이 뭉쳐봤자, 약한 것을 노려 틈을 만들어 적의 숨통을 쥐면 된다.
약한 것을 노리는 것이 비겁하다고 느껴질 수 있으나.
‘그것이 당연한 자연의 섭리잖아?’
피터슨은 나름의 순리를 지키고 있었다.
강한 자가 약한 것을 잡아먹는다.
그 당연한 순리를 그는 믿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