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179
178화.
케일을 업었음에도 지붕을 넘나드는 최한의 움직임은 마치 평지를 달리듯 조금의 흐트러짐도 없었다.
‘마차보다 편한데.’
그 엄청난 안정감에 케일은 감탄하며, 입을 벌릴 때마다 들어오는 사과 파이 조각을 맛있게 먹었다.
사과 향과 식감, 그리고 단맛까지. 사과 파이 하나를 먹은 후 케일은 입맛을 다시며 평온함을 느꼈다.
‘이제 살 만하네.’
‘파괴의 불’을 쓰고 난 뒤에는 다 좋은데 극심한 공복감이 밀려왔다.
‘그래도 이번에는 저번 열 손가락 산 때보다 힘을 덜 써서 피도 안 흘리고 참 좋은-’
그는 생각을 끝마칠 수 없었다.
쿨럭.
케일은 기침을 했고, 최한의 옷에 피가 스며들었다.
제기랄.
케일은 역시 피를 토하는 걸 보며 한 가지를 깨달았다.
‘심장의 활력이 급격하게 움직일 때 꼭 피가 난단 말이지.’
수도 은빛 방패 때도, 열 손가락 산 때도, 제국 방패 때도. 꼭 과한 힘을 쓰고 난 후, 심장의 활력이 재생을 위해 급히 힘을 뿜어낼 때면 피가 섞인 기침이 한번 나왔다.
‘편안하네.’
그리고 속이 편안해졌다.
케일은 사과 파이를 먹고 있을 때 기침이 나오는, 그런 끔찍한 상황이 발생하지 않았음에 안도하며 라온을 쳐다봤다.
“…너 뭐 하냐?”
“…아니다, 인간.”
케일은 부스러기가 되어 날아가는 사과 파이 하나를 볼 수 있었다. 온과 홍의 몸에서 흘러나온 독 안개도 보였다.
그는 영 이상한 기분에 사로잡혀 최한의 등을 두드렸다. 등에 피를 묻혔으니 사과는 해야 하지 않겠나?
“미안하다.”
“…괜찮습니다.”
최한은 한참 만에 답했다. 그 모습에 케일은 등에 피가 묻어서 짜증이 났음에도 수긍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자신이라도 화날 테니까.
케일은 화난 최한에게서 멀어지고 싶었다. 일단 대충 파이로 배도 채웠기에 그만 업혀도 될 것이다.
“난 이만 내려도 될 것 같다. 나 내리고 다시 이동하지.”
“…됐습니다.”
됐다고?
케일은 최한의 반응에 의아했다. 최한의 목소리가 빠르게 들려왔다.
“빗자루를 등에 메고 가는 정도입니다. 짚더미보다 안 무겁습니다. 그리고 제가 케일 님보다 신속하게, 그리고 들키지 않고 갈 수 있습니다.”
…내가 빗자루, 짚더미 정도란 건가?
케일은 최한이 분명 진지하게 사실을 말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이상하게 기분이 상했다. 그때 라온이 사과 파이를 들이밀며 말했다.
“최한 말 들어라, 약한 인간아.”
“아니-”
말을 하려고 열린 케일의 입으로 사과 파이가 가득 찼다. 케일은 황당한 눈빛으로 라온을 쳐다봤으나, 검은 용은 결연한 표정을 지었다.
“인간, 네가 뭐라 말해도 이번엔 우리 뜻에 따라라.”
우리 뜻이 뭔데?
케일은 기가 찼다. 그리고 동시에 자신이 하려던 말을 입안으로 삼켰다. 그가 하려던 말은 ‘우리의 뜻’과 다르지 않았다.
‘나야 편하고 좋지.’
가만히 업힌 채로 사과 파이를 먹으면서 언덕 위에 하얀 공작 저택으로 향하는 건 편해서 좋았다.
그러나 편안한 케일과 달리, 그가 지금 지나가는 지붕 아래는 혼돈으로 난장판이 되어가고 있었다.
케일은 아래를 내려다봤다.
밤임에도 평소와 달리 환한 거리. 여전히 나무 탑은 타오르고 있었다. 그러나 웃음도 음악도 무엇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의 시선이 향한 곳은 한 방향이었다.
모두 전설이 남겨진 호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호수는 보이지 않았지만 저 멀리 지붕들보다 더 높이 솟아오른 불기둥이 보였다.
“호, 호수에 불기둥이……!”
광장이 내려다보이는 높은 특실에서 식사를 즐기던 귀족은 테라스로 나와 경악에 가득 찬 얼굴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그는 나무 탑 따위는 보이지도 않았다.
마치 하늘이라도 꿰뚫어 버릴 것처럼, 이 광장쯤은 우습게 삼켜 버릴 것 같은 거대한 불길은 보는 것만으로도 식은땀을 만들어냈다.
그는 방금 전 호수를 향해 내리쳤던 붉은 벼락을 떠올렸다.
그것은 마치-
“…신.”
신의 분노 같아 보였다.
귀족은 손끝이 떨려왔다.
왜 하필 신이 떠나간 호수에 불이-
하지만 그의 생각은 이어질 수 없었다.
“으아아!”
“부, 부, 불이야!”
그제야 그는 테라스 아래를 내려다봤다. 상상치 못한 일에 침묵하던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도망가려는 이들, 주저앉아 기도하는 이들.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이러다가 광장이 혼란에 사로잡혀 사람들이 다치는 일이 발생할지도 몰랐다.
그러나 귀족은 걱정하지 않았다.
치이이이익-
수증기가 피어올랐다.
나무 탑의 불이 꺼졌다.
그 큰 소리에 사람들은 움직임을 멈췄다. 마법사들이 나무 탑에 물을 쏟아부었고, 불이 꺼져 까맣게 변한 나무 탑만이 보였다.
그때 확성 마법으로 커진 목소리가 광장에 울려 퍼졌다.
“불은 끌 수 있다.”
귀족은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오늘 들었던 귀중한 정보. 세카 공작이 광장의 나무 탑을 관람한다는 정보였다.
세카 공작가의 현 공작. 그가 테라스에 서서 말하고 있었다. 왕국민들은 그제야 공작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현 공작 록은 아직 사람들에게 ‘수호기사’라고 알려져 있었다. 록은 굳건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여기는 파에른이다. 불은 결코 파에른을 이길 수 없다.”
가장 추운 파에른 왕국.
그 사실과 불을 끄는 것 사이의 상관관계는 적었다. 오히려 건조해서 더 큰 불이 나기 쉬운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수호기사의 말에 조금씩 안정을 찾아갔다.
“불은 결코 물을 이길 수 없는 법.”
공작 록은 나무 탑을 가리켰다.
“모두 기사들의 말에 따라 움직여라. 그러면 곧 불은 사라질 것이다.”
축제의 마지막을 대비하던 병사들과 기사들, 그리고 공작 록이 푼 세카 공작가의 기사들이 광장 안으로 진입하며 빠르게 혼란을 해소시켜 나갔다.
그 광경을 막 광장을 지나가던 케일이 쳐다보며 심드렁하게 말했다.
“다행이네.”
진심이었다.
그리고 조금 놀랐다.
‘현 세카 공작이 광장을 구경할 줄은 몰랐는데.’
귀족들도 이 나무 탑을 구경하러 올 테니, 이렇게 불기둥을 피워도 혼란을 다독일 귀족이 나설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 대상이 공작급일 줄은 예상치 못했다.
“이리 되면 흥미진진해지겠는데.”
케일을 뚫어질 듯이 쳐다보던 라온이 외쳤다.
“인간, 왜 이번엔 또 그렇게 웃나?”
그 말에 최한이 잠시 멈칫했다. 어떻게 웃는지 라온의 말만 들어도 상상이 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런 반응쯤이야 케일은 가벼이 무시하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방금 공작은 호언장담을 했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진실이라는 듯이.
‘곧 불은 사라질 것이다.’
곧?
턱도 없는 소리였다.
불기둥은 아무리 용을 써도 꺼지지 않을 것이고, 결국 며칠이 흐른 뒤에야 제국의 연금술을 떠올릴 것이다. 협력 관계니 제국이 마이플 성을 태우려던 불기둥쯤이야 알 터.
결국 공작은 왕국민들 앞에서 호언장담한 것을 지킬 수 없게 된다.
뜻하지 않게 얻어걸린 상황에 흡족해하며, 그는 목적지인 세카 공작가가 아닌 다른 곳을 바라봤다.
파에른 왕궁.
현재 수호기사 클로페가 있는 장소였다.
그리고 그곳에 시선을 둔 이는 케일뿐만이 아니었다. 록 공작도 바삐 움직이는 기사들에게서 시선을 돌려 왕궁을 바라봤다.
아들 클로페 세카.
그가 사람들을 데리고 호수로 향하고 있을 것이라, 그래서 문제를 해결하리라 아버지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 믿음에 응하듯 한밤중 닫혀 있던 왕궁 정문이 열렸다.
끼이이이-
거대한 문이 열리고 그 사이로 말을 탄 기사들이 나타났다. 선봉에는 하얀 깃발을 든 기사가 있었고, 그 뒤에 수호기사 클로페가 있었다.
“가자.”
클로페는 짧게 명하고 빠른 속도로 신의 눈물 호수로 향했다.
그는 왕궁에서 업무를 보다가 저 멀리 밝은 광장을 보며 짧은 휴식을 즐기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붉은 벼락이 땅에 내리치고 호수에 불이 차올랐다.
봄이 되어 협력국의 해안가에서 출항이 가능하면 바로 남쪽으로 진군할 계획을 세우던 그에게 지금 이 상황은 날벼락이었다.
그는 담담한 겉모습과 달리 심장이 쿵쿵 뛰었다.
왜일까?
그는 바람에 흩날리는 자신의 하얀 머릿결이 보였다. 그래서 더욱더 며칠 전이 떠올랐다.
며칠 전 만났던 백발 신관,
그가 했던 말들이 머릿속을 헤집었다.
결국 신분패도 가짜였고 더 이상 모습도 찾을 수 없게 된, 신기루와 같았던 신관. 그는 말했었다.
‘호수가 곧 다시 차오르길 바랍니다.’
그때 그 말을 들으며 클로페가 했던 생각이 있었다.
‘확신하는 눈빛이군.’
신관은 바란다는 말과 달리 확신에 찬 표정이었다. 클로페는 순간 신관이 했던 말들이 순서에 상관없이 떠올랐다.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이 눈에 보일 터.’
‘그분께서는 인간의 탐욕에 그저 주었던 것을 거둬 떠나셨지요. 화도 한 번 내시지 않고.’
고삐를 잡고 있던 클로페의 손이 멈칫했다.
그는 고개를 들었다. 말을 멈춰 세워야 했다.
“워, 워-”
그러나 굳이 멈춰 세우려 할 필요가 없었다. 말은 알아서 멈췄다. 더 다가가지 못하고 멈춘 채 가만히 서 있었다. 클로페 역시 가만히 앞을 응시했다.
클로페는 백발 신관과의 만남 뒤 시간이 지나고 눈에 보이는 것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정확히 호수만을 가득 채운 불기둥이 보였다.
“어찌 이런-”
무엇도 더 태우지 않고 오로지 하늘을 뚫을 듯한 기세로 호수만을 가득 채운 불기둥. 이를 본 순간 왠지 모르겠으나 한 단어가 떠올랐다.
화.
클로페는 심장이 크게 요동쳤다. 그때 뒤에서 따라오던 마법사들이 옆으로 다가왔다.
“단장님!”
다급한 그들에게 클로페는 냉정한 얼굴로 지시했다.
“다들 불을 끄는 데 집중한다. 기사들은 인근 나무를 모두 베어내고 흙을 가져오도록. 마법사들은 마법을 실행하고.”
“네!”
재빠른 대답과 함께 왕궁에서 나온 사람들이 움직였다.
거대한 불에 다가가기 힘들었지만 그대로 두고 볼 수는 없었다. 클로페는 불기둥을 쳐다보다가 동쪽 숲으로 시선을 돌렸다.
백발 신관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숲. 그 숲을 클로페는 한참 동안 목석처럼 응시했다.
그러나 백발 신관인 척했던 케일은 나무늘보처럼 매달려 있던 최한의 등에서 가뿐히 내려섰다. 괜히 발목과 손목을 돌리며 몸을 풀던 케일은 느껴지는 매서운 시선에 한숨처럼 말했다.
“괜찮다니까.”
“엄호하겠습니다.”
“보호하겠다!”
“내가 옆에서 독 뿌릴 건데.”
“안개로 시야를 가릴 건데.”
쏟아지는 말들에 케일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하얀 저택, 세카 공작가를 응시했다.
하얀 저택은 어둡지 않았다.
불이 밝혀져 있었다.
그게 좋았다.
어두우면 뭐 찾기 힘들지 않겠나?
“라온.”
“왜 그러나, 인간?”
“온과 홍 투명화 좀.”
“알았다!”
곧 라온과 온, 홍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케일은 복면을 꺼내 썼다. 최한도 복면을 쓰고, 한숨과 함께 케일에게 하나를 건의했다.
“케일 님.”
“왜?”
“다음에는 더 정교한 옷을 만들죠?”
“암 요원 옷 말이야?”
“네.”
“싫은데?”
싫다는 대답에 최한은 멈칫했다. 케일이 사악하게 웃고 있었다.
“최한.”
“네.”
“암 입장에서 생각해 봐. 누가 대충 봐야 속아 넘어갈 것 같은 조잡한 옷을 입고 앞에서 알짱대다 도망가면 더 화가 나지 않겠어?”
“…그렇군요.”
케일은 옷을 일부러 조잡한 채로 두고 있었다.
그게 더 상대를 짜증 나게 할 테니까.
최한은 몇 초 침묵하다가 이어 말했다.
“깊은 뜻에 감탄했습니다.”
“뭐, 이쯤이야.”
케일은 최한의 말에 가볍게 응답하고는 손을 내려다봤다.
휘이이이-
바람이 한 방향으로 향했다. 케일은 발끝에 가볍게 바람을 실고서 아래로 내려갔다.
세카 공작가 본관 지붕 위에 있던 케일의 신형이 한 곳으로 향했다.
“…케일 님, 왜 거기로?”
최한이 의아한 얼굴로 뒤따라왔다.
밝은 곳에서 점점 멀어졌다.
케일은 공작가 구석, 초대 공작이 검소하다는 세간의 평가를 받게 만들었던 공간으로 달려 나갔다.
버려진 작은 텃밭. 그곳이 보였다.
그는 정확히 그 근처를 향하는 바람을 느끼며 복면 안에서 활짝 웃고 있었다.
-인간, 지금 웃고 있지? 나는 네 마음 안다! 신난다!
라온이 귀신같이 복면 안 케일의 웃음을 맞혔다.
케일은 가벼운 걸음으로 신물을 찾으러 움직였다.
물론 의문이 하나 들었다.
신의 눈물 전설의 주인공이 고대의 힘을 지닌 인간이라면, 신물은 무엇이지?
때마침 짱돌이 말했다.
-희생하려는 건가?
케일은 웃음을 멈췄다. 괜히 뒤통수가 시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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