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225
224화.
케일의 뒤를 따라오던 부단장 힐스만은 케일이 걸음을 멈추고 눈을 감은 채 미간을 찌푸리자, 슬쩍 케일의 옆으로 다가갔다.
최한과 메리는 그 모습을 우두커니 서서 지켜봤다. 그러다가 힐스만이 작게 케일에게 중얼거리는 소리를 듣고 흠칫 어깨를 떨었다.
“공자님, 혹시 어지러우십니까?”
“…아니다.”
케일은 천천히 다시 눈을 떴다. 그는 저를 쳐다보는 힐스만의 뭔가 해맑아 보이는 얼굴에 짜증이 일어났다.
분명 힐스만의 표정에는 케일에 대한 걱정이 보였으나, 그래도 해맑아, 아니, 주책맞아 보였다.
케일은 저도 모르게 속마음이 불쑥 튀어나왔다.
“뭐 이리 사는 게 힘든지.”
놀 수도, 아니, 쉴 수도 없고. 그냥 침대에서 하루 종일 뒹구는 게 이다지도 얻기 힘든 일일 줄이야.
케일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다시 걸음을 옮겼다.
힐스만은 그 모습을 슬픈 얼굴로 바라보았다.
툭. 그의 어깨를 두드리는 손길이 있었다.
“가죠.”
최한이었다. 힐스만은 고개를 돌렸다가 최한의 얼굴을 보고 멈칫했다.
“그, 그래. 가지.”
“빨리 뒤따라가야 합니다. 공자님은 뭐든 빠르십니다.”
메리가 최한과 힐스만을 앞질러 땅에 검은 로브를 질질 끌면서 케일의 바로 뒤로 따라붙었다. 저리 빨리 걸음을 옮기는 메리는 처음 보는 힐스만이었다.
최한도 그 뒤를 따랐고, 힐스만은 최한의 표정을 다시 한번 떠올렸다가 괜히 서늘한 뒤통수를 매만지며 케일의 뒤를 따랐다.
-약한 인간, 원래 사는 건 힘들다. 난 용생 2년 차에 깨달았다. 물론 살다 보면 좋은 날이 더 많다. 그걸 난 용생 4년 차에 깨달았다. 약한 인간, 맛있는 거 먹자! 그게 행복이다!
그리고 케일의 머릿속은 여전히 라온과 짱돌 목소리로 시끄러웠다.
***
그 시끄러움을 해결하기 위해 케일이 택한 방식은 문제의 원인으로 예상되는 쪽에 접근하는 것이었다.
-오랜만이에요, 공자님.
여유롭게 두 손을 흔드는 미친 신관 케이지가 보였다.
짱돌 저택.
그곳에는 휴대는 불가하지만 오로지 케일에게만 연락 가능하도록 라온이 설치해 둔 영상 통신구가 존재했다.
미친 신관 케이지, 그녀의 뒤로 금발의 남매가 보였다.
죽은 마나로부터 살아남은 소드 마스터 하나, 그리고 반쪽짜리 성자 잭. 두 사람이 케이지의 뒤에서 저마다 케일에게 인사말을 건넸다.
-공자님, 대단한 일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역시, 공자님은 마음속의 진실한 빛을 따라가시는 분 같습니다.
성자 잭의 순수한 표정에 케이지와 하나, 케일까지 세 사람의 표정이 떨떠름해졌다. 그리고 그 사이로 소드 마스터 하나가 끼어들었다.
-내 몫은 남겨놔야 돼.
“안 그래도 네 몫 많아. 그리고 제국에 갈 때, 알잖아?”
검은 거미줄이 얼기설기 얽힌 얼굴에 미소가 그려졌다.
-알지. 그때만을 기다리며 훈련 중이야. 황궁은 피로 적셔질 거야.
케일의 표정이 떨떠름해졌다.
황궁을 피로 적실 계획은 없었는데. 하지만 케일의 대답도 듣지 않고 하나는 제 할 말을 했다.
-메리는?
“잘 있다. 오랜만에 다크엘프들 만나서 좋은가 보더군.”
케일의 대답을 듣자마자, 하나는 볼일 끝났다는 듯 검을 들고 영상 통신구 화면에서 사라졌다. 잭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나가 사악한 암을 물리치고 제국을 구하기 위해 늘 열심이지요. 공자님을 돕고 싶어 한답니다.
평범하게 생긴 사람의 티끌 하나 없는 환한 미소는 케일의 양심을 자극했다. 하지만 케일은 일단 확인해야 할 사항이 있었다.
“케이지 씨, 돌기둥이 어떤 상태입니까?”
케이지의 표정이 흐려졌다.
-어제였어요.
그녀는 어제를 떠올랐다.
-이상하게 아침 꿈자리가 뒤숭숭하더라고요. 꼭 죽음의 신이 슬쩍 들여다보고 간 느낌? 이상해서 하나 씨와 함께 어둠의 숲을 한 바퀴 돌고 왔죠. 혹시 적이 있나 싶어서요.
하지만 적은 없었다.
황금빛 오러와 검은 연기를 함께 피워올리는 하나의 곁으로 다가오는 몬스터들도 없었다. 그래서 그냥 뒤숭숭한 꿈인 줄만 알았다.
-하지만 지하 공동에 들어서는 순간이었어요.
쾅!
거대한 소리가 지하 공동에 울려 퍼졌다.
그 소리에 놀란 케이지는 소리의 진원지로 달렸고, 마침내 소리의 원인을 볼 수 있었다.
-이게 터지면서 굉음이 났어요.
그녀의 손바닥 위에 사슬 일부가 놓여 있었다. 돌기둥을 칭칭 감싸고 있던 수많은 사슬들. 그 사슬 중 일부가 터지며 커다란 굉음을 내었다.
-그 뒤로 돌기둥이 조금 이상해졌어요.
케이지는 찜찜한 얼굴로 말했다.
-흔들리기보다는 들썩거린다고 해야 할까요?
케일의 얼굴도 덩달아 찜찜해졌다.
“그럼 아직은 쇠사슬이 남아 있습니까?”
-네. 한 오분의 일은 남아 있어요. 그리고 제가 사슬이 부서진 부분은 일단 죽음의 신 힘으로 응급처치 해두었습니다.
“곧 가야겠군요.”
케이지는 설렁설렁 손을 휘저어 보였다.
-급하게 오지 않으셔도 돼요. 당장 부서질 것 같지는 않거든요. 그리고 뭐가 튀어나오면 죽음의 손길이나 하나 씨 오러로 다 죽, 음, 막아놓을게요. 파문됐지만 신관이었는데 죽인다는 말을 쉽게 못 하겠네요. 하하하!
케이지의 호탕한 웃음소리와 함께 케일은 손으로 눈가를 쓸어내렸다.
‘빨리 돌아가야겠다.’
이 사람들이 무슨 짓을 저지를지 알 수가 없었다.
미친 신관에, 미친 신관보다 더 미친 소드 마스터 하나에, 맹한 반쪽짜리 성자. 이제야 이 세 명의 조합이 끔찍했다.
어딜 가든 다 부수고 다니다가 저들끼리 치료하면서 멀쩡히 돌아다닐 것 같은 조합이지 않은가?
‘…내 별장이 부서지면 안 돼.’
안락한 노후 대비를 위한 자산 중 하나를 놓칠 수 없었다.
어차피 동대륙으로 갈 일도 있었기에 더욱더 돌기둥에 대한 문제를 흘려보낼 수 없었다.
동대륙.
심판하는 물을 찾으러 가야 하는 곳이었다.
‘그다음에 왕관을 써야 돼.’
몸의 균형이 맞춰졌을 때, 케일은 용의 피를 좋아한다는 이 왕관을 습득할 작정이었다.
“인간, 인간! 집에 가나? 다들 짱돌 저택에서 모이나?”
라온의 해맑은 목소리에 케일은 딴생각을 접어두었다.
“어. 다 모여야지.”
-오, 공자님. 제가 어둠의 숲에서 나는 열매들로 술을 담가놨습니다. 다 오면 개봉할게요.
“…그러죠. 케이지 씨.”
-심심해서 나무로 술잔도 여러 개 만들어놨습니다. 공자님 것은 특별히 은빛 방패를 조각했어요. 기대하세요. 은빛 방패 술잔에 과일주를 따라 마시면, 크으!
“…곧 연락하겠습니다.”
케일은 호탕한 웃음소리와 함께 끝인사를 건네는 케이지와, 자기도 과일주를 함께 담갔다고 해맑게 말하며 얼른 오라고 하는 성자 잭에게 대충 답해주고는 영상 통신구를 끊었다.
“…아이고, 머리야.”
케일은 머리를 붙잡았다.
‘…에르하벤 님과 클로페, 이 맛 간 새끼한테도 연락을 해야 하는데.’
그 순간, 달칵 소리와 함께 케일과 라온만이 있던 침실의 문이 열렸다. 케일은 라온이 투명화하지 않고 그대로인 것을 보며 입을 열었다.
분명 최한과 메리, 힐스만, 셋 중에 한 명이 들어선 것이리라.
“무슨-”
케일의 움직임이 멈췄다. 그는 고개를 돌렸다.
붕대를 곳곳에 감싼 최한과 검은 로브의 메리.
도르르르.
바퀴가 구르며 큰 트레이가 침실 안으로 들어왔다. 최한이 끌고 들어오는 트레이 위에는 와인과 음식들이 한가득이었다.
케일은 꼴딱꼴딱 라온의 침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최한은 저를 쳐다보는 뜨거운 용의 시선을 느끼며 케일에게 말했다.
“배고프실 것 같아서요.”
“훌륭하다, 최한. 역시 넌 영리하고 대단해.”
케일은 벌떡 일어나 트레이 위의 음식들을 테이블로 옮겼다. 최한과 메리, 라온의 마법이 도왔고 순식간에 테이블은 음식으로 가득 찼다.
케일은 테이블에 앉으며 입을 열었다.
“힐스만은?”
“…병사들과 함께 방패 싸움에 대해 가르치며 카로 왕국 기사 측과 사교를 다지고 있습니다.”
방패 싸움?
전쟁터에서 사교?
케일의 표정이 의아해졌으나, 툰카의 위퍼 왕국에서도 전사들과 친밀해졌던 힐스만을 떠올리며 그러려니 이해했다.
그리고 더 신경 쓰기에는 배가 고팠다. 케일은 곧바로 음식들을 먹기 시작했다. 뒤이어 다른 이들도 음식들을 먹기 시작했고 테이블 위에는 라온의 감탄사만이 들려왔다.
“인간, 이거 맛있다! 너도 먹어라! 메리야, 이거 너 먹어라! 최한아, 너는 먹어야 금방 낫는다!”
한 입 먹고 제 접시 위 맛있는 음식들을 다른 접시 위에 퍼다 나르기 바쁜 라온의 앞에서, 케일은 한숨을 푹푹 내쉬며 계속 새 음식이 담긴 접시들을 옮겨주었다.
라온이 스테이크 조각을 또 다른 일행의 접시로 옮기고 케일이 새 스테이크를 라온 앞에 둘 때였다.
삐이이- 삐이-
테이블 정중앙, 그곳에 놓인 영상 통신구가 붉은빛을 토해내며 울어댔다.
이건 긴급 연락이었다.
케일은 그 소리에 스테이크 접시를 집어 던지고 싶었으나, 고기였기에 조심스럽게 내려놨다. 그리고 동시에 생각했다.
‘브렉 왕국? 라크인가? 아니면 다시 로운?’
케일은 한숨과 함께 영상 통신구로 시선을 돌렸고, 라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금 용 할배다!”
금 용. 에르하벤의 영상통신이었다.
저번에 케일이 영상 통신을 남겨뒀지만 별다른 대답이 없던 에르하벤이었다.
케일은 입가의 소스를 대충 닦아내며 단호히 말했다.
“연결해.”
왜 에르하벤이 긴급 연락을 했는지, 여러 생각들로 케일의 얼굴이 굳어져 갔다.
라온이 바로 영상통신을 연결했고, 영상 통신구 위로 화면이 나타나며 백금발의 화려한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오랜만이군.
인사를 건네는 에르하벤은 드래곤의 위엄이 여실히 보이는 우아하고 멋있는 모습이었다. 에르하벤은 영상 통신구 너머 케일과 라온, 그리고 메리, 최한을 보며 무뚝뚝한 얼굴에 슬쩍 입꼬리를 올렸다.
그때, 에르하벤은 케일의 눈빛을 볼 수 있었다.
-…오랜만에 봤는데, 눈빛이 왜 그따위지?
그 순간 케일은 입을 열어 툭 내뱉었다.
“아들 있으십니까?”
쿨럭.
최한은 갑작스럽게 사레가 들렸고 메리는 들고 있던 포크를 슬그머니 내려두었다. 그리고 라온의 동그란 눈이 케일을 향했다.
하지만 케일은 한 사람을 떠올리고 있었다.
백금발의 용 혼혈.
분명 용은 한 시대에 다른 용과 다른 고유의 색을 지닌다.
케일은 솔직하게 용 혼혈에 대해서는 몰랐다. 하지만 용과 인간의 피가 반반 섞였다면 그 용의 특성인 빛깔도 닮지 않았을까?
케일이 아는 백금빛은 골드 드래곤 에르하벤뿐이었다. 케일의 차분한 눈빛이 에르하벤을 향했고 에르하벤도 역시 케일을 빤히 응시하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래. 전쟁의 참담함이 인간을 미치게 만들 수도 있지. 나는 이해하네. 많이 힘든가?
이런 박복한 인간, 쯧쯧.
에르하벤의 혀 차는 소리와 함께 안쓰러움을 담은 눈빛이 케일을 향했다. 그리고 라온의 스테이크 소스가 묻은 앞발이 케일의 손등을 두드렸다.
“약한 인간, 아까 백금발 그거 염색 마법이다.”
아.
최한과 메리의 탄성이 들려왔고, 케일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대신 라온이 에르하벤에게 용 혼혈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얘기를 다 들은 에르하벤은 입을 열어 단 한마디를 내뱉었다.
-…신기하네.
케일은 다시 고룡을 바라봤다.
-죽어야 정상인데.
“네?”
케일이 살벌한 말에 저도 모르게 되묻자 에르하벤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용이 왜 유일한 존재인 줄 아나? 그걸 다른 이들이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야. 물론 드래곤 슬레이어들은 용을 잡아먹지. 하지만 용을 잡아먹는 것과 그 용의 피를, 온전한 ‘유일함’을 이어받는다는 건 차원이 다른 문제다.
에르하벤의 표정에 심각함과 동시에 호기심이 담겼다.
-신기하군. 보통 용들은 인간과의 사이에서 아이를 만들지 않아. 아이가 용의 피를 이기지 못하고 괴로워하다 죽어버리니까. 아무리 용이 싸가지가 없다고 해도 그런 짓까지는 하지 않아.
이성적인 존재가 용이다.
겉으로는 난폭하고 감정적으로 보여도 기본적으로 합리적인 경향이 강한 용이기에, 유희 중 인간을 만나 사랑을 하더라도 아이를 가지지 않았다.
그게 그들의 이성이었다.
-그런데 그걸 버티고 살아남은 존재가 있다고?
에르하벤은 용 혼혈에 대한 호기심이 커졌다.
살아남았다는 게 놀라웠다.
-꼬맹이를 피해 달아난 것을 보면 최소한 1차 성장은 했나 보군.
“금 용아! 용 혼혈도 1차 성장을 하나?”
-당연하지, 꼬맹아. 용의 피가 섞였잖아.
“아, 그렇구나!”
라온은 오랜만에 본 에르하벤이 좋은지 괜히 자잘하게 물어보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러다가 케일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케일의 표정이 점점 이상해졌다.
그전까지는 폭발적인 에르하벤의 외모 때문에, 그리고 아들 발언 때문에 정신이 없어 눈치를 못 챘는데 이제야 제대로 뭐가 보였다.
“…에르하벤 님.”
-왜 그러지?
한 용은 영상 통신구 너머로, 한 용은 고개를 돌려 케일을 쳐다봤다. 케일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풍경이 낯이 익은데요?”
-아, 네 집 근처다.
“…짱돌 저택이요?”
-그래. 어둠의 숲이지.
돌기둥의 이상을 알아챈 것일까.
케일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그때였다.
-내 집이 무너졌거든.
음?
-그래서 너도 볼 겸 신세 좀 지게.
“네?”
붉은빛을 토해내던 긴급 연락.
케일은 그 연락의 이유를 깨달았다.
-열 손가락 산 알지? 엘프 마을 있던 곳.
“…알긴 알죠.”
불안하다. 뭔가 불안하다.
-거기 세계수 가지를 네가 지켰잖냐?
“그렇죠?”
-그거 며칠 전에 털렸다.
아.
최한의 깊은 탄식이 들려왔다.
-내가 그 일 때문에 엘프 마을에 갔다 오니 내 레어가 무너져 있더군. 허허, 이제 죽을 날이 일 년 남았다고 이런 짓을 한 건지.
“…둘 다 암입니까?”
-엘프 마을은 확실히 암이지만, 내 레어는 흔적이 명확하지 않아. 찾아야 돼. 그런데 말이다.
그런데 말이다.
저 문장이 왜 이리 무섭게 들려올까?
케일은 슬그머니 불안감이 일어났다. 그 불안감의 정체가 곧 밝혀졌다.
-너희들이 카로 왕국 어디라고?
고룡의 물음에 케일의 입이 멈칫했다. 그사이 라온이 해맑게 답했다.
“리오나성이다! 리오나성 남측 별관 3층 가장 큰 방이다!”
거기가다 좌표에, 지리적 위치를 말해댔다. 케일이 라온의 입을 막으려 했지만 그의 움직임보다 라온의 입이 빨랐다.
-그렇군.
뚝.
영상통신이 급작스럽게 끊겼다.
곧 이상한 소리가 침실 안에 울려 퍼졌다.
파아앗.
환한 백금빛이 침실 안을 가득 채웠다. 곧 빛이 사라지며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랜만이군.”
에르하벤이었다.
“금 용아!”
라온이 냅다 날아서 에르하벤에게 다가갔다. 하지만 에르하벤은 케일의 표정을 보고 멈칫했다.
“…너 표정이 왜 그렇지?”
에르하벤은 자신이 오면 부담스러워하거나 혹은 귀찮아하면서도 그러려니 넘길 케일을 예상했다. 그래서 선물을 준비해서 왔건만, 그가 마주한 케일은 조금 달랐다.
라온도 케일의 표정을 알아챘다.
“인간! 또 왜 그렇게 웃나?”
케일은 두 용의 말은 무시하며 에르하벤과 함께 온 존재를 쳐다봤다.
“아, 아아. 오랜만입니다, 라온 님. 이렇게 오랜만에 뵈니 더 영광스럽게 귀여워지셨습니다. 이 엘프 펜드릭, 세상의 행복을 또 하나 알아갑니다.”
펜드릭은 라온에게 구구절절 찬사의 인사를 건네곤 케일을 쳐다봤다.
“오랜만입니다, 공자님.”
다시 멀쩡하게 말하는, 영원한 용의 팬인 펜드릭에게 케일은 천천히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오랜만이야.”
케일은 환하게 웃었다.
정령은 못 다루지만, 힐러 능력을 지닌 펜드릭. 원작에서는 일찍 죽었지만, 최한 일행에서 힐러 영역을 맡을 정도로 실력이 뛰어난 이였다.
신성력과 비슷한 자연의 힘을 가진 치유력은 얼핏 보면 신성력을 이용한 치유의 힘으로 보일 터.
제국과 교단은 세트다.
케일은 그 사실을 잊지 않았다.
그러던 중 펜드릭을 본 순간, 머릿속에 번뜩이는 것이 있었다.
“펜드릭, 자네를 봐서 너무 반가워.”
“그렇습니까? 짧은 인연이었는데, 이리 반겨주시니 기쁩니다.”
“그래. 그럼 우리 좋은 일을 해볼까?”
“…네?”
케일은 제국과 교단을 아래에서부터 무너뜨리고자 마음먹었다.
그래야, 그 빈자리를 아래에 있던 사람들이 채우며 토대를 새로이 다질 수 있다.
“넌 오늘부터 태양신을 믿는 그저 순수한 신도야.”
“네?”
펜드릭은 당황해서 두 용을 쳐다봤다. 에르하벤은 슬그머니 한 발짝 뒤로 물러섰고 라온은 좋은 일이란 말에 날개를 파닥이며 좋아했다.
펜드릭은 결국 다시 케일을 쳐다봤다.
“그러다가 넌, 우연히 사람을 구할 수 있는 힘이 생겼어. 너는 그 힘을 아주 신실하고 선량한 한 사람을 통해 일깨운 거다. 그는 선구자와 같은 사람이야.”
그 사람은 당연히 반쪽짜리 성자 잭이다.
“펜드릭.”
환한 미소와 함께 케일은 물었다.
“당분간 내가 숙식을 제공할 건데. 밥값은 해야지?”
밥값.
그 단어에 펜드릭이 멈칫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