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378
377화.
결국 케일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은 단 한마디뿐이었다.
“…이게 뭐야?”
그의 심정을 그대로 대변한 말이었다.
이게 뭐란 말인가?
지금껏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을 많이 겪어왔다.
이미 ‘영웅의 탄생’이라는 책 속으로 들어온 것부터가 타인이라면 믿을 수 없는 일이기에 케일은 웬만한 일에는 그러려니 할 수 있었다.
지구에, 한국에 괴물들이 나타나는, 레이드 소설이나 현대 판타지 소설에서나 겪을 법한 일도 겪은 김록수였으니까.
그런 세상 속에서 십오 년 넘게 살아온 그였으니까.
“인간, 왜 그러나?”
“왜 그러는지 모르겠는데.”
홍과 라온이 케일을 걱정스럽게 바라봤지만, 케일은 애들에게 뭐라 답할 정신이 없었다.
처음이었다.
이곳으로 와 진심으로 당황했다.
‘우연일까?’
김록수가 읽은 ‘영웅의 탄생’과 여기 초대 드래곤 슬레이어 기록서의 제목과 지은이가 같은 것은 우연일까?
그럴 수가 있을까?
…세상에 우연이라는 것이 존재할까?
케일은 딴걸 생각할 틈이 없었다.
그의 손이 제단을 감싼 보호막을 뚫고 안으로 들어갔다.
케일은 손바닥에 책이 닿은 순간, 이를 바로 움켜쥐었다.
그 손길은 다급했다.
“인-”
케일을 부르며 다가가려던 라온은 제 앞에 드리운 손에 입을 꾹 다물었다. 최한이 아이들을 살짝 뒤로 물렸다.
버드는 이미 굳은 얼굴로 팔짱을 낀 채 건물 벽에 기대어 케일을 응시하고 있었다.
술기운이라고는 티끌만큼도 찾기 힘든 얼굴이었다.
최한은 마지막으로 주변을 둘러보고는 케일의 옆에서 검 손잡이를 쥔 채 서 있었다.
그러나 케일은 이런 주변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진짜야.”
케일은 기록서의 표지를 손가락으로 매만졌다.
이라는 제목이 보였고 그 밑에 지은이가 보였다.
네란 베로우.
분명 김록수가 읽었던 책의 지은이였다. 김록수는 처음 ‘영웅의 탄생’을 읽을 때 지은이를 보고 의아했었다.
그 당시에는 작가 필명으로 이렇게 본격적인 영어 이름을 쓰는 경우가 적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외국에서 변역된 판타지 소설이면 또 모르겠지만, 김록수가 빌려본 ‘영웅의 탄생’은 한국 판타지 소설이었다.
주인공의 역경이 조금 많이 심해서 그렇지, 그것만 빼면 5권까지의 내용은 차원 이동자 한국인 고등학생이 먼치킨이 되어 세상의 영웅이 되는 흐름이었다.
‘그런데 왜?’
왜 그 판타지 소설의 저자와 이 초대 드래곤 슬레이어 기록서의 저자가 이름이 같단 말인가?
분명 네란 베로우라는 이름은 초대 드래곤 슬레이어의 이름이 맞을 것인데!
-맞다.
순간 케일은 흠칫 몸을 떨었다.
지금껏 조용하던 이의 목소리가 머릿속에 들려왔다.
무서운 짱돌.
그의 조금은 힘겨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계속 불렀는데, 답이 늦어 미안하다.
짱돌은 미안함을 담아 말했다.
-왕관을 통해 네 몸에 들어왔던 막대한 힘을 받아들이고 그대로 사용해서 밖으로 빼내느라 힘들었거든.
케일은 아무 말 하지 않은 채 잠자코 짱돌의 말을 기다렸다. 그걸 알기라도 하듯 짱돌은 곧바로 입을 열었다.
-네란 베로우. 그 이름이 내가 최후의 전투에서 살린 그 아이의 이름이다.
짱돌이 죽었던 전투이자 마지막으로 싸웠던 전투.
그 전투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소년의 이름이 네란 베로우였다.
케일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가 떴다.
“후우.”
깊은 숨을 들이마셨다가 내쉬었다.
사락.
케일의 손가락이 책의 첫 장을 넘겼다.
서문이 적혀 있었다.
순간 케일의 머릿속으로 3대 금지 중 하나였던 바람섬이 떠올랐다.
그 바람섬에 위치한 신전의 천장에 그려져 있던 벽화.
하늘 속성과 더불어 자연의 5대 속성을 모두 지닌 인간이 ‘어둠의 숲’이라는 단체를 이끌며 신이 되려고 했던 이야기.
그자는 스스로가 하늘이 되어 어떤 땅은 비옥한 낙원으로, 어떤 땅은 황폐한 지옥으로 만들어 사람들을 지배하려고 했다.
짱돌은 그자에 대해 말했다.
‘내가 죽던 날, 하얀 별도 무너졌지.’
그 신이 되려던 자가 하얀 별이라고.
그리고 케일은 지금의 하얀 별에 대해 짱돌이 했던 말도 떠올렸다.
‘케일, 내가 보기엔 지금 ‘하얀 별’이 ‘고대의 하얀 별’을 흉내 내는 것 같구나.’
케일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지금 그의 손에 들린 책은 ‘고대의 하얀 별’에 대한 초대 드래곤 슬레이어의 기록서.
툭. 툭.
케일의 손가락이 서문이 적힌 첫 페이지를 두드렸다.
“이거였어.”
지금의 하얀 별이 ‘고대의 하얀 별’ 흉내를 낼 수 있었던 이유는.
“이 기록서야.”
이 기록을 보고 지금의 하얀 별은 고대의 하얀 별 흉내를 냈다.
그런 확신이 케일의 머릿속에 자리했다.
다음 문장이 보였다.
수호자라는 단어가 케일의 입안에 맴돌았다.
-크흠, 나다.
짱돌이 어색한 목소리로 말했지만, 케일은 가볍게 무시했다.
왜냐고?
“…이 말의 의미를 알아?”
-무엇이 말이냐?
되묻는 짱돌의 목소리에 케일은 한 번 더 입을 열었다.
서문의 다음 문단을 가리키면서.
“이게 무슨 말이지?”
-…그런 글자도 있는가?
짱돌은 의아한 목소리로 답했다. 하지만 케일은 제 어깨 너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겨우 침착함을 유지했다.
“음? 우리한테 묻는 말이야? 어? 이게 무슨 글자지?”
“처음 본다! 위대한 나도 모르는 글자가 있다!”
“모르겠는데!”
“모르는데!”
일행도 의아한 목소리로 답했다.
하지만 버드와 평균 9세들의 목소리 사이로 아주 작은 목소리가 잠시 케일의 귓가를 스쳐 지나갔다.
“…어?”
최한이었다.
평소의 최한과 달랐다.
얼이 빠진 목소리였다.
케일은 표정을 가다듬었다.
그는 자신이 표정 관리를 잘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여기 와서 처음으로 들었다.
서문의 이어진 문장.
고대의 짱돌도, 동대륙의 버드도, 수많은 언어를 배운 라온도 모르는 문장이 케일은 읽혔다.
그 밑에 적힌 글자.
주위가 시끄러웠다.
“음, 무슨 글자인지 연구를 해야겠는데? 고대의 글자인가?”
“할배한테 물어보자! 아니면, 우, 우리 어, 엄-! 아무튼 물어보자!”
“신기한 글자인데! 글자 아닌 것 같기도 한데!”
버드와 평균 9세들이 시끄럽게 대화를 나눴다. 창백하게 질렸던 케일이 어느 정도 진정한 안색으로 질문을 던졌기 때문에 더 열심히 답을 구하려 했다.
하지만 케일은 이 글자가 읽혔다.
한글이니까.
그러나 케일은 담담한 얼굴로 그저 조용히, 정말 숨죽인 채 한 사람의 반응을 기다렸다.
시끄러운 와중에 아주 작은, 정말 작은 최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삼촌?”
하.
케일은 순간 튀어나오려는 웃음을 꾹 참았다.
기뻐서가 아니었다.
너무 기가 차서.
정말 너무 기가 차서.
헛웃음이 나올 것만 같았다.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부모님의 사랑을 받으며 행복하게 자라난 소년, 최한. 그러나 홀로 차원을 이동해 그 뒤로 쭉 어둠의 숲에서 오랜 시간을 홀로 보내야 했다.
최한.
최정건.
가끔 케일은 이 세상에 오고 나서 했던 생각이 있었다.
특히 하얀 별이 나오고 난 이후로 더욱더 그런 생각을 많이 했었다.
‘최한은 어떻게 여기서 주인공이 될 수 있었지?’
아니, 어떻게 최한이 하얀 별을 이길 수가 있는 거지?
로잘린과 라크를 비롯한 동료들이 그의 곁에 많다지만, 라온도, 온, 홍도 없는, 지금의 동료들 대부분이 없는 세상에서 최한은 어떻게 하얀 별을 이겼을까?
그런 의문이 문득문득 케일의 머릿속에 들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케일은 생각했다.
그가 읽은 것은 5권까지의 내용이었다.
그렇다면 그 뒤에 최한을 위한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주인공이 이기기 위한 힘을 주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다.
그리고 지금, 케일은 그동안 가끔씩 생각만 했던 ‘주인공 최한’을 위한 ‘무언가’를 발견했다.
“인간아! 서문에 이 이상한 글자로 된 말이 더 많다!”
서문에 적힌 한글은 아직 더 있었다.
맞다.
못 볼 확률이 높다.
빛의 성 아래 지하 마을, 그곳에서도 드래곤 슬레이어 왕관을 지닌 자만이 들어설 수 있는 영역에 있는 것을 어찌 이방인이 본단 말인가?
그러나 케일은 원래 이야기대로라면 이 기록서가 어떻게든 최한의 손으로 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기록서는 고대의 하얀 별에 대한 기록인 동시에 초대 드래곤 슬레이어 네란 베로우, 최정건의 회고록이었다.
문득 초대 드래곤 슬레이어에 대한 정보가 떠올랐다.
그는 혈육이 없다고 했다.
그는 결혼도 하지 않았고, 자식을 두지도 않았다고 했다.
왜 이 말을 흘려들었을까.
그도, 최한처럼 어느 순간 이 세상에 나타난 인간이었다.
서문은 한 장으로 끝나지 않았다.
다음 장까지 이어지는 한글 서문에 케일은 최대한 담담한 얼굴로 페이지를 넘겼다.
사락.
다음 장을 펼치려던 찰나.
케일은 다음 페이지의 문장을 눈으로 언뜻 본 순간 바로 책을 덮어야 했다. 그 덕에 다른 이들은 그다음 장의 내용을 보지 못했다.
그때, 케일에게 책을 향해 다가오는 손길이 보였다.
“제가.”
최한이었다.
담담한 얼굴이었지만, 적어도 케일은 최한이 상당히 혼란스러워하고 있음을 눈치챌 수 있었다.
최한은 케일을 보며 손을 뻗었다.
“케일 님, 제가, 제가 그 책을 봐도 되겠습니까?”
그리고 케일은 주위에 있던 동료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 최한아! 네가 아는 글자냐? 뭔가를 눈치챘나!”
“최한 씨가 보게요?”
라온과 버드가 동시에 최한에게 말을 걸었다.
“술주정뱅이 용병왕아! 우리 최한 은근 많이 똑똑하다! 너보다!”
“맞는데! 최한, 똑똑한데!”
“막내 말이 맞는데!”
이어 버드는 평균 9세들의 구박을 받아야 했다.
그 와중에도 케일은 평소의 뚱한 표정을 그렸다.
“케일 님.”
최한이 한 번 더 불렀다.
어쩌면 그는 지금 몇십 년 만에, 아니, 셀 수도 없는 시간 만에 고향의 흔적을 발견한 것이었다. 그것도 심지어 ‘삼촌’이란 존재로 추정되었다.
케일은 최한의 심정이 어떨지 묻지 않아도 짐작이 되었다.
“일단.”
그렇지만.
“…케일 님?”
케일은 평소처럼 미간을 찌푸린 채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일단 하얀 별의 뒤를 치려면 책 하나만 살펴보고 있을 시간이 없어.”
최한이 뭐라 말하려고 했지만 케일이 선수 쳤다.
“내 기억력 알지? 나는 글자만이 아니라 이미지도 모두 기억하는 사람이야.”
툭. 툭.
케일이 책 표지를 두드렸다.
“내가 먼저 빠르게 이 안의 내용을 기록해 둔다. 모르는 문자여도 그 이미지 통째로 기억하면 되니까.”
용병왕이 박수를 쳐댔다.
“크으! 역시 내 친구 대단해! 크으!”
케일은 당연히 그걸 무시하며 말을 이었다.
“최한, 이 문자에 대해서 아나?”
“…알 것 같습니다.”
알 것 같기는. 한글이면 당연히 알지.
케일은 최한의 말에 실소를 참으며 평소처럼 말했다. 최대한 평소처럼.
“그러면 더 잘됐네. 일단 이 기록서는 내가 모든 내용을 그림으로 다 외운다. 그 뒤에 하얀 별을 처리하고 다시 와서 살피자.”
일행 몇몇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된다면 혹여나 하얀 별과 싸우는 도중에 어떠한 문제가 생겨도, 이 안의 내용을 내가 기억하고 있으니 추후에 최한이 글자를 살피는 것에 문제가 없을 거야.”
케일은 최한을 바라보며 말했다.
“우린 서둘러야 한다. 성에 우리 없이 로드님과 에르하벤 님, 론, 비크로스만 있다는 게 하얀 별에게 들키기라도 하면 남은 일행이 위험해지니까.”
최한이 결국 책에서 시선을 떼며 고개를 끄덕였다.
“케일 님, 맞습니다. 얼른 갔다가 다시 오죠.”
케일은 최한이 제 고향에 대한 흔적보다 동료를 아끼는 마음이 먼저여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손을 들어 일행에게 훠이훠이 휘저었다.
“물러서 있어. 빨리 기억해야 하는데, 옆에서 알짱거리면 느려져.”
일행이 수긍하는 얼굴로 물러섰다.
케일은 한 걸음씩 자신과 책으로부터 물러서는 일행을 보며 입안에 침이 바짝바짝 말랐다.
기록서를 쥐고 있는 그의 손바닥에 땀이 났다.
차마 책을 펼치기가 힘들었다.
그는 아까 언뜻 보고 덮었던 서문의 다음 내용을 떠올렸다.
기록.
본 순간, 모든 것이 기록되는 이 힘.
케일은 동료들에게 말한 것과 달리, 이 힘을 이미 마을로 들어설 때부터 사용 중이었다.
모든 기록들이 그의 머릿속에 가득 새겨지고 있었다.
언뜻 본 다음 페이지도 딱 본 순간, 모두 머릿속에 새겨졌다.
타인은 결코 따라잡을 수 없는 속도였기에 바로 책을 덮을 수가 있었다.
케일은 이미 머릿속에 새겨진 서문의 다음 내용이 선명히 생각났다.
초대 드래곤 슬레이어 네란 베로우, 최정건은 기록했다.
최한도 그랬다.
최정건은 스스로 죽음을 택했다.
그 이름은 케일에게도 낯익은 이름이었다.
재해의 검.
드래곤 슬레이어들이 대대로 이어받는 고대의 힘 중 하나였다.
케일은 본래 주인공 최한이 어떻게 지금의 하얀 별을 이겼을지 조금 짐작이 되었다.
아니, 거의 예상되었다.
죽을 생각으로 달려들었을 것이다.
서문의 마지막 한글 문장이 떠올랐다.
얼어 죽을 헛소리하고 자빠졌네.
목숨을 바치긴 뭘 바친다는 소리야? 누구 좋으라고?
빌어먹을 영웅의 탄생.
케일은 제 성질머리대로 책을 갈기갈기 찢어서 불에 태워 버리고, 그 재도 부숴 버려 가지고 세상에서 흔적도 없이 지워 버리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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