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379
378화.
“후우.”
케일은 작게 한숨을 토해내었다.
용병왕 버드는 케일에게서 떨어져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용병 길드 인명부를 볼 때처럼, 케일 헤니투스는 곧 저 책 안의 모든 것을 순식간에 기억할 것이다.
버드는 케일의 풀어진 목 단추가 하나 보였다.
‘이미 능력을 쓰고 있었나 보네.’
버드 일리스의 눈동자에 이채가 감돌았다가 사라졌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였지만, 가장 큰 것은 최한이었다.
‘이상한데.’
최한은 평소와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달랐다. 버드가 지금껏 지켜본 최한은 늘 담담했다. 어떨 때는 케일보다 더 냉정해 보였다.
‘그런 이가 식은땀을 흘려?’
이 지하 마을의 온도는 딱 사람이 돌아다니기 좋은 상쾌한 온도였다.
버드는 그런 곳에서 홀로 이마에 식은땀이 맺힌 최한이 보였다.
물론 최한은 곧바로 아무렇지도 않게 땀을 닦아내 남들은 보지 못했겠지만, 버드는 그 정도는 관찰할 수 있었다.
‘…수상해.’
최한.
이름부터 낯선 형태였다. 워낙 다양한 인종이 섞인 곳이 대륙이었기에 생김새야 신경 쓰지 않았지만, 그의 과거에 대한 기록이 없다는 점도 수상했다.
물론 최한에 대한 의문을 섣불리 제시할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이 무리의 우두머리나 다름없는 케일 헤니투스가 최한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있었으니까. 눈에 띄게 신뢰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버드는 그 역시도 한 단체의 수장이기에 알고 있었다.
내 뒤나 앞을 편히 맡긴다는 것.
그건 웬만한 믿음으로는 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그렇기에 버드는 최한에 대한 의문이 존재했지만 이를 꾹 삼켰다. 최소한 최한은 ‘우리 편’이니까.
‘확실히 재밌단 말이야.’
버드는 하얀 별 처단이라는 목적과 케일 헤니투스의 행보에 대한 호기심, 이 두 가지 때문에 케일의 행보를 함께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는 스스로가 용병 길드 수장이라는 점을 확실히 인지하는 이였다.
때문에 버드 일리스는 앞으로 동서대륙의 판도를 바꿀 이 사람들을 꽤 조심스럽게 관찰했다. 그는 술병을 꺼내 마셨다.
관찰하는 모습을 숨기기에는 술만 한 게 없었다.
그리고 평소와 달리 관찰하는 시선도 알아채지 못한 채, 제 감정을 숨기기에 급급한 이가 있었다.
최한이었다.
‘…한글.’
한글.
한국어로 적힌 문장을 본 순간, 최한은 숨이 턱 막혀왔다.
현실감이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현실감이 들었다.
‘…최정건.’
그 이름을 보는 순간, 최한은 수십 년, 그 이상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 한 가지 기억을 끄집어낼 수 있었다.
최한의 아버지는 실종된 막냇동생이 있다고 하였다.
최한에게는 막내 삼촌이었다.
아버지가 20대 초반이었을 적, 친구들과 계곡에 놀러 간다고 나갔던 막냇동생은 그대로 실종되었다.
그때 막냇동생의 나이가 15세였다.
그 당시 막냇동생 친구들 말로는, 분명 같이 있었는데 눈 깜짝할 새 사라졌다고. 아무리 주위를 둘러봐도 찾을 수 없었다고 한다.
그 뒤 온 가족과 마을 사람들이 막냇동생을 찾았지만, 결국 조금의 흔적조차 찾지 못했다.
그 막냇동생. 최한에게는 막내 삼촌인 그의 이름은 최정건이었다.
최한이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삼촌의 얼굴을 기억하는 이유는 온전히 아버지 때문이었다.
시골 할머니 집에 놀러간 날, 밤늦게 아버지가 고모와 함께 술을 마시며 대화하던 것을 화장실에 가다가 우연히 들었다. 그때 단 한 번 들은 이야기였지만, 당시 중학교 1학년이던 그에게 꽤 충격적인 이야기라서 잊히지가 않았다.
그 뒤 할머니 서랍장 속 앨범 안에 있던 막내 삼촌의 얼굴도 보았다. 흑백 사진 속 삼촌은 중1 최한과 나이 차가 얼마 나지 않는 모습으로 빡빡 민 머리를 매만지며 어색하게 웃고 있었다.
‘…정말 막내 삼촌일까?’
최한은 애써 손에 힘을 주었다.
떨리는 손끝을 감춰야 했으니까.
그의 머릿속에는 온갖 생각들이 소용돌이쳤다.
‘나 혼자가 아니었어.’
다른 세상에 뚝 떨어진 삶을 살아야 했던 이가 나 말고 또 있었다는 사실에, 최한은 뭐라 설명하기 힘든 복잡한 감정을 느껴야 했다.
동시에 호기심을 넘어서는 조급함이 그를 감쌌다.
얼른 저 기록서를 보고 싶었다.
한글로 적힌 모든 것들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샅샅이 다 읽어서, 왜 자신이 이 세상으로 왔는지에 대한 이유, 그리고 다시 돌아갈 수 있는지에 대한 정보를 알고 싶었다.
그냥, 그냥 자신과 같은 사람의 이야기를 알고 싶었다.
자신과 같은 핏줄일지도 모르는 이의 이야기니까. 더 궁금했다.
툭.
그 순간이었다.
최한은 고개를 숙였다.
은빛 고양이의 앞발이 최한의 다리를 두드렸다.
그리고 홍이 최한을 올려다보며 말을 건넸다.
“괜찮은지 모르겠는데.”
이미 라온도 온과 홍의 곁에서 최한과 케일을 번갈아 쳐다보고 있었다.
라온과 최한의 눈동자가 마주쳤다.
“최한아! 뭐 화났나?”
“…어?”
“얼굴이 굳어 있는데! 맛있는 거 주는 비크로스가 화난 얼굴 같다!”
최한은 저도 모르게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그는 손을 들어 제 얼굴을 매만졌다.
이제 손끝이 떨리지 않았다.
그는 방금 자신이 했던 생각 중 하나를 떠올렸다.
다시 돌아갈 수 있는지에 대한 정보가 궁금했던 자신.
묘한 미소가 최한의 입가에 맺혔다.
사실.
정말 사실대로 말하자면 가족들의 얼굴은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났다.
수만, 수십만 번 되새겼으니까.
하지만 친구도, 선생님도, 한국에서 최한의 세상을 만들었던 이들의 얼굴은 이제는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다.
물론 다시 마주하면 번뜩 생각이 날 것 같지만, 또 한편으로는 다시 마주해도 못 알아볼 것도 같았다.
너무 오랜 시간이 흘렀으니까.
“최한아! 걱정하지 마라!”
“응?”
라온이 최한의 어깨 쪽으로 날아와 앞발로 어깨를 토닥였다.
“약한 인간이 머리 좋으니까 빨리 책 외울 거다! 그러고 나면 빨리 우리 가족들 구하러 갈 수 있다! 그러니까 걱정 안 해도 된다! 위대한 라온 미르만 믿어라!”
최한의 입꼬리가 웃음을 그렸다.
그는 저 책을 보고 싶었지만 케일의 말에 스스로 물러섰던 이유를 떠올렸다.
최한을 비롯해 여기 있는 이들이 어서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을 동료들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우리 가족.’
라온의 그 말이 최한의 입안에 맴돌았다.
“최한아! 이제는 왜 웃나? 너도 왕세자처럼 될 거냐!”
라온은 갑자기 실실 웃는 최한이 이상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최한은 라온의 뒤통수를 쓰다듬으며 정면을 응시했다.
사락. 사락.
꽤 두꺼운 기록서를 빠른 속도로 넘기며 기억하는 케일이 보였다.
‘그래. 기다리자.’
최한은 마음을 편히 먹었다.
어둠의 숲에 있을 때는 기다릴 것도, 그를 기다려 줄 것도 없었다.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그야말로 낙원이었다.
최한은 그저 케일이 책을 다 읽을 때까지 기다렸다.
사락. 사라락.
페이지를 빠르게 넘기는 케일의 얼굴은 무표정했다.
하지만 그의 머릿속은 두 가지 정보들로 가득 차, 어느 때보다도 혼란과 복잡함으로 어지러웠다.
기록서의 모든 페이지는 반은 동대륙 언어였고 나머지 반은 한글이었다.
최정건의 회고록.
그리고 고대의 하얀 별에 대한 기록.
두 가지가 한꺼번에 케일의 눈에 기록되어 나갔다.
동대륙의 언어로 적힌 기록들.
케일은 ‘지금의 하얀 별’이 사용하는 물 속성 고대의 힘을 떠올렸다.
그것 또한 장막의 형태였다.
고대의 하얀 별이 사용했던 것과 아주 흡사한 힘이었다.
케일은 짱돌의 목소리가 머릿속에 들려왔다.
-역시 지금의 저놈은 고대의 하얀 별을 흉내 냈구나.
케일은 짱돌의 말에 답하지 않은 채 페이지를 점점 더 빠르게 넘겼다.
사락. 사라락.
종이들이 빠르게 넘겨졌다.
그 와중에도 모든 글자들이 케일의 머릿속에 기록되었다.
사락사락.
그러다가 움직임이 멈췄다.
한 페이지가 케일의 눈을 사로잡았다.
문득 케일은 지금의 하얀 별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모고르 제국, 연금술 종탑 전투 때. 처음 마주한 하얀 별은 목적을 묻는 케일의 말에 답했다.
‘네가 원하는 바가 무엇이지?’
‘내가 원하는 거?’
그는 피곤에 찌든 얼굴로 답했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열망, 아니, 지금 생각해 보면 광기에 가득 차 있었다.
‘반역자가 아니라, 지배자가 되는 것이지.’
자연의 반역자라 불리는 드래곤 슬레이어.
지금의 하얀 별은 그 마지막 드래곤 슬레이어였다.
케일은 그가 원하는 것이 고대의 하얀 별이 이루려던 ‘지배자’가 되는 일이란 것을 깨달았다.
케일의 적은 인간과 모든 생명체, 자연까지 발아래에 두는 지배를 원하는 것이다.
사락사락.
잠시 움직임을 멈췄던 케일은 다시 종이를 넘겼다.
그의 입가에 비웃음이 자리했다.
사라락 사라락.
멈추지 않고 책 내용을 기록해 나갔다.
사라락.
페이지가 넘겨지는 속도가 아주 빨랐다.
그리고 마침내, 케일은 마지막 한 장에 도달했다.
케일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맺혔다.
가장 약한 힘의 소유자라는 초대 드래곤 슬레이어.
그러나 현재 전해져 내려온 역사 속에서, 그는 인간 중 가장 강한 존재였다.
그 순간, 짱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그 아이가 가장 약했기에 보호했다.
짱돌은 최후의 전투 당시, 가장 약한 이를 제 뒤에 숨겼다.
-재해의 검이었던가? 내가 죽을 때까진 그 아이에게 그런 힘은 없었다.
드래곤 슬레이어들이 쓰는 ‘재해의 검’이라는 막강한 힘은 초대 드래곤 슬레이어 최정건이 죽으며 남긴 힘이었다.
케일 입가의 미소가 더욱더 진해졌다.
짱돌은 이어 말했다.
-그저 허세 부리기 좋은 힘만 있었을 뿐.
허세 부리기 좋은 힘.
-사람들 앞에서 강한 척하기 좋은, 참으로 사람 속이기 좋은 힘만 있었지.
사기 치기 좋은 힘.
케일도 그 힘을 가지고 있었다.
지배하는 아우라.
공격력도, 방어력도 조금도 없는 그저 허울만 존재하는 힘.
동시에 드래곤 슬레이어가 가지는 힘 중 하나였다.
그렇다면 초대 드래곤 슬레이어는 어떻게 인간 사이에서 최고의 강자가 되었을까?
케일은 그에 대한 의문을 가질 필요가 없었다.
한글을 아는 이만이 읽을 수 있는 최정건의 회고록에, 이미 그 답이 있었다.
이미 그 답을 읽은 케일은 웃었다.
사락.
그의 손가락이 천천히 마지막 장을 넘겼다.
마침내 마지막 페이지가 나타났다.
동대륙 언어로 적힌 마지막 페이지가 보였다.
케일의 입가에 미소가 사라졌다.
그의 시선이 마지막 페이지에 적힌 또 다른 언어의 기록을 읽어 내려갔다.
한글로 적힌, 최정건의 마지막 기록.
케일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 웃음소리에 일행의 시선이 모였다. 케일은 조금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환하게 웃었다.
그 웃음에 멈칫하던 일행에게 케일의 경쾌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영웅은 얼어 죽을.”
버드는 케일에게 다가가다가 멈칫했다.
환하게 웃고 있지만 누가 봐도 화난 얼굴이었다. 용병왕은 케일을 살피며 물었다.
“다 기억했어?”
“어.”
“…찾았어?”
무엇을 찾았는지 물을 필요가 없었다.
하얀 별의 약점을 찾으러 온 곳이었다.
탁!
펼쳐진 페이지가 닫혔다.
책은 다시 제단 위에 놓였다.
그 위를 두꺼운 보호막이 감쌌다.
케일은 제단에서 뒤돌아서며 버드의 물음에 답했다.
“아마도.”
버드의 한쪽 입꼬리가 올라갔다.
아마도.
불확실한 대답이었지만, 최소한 실마리를 찾았다는 소리였다.
케일은 일행에게 지시했다.
“출구로 향한다.”
케일은 머릿속의 정보들을 정리하며 발끝에 바람의 소리를 사용했다.
휘이이이. 바람이 케일의 몸을 감쌌다. 케일은 그처럼 출구로 향할 준비를 끝낸 일행에게 말했다.
출구로 향한다.
“그리고 곧바로 하얀 별의 뒤를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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