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385
384화.
하지만 걸음을 옮기는 케일을 붙잡는 이들이 있었다.
“인간아! 괜찮나? 움직여도 되나?”
“움직이면 안 될 것 같은데. 쓰러지면 안 되는데.”
라온과 온이 케일의 주위를 맴돌며 연신 그를 살펴댔다.
특히 공중에 뜬 채 케일의 주위를 빙글빙글 도는 라온의 앞발에는 사과 파이가 한 조각 들려 있었다.
케일은 잠시 고민하다가 버드를 쳐다봤다.
“왜?”
버드 일리스는 어딘가 불퉁한 얼굴로 되물었고, 케일은 그러거나 말거나 제 할 말을 했다.
“물.”
“어?”
“물 없냐?”
“…왜?”
“입 헹구려고.”
버드는 살짝 성질이 난 얼굴로 아공간 주머니에서 물병을 꺼내 내밀었다. 그러고는 케일에게 건넸다.
“내가 이럴 사람이 아닌데!”
“그래, 그래.”
케일은 대충 고개를 끄덕이고는 홍을 품에서 바닥으로 내려놓고 입안을 헹궜다. 위장으로 사용했던 입안의 붉은 액체를 씻어내야 했다.
“어휴! 내 인생!”
버드가 답답하다는 듯 제 가슴을 두드려 댔으나, 신경 쓰는 이는 하나도 없었다.
“…케일.”
고룡 에르하벤이 계속해서 입안을 헹구는 케일 옆에 자리했다.
“이 액체들은 전부 다 피는 아니겠지?”
그의 시선은 아직까지 잘게 떨리는 케일의 손과 발로 향해 있었다. 기절을 하려는 기색은 없었지만, 상당히 피로해 보였다.
“네, 피 아닙니다.”
무덤덤하게 답한 케일은 입안을 헹구는 것을 멈췄다. 그러곤 고개를 들었다.
제 주위를 감싼 일행이 보였다.
앞서가던 최한, 라온, 온과 홍, 론, 비크로스, 에르하벤, 버드, 쉐리트. 다들 케일을 향해 자기 나름대로의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케일은 심장 깊숙한 곳에서 일어나는 묘한 감정의 파동을 내버려 둔 채 입을 열었다.
“에르하벤 님.”
“어.”
“표정이 좋으십니다?”
케일을 걱정스레 쳐다보던 에르하벤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들켰네?”
그 순간, 라온이 외쳤다.
“할배도 이제 왕세자처럼 웃는다! 하얀 별 보여주자!”
후우.
에르하벤은 한숨을 토해내려다 간신히 삼켰다. 그러곤 라온을 보며 입을 열었다.
“꼬맹이 넌 좋겠다.”
“응? 무슨 소리인가! 나는 지금 우리 인간이랑 똑똑한 최한이랑! 다! 다쳐서 하나도 안 좋다! 하얀 별 후려치고 싶다!”
“…이 꼬맹이가 후려친다는 소리는 어디서 배운 거야?”
에르하벤이 케일에게 시선을 보냈다.
‘너냐?’
케일은 어깨를 으쓱였다.
하지만 에르하벤은 케일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눈빛이 달라졌다.
‘너네.’
그런 뜻을 담은 눈빛에 케일을 할 말이 많아졌지만, 입을 꾹 다물었다. 왠지 저한테서 배운 것 같았기 때문이다.
케일은 입꼬리를 씰룩이며 저를 쳐다보는 버드 따위는 무시했다. 그 순간, 에르하벤이 라온의 눈동자를 빤히 쳐다봤다.
“왜, 왜 그리 쳐다보나? 할배도 내 위대함을 알아챘나!”
라온이 그 시선에 괜히 말을 이리저리 내뱉어댈 때, 에르하벤의 입이 열리며 툭 말을 내뱉었다.
“꼬맹이 너 이제 엄마랑 같이 살 수 있겠다.”
움찔.
라온의 날개가 멈칫했다.
“꼬맹이는 좋겠네.”
고룡 에르하벤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라온을 바라봤고, 동그래졌던 라온의 눈동자가 슬그머니 제 뒤를 향했다.
라온의 뒤에는 로드 쉐리트가 서 있었다.
검은 용과 하얀 사람은 흠칫하더니 서로를 어색하게 바라봤다.
그사이 케일이 에르하벤에게 물었다.
“성을 옮길 방법을 찾으신 겁니까?”
“그래. 찾았지.”
라온의 날개가 파닥이고, 라온은 다시 에르하벤을 쳐다보며 냅다 외쳤다.
“뭐냐! 할배, 뭐냐! 어서 말해주면 좋겠다!”
그리고 살짝 굳었다.
에르하벤은 그 모습에 피식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나보다는 로드님께서 더 잘 아시는 부분이지. 그렇지요, 로드님?”
흐음.
로드 쉐리트가 작게 헛기침을 하더니 입을 열었다.
“이 성과 성벽, 그리고 나는 하나로 귀속되어 있지. 이 셋을 이 성의 주인이 한 번에 다른 곳으로 이동시키면 가능할 것 같아.”
에르하벤이 진지한 얼굴로 로드 쉐리트의 말을 이어 받았다.
“다만 라온이 이 성과 성벽, 로드님까지 한번에 옮기기에는 조금의 무리가 있다는 점이지.”
“왜? 나 할 수 있다! 나는 위대하다!”
에르하벤은 라온을 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마나가 부족해. 너와 내가 힘을 합쳐도 힘들다. 로드님은 이 성에 귀속되어 있으니, 로드님의 마나는 소용이 없어.”
가만히 듣고 있던 최한이 물음을 던졌다.
“용병 길드 인명부는 모두 가볍게 옮기지 않았습니까?”
“그건 그냥 책이니까.”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쉐리트가 에르하벤 대신 최한의 물음에 답했다.
“나는 살아 있을 적 막대한 마나를 여기에 쏟아부었어. 성과 성벽, 그리고 나까지 합쳐져 어우러진 이 공간은 거대한 마나 덩어리라고 보면 된다.”
물론 성벽이나 성 자체는 평범한 건축 재료였다. 하지만 성을 유지하고 아이들을 보호하며 편안한 생활까지 가능하도록 만들기 위해 갖가지 마법진을 새기고 더하여 마나를 쏟아부었다.
로드가 죽기 전 자신의 마나를 모두 쏟아부어 만든 역작이 이 성이었다.
“그래서 이 성과 성벽은 웬만한 방어 기지보다 방어력이 우수하지.”
사실 ‘웬만한’이라고 표현할 수준이 아니었다.
그보다 더 엄청났다.
하얀 별 정도의 강자가 아니라면, 웬만한 이들은 이 성을 일부 부술 수는 있어도 파괴하거나 침입하지 못할 것이다.
에르하벤이 어깨를 으쓱이며 결론을 내었다.
“아무튼 이 마나 덩어리를 어떠한 흠집도 없이 무사히 옮기려면 이를 넘어서는 마나가 필요하다.”
성과 성벽, 로드 쉐리트. 이 마나 덩어리를 포용할 만큼의 마나가 필요했다.
“결론만 말하자면, 이 성을 옮기기 위해선 이 성이 옮겨질 땅, 이 성을 중심으로 한 거대한 이동 마법진을 새길 지식, 마지막으로 이 마법진을 발동시킬 마나가 필요하다.”
잠자코 듣고 있던 버드가 말했다.
“첫 번째와 두 번째는 있는데, 마지막 마법진을 발동시킬 마나가 에르하벤 님과 라온 님으로는 부족하다는 말씀이시군요.”
에르하벤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를 지켜보던 케일은 에르하벤과 눈이 마주쳤다.
그 순간, 케일은 고룡의 눈빛에 흠칫했다.
이상했다.
‘왜. 왜 뒤통수가 서늘해지지?’
이런 기분은 오랜만이었다.
어디 탈탈 털릴 것 같은 감각이 케일을 휩쌌다.
그때, 에르하벤의 입이 열렸다.
“케일.”
상당히 부드럽고 다정한 목소리였다.
거기다가 왕세자 알베르의 대외용 화사한 미소까지 장착했다. 저러니, 케일쯤은 지나가는 모기 한 마리로 만들 만큼의 외모 파괴력이 생겨났다.
케일은 찝찝함에 표정이 사정없이 구겨졌다.
이거 뭔가 싸한데?
그 순간, 에르하벤의 입이 열렸다.
“나… 있잖아.”
이 고룡이 왜 이래?
케일의 표정이 점점 더 떨떠름하게 변해갔다. 그런 와중에도 에르하벤은 더 부드럽게 말했다.
“나, 돈이 없다.”
“…네?”
“보석도 없어.”
순간 케일의 표정이 멍해졌다.
그 와중에 에르하벤은 상큼하게 말했다.
“털렸거든.”
에르하벤의 레어는 ‘암’에 의해 털렸다.
그래서 카로 왕국 전투 뒤에 엘프 펜드릭을 데리고 케일을 찾아왔던 에르하벤이었다.
케일은 로드 쉐리트의 조심스러운 목소리도 들렸다.
“…이 성안의 재물은 하얀 별이 털어갔어.”
성을 파괴시키고 알들을 훔쳐간 하얀 별은 당연히 성안의 보석과 진귀한 물건들을 훔쳐갔다.
아마도 그 보석과 물건들로 용병 길드를 세우고 동대륙에서 살아갈 밑바탕을 얻었을 것이다.
에르하벤이 부드럽게 말했다.
“아무래도 나랑 라온 마나로는 부족하고. 로잘린, 그 아이가 도와도 부족할 것 같아서 말이야. 부족한 마나를 채우려면 제일 좋은 게 마정석이잖아?”
맞는 말이다.
마정석으로 마나의 부족분을 메꾸면 가장 깔끔했다.
타인을 괜히 끌어들여 로드의 정체를 내보일 필요도 없고, 마법진 실행 부작용도 없고.
라온이 주변을 둘러보다가 슬그머니 아공간에서 제 저금통을 꺼내 들었다. 온과 홍도 라온의 옆구리를 누르며 자기들 것도 꺼내달라고 무언의 신호를 보냈다.
라온이 두 개의 저금통을 더 꺼내자 온과 홍은 그것을 라온에게로 슬쩍 밀어주었다. 라온의 날개가 파닥였다.
그런 평균 9세에 신경 쓸 틈이 없었다.
모두 에르하벤과 케일을 바라봤다.
“케일, 너 돈 많지?”
에르하벤은 화사하게 웃으며 말했다.
“마정석 좀 사자.”
그 순간, 케일의 입이 열렸다.
“…저 마정석 구할 수 있는데.”
정글 1구역에서 얻은 최상급 마정석. 꽤 많이 썼지만 아직 어느 정도 남아 있었다.
물론 그것들은 알베르 왕세자를 통해 로운 왕국 마법병단, 그리고 로잘린에게 넘겨졌지만, 케일에게도 아직 꽤 남아 있었고 그들에게서 부탁해 도로 받아와도 되었다.
그러나 이를 말하는 케일의 표정이 좋지 못했다.
왜냐면 이 사실은 에르하벤도 잘 알고 있을 테니까.
그간 케일 곁에서 그의 주위 마법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대강 파악하고 있을 고룡이었다.
그런데 그 고룡이 마정석을 사자고 한다.
케일의 표정이 묘하게 일그러져 갈 때.
그때, 에르하벤이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부족할걸? 하하하!”
그러곤 침을 삼키더니, 애써 장난스럽게 덧붙였다.
“로운 화폐로 한 100억 정도 써야 할걸?”
헉!
버드가 숨을 들이마셨다.
‘100억?’
지나가던 파리 이름도 아니고, 100억 정도면 어마어마한 금액이었다.
당장 용병왕인 버드도 그 정도 규모의 금액을 당장 현금화해 모으기란 쉽지 않았다.
아무리 케일 헤니투스가 부유한 백작가의 장남이라도, 그래 봤자 장남이었다.
늘 남을 구하러 다니기만 하던 이가 돈이 어디 있겠는가?
‘내 비상금이 얼마지?’
버드는 제 비상금을 계산하기 시작했다.
‘암’과의 결전 준비로 용병 길드는 갖가지 무기와 식량을 구비하느라 현재 자금 사정이 빠듯했다.
결국 사용할 돈은 제 비상금이었다. 사실 그 비상금도 대부분 용병 길드에 쏟아부어, 한 몇 년 하얀 별을 피해 도망 다닐 돈만 있는 버드였다.
계산을 하던 버드의 눈동자에 주위가 담겼다.
로드 쉐리트의 고개가 푹 숙여졌다.
저금통을 꺼냈던 라온의 어깨가 축 늘어졌다. 온과 홍의 표정은 슬퍼 보였다.
‘그래. 비상금 털자! 어디 굶어 죽기야 하겠냐!’
버드는 제 비상금을 털기로 결심했다.
그 순간이었다.
“뭐, 그쯤이야.”
응?
버드의 시선이 움직였다.
방금 ‘뭐, 그쯤이야’라고 말한 이는 분명 케일이었다.
케일은 시원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난 또. 뒤통수가 서늘하길래 뭔 어려운 일인 줄 알았네.”
…어려운데? 100억인데?
버드의 표정이 요상하게 변해갔다.
반면 케일은 찡그렸던 표정을 풀고 덤덤하게 말했다.
“한번 구해보죠. 어려운 것도 아니고.”
케일은 예전 카로 왕국 경매 당시 밤의 환희로 230억 카운드, 불의 결정으로 300억 카운드를 벌어들인 적이 있었다.
그중 일부만 현금으로 넘겨받고 나머지는 어음 혹은 증서의 형태로 보유했다.
저번에 파괴하는 불, 짠돌이를 강화하는 데 저 530억 중 100억을 쓰지 않았던가.
더불어 왕세자의 황금패도 있었다. 그걸로 50억 정도 얻을 수 있었다.
케일은 곰곰이 생각하며 툭 던지듯 말했다.
“음, 어차피 제국 수도에 한번 가야 했으니까.”
그는 에르하벤을 보며 평소처럼 물었다.
“100억이면 되겠죠?”
“어?”
“더 안 필요합니까?
”…어.”
“그럼 가져오죠. 100억 카운드 정도면 되겠죠? 아니면 100억 카운드 정도의 마정석을 구해오거나.”
“… 둘 다 상관없다.”
케일은 고룡의 답에 고개를 끄덕이며 앞으로의 계획을 가늠했다.
“모고르 제국에 가보고, 바로 현금화가 힘들면, 음, 왕세자 저하께 반 내라고 하죠.”
버드의 동공이 흔들렸다.
‘왕세자?’
…이놈이 왕세자한테 돈도 내놓으라고 할 정도로 권력을 지녔단 말인가?
아니, 그보다 돈을 어디서 그만큼 번 거야?
진짜 부자잖아?
버드의 동공이 흔들렸지만. 케일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사과 파이를 먹어서 그런지, 아니면 단순히 잠시간의 휴식으로 그런 건지 한결 괜찮아진 몸 상태에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럼 일단 최한과 마을을 다녀오고 난 뒤에 곧바로 서대륙에 잠시 갔다 오죠. 그동안 방금 말씀하신 부분들에 대해 정리 부탁드립니다.”
에르하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도 궁금함을 담아 입을 열었다.
“그 마을에서 뭘 발견했나 보네?”
케일은 최한을 쳐다보며 말했다. 최한은 어색하게 케일의 시선을 피했다.
“로드님이 말씀하신 기록서를 발견했습니다. 거기 적힌 문자는 두 가지더군요. 그중에 하나는 알 수 없는 문자였는데, 최한이 해독이 가능할 수도 있다고 해서 가보려고 합니다.”
순간 케일은 최한을 쳐다보는 쉐리트의 눈동자가 보였다. 그녀의 눈동자에 놀람이 담긴 것을 케일은 눈치챘다.
‘최정건은 이 세상에 한글을 전파하지 않았다고 했어.’
그러니 로드 쉐리트나 하얀 별이나 한글을 모를 것이다.
하지만 로드 쉐리트는 하얀 별과 달리 최정건과 친구 사이였다. 어쩌면 최정건이 차원 이동자라는, 한국에서 온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도 있었다.
“라온.”
케일은 라온을 불렀다.
“왜 그러나, 인간?”
지하 비밀 통로를 통해 마을로 가려면 마법이 있을수록 편했다.
“라온, 너도 나랑 최한과 함께 갔다 오자.”
“알았다, 인간! 역시 인간은 내가 있어야 한다!”
언제 100억에 놀라 저금통을 놓쳤냐는 듯 라온이 신이 나 답했다.
케일은 최한의 어깨를 툭 쳤다.
“가자.”
“…네, 케일 님.”
케일은 한 번 더 하얀 성 지하 통로를 통해 드래곤 슬레이어 마을로 향했다.
***
한 번 왔던 곳을 또 한 번 더 방문하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당장 하얀 별의 공격 걱정이 없어 더 여유롭게 마을에 도착했다.
그러나 그 마음까지 여유롭게 편한 것은 아니었다.
“후우.”
드래곤 슬레이어 마을 안 3층 석조 건물로 들어서는 최한은 살며시 숨을 내쉬었다.
쿵. 쿵. 쿵.
심장이 뛰었다.
그는 저보다 먼저 앞서 걸어가 제단 위에 놓인 기록서를 꺼내 드는 케일이 보였다.
최한은 케일의 손에 들린 기록서에 눈길이 멈췄다.
‘저 안에.’
저 안에 내가 이곳으로 온 것에 대한 이유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최정건이라는 분이 자신의 예상대로 진짜 삼촌인지도 알 수 있으리라.
‘아니, 그냥.’
그냥 한글을 너무 오랜만에 봐서, 심장이 미칠 듯이 뛰었다.
“최한.”
케일이 최한에게 기록서를 내밀었다. 최한은 평소처럼 무심한 케일의 표정을 보며 기록서를 향해 손을 뻗었다.
탁!
하지만 너무 긴장했기 때문이었을까.
최한의 손이 기록서를 제대로 잡지 못했고, 기록서는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촤라락.
바닥에 떨어진 기록서는 양쪽으로 펼쳐졌다.
“아, 죄송합니다!”
최한은 놀라서 얼른 책을 집으려 허리를 숙였다.
혹여나 기록서가 망가졌을까 봐 최한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정신 똑바로 차려.’
그는 스스로를 향해 말하며 최대한 마음을 가라앉히려 했다.
최한의 손이 떨어진 기록서로 향했다.
그때, 그는 펼쳐진 책 페이지가 보였다.
동대륙 공용어는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다.
한글로, 최정건이 남긴 글자가 선명하게 보였다.
최한은 책도 집지 못하고 펼쳐진 페이지를 읽어 내려갔다.
두 가지 땅의 힘 중 하나를 지닌 케일 헤니투스.
최한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케일은 가만히 숙인 최한의 등을 바라봤다.
최한은, 라온과 온, 홍이 똑똑하다고 말하는 최한은 순간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케일은 여전히 아무 말 없이 최한의 숙인 등을 응시했다.
케일은 최정건의 ‘영웅의 탄생’을 읽고 확신했다.
김록수가 읽은 ‘영웅의 탄생’은 이제 없다.
이야기는 뒤틀렸다.
지금 이 순간의 현실만이 존재했다.
케일의 머릿속.
-희생할 건가?
짱돌의 물음이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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