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384
383화.
쾅!
석창 하나와 바람막이 부딪쳤다.
이전의 굉음들에 비하면 작은 소리였다.
하지만 그 소리가 신호가 되었다.
콰앙! 쾅!
바람막을 향해 날카로운 석창의 끝이 쏘아졌다.
“…크윽!”
하얀 별은 바람막을 꿰뚫으려는 석창을 보며, 물의 장막을 조금 더 두텁게 만들었다.
“주군!”
곰족 등에 업힌 마법사가 하얀 별의 곁으로 다가왔다.
도망가라.
하얀 별의 명령에 그의 수하들이 일제히 하얀 성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마법사도 도망을 가기 전 하얀 별에게로 다가갔다.
하얀 별의 입가에 점점 더 많은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케일 헤니투스에 비하면 적은 피였지만, 그래도 하얀 별이 이리 피를 흘리는 것은 처음 보는 마법사였다.
“제길.”
이다지도 분을 참지 못하는 하얀 별도 처음이었다.
늘 어딘가 권태로운 모습으로 상황을 관조하던 하얀 별. 그가 케일 헤니투스를 보며 분노를 표했다.
하지만 그 분노는 현재 공격을 당해 도망가는 상황에 대한 분노로 보이진 않았다.
마법사는 하얀 별의 상태를 수하들 중 가장 잘 아는 만큼, 그가 무엇에 분노했는지 알아챌 수 있었다.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분노.’
땅의 힘.
그는 주군이 천여 년 동안 하늘 속성과 자연 5대 속성 고대의 힘을 모으기 위해 노력해 왔다는 것을 전해 들었다.
그럼에도 주군은 마지막 땅의 힘을 찾지 못했다.
그런데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케일 헤니투스가 자연 5대 속성을 모두 모아 하얀 별에게 대항하니, 그 사실에 분노가 치밀 만했다.
콰앙! 쾅! 쾅!
석창들이 쉴 새 없이 바람막을 두드렸다.
그럴 때마다 바람에 금이 갔다.
“쿨럭!”
그때마다 하얀 별도 피를 조금씩 더 흘렸다.
자연 5대 속성을 모두 모으지 못해, 균형이 어그러진 몸.
그 몸에 점점 더 많은 무리가 가는 중이었다.
쩌저적!
동시에 거친 바람도 조금씩 미세하게 뚫렸다. 그러나 석창들은 물의 장막을 향해 거침없이 나아갔다.
“주군!”
마법사는 결국 하얀 별에게 말했다.
“물러서셔야 합니다! 그것을 곧 얻으셔야지요!”
그것.
마지막 땅의 힘.
분노를 드러내던 하얀 별의 얼굴 위로 이내 차분함이 내려앉았다.
고대의 하얀 별이 지녔던 땅의 힘.
천여 년에 걸친 시간을 보내고서야 드디어 그 실마리를 찾았다.
‘…영웅의 탄생을 모두 읽을 수만 있었어도.’
초대 드래곤 슬레이어 네란 베로우. 그의 기록서는 두 가지의 언어로 적혀 있었다.
하나는 동대륙 공용어였고, 하나는 전혀 알 수 없는 문자였다.
네란 베로우는 그 글자는 고향의 언어라고 하면서, 어느 누구에게도 가르쳐 주지 않았다. 그리고 그 언어를 읽을 줄 아는 자가 나타난다면 그에게 그 책을 넘기라고 하였다.
분명 그 알 수 없는 글자로 적힌 글에, 고대 하얀 별의 힘에 대한 실마리가 많이 남겨져 있었을 것이다.
‘어쨌든 이제 와서는 상관없는 이야기지.’
이제 마지막 땅의 힘에 대한 실마리를 찾았고, 곧 그 힘을 손에 쥘 수 있을 것이다.
하얀 별은 균형이 무너져 뒤틀리는 내부를 가라앉히며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주군.”
마법사는 드디어 하얀 별이 물러설 기미를 보이자, 미소와 슬픔을 담아 주군을 바라봤다. 그 순간이었다.
“이대로 끝낼 순 없지.”
하얀 별은 물의 장막 너머, 바람벽 너머, 그를 향해 쏟아지는 석창들 너머 한 사람을 바라봤다.
웃고 있는 케일의 얼굴이 보였다.
그의 뒤로, 하얀 성 안으로 숨어드는 케일의 일행도 보였다.
타닥.
하얀 별은 또다시 뒤로 물러섰다.
동시에 왼손을 휘둘렀다.
“집어삼켜라.”
끼이이이!
기이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순간, 바람벽의 모습이 바뀌었다.
촤아아악.
거대한 뱀으로 변한 바람이 앞을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쾅! 쾅! 콰앙!
석창들이 부딪쳤지만, 바람 뱀은 조금도 신경 쓰지 않고 앞으로만 나아갔다.
뱀은 어마어마한 속도로 석창들을 지나쳤고, 석창은 미처 반응하지 못하고 물의 장막에 부딪쳤다.
쾅! 콰앙!
물의 장막과 석창들이 부딪치는 소리를 뒤로하고, 바람 뱀은 하얀 알갱이로 뒤덮인 땅을 가로질렀다.
케일은 저를 향해 다가오는 바람 뱀이 보였다.
하얀 별은 그제야 뒤돌아서며 물러섰다. 케일은 얼굴을 가린 하얀 가면 사이로 그에게 웃어 보이는 눈꼬리가 보였다.
가면에 가려지지 않는 입이 벙긋거렸다.
‘잘 피해.’
케일 역시 웃었다.
“피하기는.”
그는 외쳤다.
“끝까지 쫓아!”
우우우웅-
석창들이 반은 물의 장막을 두드렸고, 나머지 절반은 장막을 우회하며 하얀 별을 향했다. 끝까지 놓치지 않을 기세에 하얀 별은 물러서면서도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죄송합니다, 주군.”
마법사는 독에 중독되어 몸 안의 내부가 뒤틀리는 와중에도 하얀 별에게 사죄의 말을 건넸다.
하얀 별은 그 말에 별다른 반응 없이 오른손을 휘저었다.
촤아아아아-
바람 뱀의 속도가 더욱더 빨라졌다.
케일은 저를 향해 더욱 빨리 다가오는 바람 뱀이 보였다. 입까지 벌리며 다가오는 모습은 살벌했다.
그 순간, 케일의 머릿속으로 짱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더 힘을 쓰면 곤란하다.
케일의 온몸이 잘게 떨렸다.
하얀 왕관의 힘 덕에 하얀 별의 벼락 공격을 막았다.
케일의 힘을 거의 쓰지 않아, 몸에 힘은 많았다.
하지만 거대한 힘을 받아들이고 이를 그대로 사용한 후, 다시 한번 자신의 힘을 많이 쓰는 건 당연히 많은 부담을 지는 일이었다.
더불어 석창만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고대의 힘까지 사용하면, 그 부담의 정도는 클 수밖에 없었다.
-기절하면 안 될 상황 같다만.
짱돌이 걱정스레 말한 순간, 케일은 어깨를 으쓱였다.
그런 그를 향해 바람 뱀의 송곳니가 덮쳐졌다.
촤악!
하지만 바람은 갈라졌다.
-음, 괜한 걱정이군.
짱돌이 민망하다는 듯 중얼거렸지만, 케일은 신경 쓰지 않았다.
대신에 다른 이의 등에 업혔다.
“내가 이렇게 누굴 업고 다닐 사람이 아닌데!”
용병왕 버드는 구시렁거리며 빠른 속도로 케일을 업고 하얀 성으로 향했다. 케일은 입을 열었다.
“고맙다, 최한.”
최한의 검이 바람 뱀의 주둥이를 베었다.
최한은 곧바로 버드의 뒤를 따르며, 바람 뱀을 향해 반짝이는 검은 오러를 계속 날리면서 견제를 이어갔다. 그러면서도 담담하게 케일에게 답했다.
“아닙니다, 케일 님.”
“와! 내가 업고 있는데! 나한테는 고맙다는 말도 없네! 이거 원, 서러워서 살겠나!”
버드는 투덜거리면서도 최대한 빠르게 하얀 성으로 향했다.
성벽의 중앙에 자리한 열린 성문으로 이동하자 성문 밖으로 평균 9세들이 나오더니 케일을 향해 외쳤다.
“인간아! 얼른 와라!”
“빨리 와야 하는데!”
“바람이 바로 뒤에 있는데!”
라온의 가속 마법이 버드와 최한의 발에 걸렸다. 그들의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촤아아아아-
그러나 바람 뱀이 점점 더 빠르게 그 뒤를 쫓아왔다. 언제라도 뒷덜미가 잡힐 것 같았다.
“준비하지.”
에르하벤이 그 광경을 보며 마나를 일으켰다. 쉐리트도 방패를 집어 들었다. 동시에 론의 몸이 앞으로 쏟아져 나갔다.
“아버지?”
비크로스가 그 모습에 의아해할 때였다.
“홍아!”
온의 날카로운 외침이 들렸다.
바람 뱀이 오는 방향이 아닌 그 옆에서 단도 몇 개가 빠른 속도로 홍에게 향하고 있었다.
온이 놀라서 홍의 앞으로 자리했다. 라온이 그런 온과 홍의 앞에 자리하며 황급히 실드 마법을 펼치려 했다.
탕! 타앙! 탕!
하지만 그럴 필요는 없었다.
탕! 탕!
단도들은 하얀 방패를 맞아 땅에 박혔다.
동시에 성벽 그림자에서 몇몇 인물들이 나타났다.
묘족이었다.
온과 홍. 그중에서 가장 약한 홍을 사냥하려고 아까 전부터 전투에서 한발 물러서 있던 이들이었다.
“제길!”
묘족 한 명이 거친 말을 내뱉으며 뒤로 물러섰다.
푹!
땅에 단도가 박혔다.
성벽 위로 론이 나타나 묘족과 성벽 그림자를 향해 단도를 던졌다.
“쳇!”
“이런!”
묘족들이 뒤로 물러섰다.
아쉽다는 얼굴이었지만, 족장이 수신호를 보내자 별다른 말 없이 뒤돌아 도망치기 시작했다. 족장은 마지막으로 물러서며 온과 홍을 쳐다봤다.
저를 노려보는 온이 보였다.
“다음에 죽여야겠군.”
그의 냉막한 얼굴에 미소가 어렸다.
“반드시 죽일 기회는 오게 마련이니까.”
족장은 팔을 휘둘렀다.
손에 들린 단도가 움직였다.
챙!
그를 향해 날아오던 단도가 튕겨져 나갔다.
족장은 저를 내려다보는 론을 한 번 쳐다보고는 그도 부족민들을 따라 뒤돌아 도망쳤다.
그 순간, 론의 귓가로 한 존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문을 닫아라!”
끼이이익-
성문이 닫히기 시작했다.
버드는 닫히는 성문을 보며 더욱더 속도를 높였다.
촤아아아-
바로 뒤에서 뱀이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으아아! 이게 무슨 꼴이야!”
버드는 외치며 닫히는 문 안으로 들어섰다.
곧바로 최한이 그 뒤를 따랐다.
쾅!
성문이 닫혔다.
콰아아아앙!
그리고 성문과 바람 뱀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성문 앞으로 이미 로드 쉐리트의 하얀 방패가 세워져 있었다.
“하아, 하아.”
버드는 숨을 몰아쉬었다.
바람 뱀이 서서히 사라져 갔다. 그제야 버드의 얼굴이 구겨졌다.
하얀 별의 바람 뱀이 이리 쉽게 사라질 리 없었다.
“미친 새끼, 시간 벌려고 그런 거네!”
하얀 별은 편히 도망갈 시간을 만들려 바람 뱀을 만들어 케일을 공격한 것이다.
버드는 그걸 알아채자마자 케일을 등에서 내려놓았다.
“야! 너도 하얀 별이 시간 벌려고 바람 뱀 사용한 거 알지? 어?”
케일은 론의 부축을 받으며 땅에 내려서 입을 열었다.
이는 버드에게 답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10분 뒤쯤 하얀 별을 쫓아가던 석창들이 사라질 거다.”
케일은 온의 곁으로 다가가 그 뒤에 있는 홍을 안아 들어 쓰다듬었다. 홍은 품에 얼굴을 묻고는 앞발로 옷깃을 꽈악 움켜쥐었다.
툭. 툭.
케일은 부드럽게 홍의 등을 토닥였고, 버드는 그 모습을 보며 말했다.
“당연히 사라지지. 네가 힘이 무한정 있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 석창들이 하얀 별 뒤를 계속 쫓게 만드냐? 너한테서 멀어질수록 석창들 힘을 유지하기 더 힘들 텐데.”
하얀 별을 뒤쫓던 석창들은 결국 사라질 것이다.
하얀 별이 어디까지 갈 줄 알고, 기약도 없이 석창의 힘을 유지하는 것은 케일에게 무리였다.
버드는 이를 당연히 알고 있었다.
“어쨌든, 하얀 별이 그런 꼴로 도망갔으니 좋네! 우리도 피해 입은 게 딱히 없고! 너도 이번에 기절 안 했잖아?”
버드는 만족했다는 얼굴로 이번 전투를 복기해 나갔다.
그 순간이었다.
“그것이 끝이 아닐 텐데? 일부러 도망가게 둔 것 아니냐?”
버드는 고룡 에르하벤이 보았다.
고룡은 케일을 보고 있었다.
그 순간, 케일의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그는 품에서 물건을 하나 꺼냈다.
금빛 팽이채였다.
“쫓아가 줘.”
그리고 석창들에게 했던 명령을 그대로 했다.
“끝까지. 쫓아가.”
그 순간, 여러 목소리들이 들렸다.
‘응응! 하얀 별 뒤쫓아 갈게!’
‘크하하하, 기대하거라! 이 몸이 하얀 별의 집이 어딘지 다 알아내마!’
케일은 홍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아, 묘족들 뒤도 쫓아가.”
홍이 움찔하며 케일을 올려다봤다. 케일은 무심한 얼굴로 말했다.
“그것들부터 족쳐 버리게.”
‘걱정 마라! 나 족치는 거 좋아한다! 나는 묘족 쫓아간다! 크하하하하하하!’
‘묘족은 북쪽으로 가는데! 헤헤, 파괴, 몰살! 헤헤!’
유독 정신 나간 바람 정령들이 묘족의 뒤를 쫓아가는 것 같았지만, 케일은 그저 덤덤한 얼굴로 홍을 쓰다듬었다.
툭. 툭.
온의 앞발이 괜히 케일의 종아리를 두드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케일은 일행을 보며 말했다.
“곧 하얀 별의 기지 위치를 알 수 있을 겁니다.”
용 혼혈을 통해 암의 비밀 기지는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곰족, 사자족과 하얀 별이 어디서 지내는지는 알 수 없었다.
이번에 그 위치를 알아낸다.
그리고 동시에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땅 속성 고대의 힘.’
고대 하얀 별이 지녔던 땅의 힘.
그것을 찾아야 했다.
그 실마리는 최정건의 한글 기록서에 남겨져 있었다.
그러나 케일은 이 일을 입에 내뱉지 않았다.
대신 그는 고개를 돌려 최한을 바라봤다.
“바로 마을로 돌아가서 책을 살펴보도록 하지.”
한글로 된 기록.
케일은 현재 그걸 읽을 수 없는 사람이었다.
읽을 수 있는 자는 오로지 최한이었다.
“네. 알겠습니다, 케일 님.”
최한이 담담한 얼굴로 답했다.
하지만 케일은 긴장으로 꽉 쥔 최한의 주먹이 보였다.
“통로 열어.”
“네.”
최한이 곧바로 뒤돌아, 드래곤 슬레이어 마을 통로가 있는 방으로 향했다.
케일은 그런 최한의 등을 가만히 응시했다.
‘저놈이 나에게 어디까지 말을 할까?’
최한은 과연 읽은 대로 케일에게 전부 말할까?
숨길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나쁜 의도보다는 본인을 희생할 의도일 터.
동시에 케일은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김록수일 적, 내가 읽었던 영웅의 탄생은 도대체 누가 쓴 것이지?
그 책의 저자도 네란 베로우였다.
하지만 최정건이 남긴 책은 아니었다.
드래곤 슬레이어 마을에 최정건이 남긴 영웅의 탄생에서는 최한에 대한 어떠한 언급도 없었으니까.
케일의 표정이 묘해졌다.
‘재밌냐?’
김록수는 회사 입사 동기를 보며 뚱한 얼굴로 물었다.
그에 동기는 책을 흔들어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 완전. 김록수, 너도 예전에 중고딩 때는 읽었다며?’
‘예전에야 읽었지만. 지금은 이 세상이 괴물 나오고 마법에 검까지 나오는 판타지인데 무슨 맛으로 읽어.’
‘음.’
입사 동기 최정수는 잠시 고민하더니 김록수를 보며 말했다.
‘판타지 소설들은 대부분 해피엔딩이 많거든. 그 맛에 본다. 난 해피엔딩이 좋거든.’
김록수는 최한의 등을 보며 최정수가 생각났다.
최정수.
그의 집안은 대대로 무술을 다루며, 특히 조선의 검법을 연구하는 곳이었다. 그 덕에 검 하나는 기가 막히게 다루는 놈이었다.
최정수는 제 검을 닦으며 김록수에게 말했다.
‘야, 팀장님이 일 관두면 농사할 거라고 했잖아? 나도 그렇고.’
‘어. 그게 왜?
’아니, 내가 내 고향 가서 농사짓자고 했잖냐.’
김록수는 최정수의 고향에 대해서 몇 번 들었었다.
‘대대로 너희 집안사람들이 산다는 그 마을?’
‘어. 시골 마을이지.’
그때 옆에 있던 한 기수 위의 선배가 최정수에게 물었다.
‘그런데 왜 너희 집안사람들은 그 마을에 사냐?’
‘음, 그게요.’
최정수는 잠시 고민하더니 답했다.
‘원래부터 계속 거기 산 건 아닌데. 음, 몇 대 때부터 그렇게 했더라? 아무튼 저희 집안은 그 터를 못 떠납니다.’
‘왜?’
씁쓸한 얼굴로 검을 닦던 최정수의 모습이 케일의 머릿속에 기록되어 있었다.
그는 덤덤하게 말했지만, 감정은 숨기지 못한 얼굴이었다.
‘그냥. 가족들이 돌아올 곳이 있어야 한다고. 그래서 누구라도 남아 터를 지켜야 한다고. 대대로 집안 어른들이 이 터는 지켜야 한다고 했거든요.’
김록수는 최정건, 최한, 최정수. 이 세 명의 최씨에 대해서 생각했다.
케일이 읽은 영웅의 탄생은 최정건이 썼다.
김록수가 읽은 영웅의 탄생.
그건 누구의 회고록일까?
케일은 최한의 뒷모습을 응시하며 다리에 힘을 주었다.
멈추기에는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았다.
빌어먹을.
백수는 언제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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