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731
730화.
그러나 보라색 ‘굴욕’보다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금 용 할배야! 인간, 이상하다! 계속 저 노란색 조각에서 인간의 힘이 느껴진다!”
오동통한 앞발은 노랗게 물든 조각을 가리키고 있었다.
“짱돌, 불벼락, 물, 방패! 인간 지금 치고받고 엄청 싸우는 것 같다!”
“심각한데!”
“이건 좀 아닌데.”
에르하벤의 곁으로 다가온 라온, 홍, 온이 차례대로 말하며 심각한 얼굴로 씩씩거리고 있었다.
“그런데 라온.”
“왜 그러나, 할배야?”
“나는 아무것도 안 느껴지는데?”
고룡의 말에 온과 홍도 살짝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는 라온에 대한 의심이 아닌, 궁금증이었다. 라온은 답답하다는 듯 앞발로 제 가슴을 두드려댔다.
“어쨌든 나는 느껴진다! 우리 인간 힘쓰는 거! 그게 문제다!”
고룡, 묘족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문제다.
홀로 권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케일.
그리고 그 케일이 왜 권태에서 저렇게 고대의 힘을 남발하며 싸우는지.
모든 것이 의문이고 문제 상황인 것은 틀림없었다.
***
최정건은 살가운 말투로, 하지만 살벌한 태도로 말을 건네는 케일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무슨 대화?”
“일단 첫 번째.”
케일은 최정건과의 대화를 짧게 끝내고 싶었다. 길게 대화를 나눌 상대가 아니었으니까.
“선배. 조금 전에 사용했던 무엇이든 베어내는 힘. 그거 선배의 힘 맞습니까?”
최정건이 사용한 이수혁의 힘.
‘대격변은 내가 수능을 치고 난 후 일어난다. 이수혁 팀장은 대격변 후에 베어내는 힘을 가졌다고 알려져 있어.’
그리고 지금 이 환상 속 시점은 김록수가 17살 때였다.
그렇다면 최소한 최정건이 이수혁보다 먼저 이 능력을 가지고 있었단 소리다.
그렇기에 케일이 가지는 의문은 단 하나였다.
어째서 이수혁 팀장이 최정건의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지?
“…….”
최정건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케일은 그것이 긍정임을 알아들었고 그래서 물었다.
“그 힘 남한테 넘길 수 있습니까? 아니면 배울 수 있습니까?”
최정건은 케일을 탐색하듯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왜?”
툭 내뱉듯 물었지만, 그 어조는 날카로웠다.
“탐나?”
탐나냐고 최정건은 케일을 가늠하듯이 물었고.
“네.”
케일은 가타부타 설명하기 싫어 대충 답했다.
망설임 없는 그 대답에 최정건은 움찔하였고, 그는 이내 케일의 시선을 피하며 다시 차를 수색했다. 하지만 말은 끝맺지 않았다.
“타인도 이 능력을 사용할 수 있다.”
최정건은 무심하게 말했다.
“단, 내가 이 힘을 포기하면.”
그의 얼굴은 냉정했고 어떠한 감정 한 톨도 보이지 않았다.
“난 이 힘을 잃으면서까지 남에게 넘겨줄 생각은 없다. 네가 탐할 부분이 아냐.”
피식.
하지만 케일은 얕은 웃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남에게 넘겨줄 생각이 없다고?’
그러면 어째서 몇 년 후, 이수혁 팀장이 저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지?
그 답은 쉽게 나왔다.
최정건은, 네란 베로우는, 이 능력을 포기하고 이수혁 팀장에게 넘겼다.
“후우.”
케일은 한숨을 내쉬었다.
‘도통 이해하기가 힘드네.’
최정건은 지금 사냥꾼을 사냥하는 데 혈안이 되어있었다. 그런 사람이 몇 년 후에 왜 사냥하는 데 용이한 힘을 아무 연관도 없는 이수혁에게 넘긴 것일까?
‘의문은 의문을 낳는 법이지. 지금은 사실에만 집중한다.’
케일은 더 의문을 만들지 않았다.
답은 언젠가 나오기 마련이었으니까.
최정건은 이제 박소진의 반파되다시피 한 트럭 운전석을 살피고는 케일에게 물었다.
“그럼 넌 왜 그 힘을 가지고 있지?”
“알고 싶습니까?”
최정건은 케일을 응시했다.
“내가 누군지도 이미 알고 있었던 건가?”
케일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네란 베로우? 아니면 최초의 드래곤 슬레이어? 짱돌이 마지막까지 지킨 존재?”
마지막까지 지킨 존재.
그 말을 내뱉는 순간, 최정건의 무심한 얼굴에 살짝 틈이 생겨났다.
케일은 그 틈 사이를 비집고 나온 감정을 알아챘다.
‘…죄책감……?’
최정건은 짱돌에게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이내 그 틈을 지워내며 철벽과도 같은 단단한 얼굴을 그려내었다.
“필요 없다.”
“뭐가요?”
“네가 가진 힘. 그 힘들에 대해 알고 싶지도 않고, 알 필요가 나에게 하등 없다는 말이다.”
“거짓말하네.”
곧바로 말이 튀어나와 버린 케일은 그 순간 최정건이 주먹을 꽉 쥐는 것을 보았다.
-후우.
불벼락 짠돌이가 한숨을 내쉬었지만, 케일은 그것보다 저 주먹이 더 눈에 들어왔다.
‘그만 건드려야겠는데?’
살짝 쫄렸다.
환상이지만 살짝 무서웠다. 그래서 말했다.
“나중에, 오늘이 끝날 때쯤 되면 자연히 다 알게 될 겁니다.”
그때였다.
위잉- 위이잉- 위잉–
“빌어먹을.”
신호음이 들린 순간, 최정건의 얼굴이 보기 드물게 일그러졌다.
경찰차가 저 멀리 도로 끝에서 이곳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최정건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CCTV나 전봇대 하나 없는 한적한 논 근처 2차선 도로. 주위에 민가 하나 없었다.
콰직! 콰직!
그는 갑자기 들려오는 부서지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블랙박스.”
케일이 태연한 얼굴로 정이랑의 승용차에 달린 블랙박스를 석창으로 부숴버렸다.
“스포츠카에도 있습니까?”
“난 그런 거 안 키워.”
케일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최정건의 옆에 섰다.
경찰차는 이제 코앞이었다.
“어떻게 할 겁니까? 정이랑 차라도 타고 갈까요?”
최정건은 대답 대신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들었다.
텔레포트 마법 스크롤이었다. 그것도 상당히 비싸 보이는 것으로.
“이걸 어디서-?”
케일이 물었고 최정건이 담담하게 답했다.
“돈이면 다 구한다.”
“돈 많나 봅니다?”
최정건은 단호하게 답했다.
“어.”
케일도 부자였지만, 왠지 모르게 부러워졌다. 그는 부러움을 숨기지 않은 표정으로 말했다.
“그럼 얼른 이수혁 보러 가죠.”
“…뭐?”
최정건은 이번에야말로 매우 놀라며 케일을 바라봤다.
“네가 어떻게 이수혁을……?”
“왜요? 아까 전에는 최정수 보여주려고 했던 것 아닌가?”
“너-”
순간 최정건의 얼굴이 굳어졌고 케일은 그 안에 머무는 살벌한 빛을 알아채고는 있는 힘껏 최정건의 어깨를 손으로 꽉 잡았다.
“내가 사냥꾼이거나 네 적이면 미끼 노릇을 가만히 하고 있었을까?”
최정건은 케일의 눈동자 안에 머무는 불꽃을 읽었다. 케일은 조곤조곤 속삭이듯이 말했다.
“내가 가만히 있었던 건 최정수를 미끼로 두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야. 알았죠, 선배?”
케일은 웃으며 스크롤을 가리켰다.
“얼른 가죠. 경찰들이 보기 전에.”
최정건의 눈동자에 혼란이 스며들었다. 그는 묻고 싶은 것이 점점 더 많아졌다.
고대의 힘, 이수혁, 최정수와의 관계, 자신에 대해 아는 것 등등. 물어야 할 것이 갈수록 쌓여나갔다.
그가 아는 고1 김록수는 여기에 없었다.
그러나 그는 물을 수 없었다.
김록수의 눈동자는 질문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분위기는 일반적인 고등학생의 것이 아니었다.
‘…군주.’
위기 상황에 누군가를 이끌어본 자들만이 내뿜을 수 있는 특유의 분위기와 단호함이 김록수에게서 풍겨져왔다.
그것은 재능이 아닌 연륜의 영역이었다.
최정건은 두 손에 힘을 주었다.
쫘아아악-!
텔레포트 스크롤이 찢어지며 케일과 최정건의 몸을 감싼 그 순간, 경찰차에서 내린 경찰이 외쳤다.
“지금 무슨 상황입니, 헉! 사, 사람이-!”
비명과도 같은 경악을 들으며 케일은 텔레포트에 몸을 맡겼다.
***
바스락.
케일은 풀을 밟고 선 채로 시선을 정면에 두었다.
긴박한 촬영 현장.
그곳과는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한 보조 출연자들이 대기하는 장소. 의자 하나 없이 공터와 같은 흙바닥이 그들을 위한 장소였다.
케일은 그 공터가 보이는 숲 사이로 공터 한쪽 나무에 등을 기대고 있는 이수혁을 바라봤다.
“선배.”
그는 옆에 선 최정건에게 말했다.
“이수혁을 나처럼 이용할 생각이 있습니까?”
최정건은 대답하기에 앞서 케일의 얼굴을 바라봤다. 여전히 이수혁을 바라보는 케일의 표정은 무심했지만 그 눈동자에는 즐거움, 반가움. 그리고 짙은 그리움이 존재했다.
“아니. 없다. 그는 이용 가치가 없어.”
가치가 없다.
잔인하지만 솔직한 표현이었다.
그렇기에 거짓이 없었다.
“선배. 아까 정이랑과 박소진에게 물었던 가주는 무엇입니까? 사냥꾼 집단도 우두머리가 따로 있는 겁니까?”
“내가 설명할 이유가 있나?”
케일은 최정건의 물음에 피식 실소를 흘렸다.
“나를 미끼로 사용하려고 했으면 기본적인 정보는 줘야죠? 내 말 틀렸습니까?”
틀리지 않았다.
최정건은 그를 쳐다볼 필요도 없다는 듯 촬영장 근처를 둘러보는 데에 시선을 쏟는 케일을 보며 입을 열었다.
“오래전, 사냥꾼의 중심에 ‘업의 굴레’라고 불리는 가문들이 있었다.”
문득 케일은 정이랑이 박소진을 죽이며 ‘업을 바칩니다.’라고 했던 것이 떠올랐다.
그 뒤 정이랑이 붉은 면과 함께 사라진 것으로 보아 그 행위에 연관이 있을 터. 어쩌면 차원 이동의 비밀일지도 몰랐다.
“현재는 다섯 가문으로, 그 다섯 가문을 이끄는 이가 ‘가주’이고 그들이 대부분의 사냥 계획을 수립한다고 알고 있다.”
“선배의 목표는 가주겠군요?”
“아니.”
케일의 시선이 이곳에 와 처음으로 최정건에게 향했다. 최정건은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왕의 후계.”
최정건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어렸다.
스스스-
그의 모습이 어느새 제약을 풀기 전의 짧은 갈색 머리칼로 변하고 있었다.
“다섯 가주는 왕의 후계를 보호하며 후계가 성장하여 이룰 대계를 기다리고 있지.”
드르르–
그때, 진동음이 퍼졌다. 케일은 최정건의 손에 들린 휴대폰을 쳐다보았고, 최정건은 담담하게 전화를 꺼버리며 답했다.
“곧 촬영한다고 빨리 오라고 하는군.”
케일은 시선을 돌렸다.
“자, 자. 도박장 조폭 역 일어나고!”
반장으로 보이는 이가 소리치자, 이수혁이 몸을 꼿꼿이 하며 그쪽으로 다가갔다.
“아… 너는.”
반장이 이수혁을 힐끗 보고는 고개를 가로저었고 이수혁이 어색하게 미소를 지어 보이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별수 없지! 사람이 부족하니까. 근데 이수혁, 감독님이 너 잘라도 난 모른다?”
“괜찮습니다.”
이수혁이 사람 좋게 웃어 보였으나 반장은 찝찝한 얼굴로 고개를 돌려버렸다.
“쯧. 분위기가 너무 튀어. 주연감보다 더 튀면, 아, 진짜.”
칭찬이면서도 칭찬이 아닌 반장의 투덜거림을 이수혁은 모른 척하며 제 손을 만지작거렸다. 뻘쭘해서 하는 행동이었지만, 반장 눈에는 그것마저 홀로 누아르를 찍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어휴.”
그는 한숨과 함께 이수혁에게 물을 한 병 던져주었다. 나름 챙기는 행동이었다.
“감사합니다.”
“다음엔 나 말고 저쪽으로 가!”
반장은 주조연 배우들이 있는 곳을 턱짓하고는 이수혁을 지나쳤다. 이수혁은 그런 반장에게 사람 좋게 웃어 보이며 다시 고개를 숙여 짧게 인사했다.
최정건은 그 일련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케일의 입이 천천히 열리는 것을 보았다.
“새롭네.”
부드러운 미소가 그의 입가에 걸려있었다.
그러나 뒤이어 나오는 말은 그 미소와 정반대였다.
“왕의 후계로 이루려는 대계가 무엇입니까?”
“아직 불명확해.”
최정건은 제 말에 ‘음’ 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김록수를 볼 수 있었다. 김록수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사냥꾼의 목표, 전투, 도망. 그리고 이수혁 능력까지.”
알 건 다 알았네.
케일은 이제 결정했다.
‘떠나자.’
이수혁과 최정수 얼굴도 봤고. 정보도 최소한 들어야 할 것을 들었다.
더 이상 시간을 끌고 여기 있을 수도 없는 일.
“그럼 선배는 이만 촬영하러 가세요. 아, 피 때문에 힘들려나?”
“…내가 가면 너는?”
케일은 의아해하는 최정건에게 웃으며 답했다.
“나도 가야죠.”
그 순간이었다.
케일은 이 ‘환상’을 벗어나 앞으로 나아가고자, 현실로 가고자 마음먹었다.
그 확고한 마음은 변치 않을 것이었고.
스스스스—-
“이야.”
케일은 저를 감싼, 이 숲과 촬영장 전체를 감싼 노란색 가루를 볼 수 있었다.
“이것들이 내 기억을 잡아먹었나 보네.”
“너!”
그 순간, 최정건이 놀라서 케일을 바라봤다.
케일의 발끝이 서서히 금이 가듯 조금씩 부서지며 흐려지고 있었다.
“선배.”
놀라고 당황스러워하는 최정건에게.
“이건 모두 환상입니다.”
“…어?”
“내 과거의 환상.”
케일은 점점 사방이 노랗게 물들며 먼 곳에서부터 조금씩 장면들이 사라져가는 것을 보았다.
이수혁도 점점 노란 가루로 뒤덮이며 없어져 갔다.
“네가 환상, 아니, 내가 환상-”
혼란스러워하는 최정건은 흐려져 가는 케일을 붙잡았다.
“넌 누구지? 김록수가 맞나? 미래에서 왔나?”
케일은 선선히 답해주었다.
“김록수이고 동시에 케일 헤니투스죠. 영웅의 탄생에 나온. 그리고 미래에서 온.”
그 순간, 케일은 섬뜩한 느낌을 받았다.
스스스—
최정건도 이제 노란 가루에 뒤덮이며 그 모습을 잃어갔다.
그러나 그는 케일이 답한 순간, 그 눈빛에 폭발할 것만 같은 열기가 서렸다.
“케일 헤니투스……!”
그는 그 이름을 짓씹듯이 외치며 케일에게, 김록수에게 외쳤다.
이제 그의 하체는 노란 가루로 사라져갔다.
“최초의 사냥꾼 가문은 총 일곱 가문이었다!”
현재는 다섯 가문이었다.
최정건은 두 손으로 케일의 어깨를 꽉 잡았다.
“아주 오래전, 그중 붉은 피의 가문은 멸문. 하얀 피의 가문은 사냥꾼을 배신하고 도망쳤다!”
스스스-
노란 가루가 그의 상체를 지우고, 이제 얼굴마저 뒤덮으려는 그 짧은 찰나.
“템스가의 후예여!”
최정건은 꼭 알아야만 한다는 듯 외쳤다.
“붉은 피는 멸문하지 않았다! 붉은 피를 찾,”
환상은 사라졌다.
케일은 끝까지 최정건의 말을 모두 듣지 못했다. 하지만 그 문장을 완성할 수 있었다.
“…붉은 피를 찾아라.”
곧 케일의 표정이 얼음장처럼 차가워졌다.
화가 나서도 아니었고, 냉정해져서도 아니었다.
“…뭐야?”
당황스러운 상황에 핏기가 싹 가신 것이었다.
-오류. 오류.
노란색 권태를 넘어서자 초록빛이 케일을 감싸기 시작했다.
초록색 환상의 이름은 ‘실패’.
케일은 자신이 과거에 겪은 혹은 미래에 겪을만한 실패들을 떠올려보았다.
-오류. 오류.
그런데 갑자기 재시험을 한다고 말했던 그 목소리가 다시금 들려왔고 케일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뭐야, 이게?”
그의 사방으로 초록빛을 품은 수많은 영상들이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모두 그가 겪은 과거의 실패.
혹은 케일이 스스로 앞으로 생길지도 모를 실패라고 생각하는 것들이었다.
-오류. 원인, 파악.
목소리는 말했다.
-시험자의 마음속 가장 최악의 실패 다수 존재. 실패 간의 차등이 없음.
-과거의 실패를 모두 잊지 못하고 동등하게 되새기고 있음.
-미래의 실패에 대한 불안감 역시 동등하게 되새기고 있음.
-다수의 최악의 실패 존재로 하나를 특정 불가.
으음.
케일은 침음을 삼켰다.
그러니까, 케일에게 있어 과거의 실패는 모두 같은 실패이며 미래에 겪을지도 모를 실패에 대한 불안감도 모두 같아서.
‘최악의 실패를 하나로 특정 못 한다는 소리네?’
…좋은 건가?
케일은 이 소리가 좋다는 것인지 안 좋다는 것인지 파악이 잘 되지 않았다.
현재와 미래를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과거의 실패 요인과 미래의 불확실에 대해 되새기는 것. 그것은 케일에게 있어 아무렇지 않은, 당연히 정보를 파악하고 분석하기 위해 해야 할 일이었으니까.
-시험자에게 적합한 시험 특정 불가. 시험 불가.
목소리는 시험 불가를 두 번 외치더니 이내 단호하게 말했다.
-해당 시험 파기.
쩌저적—!
수많은 초록빛을 품은 영상들이 깨어져 나갔다.
등급 외 괴물 전투에서 홀로 살아남았던 실패.
입사 후 처음으로 인명 피해를 목격했던 때의 실패.
팀장이 된 후, 부하 직원을 처음으로 잃었을 때의 실패.
미래에 혹시 주위 사람들이 다칠지도 모를 때 겪을 실패.
수많은 실패들이 부서져 나갔다.
‘…오, 이러면 이득인데?’
시험 불가라는 소리는 다음 시험으로 넘어간다는 것 아냐?
한 단계 건넌다는 소리니, 케일에게는 당연히 이득이었다.
-매뉴얼에 따라 다음 시험으로 넘어갑니다.
오. 좋은데?
케일의 얼굴에 다시 온기가 감돌 때쯤.
-다음 시험, 굴욕. 굴욕의 시험 난이도를 2배로 조정.
음?
…이건 좀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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