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747
외전 4. 눈이 오는데? 맞다! 꽃도 핀다! 1
라온이 가장 처음 인간에 대해서 알아챈 것은 악의였다.
그 후로도 몇 년간 라온이 파악한 인간은 악함이 당연한 존재였다.
하지만 라온이 좁고 어두운 동굴을 빠져나올 수 있었던 것은 인간의 호의 혹은 선함 때문이었다.
그때부터 라온은 인간은 쉽게 정의 내릴 수 없는 존재임을 조금씩 알아갔다.
* * *
라온이 똑똑하고 상냥한 로잘린에게 글자를 배울 때 보았던 동화책 에 이런 내용이 적혀 있었다.
라온이 4살 때까지 보았던 세상은 온통 검었다. 물론 음식이나 여러 가지 색깔을 지닌 존재들이 많았지만, 홀로 남은 라온의 눈에 담긴 세상은 검고 어두웠다.
온통 하얀 세상.
동화책 속 곰돌이는 하얀 눈이 내리는 세상에서 온통 하얀 눈으로 뒤덮인 세상을 보며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다.
‘로잘린아! 나 이거 가져도 되나?’
‘그럼요. 가지셔도 돼요.’
라온은 왠지 모르게 이 책이 마음에 들었다.
물론 ‘위대한 드래곤의 역사’, ‘용사와 친구 드래곤’, ‘전쟁의 역사’, ‘평화와 다툼’, ‘싸움의 기술’, ‘전사, 그 위대한 이름’ 같은 책들도 재밌고 흥미로웠으나 이상하게 라온은 이 하얀 그림이 눈에 밟혔다.
시간이 흘러, 12월 초.
해리스 마을 한쪽 구석에 자리한 저택에 머무르게 된 라온은 두 앞발로 테이블 위를 두드렸다.
탕! 탕!
“곰돌이가 그렇다고 했다! 정확히 말하면 이 동화책의 저자가 눈에 대해 그렇게 말했다!”
홍이 라온이 펼쳐둔 동화책 의 하얀 그림을 보며 슬쩍 꼬리를 아래로 늘어트렸다.
“으음.”
홍은 신이 나 눈을 반짝이는 라온을 힐끗 보다가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눈은 추워서 별론데.”
그러고는 누나 온을 힐끗거렸다.
너무 작게 중얼거리는 목소리를 온은 듣지 못했는지 동화책 속 하얀 그림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홍은 그런 온을 보며 괜히 입을 삐쭉거렸다.
‘하늘이 흐려.’
묘족 마을에서 지낼 때 한두 번 보았던 눈은 잿빛 하늘에서 흩날리듯 내리는 비와 비슷했다.
이렇게 그림처럼 눈이 쌓이지도 않았고, 오히려 비가 올 때보다 더 땅이 질척거려지고 금세 시꺼멓게 더러워졌다.
‘…그림과 비슷한 걸 본 적도 있기는 있는데.’
누나 온과 함께 마을에서 도망쳐 나와 헤니투스 영지로 오기 전 겪었던 겨울. 그때, 딱 한 번 저 동화책 속 그림처럼 온통 하얗게 변한 풍경을 마주한 적이 있었다.
그때 본 눈은 비와 다른 커다란, 형태를 뚜렷이 지닌 눈이었다.
‘그래 봤자 하늘이 흐린 건 똑같았는데.’
하지만 그 눈과 함께 몰아치는 차가운 바람에 홍은 제대로 눈을 뜨고 그 풍경을 볼 수 없었다.
너무 추웠으니까.
누나 온이 없었다면, 그 추위에 얼어버렸을지도 몰랐다.
홍은 저도 모르게 툭 내뱉듯 중얼거렸다.
“겨울은 춥고… 먹을 거 구하기도 힘들고… 별론데.”
그때였다.
타앙-!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홍의 귓가에 닿았다.
검은 용과 고양이 두 마리의 고개가 소리가 들린 곳으로 휙 움직였다.
“비크로스야, 괜찮나?”
“칼은 조심해야 하는데!”
타닥.
고양이 모습의 온이 테이블에서 가뿐히 내려서고는 비크로스에게로 다가갔다.
“괜찮아요?”
“…….”
비크로스는 한껏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그는 기가 차다는 듯 제 손바닥을 내려다보다가 온의 물음에 시선을 잠시 온에게 두었다가 무뚝뚝하게 답했다.
“…신경 끄도록.”
그제야 홍이 밝은 얼굴로 외쳤다.
“괜찮은가 본데!”
“다행이다, 비크로스야! 힘들면 쉬면서 해라!”
온도 비로소 고개를 끄덕이고는 홍과 라온이 있는 테이블 위로 돌아갔다. 그러고는 라온과 홍에게 말했다.
“여기서 떠들면 안 될 것 같은데. 위에 올라가자.”
“좋다!”
“응!”
라온이 동화책을 두 앞발로 꼭 쥐며 날아올랐고, 홍이 꼬리를 살랑이며 온의 뒤를 따랐다.
“우리 방에 가자!”
비크로스는 라온이 외치는 ‘우리 방’이 각자에게 내어준 방이 아닌 케일 헤니투스의 방임을 알고 있었지만, 그 말을 굳이 수정해주지 않았다.
“…하!”
다만 탄식과도 같은 짧은 웃음을 흘리고는 허리를 숙여 바닥에 떨어진 식칼을 주워 들었다.
그는 매끄럽다 못해 반짝이는 서늘한 칼날에 비치는 제 얼굴을 볼 수 있었다.
한껏 미간이 찌푸려져 있었다.
그의 귓가에 잔뜩 힘이 없는, 투덜거리지만 묘하게 슬픔이 담긴 목소리가 맴돌았다.
‘겨울은 춥고… 먹을 거 구하기도 힘들고… 별론데.’
비크로스는 결국 식칼을 대충 도마 위에 올려두고 장갑을 벗었다.
“빌어먹을.”
그는 제 귓가를 매만졌다.
그때, 무심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괜찮냐?”
이 별장 주방에는 온, 홍, 라온. 그리고 비크로스를 제외하고 두 사람이 더 있었다.
“…네. 괜찮습니다.”
비크로스가 대충 흘리듯 답했고.
“…뭐, 그럼 다행이고.”
케일이 상당히 떨떠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전까지 온, 홍, 라온이 있던 테이블 바로 앞 의자에 케일이 앉아있었다.
“도련님, 레몬 꿀차를 더 가져다 드릴까요?”
그리고 케일 뒤에는 론이 상당히 온화한 미소를 지은 채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굳이-”
“더 드시죠.”
“…그래.”
케일은 론이 건네는 찻잔을 받아 들었다.
그리고 다시 상당히 찝찝한 얼굴로 텅 빈 테이블 위를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고개를 돌렸다.
주방 창 너머, 초겨울이라기에는 상당히 맑고 푸르른 하늘이 케일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으음.”
꼭 유난히 밝게 웃는 케일을 쳐다보는 왕세자 알베르의 표정처럼. 케일의 표정이 딱 그 정도로 떨떠름하고 찝찝하게 변해갔다.
“으음.”
케일은 침음을 흘렸고, 론은 그 모습을 인자한 미소로 바라봤다. 그는 살짝 시선을 돌렸다. 아들 비크로스가 하던 것을 멈추고 밀가루를 꺼내 들어 반죽을 시작했다. 아마도 쿠키를 만들 생각인 듯싶었다.
‘눈이라.’
케일과 비크로스를 바라보던 론의 눈동자가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그의 눈동자에도 케일과 마찬가지로 푸르른 하늘이 담겼다.
“오.”
그때, 케일이 짧은 감탄을 흘렸다.
메리의 해골 몬스터 몇 마리가 하얀 뼈를 뽐내며 비행을 하고 있었다.
오독오독.
케일은 어제 구운 쿠키를 먹으며 멍하니 푸른 하늘과 해골 몬스터들을 바라보았다.
의자가 마치 침대인 것마냥 한껏 늘어진 채 앉아있던 그는 입을 열었다.
“론.”
“네, 도련님.”
“영주성에 매년 날씨 기록이 있나?”
“있죠.”
“한스한테 시켜서 최근 10년간 날씨 통계 좀 가져오라고-”
케일은 지시를 내리며 잠시 론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음!’
그리고 흠칫 어깨를 떨었다. 한껏 인자한 척하는 미소가 론의 입가에 걸려 있었다. 못 볼 것을 본 기분에 고개를 돌렸다가, 케일의 미간은 더 찌푸려졌다.
“공자님!”
창문 너머 우렁찬 함성이 들려왔다.
늑대족 아이들과 라크가 케일을 향해 팔을 번쩍 들고 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초겨울임에도 반팔 차림인 늑대족 아이들을 보며 미간을 찌푸리던 케일은 이내 탄성을 흘렸다.
“아.”
늑대족 아이들 너머 최한이 먼지 하나 없는 모습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통계가 저기 있었네.”
해리스 마을. 어둠의 숲 인근 날씨 통계에 대한 평균치를 가장 잘 아는 인물이 눈앞에 걸어오고 있었다.
“하. 귀찮아.”
케일은 흐느적거리듯 자리에서 일어나, 저택 현관문으로 향했다.
자그마치 5일 만에 바깥으로 향하는 걸음이었다.
론이 소리 없이 다가와 담요를 둘러주었다.
‘…무서운 노인네.’
케일은 그 은밀함에 소름이 돋아 추워졌지만, 일부러 쳐다보지 않고 현관문 밖으로 향했다.
“세상에! 공자님께서 드디어 밖으로……!”
부집사 한스의 말은 온전히 무시하며 케일은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최한에게 다가갔다.
“케일 님.”
최한이 곧 비장한 표정으로 케일을 맞이했다.
“무슨 일이 있습니까?”
“…하.”
케일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최한은 이다지도 케일이 심각한 얼굴로 깊은 한숨을 내쉬는 모습을 근래에 보지 못했다.
깊게 파인 미간의 주름은 그때를 떠올리게 했다.
론이 암에 당해 팔을 잃고 인어 독에 중독되어 돌아왔을 때.
그때를 떠올리게 했다.
‘음.’
최한의 눈빛이 더 깊게 가라앉았다.
케일의 어깨너머 열린 현관문 안으로 비크로스가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저 인간이 저러는 것은 또 처음 보았다.
‘…이상한데.’
최한은 재빠르게 론과 케일의 상태를 살폈다. 둘 다 멀쩡했다.
그런데 비크로스 저놈이 왜 저러지?
“최한.”
“…네, 케일 님.”
최한은 입안이 바짝 말라 갔다. 덩달아 라크와 늑대족 아이들도 긴장 어린 기색으로 케일을 쳐다봤다.
그러거나 말거나 케일은 저 멀리 해골 비행 몬스터와 함께 이쪽으로 다가오는 메리를 쳐다보며 툭 내뱉었다.
“보통 어둠의 숲에 첫눈이 언제 오냐?”
“…네?”
“…하.”
케일은 멍하니 되묻는 최한을 보며 두 손으로 제 얼굴을 쓸어내렸다.
“…내 참.”
진짜 살다 살다 별걸 다-.
케일은 차마 말을 잇지 못한 채 떨떠름한 얼굴을 했다. 최한은 두 눈을 깜박이다가 론의 비릿한 미소를 보며 뭔가 좋은 일이 있구나 싶었다.
그렇기에 답했다.
“음. 지금이 12월 초니까요. 제가 겪었던 바로는.”
어둠의 숲. 이 근방에서 최한보다 오래 산 인간은 없다.
“언제 눈이 와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응?”
“지금 당장 올 수도 있고. 한 달 뒤에 올 수도 있고. 아니면 한밤중에 자다가 이미 눈이 내렸을 수도 있고요.”
“…그래?”
“네.”
그 순간이었다.
툭.
최한은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고개를 돌리니, 라온이 작은 책 한 권을 두 앞발에서 놓쳤다. 온이 후딱 그 책을 받아 들었으나, 라온이 상당히 비장한 표정으로 최한에게 말했다.
“…똑똑한 최한아, 자는 새에 눈이 올 수도 있나?”
“그렇지? 음, 요 몇 년 새에 첫눈은 다 밤에 왔던 것 같은데? 해 지고 나서 오거나.”
“…맞다! 당연히 그럴 수 있다!”
상당히 심각한 표정으로 라온이 도로 저택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아, 머리야.”
케일이 골치가 아프다는 얼굴로 고개를 절레절레 가로저어댔다.
“케일 님?”
최한은 그 연유를 몰라 케일을 의문 어린 눈동자로 바라봤지만, 케일은 대답 대신 다시 터덜터덜 상당히 느릿한 걸음으로 주방으로 향했다.
그 모습을 따라 바라보던 최한은 비크로스의 서늘한 눈빛을 받을 수 있었다.
“…왜 저래?”
“글쎄.”
론이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최한을 지나쳐 케일에게로 향했다.
급격하게 기분이 나빠진 론을 보며 최한은 연신 이유를 알지 못했다.
그리고 이때까지만 해도, 모두 작은 해프닝 정도로 여겼다.
라온의 어마무시한 진심을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으음.”
라온이 통통한 두 볼을 부풀리며 동화책 속 내용을 떠올렸다.
라온은 케일이 명목상으로 만들어주고 사용하지 않는 자신의 방에서 영상 통신구를 켰다.
-라온 님?
“반갑다, 로잘린아.”
통신 대상은 착하고 똑똑한 로잘린이었다.
“착하고 똑똑한 로잘린아, 내가 궁금한 것이 있다.”
브렉 왕국으로 가 현재 로운 왕국과 브렉 왕국 간의 협력 문제로 여러 협상을 진행 중인 로잘린은 조금 피곤했지만 환한 미소를 지었다.
라온의 이런 연락은 처음이었으니까.
로잘린은 동그란 검푸른 눈동자가 자신을 바라보자 절로 웃을 수밖에 없었다.
-네. 무엇이 궁금하세요?
“…나는 부수는 것만 할 줄 안다. 파괴력 높은 건 할 줄 아는데, 폭신한 것은 힘들다.”
-네?
“폭신한 눈은 어떻게 만드나?”
-…네?
업무에 지쳐 있던 로잘린은 뜨겁게 타오르고 있는 어린 용의 이글이글한 눈빛에 저도 모르게 등골이 서늘해져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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