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81
80화.
거대한 해일이 대지를 덮었다.
불을 지배하는 푸른색의 물들이 화마를 씹어 삼켰다. 그리고 일대의 모든 것들을 집어삼켜 버렸다.
“케일 님!”
“공자-!”
그 물은 케일도 삼켜 버렸다.
최한은 멈췄던 발을 빠르게 내디뎠다. 로잘린이 가속 마법을 사용해 그를 제치고 먼저 앞으로 달려 나갔다.
케일이 보이지 않았다.
거대한 파도는 적아의 구분 없이 모든 것을 삼켜 버렸다.
취이이이이익-
엄청난 양의 수증기가 1구역에서 피어올랐다.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수증기였다.
그것은 하나를 의미했다.
불이 꺼진다.
검은 연기 대신 하얀 수증기가 비를 내리는 하늘 위로 치솟아 올랐다. 늑대 소년 라크는 이를 굳은 채로 멍하니 바라봤다. 그는 발이 차가워져 와 고개를 숙였다.
거대한 물이 1구역을 덮친 후 다시 흘러내려 라크에게까지, 그리고 안전지대까지 빠르게 흘러넘쳤다. 하지만 라크의 발에 닿는 물은 파도처럼 폭력적이지 않았다.
“아.”
라크는 옆에서 들려오는 탄성에 고개를 돌렸다. 여왕을 향해 달려가던 그녀의 수하들이었다. 그들은 멍하니 바닥의 물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천막에서 고개를 내밀고 있던 정글인들과 궁금해서 천막 밖에 있던 정글인들. 그들이 모두 천막 밖으로 나왔다.
쏴아아아-
비가 내렸다. 그들은 비 아래에서 자신들의 터전을 바라봤다.
취이이이익-
여전히 수증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앞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붉은 불길 또한 보이지 않았다.
“고, 공자님!”
라크는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그도 최한과 로잘린을 따라 1구역으로 달려갔다. 로잘린과 최한은 이미 리타나와 텐이 있는 곳까지 도달했다. 그들이 당도하자, 리타나는 비로소 정신을 차렸다.
그녀는 이미 물에 흠뻑 젖어 있었다. 그리고 분명히 보았다.
“케일 님!”
“케일 공자-!”
최한과 로잘린이 저렇게 외치는 케일이 어떻게 되는지 보았다.
파도가 불보다 먼저 집어삼킨 것은 케일이었다. 그 남자가 먼저 휩쓸렸다.
“테, 텐!”
그녀가 텐을 부르자 텐이 곧바로 움직였다. 텐은 수증기가 피어오르는 경계선 안으로 네 발을 움직였다. 그때였다.
취이이익-
쏴아아아-
수증기와 빗소리. 그 두 가지 소리 사이로 다른 한 소리가 들려왔다.
휘이이잉-
바람 소리였다.
마치 봄의 바람과 같았다. 부드러운 바람이 텐과 리타나를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그 바람은 최한과 로잘린에게까지 닿았다. 그 바람에 그제야 두 사람은 달려오던 것을 멈췄다.
“아, 맞다.”
하. 로잘린은 탄식과 같은 웃음을 흘렸다. 순간 당황해 잊고 있었다. 이성적인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녀가 두 손으로 눈가를 쓸어내리자 새로운 광경이 보였다.
“케일 님.”
최한은 부드러운 바람이 수증기 사이로 하나의 길을 만드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 사이로 은빛이 보였다.
저 빛을 최한은 알고 있었다.
희미한 바람이 거대한 수증기 사이로 작은 길을 만들며 그 안의 풍경을 얼핏 보여주었다.
검은 대지. 불에 타버리고 남은 흔적들이 보였다.
그 흔적들을 밟으며 서 있는 이가 보였다.
이제는 보이지 않는 불과 닮은 붉은 머리칼의 남자.
거대한 은빛 날개와 방패가 남자를 감싸고 있었다. 리타나는 텐이 멈춘 것도 모른 채 그 광경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파아앗.
은빛 날개가 활짝 펼쳐지며 방패와 함께 사라졌다. 그 자리에는 남자, 케일만이 서 있었다. 케일이 살짝 비틀거렸다.
리타나의 눈동자가 커졌고 흑표범 텐이 움직였다. 최한과 로잘린은 경계선을 뛰어넘으며 케일에게 다가갔다. 케일은 손으로 머리를 부여잡은 채 인상을 찡그리고 있었다.
그의 머릿속으로 검은 용 라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물 구경한다고 순간 실드를 까먹었다! 그래서 조금 늦었다! 미안하다, 인간!
피차일반이었다. 케일도 자신이 만든 파도를 보고 감탄하느라 부서지지 않는 방패를 까먹어 버렸다.
-아 맞다, 실드!
그러다가 검은 용 라온이 외치는 말과 펼쳐진 실드에 정신을 차리고 방패를 펼쳤다. 그래서 그는 순간 물 폭탄을 잠시 맞아 띵한 머리를 부여잡았다.
‘쓸데없이 힘을 많이 써버려 가지고.’
이게 무슨 일인가. 홀딱 젖어서 으슬으슬 추웠다.
-정말 미안하다! 내, 내가 위대하지 않았다!
4살의 처절함이 담긴 목소리에 케일은 어지러운 머리를 부여잡으며 작게 속삭였다.
“그래도 네 덕에 살았다.”
-이, 이런 약한 인간 같으니라고! 나는 바보다!
케일은 라온이 저러는 것을 말리고 싶었으나, 그럴 수 없었다. 가까이에 최한과 로잘린, 그리고 리타나와 텐이 다가왔기 때문이다. 최한이 바로 케일을 부축했다.
“괜찮으십니까?”
“괜찮아요?”
로잘린은 홀딱 젖은 케일에게 곧바로 체온 유지 마법을 사용했다.
“내가 설마 다칠까. 로잘린 씨도 잘 알면서.”
태평한 목소리에 최한과 로잘린은 서로를 바라봤다. 케일의 곁에는 라온이 있었다. 그리고 케일에게는 부서지지 않는 방패가 있었다. 지금은 그 사실이 떠올랐다.
그때 퉁명스럽다 느껴질 만큼 심드렁한 목소리가 두 사람에게 닿았다.
“뭘 그리 내 이름을 크게 계속 불러요. 그러니 빨리 나와야 했잖아.”
투덜거리는 케일은 젖은 머리칼과 헝클어진 옷을 바로 했다. 한없이 여유로워 보였다. 하지만 그가 서 있는 자리는 모든 것이 다 타버린 대지 위였다.
‘물이랑 상성이 안 좋나?’
케일은 저번에 위티라와 처음 만났을 때도 그렇고, 물 근처에만 가면 홀딱 젖는 것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축축해져서 들러붙는 옷자락이 꽤 거치적거렸기 때문이다.
케일은 자신을 부축하고 있는 최한에게서 떨어지며 똑바로 섰다. 어차피 다친 곳도 없고 심장의 활력으로 컨디션은 좋았다.
“가자.”
그는 걸음을 내디뎠고 그 뒤를 최한과 로잘린이 따랐다. 두 사람이 웃고 있었지만 케일은 딱히 신경 쓰지 않은 채 자신들과 조금 떨어진 곳에서 우뚝 멈춰 서 있던 리타나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흑표범에서 내려선 상태였다.
“리나 씨.”
부드러운 목소리에 리타나는 케일을 똑바로 볼 수 있었다.
그녀는 케일이 괜찮은 것을 확인한 후, 다른 것들을 보느라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위퍼 왕국을 넘어서면 시작되는 푸르른 숲. 정글. 아름답다고 책에 실릴 만큼 유명한 1구역 정글이 지금은 까맣게 변해 있었다.
그 광경에 숨이 턱 막혀왔다.
“크르르르.”
케일을 보던 리타나는 텐의 울음소리에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흑표범 텐이 검게 변한 땅과 재만 남은 자연을 보며 제 머리를 검은 땅에 비벼댔다. 리타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때, 다시 케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만.”
“…네?”
케일을 바라보자 그가 가리키는 곳을 볼 수 있었다.
“아.”
수하과 안전지대, 정글인들과 동물들이 보였다. 지금 자신이 보아야 할 곳이 어딘지 그녀는 깨달았다. 자신은 검은 숲이 아니라, 저쪽을 바라봐야 했다. 그녀의 귓가로 케일의 목소리가 닿았다.
“이제 저는 할 일이 없을 것 같습니다.”
그녀는 다시 케일과 시선을 마주쳤다. 부드러우면서 강한, 그리고 여유로운 모습. 그녀는 그가 한 일을 봤다. 지금도 피어오르는 수증기. 잔불들을 끄는 물을 만든 장본인.
자신이 착각했다. 약한 사람이 아니었다. 강한 사람이다.
“…얼마만큼의 힘을 사용하셨나요?”
양이 한정적인 힘이라 했다. 리타나는 힘이 얼마나 남았는지 그것이 궁금했다.
“그럭저럭 남았습니다.”
케일은 쓸 때는 좋았으나 쓰고 나니 쓸데없이 힘을 너무 많이 쓴 것 같아 속이 쓰렸다. 그의 입가에 저도 모르게 씁쓸한 미소가 생겼다. 아까웠다.
“…알겠습니다.”
애써 씁쓸함을 감추며 짓는 미소에 리타나는 경계선을 넘지 못하고 서 있는 수하들, 그리고 안전지대에서 다가오는 정글인들을 보며 물었다.
“케일 씨, 같이 가시겠어요?”
이 자리의 영웅은 그였다. 그가 한 일만큼 찬사와 박수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리타나의 생각과 케일의 반응은 달랐다.
“여왕 폐하.”
“리나.”
그녀는 호칭을 바로 해주었다.
“아뇨, 지금 필요한 건 여왕 폐하, 바로 리나 씨 당신입니다.”
케일은 안전지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리타나도 따라 돌렸다. 비를 맞으며 울고 웃는 정글인들. 수증기가 사라지며 검은 대지가 보였음에도 그들은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며 서로를 얼싸안았다.
케일은 저들의 앞에 설 생각을 하니 피곤함이 몰려왔다. 그렇기에 케일은 좋게 좋게 마무리하고 싶었다.
“모두가 함께 이 주간 버틴 간절함의 힘이라 생각합니다. 전 주목받고 싶지 않습니다.”
물에 젖어 창백한 얼굴의 남자는 말했다.
“석양이 지는 그 아름다운 곳, 그곳으로 가보고 싶습니다. 얼른 석양을 보러 가고 싶네요.”
빨리 마정석만을 챙겨서 떠나고 싶다. 이번 정글 일은 평소보다 많이 움직였다.
“…로운 왕국이 부럽네요.”
“네?”
케일은 리타나의 말을 제대로 듣지 못하고 그녀를 바라봤다. 리타나는 잔잔한 미소를 띠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닙니다.”
리타나는 텐 위에 가벼이 올라탔다. 그리고 경계선을 넘었다. 흑표범 위에 올라타 꼿꼿이 허리를 편 그녀는 작은 체구였지만 정글인들보다 높은 자리에 있었다. 그녀는 목에 힘을 주며 외쳤다.
“불은 꺼졌다! 모두 그 광경을 보았을 것이다!”
그녀는 외쳤다.
“자연은 시간처럼 공평하다! 시간이 지나면 우리는 다시 우리의 숲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오늘은 새로운 시작을 축복하는 날이 되리라!”
크아아아!
흑표범 텐이 뒤따라 동조하듯 커다란 울음소리를 터뜨렸다.
쏴아아아-
빗소리가 잠시 정적을 채웠다. 그리고 잠시 뒤.
우와아아아!
불이 사라진 자리를 사람들의 함성이 가득 채웠다. 지금도 케일이 만든 물길이 1구역의 시작지점에서 해안가까지 계속해서 흘러가며 잔불들을 꺼나갔다.
-인간, 감기 걸린다! 빨리 가서 쉬어라!
케일은 라온의 보챔을 흘려들으며 리타나 수하들의 호위를 받았다. 수하들이 데려다준 곳은 급히 그를 위해 따로 마련된 조용하고 나름 깨끗한, 좋은 천막이었다.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 말씀해 주십시오.”
“필요한 것은 따로 없고. 조용히 쉬고 싶습니다. 그리고 될 수 있으면 내일이라도 떠나고 싶군요.”
케일과 함께 우림을 넘어 정글로 왔던 수하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케일에게 긍정의 답을 건넸다.
“네. 최대한, 무엇이든 최대한 잘 준비해 놓겠습니다.”
케일은 수하들이 나가자, 천막 안을 둘러보았다. 최한을 비롯한 다른 이들은 다른 천막으로 안내받았다. 하지만 케일을 따라온 이도 있었다.
“라온.”
그의 부름에 투명화하고 있던 검은 용이 모습을 드러냈다.
쯧. 케일은 혀를 찼다. 그는 수건을 집어 들어 홀딱 젖은 검은 용을 벅벅 닦았다. 파도 구경하느라 제 몸에도 실드를 두르는 걸 까먹은 용이었다.
“너나 닦아라, 인간! 감기 걸린다!”
얼씨구. 케일은 4살의 행동에 코웃음을 치며 얼굴을 거칠게 닦아댔고 라온은 어푸푸거리며 가만히 닦였다.
케일은 수건을 휙 던져 버리고는 다른 수건으로 대충 머리칼을 털어내며 품에서 빌로스에게 받았던 구슬을 하나 꺼내 던졌다.
“연결.”
“알았다, 인간.”
라온은 무엇이 좋은지 씩 웃으며 군말 없이 구슬, 마법 통신구를 연결했다. 케일은 나무 의자에 걸터 앉았다. 마법 통신구가 케일의 앞에 날아와 놓이더니 영상 통신이 연결되었다.
곧 마법 통신구 위로 한 사람이 나타났다.
-뭐야? 꼴이 왜 그래?
왕세자 알베르였다.
-물에 젖은 생쥐 꼴이군.
비웃듯 올라간 한쪽 입꼬리를 보며 케일은 리타나에게 짓던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런 미소 짓지 말지?
역시 안 통했다. 케일은 곧바로 평소의 미소를 지으며 나무 의자에 몸을 기댔다. 그 한가하고 나태해 보이는 모습이 알베르는 익숙했다.
“로운 왕국의 별이신 저하, 스텐 후작가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3주. ‘나올 수 없는 길’ 우림이 있는 호이크 마을에 도착하기까지 걸린 시간. 그 시간 동안 케일은 여러 가지를 진행해 왔다. 그중에 하나.
-어떻긴. 주인이 바뀌어가는 중이지. 도대체 이걸 왜 궁금해하는 것이지?
그때 영상 통신구 음성이 아닌, 케일의 머릿속으로 검은 용 라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드디어 복수의 때인가!
스텐 후작가와 베니온, 그들이 검은 용 라온에게 행한 짓들.
라온이 온전히 과거의 학대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후작가의 관련자들에 대한 복수가 필요했다. 케일은 라온의 복수 계획을 둘이서 남게 될 때마다 자장가처럼 들어야 했다.
용은 당한 것을 결코 잊지 않았다. 망가진 시간과 뭉개진 자존감을, 용은 보상받고자 하였다. 그것이 난폭한 지배자라 불리는 용의 본성이었다.
알베르는 탐색하는 눈초리로 케일을 지그시 응시했다.
-받은 게 있어서 그냥 가르쳐 준다만. 도통 알 수가 없군.
“저하가 좋아하실 만한 일을 하기 위해서지요.”
입에 침 하나 바르지 않고 거짓을 말하는 케일을 보며 알베르는 코웃음을 쳤다.
그러나 케일은 진심이었다.
“진짜입니다만.”
겸사겸사 알베르에게도 좋은 일이었다. 알베르는 케일의 저 표정이 찝찝했지만 일단 자신도 그에게 볼일이 있었다. 그렇기에 말했다.
-빨리 왕성으로 오도록.
“네.”
왕성으로 가긴 갈 생각이라 순순히 답했다. 물론 케일은 제 볼일 다 보고 피로도 풀며 돌아갈 생각이지만.
그는 왕세자와 몇 가지 대화를 나눈 뒤 영상 통신을 종료했고, 식사 후 푹 잠이 들었다. 물론 라온의 복수 계획을 자장가처럼 들어야 했다.
그리고 다음 날.
“리나 씨, 가보고 싶습니다만.”
케일은 리타나에게 해안가로 떠나고 싶다고 말했다. 더 있을 이유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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