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ing Memory RAW novel - Chapter 34
34화.
34화
문고리를 잡는 서진의 허리를 뒤에서 끌어안는다.
“못 가. 내가 안 보내.”
한혁이 서진을 억지로 돌려세웠다. 붙잡고서 입을 맞춘다. 서진은 거부하지도 끌어안지도 않는다. 다물린 입술을 끝없이 노크하다 다급하게 블라우스를 스커트에서 빼어 냈다. 단추를 푸는 손이 떨려 몇 번이고 놓친다. 미간에 깊이 주름이 팼다. 젠장.
서진이 손을 잡았다.
“이러지 마.”
“싫어.”
손을 뿌리치는 동시에 혀가 입술 사이로 들어왔다. 서진은 주춤주춤 뒤로 물러섰다. 소용없다는 듯이 바싹 몸을 붙였다. 숨을 쉴 수가 없어 서진은 고개를 비틀었다. 한혁은 혀를 빨아들이며 꺼내어진 블라우스 끝자락으로 손을 넣어 호크를 풀어 버린다. 서진이 긴장으로 몸을 떨었다. 눈을 맞추며 물었다.
“내가 누구야 ”
서진의 입술이 열리지 않는다.
“내 이름 물었어.”
손이 가슴을 움켜쥐었다.
“최……한혁.”
숨을 몰아쉬며 서진은 한혁을 쏘아보았다.
“달라진 게 뭐야 불과 10분 전, 네가 이 침실로 들어올 때와 달라진 게 뭐지 윤서진 네 애인 아냐 ”
“억지 부리지 마! 그땐, 네가 세림 아들인 걸 몰랐잖아!”
허리를 팔로 감나 싶더니 몸이 번쩍 들렸다. 한혁은 잔뜩 찡그린 얼굴이다. 등으로 차가운 시트가 닿았다. 팔로 가두고서 내려다보고 있다.
“내가 변했어 내가 최석원의 아들이면, 다른 사람이 되는 거야 네가 입 맞추던 사람이 아니야 네 입술에서 나왔던 수많은 달콤한 말들은 다 뭐였어. 거짓말은, 내내 윤서진이 했구나.”
차마 자신이 정기훈의 조카라 그러냐는 말은 하지 못한다. 끝없이 의심하며 한혁은 블라우스를 단숨에 끌어 올렸다. 오직 이 행위만이 서진에게서 자신의 자리를 인정받는 것이라는 듯. 위쪽 단추 두어 개만 겨우 푸른 블라우스는 위로 벗겨져 양 손목에 걸렸다. 피할 틈 없이 브래지어를 밀어 올리고 가슴을 입술에 물었다. 참지 못하고 신음이 터졌다.
‘내가 밀고 들어가면, 넌 무너질 테니까.’
서진의 머릿속이 빙빙 돈다. 어차피 처음부터 게임이 되지 않는 상대였다. 매일 무너지고 새로이 그었던 선이 완전히 붕괴되는 날, 그의 가슴속 깊이 유보된 영역으로 서진이 침범하는 날, 얼음 조각이 박힌 심장을 파고드는 날에 이렇게 될 줄을 알고 있었다. 그랬기에, 끝없이 불안했다.
오직 입술에만 집중하던 키스가 그랬듯, 한혁은 이번에도 한 번으로 멈추지 않는다. 입술과 혓바닥 사이에서, 동그랗고 부드러운 가슴이 당겨지고 이지러지길 반복했다. 환히 밝힌 불 아래에서 붉은 자국이 선명하다. 흰 피부에 온통 자국을 만든다. 견딜 수 없어, 그만, 그만, 그만해! 숨 가쁘게 소리쳤다. 남자가 잠시 멈추고서 말한다.
“윤서진, 다른 말을 해 봐.”
“무슨 말을.”
올려진 팔의 연약한 부분을 깨물고 핥으며 들썩이는 어깨를 누른다.
“그만두라는 말은 하지 마. 안 들어줄 테니까. 이름을 불러. 그러면서 생각해. 내가 누군지.”
“한혁 씨!”
“좋아. 다시 불러 봐.”
가장 예민한 부분을 삼킨다. 절로 신음이 흘러나온다. 스커트를 밀어 올리고 스타킹을 내리고 다리 사이로 손을 가져간다.
한혁 씨. 한혁 씨.
서진이 흐느끼며 불렀다. 한혁이 등에 팔을 둘러 서진을 일으켰다.
손목에 걸린 블라우스와 브래지어를 완전히 벗겨 바닥에 던졌다. 한혁은 아직 타이를 매고 있었다. 신경질적으로 넥타이를 풀고 와이셔츠를 벗어 던졌다. 벨트를 풀고 바지를 벗고 트렁크 외에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다.
“앞으로 와.”
시트로 몸을 가리고 우두커니 앉아 있는 서진을 끌었다. 몸은 생각보다 더 가늘고 부드럽고, 지독하게 예민하다. 침대 끝에 걸터앉아 벌어진 허벅지 사이로 들어서게 하였다. 허리를 바싹 끌어당기고 손을 잡아 내려 가려진 가슴을 드러나게 한다. 제가 만든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몇 번이나 상상했었지, 어떤 느낌일까. 최대한 아름다운 몸을 상상했어. 지금은, 그 상상이 우스울 정도야. 미치도록 좋아.”
서진의 얼굴이 붉어진다. 불은 여전히 환하게 켜져 있다.
“불, 꺼 줘.”
“다음번엔 그럴게.”
예민해진 끝을 입속으로 넣으며 이빨로 긁는다. 파르르 떨면서 서진은 열 손가락을 짧은 머리칼 속에 박아 넣었다.
“오늘은 이대로, 끝까지 멈추지 않아.”
한혁이 스커트 지퍼를 내리고 스타킹을 벗길 때까지 서진은 아무 말 없이 내내 한혁의 얼굴만 끈질기게 쳐다보기만 하였다. 넋이 나간 듯한 눈으로 담담한 얼굴로 한혁을 바라보았다. 붉은 자국이 나고, 타액이 묻은 가슴이 시렸다.
“이리 와.”
침대 위에 걸터앉은 채로 한혁이 팔을 벌렸다. 서진이 순순히 목을 끌어안으며 포개어 앉았다. 한혁이 고개를 비스듬히 틀어 입술을 찾았다.
“키스해, 윤서진.”
한혁이 오만한 요구를 하며 가슴을 그러쥐었다. 아파, 맞닿은 입술에서 신음 소리가 울려 들어온다. 깊이, 더 깊이 입속을 찔러 넣는다. 배꼽까지 열기로 아릿하다. 뒤로 빼려는 고개를 뒷머리를 단단히 잡아 움직이지 못하게 한다. 입술을 뗐을 때 서진은 숨을 몰아쉬었다.
“얘기할래. 잠시만.”
“말해.”
“나를 위해, 세림 버릴 수 있어 ”
“응.”
“정말이야 ”
“응.”
“내일이라도 ”
“지금 당장이라도.”
서진이 눈을 감았다. 신호나 된 듯이 침대로 같이 넘어졌다. 속옷 아래로 손을 넣었다. 낯선 느낌에 절로 이가 악물린다. 서진이 입술을 깨물었다가 떼어 냈다.
“그럼, 버려. 버리고 나를 가져.”
“좋아.”
속옷을 완전히 내리며 한혁이 들어왔다. 온몸이 바르르 떨린다. 서진은 손으로 입을 막아 비명을 감춘다.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서진의 손을 입에서 잡아뗀다. 서진은 통증으로 헐떡인다. 눈에 비치는 고통을 읽으며 남자의 미간이 찡그려졌다. 움직임을 멈추고서, 아무것도 묻지 않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최한혁.”
힘을 그러모아 최대한 아무렇지도 않은 목소릴 냈다.
“아프다고 비명 지르기 싫어. 그러니 키스해 줘.”
입을 맞추며 한혁이 들어왔다. 참아 내는 서진이 안타깝다. 그리고 정신이 나가 버리도록 좋다. 완벽하게 맞물린 후, 등 뒤로 손을 넣어 서진을 꽉 끌어안았다. 으으, 작은 소리가 귀를 자극한다. 몸을 뒤챌 때마다 이번엔 지나치게 예민한 감각에 한혁이 입술을 짓씹을 지경이다. 더 이상 참을 수가 없다.
“깨물고, 할퀴고, 소리 지르고, 때리고, 욕하고. 뭘 해도 좋아. 참지 마.”
“아니, 싫어. 넌 그런 거만 기억할 거잖아.”
고집스런 답에 한혁이 웃는다.
“견디기 힘들 거야.”
서서히 시작되는 움직임에 저절로 허리가 뒤틀렸다.
“서진아, 고개 돌리지 마. 나 봐.”
의지대로 몸이 움직여지지 않는다. 참아 내는 일이 할 수 있는 전부처럼 느껴진다. 남자가 뺨을 감싼다. 몇 번의 부름에 흔들리며 눈을 떴다. 아름다운 얼굴이 보인다. 최한혁. 그 얼굴에 반했던가. 낮은 웃음소리에 반했던가. 눈을 뜬 채로 눈물이 맺힌다.
“너 우는 거 싫은데…….”
한혁이 귀에 속삭인다.
“오늘은 울게 하고 싶어.”
남자의 호흡이 무너진다. 무너진 호흡 사이로 거칠고 낮은 목소리로 말하였다.
“나를 부르며, 밤새 울게 만들 거야.”
그 말이 신호나 된 듯 울음이 터졌다. 감각의 파도 때문만은 아니었다.
늘어진 몸을 번쩍 들고서 한혁이 어디론가 걸어간다. 시야가 흔들려 눈을 감는다. 더운 물이 머리 위로 떨어졌다. 거품을 잔뜩 인 스펀지가 몸 위를 매끄럽게 움직인다. 너무 능숙해서 묻고 싶어진다. 기다란 손가락이 거품 낸 머리칼 사이를 쓱쓱 빠르고 꼼꼼하게 씻어 냈다. 가슴에 얼굴을 묻게 하고 머리 위로 샤워기를 가까이 대어 헹궈 냈다.
“왜 이렇게 잘해 ”
“씻는 건 매일 하니까.”
한혁이 서진의 고개를 들게 하였다.
“씻어 주는 건 처음이야.”
서진을 더운물 아래 세워 놓고 비스듬히 돌아서서 제 몸을 닦기 시작했다. 서진이 스펀지를 받아 등을 문질렀다. 한혁이 눈썹을 찡그리며 돌아보았다. 서진이 거품이 묻은 가슴부터 손바닥을 미끄러뜨렸다.
“흉터가 있네.”
옆구리를 만지며 물었다.
“오토바이 사고.”
“여기에도.”
허벅지 안쪽 상단에 남은 상처 모양을 가늠해 보듯이 손가락을 움직였다. 한혁이 손을 잡아떼어 냈다. 샤워기를 끄고 먼저 나가서 가운을 걸쳤다. 배스 타월을 펼쳐 들고서 이리 와, 서진을 불렀다. 머리를 말려 주는 동안 옆구리의 흉터를 자꾸만 쓰다듬었다.
“하지 마.”
“싫어. 만질 거야.”
“갈비뼈에 금이 갔었어. 다행이었지. 완전히 부러지지 않아서.”
“여긴 ”
허벅지를 스치자 한혁이 미간을 찌푸렸다.
“좀 더 상처가 깊었어. 살이 너덜너덜해졌었는데, 잘 꿰맸어.”
“아팠겠다.”
“그 상처가 생긴 사고 이후, 할머니가 날 미국으로 보내셨어.”
한혁이 서진을 커다란 수건에 둘둘 말고서 아이를 안아 올리듯 양팔로 들어 올렸다.
“무겁지 않아 ”
“응, 무거워.”
서진이 웃음을 터뜨렸다.
“다이어트 해야겠네.”
“하지 마. 절대. 완벽하게 예쁘니까.”
침대에 눕히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타월을 벌린다. 새삼 부끄러워 몸을 옆으로 돌렸다. 한혁이 서진의 등과 자신이 밀착되도록 옆에 붙어 누웠다. 이불을 끌어 올리며 말했다.
“이제 잠시 눈을 붙여. 깨워 줄게.”
서진은 허리를 안은 손을 가만히 덮어 쥐었다.
“세림.”
“응.”
“내 회사이기도 해.”
“응.”
“나는 한혁 씨가, 상무 하면 좋겠어.”
“무슨 말이야.”
한혁이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
“말 그대로야. 상무님이라니, 멋있잖아. 회사로서도 더없이 잘된 일이지.”
한혁은 어깨를 잡아 서진의 몸을 돌리며 물었다.
“버린다고 했잖아. 왜 그래.”
“테스트였어.”
서진이 미소 지었다.
“바보야, 세림이잖아. 너 안 끼워 준다고 해도 피 터지게 싸워서 자리 만들어야지. 다 만들어 준 자리 무섭다고 도망갈 생각을 해 ”
“네가, 날 버릴 작정이야 ”
한혁이 서진의 몸을 양팔로 가두었다. 서진은 고개를 저었다. 목을 끌어안아 몸을 일으키고 입을 맞추었다.
“나는 이제 도망 같은 거 안 해. 해 봤는데 별거 없더라. 패배감만 평생 지고 갈 뿐이야. 너한테서도 마찬가지야. 난 시애틀로 가지 않아. 너도 비겁하게 도망가지 마. 이미 십수 년 그런 식으로 살아 봤잖아. 이젠 정경애 회장의 손자, 최석원 부회장의 아들, 최한혁, 네 인생을 책임져.”
“내 옆에 있을 거야 ”
“그럼, 난 아무 데도 가지 않아. 내 사랑에도 내 회사에도 최선을 다해야지.”
한혁이 서진을 꽉 끌어안았다. 물기 젖은 머리가 목덜미에 닿아 소름이 돋는다. 남자의 완력에 몸이 으스러질 듯하다.
“서진아, 나 버리지 마. 도망가지 마.”
“그러지 않아. 그럴 거라면, 오늘 밤 벌써 도망갔겠지.”
한혁의 얼굴에 기쁨과 불안이 번갈아 일렁였다. 서진이 매끄러운 근육의 모양을 하나씩 어루만졌다. 남자는 얼굴도 몸도 그림으로 남기고 싶을 만큼 아름답다. 남자의 입술에서 더운 숨이 뿜어 나온다. 가슴으로 입술을 내리려다 쇄골에 입을 맞추는 것으로 숨을 고른다. 검은빛 눈은 여전히 묻고 있다.
정말 나를 버리지 않을 거야
사람의 마음을 너무 빨리 읽게 되어 버린 아이가 애틋하고 슬프다. 서진이 남자의 콧날을 만진다. 입술을 만지고 입을 벌려 검지로 치열을 훑는다. 뜨거워, 입속은 너무나 뜨겁다.
“나를 한 번 더 안아도 좋아.”
불안이 사라진다면. 오늘 하루, 완벽한 연극쯤이야.
평온한 잠을 자고 있다. 가슴에 얼굴을 묻은 남자를 조심스레 쓰다듬어 본다. 창 너머 강을 비추는 것은 새벽하늘이다. 곧 날이 밝겠구나, 새벽빛이 사라지겠구나. 서럽고 슬퍼, 서진은 몸을 가늘게 떨었다. 남자가 잠결에도 팔을 둘러 껴안는다. 서진은 까무룩 다시 졸기 시작한다.
햇빛에 눈이 부시다. 겨우 눈을 뜨자, 남자가 어깨에 입을 맞춘다.
“예쁜이, 잘 잤어 ”
서진이 눈을 깜박이자 이마에 한 번 더 입을 맞춘다.
“팔.”
남자가 말하는 대로 팔을 들어 뻗는다.
“이쪽도.”
다림질된 흰 와이셔츠를 입혀 주며 남자가 웃었다.
“너무 크네. 손이 안 보여.”
소매를 두세 번 접어 걷었다. 단추를 목 끝까지 꼼꼼히 채우고 손을 잡아 일으켰다.
별달리 아침으로 먹을 게 없다며 내온 스콘과 커피 한 잔씩을 들고 식탁에 마주 앉았다.
“보통 아침 잘 안 먹어 ”
“운동 갔다가 거기서 샌드위치 같은 거 먹기도 하고. 시간이 잘 안 나서 거르기도 하고. 계속 새벽에나 잘 수 있어 밥보다 잠이 고프더라고.”
“뭐 하느라고.”
“회사 좀 파악하느라. 회장님이 되게 무섭게 시키셔서.”
한혁이 멋쩍은 듯 웃었다.
“그래, 파악은 다 잘했어 ”
“그럭저럭.”
“사정 별로지 ”
그가 씁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 더 잠 못 자고 일해야겠습니다, 상무님.”
서진은 담담하게 웃었지만 한혁은 미소를 거두고 그녀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의심을 거두지 않는 관찰의 시선을 피하였다. 서진의 핸드백에서 핸드폰 진동 소리가 침묵을 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