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IZE RAW novel - Chapter 1009
01008 Omnibus – Queen Of Silhouette. =========================================================================
늘설영의 말대로, 인질은 동서남북 방면으로 각각 일 킬로미터쯤 떨어진 곳에 있었다.
중독당해 쓰러진 채로.
예상했지마는, 네 명 전부 구출하지는 못했다.
동쪽부터 시계 반대 방향으로 시작해서, 안현과 안솔은 무난히 구할 수 있었다.
서쪽에서 정신을 잃은 황금 표국 로드를 발견했을 때는 아슬아슬했었다.
독이 전신에 퍼져서 해약도 소용이 없어, 결국 화정을 사용해 독액을 제거했다.
어쨌든 살아는 있었으니까.
그러나 마지막으로 남쪽에 있던 황금 표국 클랜원은 찾아냈을 때 온몸이 시퍼렇게 변색한 상태였다.
이미 숨이 끊어져 도저히 손을 쓸 수 없었다.
최대한 빨리 간다고 갔지만, 제 3의 눈으로 확인한 결과 앞선 세 명과 달리 치사량의 독이 주입해졌음을 알 수 있었다.
살문치고 소심한 복수라고 해야 하나.
아마 늘설영의 원한과 관계된 사내가 아니었을까?
그렇지 않고서야 살문이 실수할 리 없으니까.
결국에는 기절한 황금 표국 로드를 등에 업고, 난 걸음을 돌렸다.
“크으으윽….”
“흑…. 흐끅…. 흐윽…. 윽….”
가는 동안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애들도 말이 없었지만, 함부로 입을 열지 못하는 듯했다.
단지 계속 흐느끼는 소리만 들릴 뿐.
안현은 가는 내내 땅만 보며 이를 악물었고, 안솔은 퉁퉁 부은 눈으로 닭똥 같은 눈물만 뚝뚝 떨궜다.
모니카, 심지어 클랜 하우스에 도착해서도 흐느낌이 멈추지 않아, 정문에서 잠깐 걸음을 멈췄다.
“몸들은 좀 괜찮아?”
갑작스러워서였을까?
동시에 흠칫한 남매가 날 조심스레 바라봤다.
“배랑 옆구리. 괜찮으냐고.”
아까 확인하기는 했지만, 예의상 물어본 말이었다.
한데 반응이 가관이다.
안현은 얼굴을 찡그리더니 갑자기 대성통곡을 했고, 입을 삐쭉삐쭉하던 안솔은 아예 부뎨에에 목놓아 울기 시작한다.
얼굴이 실시간으로 눈물 콧물로 범벅돼 가는 게 진심으로 못 봐주겠다.
“아니. 왜 울어.”
정말로 울고 싶은 건 난데.
“하, 하지만…. 오, 오라버니가…! 저, 저희 때문에….”
중간중간 딸꾹질이 섞였으나 뭔 말인지는 알겠다.
그러니까 내가 늘설영한테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걸 보고 있었다는 거다.
인질이었던 처지니만큼 죄책감을 심하게 느끼는 건가….
난 한숨을 내쉬며 턱짓으로 정문을 가리켰다.
“그만 울고, 먼저 들어가.”
“네, 네…?”
“들어가서 쉬라고. 혹시 모르니까 상처도 치료받고.”
“에…. 오, 오라….”
“나중에 이야기하자.”
“…….”
단칼에 말을 끊자, 안솔은 침묵했다.
몇 번이나 눈치를 살피더니 쭈뼛쭈뼛하며 정문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잠시 후.
짝!
정문 안쪽에서 돌연히 세찬 따귀 소리가 터졌다.
안현은 깜짝 놀란 듯했으나 난 무시하고 말을 걸었다.
“안현.”
“예, 예!”
“사실 좀 불안하기는 했다.”
“……?”
자세를 바로 하던 안현이 두 눈을 끔뻑거렸다.
“이번 의뢰 계약을 맺었을 때 이상하게 불안했다고. 그래서 고연주와 허준영을 추가했고, 이유정을 제외한 거다. 전력은 높이고 돌발 변수는 제외하려는 목적에서.”
불길한 예상은 맞아떨어졌고, 지금도 대처는 괜찮았다고 생각한다.
단지 문제는-.
“그런데 설마 네가…. 다른 누구도 아닌 네가, 내가 걱정했던 돌발 변수가 될지는 몰랐다.”
스스로 들어도 실망감에 찬 목소리였다.
“억울해? 너한테만 뭐라 하고, 안솔한테는 뭐라 하지 않아서.”
“아, 아니요!”
“안솔이 그렇게 행동한 원인은 경험 부족이다. 물론 잘했다는 건 아냐. 분명히 잘못했지. 하지만 네 행동과는 큰 차이점이 있다. …넌, 지시를 어겼어.”
“…죄송합니다.”
고연주는 살문의 습격 직전 분명히 대기 및 방진을 구성하라 일렀다.
그러나 안현은 전투 도중 적의 계략에 말려 멋대로 뛰쳐나갔다.
그것은 누구도 감싸줄 수 없는 명백히 잘못된 행동이다.
애가 실수했다고, 경험이 적으니 어쩔 수 없었다며 무마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는 것이다.
안현은 급격히 입을 열었다가, 낯을 일그러뜨리며 머리를 숙였다.
그래, 자기가 생각해도 유구무언이겠지.
잠잠함은 꽤 오랫동안 이어졌다.
일단 이쯤에서 끝낼까?
아직 해야 할 일이 있으니.
“…….”
“…삼 개월간 근신이다. 아무것도 하지 말고 조용히 자숙해.”
“…예…. 예?”
“안현.”
가까이 다가가자, 흔들리는 복잡한 눈동자가 날 가까스로 응시한다.
“여기까지다.”
“어….”
“딱 이번 한 번만이다. 만약 차후 네가 똑같은 행동을 할 경우…. 나는 네가 머셔너리를 나가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겠다. 무슨 말인지 알겠지?”
“아….”
“이런 행동, 다시는 하지 마. 절대로.”
“…명심하겠습니다. 형.”
약간 잔인한 말이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 꼭 필요한 말이다.
왜냐면 이번 일은 과거 내가 원인이었던 사건을 떠올리게 했으니까.
그리고 그게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도.
형의 죽음….
“먼저 들어가. 난 황금 표국에 들렀다가 돌아오마.”
내 등에 축 늘어진 사내를 둘러업으며 몸을 돌렸다.
안현은 허리까지 꾸벅 숙이고 힘없는 걸음으로 모습을 감췄다.
이윽고 열 걸음도 채 떼지 않아, 이번에는 세게 가격하는 소음이 터졌다.
우당탕 구르는 소리까지 난 건 덤이려나.
“…….”
…굳이 관여하고 싶지는 않다.
난 걸음을 재촉해 거리를 벗어났다.
*
김수현이 클랜 하우스로 돌아온 건 새벽 공기가 완연히 차가워졌을 즈음이었다.
그보다 늦게 돌아온, 전전긍긍하며 기다리고 있던 조승우는 벌떡 일어나 달려나갔다.
“로드. 이제 오셨습니까.”
“아…. 예. 언제 왔습니까?”
“저는 돌아온 지 좀 됐죠.”
“그렇군요. 황금 표국에서 상황 설명을 하느라 시간이 좀 걸려서….”
후, 짧게 숨을 뱉은 김수현이 관자놀이를 꾹 짓누른다.
그리고 누군가를 찾는 듯 흘깃 눈을 돌렸다.
“어떻습니까?”
“그게…. 이번에는 그냥 넘어갈 생각이 없으셨던지, 아주 혼쭐을 내시더라고요. 보기 괴로울 정도였습니다.”
어떠냐는 질문을 자의로 해석한 조승우는 쓰게 웃었다.
실제로 클랜 하우스로 돌아왔을 때, 분위기는 장난이 아니었다.
안솔은 몇 차례나 뺨을 맞은 듯 뺨이 부어 있었고, 안현은 더욱 심했다.
찔린 부위를 치료했다고는 하나, 배를 비롯해 전신에 멍이 들었을 정도니까.
그 누구도 눈을 차갑게 빛내는 고연주를 말리지 못했다.
왜냐면 이번 사건은 연습이 아니라 실전에서 발생했으니까.
“아니요. 그거 말고요.”
하지만 김수현은 이미 알고 있다는 듯 머리를 가로저었다.
“고연주는요?”
“아, 그러고 보니 전언을 남기셨습니다. 이번 일은 꼭 책임지겠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그리고 믿어달라고.”
말인즉 단독으로 행동하겠다는 의미였다.
“뭔가 생각은 있으신 듯했습니다. 아마 지금쯤 코란을 이 잡듯 뒤지고 계실 것 같은데….”
중간에 쯧쯧 혀 차는 소리가 들린 탓에, 말을 흐리고 말았다.
고연주의 독단을 말리지 않은 이유는, 현 상황에서 해결책이 거의 없다 봐도 무방하기 때문이었다.
일이 터진 지 아직 하루도 지나지 않았다.
소문은 내일쯤 일파만파 번질 것이다.
여기서 조승우가 겨우 생각한 방법은 두 가지.
하나는 이번 일의 배후를 밝혀내고, 중앙 관리 기구에 호소하는 것.
사건을 사건으로 덮는 온건한 방법이지만, 어쨌든 당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머셔너리 클랜의 불패 신화가 깨질 것도 자명하다.
다른 하나는 습격을 주도한 살문에 보복하는 것이다.
살문이 그저 그런 클랜도 아니니만큼, 가장 좋은 방법이라 할 수 있다.
위기는 기회라는 말이 있다.
머셔너리를 건들면 어떻게 되는지 경각심을 일깨울 수 있고, 더불어 명성까지 높아질 것이다.
왜냐면 상대가 살문이니까.
북 대륙 모든 클랜, 심지어 부랑자까지 두려워한다는 최악의 암살자 집단이니까.
그래, 확실하게 박살 낼 수만 있다면….
그래서 조승우는 근심이 가득한 한편, 흥미가 동했다.
대형 사건이 터졌음에도 불구하고 평정을 유지하는 자세는 좋다.
로드가 흔들리면 클랜 전체가 흔들리게 된다.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어떤 방법으로 돌파구를 찾을 것인지가 관건이다.
시간마저 부족한 상황에서 이 사내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이윽고 김수현은 뜻밖의 말을 꺼냈다.
“음…. 주변 상점에서 몸에 붙는 흑의 한 벌을 구할 수 있을까요? 지금 당장.”
“에, 단순한 흑색 옷을 말씀하시는 거라면 창고에도 있을 겁니다.”
“잘됐군요. 그럼 그거랑 카오스 미믹, 그리고 이유정한테 스쿠렙프도 받아와 주세요.”
“어라, 그러고 보니….”
그러고 보니 왜 기본 옷만 입고 있는지 의아했으나, 토를 다는 대신 바로 지시를 따랐다.
상황이 상황인 터라, 스쿠렙프도 의외로 순순히 넘겨받을 수 있었다.
긴 시간이 지나지 않아 다시 돌아온 조승우는, 주섬주섬 흑의를 입는 김수현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참, 이런 옷도 오랜만에 입어보네.”
“예?”
“아니, 아닙니다.”
“……?”
그 순간 미세하게나마 콧노래가 들렸다면 착각일까?
“저…. 로드.”
“사용자 조승우.”
“예?”
“사람이 자살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뜬금없는 말.
이윽고 옷을 전부 입은 김수현이 시뻘겋게 번들거리는 단검을 꽉 쥐었다.
키이이이이이이잉!
갑작스럽게, 스쿠렙프가 울부짖었다.
순간적으로 온몸이 갈가리 찢겨 발겨지는 끔찍한 감각.
살이 저릿해지고, 숨이 멎는다.
“그렇게 죽고 싶다고 지껄이는데….”
반사적으로 물러난 조승우는 침을 꿀꺽 삼켰다.
눈앞의 사내가 쥔 단검은 무려 한 자가 넘는 붉은 검기를 토해내고 있었다.
이유정이 쥐었을 때와는 완전히 다르다.
단순히 살기나 저주라고 말하기는, 올올이 전해지는 악의가 너무나 엄청나다.
그 속에서, 김수현이 살그머니 웃는다.
“…흐!”
입이 벌어지며 핏빛을 반사하는 이빨이 유려하게 드러났다.
“흐흐, 흐흐….”
늑대가 그르렁거리는 듯한 낮디낮은 웃음소리였다.
부릅떠진 두 눈동자에 숨길 수 없는 광기와 만족감이 차오른다.
흡사 다른 사람을 보는 듯한 혼동.
오히려 매우, 몹시 즐거워하는 듯한 느낌.
은혜는 바다처럼 갚는다.
복수는 칼날처럼 갚는다.
김수현이 평소 좋아하는 말이다.
“아침에는 돌아오겠습니다.”
그 한 마디만 남기고 김수현은 몸을 돌렸다.
조승우는 터벅터벅 걸어가는 사내의 등을 그저 하염없이 바라볼 뿐.
…확실히, 살문의 일 처리는 명성대로 완벽했다.
그것만큼은 부인할 수 없을 터.
그러나 조승우가 모르는 게 하나 있다면.
또 살문 로드가 간과할 수밖에 없었던 점이 하나 있다면.
일 회차 시절, 김수현이 주로 활동한 무대가 음지였다는 것.
그곳에서 고작 48포인트에 불과한 마력 능력치로 살아남은 사용자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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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말씀드렸던 대로, 오늘부터 매일 연재로 돌아갑니다.
안솔 응응 옴니버스, 비비앙 찰싹찰싹 옴니버스, 그리고 평행 세계로 가는 김수현 옴니버스, 돌아오는 외전 에필로그까지 완성하려면 부지런히 적어야겠어요.
그나마 안솔과 비비앙은 분량이 적으니 어찌어찌 맞출 수 있을 것 같기는 한데….
바쁘네요, 바빠. @_@
그나저나 왜 제가 업데이트하려고만 하면 현재 사용자 접속이 많아 접속이 원활하지 않습니다 라고 뜨는 걸까요. ㄷ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