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IZE RAW novel - Chapter 286
00285 체력 조루 탈출! =========================================================================
중천에 떠올랐던 해는 이제 슬슬 서쪽으로 넘어갈 준비를 하려는지 석양빛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해가 저물어갈수록 하늘의 풍경은 붉은빛 물감을 덧칠하듯 서서히 퍼져나가는 중이었다.
볼을 스치는 더운 바람에 문득 고개를 들어 시선을 올렸다. 유유히 떠다니는 뭉게구름에 진홍색 물결이 넘실거리듯 그림처럼 하늘을 수놓는 게 보인다. 시원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아주 덥지도 않은 적당히 따뜻한 날이었다.
우리들은 약 네 시간 전 드디어 머셔너리의 클랜 하우스가 완공됐다는 소식을 받을 수 있었다. 처음 예정보다 시간을 약간 지체했지만 모두의 낯빛에는 설레는 감정이 감돌고 있었다. 클랜 로드로써 차분한 태도를 보여주려고 해도, 덩달아 부풀어오르는 마음을 꺼뜨리기란 요원한 일이었다.
연락이 오기 전부터 짐은 모조리 챙겨둔 상태였다. 우리들은 임 마담과 간단한 작별을 나누고 근 4개월 동안 신세를 졌던 러브 하우스를 빠져 나왔다.
인사를 나눌 때 임한나는 평소처럼 상냥히 웃어주었지만 어딘지 모르게 쓸쓸한 기색이었다. 그때 잠시 고개를 갸웃했지만 고연주의 눈짓에 일단은 밖으로 나와 클랜 하우스를 향해 걷는 중이었다.
러브 하우스와 클랜 하우스의 거리는 멀지 않다. 걸음 속도가 매우 빠르긴 했지만 5분도 채 안되어 정문에 도착할 수 있었다. 실제 공사는 점심 즈음에 끝났지만 뒷정리에 시간을 많이 소비한 모양이었다. 어쨌든 지금쯤이면 얼추 시간이 맞을 터. 나는 호흡을 가다듬고 나무로 만들어진 문을 밀고 들어갔다.
“오.”
“우와.”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등 뒤로 클랜원들의 탄성이 터져 나왔다. 일전에 보기는 했지만 노을 빛을 뿌리는 정원은 또 다른 환상적인 매력을 뽐내고 있었다.
그리고 살랑살랑 흔들리는 수풀 위로 짙은 황혼을 머금은 건물 두 채가 기다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연한 잿빛으로 물든 건물의 외관은 주변 풍경과 어우러져 고즈넉하면서도 웅장한 위용을 드러내었다.
내부에 사람들은 몹시 많았다. 정원 수풀에 아무렇게나 앉아 완공된 클랜 하우스를 보며 웃고 떠드는 중이었다. 다시 한 번 바람이 불어 그들의 땀을 식혀주는 사이,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온 우리를 발견했는지 크게 소리를 질렀다.
“대장! 머셔너리 로드께서 오셨습니다!”
“어이쿠! 오셨구나!”
저 앞에서 나무에 기대어 앉은 사용자 한 명이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고개를 휘휘 돌리더니 이내 문 쪽으로 성큼성큼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 뒤를 따라오는 사람들을 유심히 살펴보자 아는 얼굴 두 명을 발견할 수 있었다.
‘오랜만이에요. 봉팔 아저씨, 예현이 누나.’
“하하! 오셨군요, 머셔너리 로드!”
“반갑습니다. 머셔너리 클랜 로드 김수현입니다.”
“이스탄텔 로우 클랜 박봉팔입니다! 이번에 클랜 하우스 건축 설계를 맡았지요. 아, 이쪽은 내부 디자인을 맡은 신예현이라고 합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신예현이에요.”
넉살스레 인사를 건네는 봉팔 아저씨와 수줍게 웃는 예현이 누나. 둘 모두 이스탄텔 로우 소속인 만큼 1회차에 이들과 한솥밥을 먹은 사이였다. 제법 좋은 사람들로 기억하고 있어 반갑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리라. 어찌됐든 여전한 성격들이라고 생각하며, 나는 그가 내민 손을 굳게 맞잡았다.
“아이고. 완공이 예정보다 이틀 늦었습니다. 미안합니다!”
“추가 요구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죠. 괜찮습니다.”
“하하! 그렇게 생각해주시면 감사하고요. 추가 사항에 대해서는 조금 시간이 짧기는 했지만 각별히 신경 썼습니다. 물론 마음에 안 드시는 점이 있다면 기탄없이 말씀해주세요.”
“저, 대장….”
나와 봉팔 아저씨가 환담을 나누는 동안 이곳 저곳 퍼져있던 사람들이 슬금슬금 모여들고 있었다. 입고 있는 복장이 꽤나 후줄근한 것으로 보아 인부로 들어온 거주민들인 것 같았다. 이윽고 그들의 대표로 보이는 거주민이 조심스럽게 말을 걸자, 한창 신나게 떠들던 박봉팔은 퍼뜩 고개를 돌렸다.
“응? 아아. 머셔너리 로드께서 오셨으니 이만 가봐. 고생했어.”
“헤헤. 알겠습니다. 그런데…. 공사도 끝났는데 이거 한잔 안 하십니까?”
거주민이 헤헤 웃으며 잔을 꺾는 시늉을 하자 박봉팔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으허허허! 안 할 수야 있나! 인마, 그래도 난 이분들을 안내해야 하지 않나. 그러니 돈 걱정은 말고 먼저들 가서 마시고 있으라고. 끝나면 바로 따라갈 테니.”
확실히 모니카는 다르다. 다른 도시였다면 보통 거주민을 노예, 벌레 보듯 하는 경향이 있는데 눈앞의 봉팔 아저씨는 오히려 친근한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이곳의 거주민들은 이스탄텔 로우를 굉장히 좋게 생각하고 지지하는 편이었다.
그런 그들을 흐뭇이 바라보다가 난 정하연에게 살짝 눈짓을 보냈다. 그녀는 내 신호를 받고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는 조신한 몸가짐으로 거주민들이 모여있는 곳을 향해 걸어갔다. 곧 내 옆을 지나치는 정하연의 늘씬한 뒤태가 눈에 들었다. 이제는 어깨를 넘어 등까지 내려오는 머리카락이 연한 푸른빛을 반사하며 찰랑거렸다.
정하연이 다가오자 왁자하게 떠들던 거주민들은 삽시간에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는 다들 멍한 눈길로 그녀에게 시선을 모았다. 시크릿 클래스 ‘푸른 달의 마도사’를 계승한 이후 정하연의 분위기는 한층 성숙하고 깊어졌다. 그에 따라 미모 또한 한층 물이 오른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 동안 고생하셨어요. 많지는 않지만 작은 성의를 담았어요.”
“아, 아이구! 아이구!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정하연이 품 속에서 꺼낸 작은 주머니 하나를 건네자 거주민은 기겁하며 양손을 흔들었다. 그러나 그녀는 나긋나긋한 손길로 거주민의 손을 살포시 붙잡아 기어이 주머니를 쥐어주었다. 그러자 거주민의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며 어쩔 줄 모르겠다는 시선을 사방팔방에 뿌려댔다.
“아우. 꽤 두둑해 보이는데요?”
“50골드입니다. 많지는 않아요.”
“이야, 인원이 좀 있긴 하지만 10골드면 떡을 칠 텐데요.”
“짧은 시간 동안 많이 고생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오늘 충분히 회포를 푸셨으면 하는 마음에 드린 겁니다.”
박봉팔은 내 말에 “흐흐.” 웃고는 거주민들에게 크게 외쳤다.
“이놈들아! 머셔너리 로드님께서 호의를 베푸셨다. 다들 감사히 받아들이도록!”
“만세!”
“아이쿠 여신님. 감사히 쓰겠습니다 요!”
“네? 쿡! 전 여신이 아니에요. 쿡쿡.”
정하연은 한 손으로 입을 가리며 예쁘게 웃더니 바로 몸을 돌려 내게로 돌아왔다. 그리고 박봉팔이 고개를 한 번 끄덕여주자 거주민들은 환호성과 함께 밖으로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야호! 오늘 마시고 죽자 죽어!”
“야, 너 잠깐 손 좀 줘봐. 아까 여신님께서 친히 잡으신 손이 이쪽 손이여?”
“나, 난 주머니…. 주머니 좀 잠깐 줘보아.”
“부정 탄다 이것들아! 놔! 놓으라고! 앞으로 이 손은 절대로 씻지 않을 테니…!”
거주민들이 나가면서 내뱉은 말에 정하연이 살짝 낯빛을 붉히는 것을 봤는지 박봉팔은 헛웃음을 흘렸다.
“에, 나쁜 뜻은 없었을 겁니다. 워낙 단순한 놈들이라서요.”
“괜찮아요.”
“하하! 감사합니다. 그럼…. 응? 혹시 꼬마 아가씨가 안고 있는 게 그 소문의 유니콘인가요?”
“네? 네에….”
“뀨뀨!”
박봉팔은 이제서야 발견한 듯 눈을 동그랗게 뜨며 비상한 관심을 보였다. 그러나 바로 멋쩍은 웃음을 흘리는 걸로 보아 아기 유니콘이 매몰찬 반응을 보인 모양이었다. 그는 궁금해죽겠다는 기색을 내비쳤지만 이내 클랜원들의 얼굴을 읽었는지 호쾌한 목소리로 말했다.
“미안합니다. 유니콘은 소문으로만 들었지 처음 보는지라. 아무튼 제가 너무 오래 세워두었군요. 일단 정원부터 둘러보시죠. 하나씩 설명 드리겠습니다.”
“정원은 괜찮습니다. 전에 한 번 들른 적이 있어서 미리 둘러보았거든요. 이 정도면 만족합니다.”
“그렇습니까? 다행이네요. 그럼 바로 내부로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아무래도 본관부터 가시는 게 나을 겁니다. 하하하. 아, 예현이 너는 어떡할래?”
“저도 같이 갈래요. 머셔너리 분들의 평가를 듣고 싶어요.”
신예현은 얌전히 대답했다. 박봉팔은 그러라고 대답한 후 눈앞의 커다란 건물로 오른팔을 내밀었다.
“그럼 들어가시죠.”
이윽고 나와 박봉팔은 선두서 나란히, 클랜원들과 신예현은 뒤를 졸졸 쫓으며 정원을 가로질렀다. 가는 도중에도 아저씨는 경박하지만 상세한 설명을 들려주었다.
“클랜 하우스 내부의 공간들이라고 하면 여러 목적들이 있습니다. 그것을 크게는 목적용, 공공생활용, 개인용 그리고 임시용으로 구분할 수 있지요. 목적용이라 하면 공방, 연무장 등 어떤 목적을 가진 공간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공공생활용은 모두가 함께 사용하는 식당 또는 목욕탕을 을 예로 들 수 있겠지요. 개인용은 숙소, 집무실로 볼 수 있고 임시용은 말 그대로 임시로 비워놓은 방입니다. 일단은 비워놓고 추후에 필요한 공간이 생겼을 때 새로이 개축하는 곳입니다.”
“그렇군요.”
“아. 그리고 임시용 공간 말이 나와서 말씀 드리는데, 원래 이곳은 피스타치오 클랜이 사용하던 클랜 하우스입니다. 클랜원만 90명에 고용인 30명까지 합쳐서 총 120명이 생활하던 공간입니다. 그것을 개축하다 못해 증축까지 했으니 임시용 공간이 제법 많습니다. 아마 당분간 방이 부족하지는 않으실 겁니다. 하하하.”
그거야 당연한 일이었다. 애초에 부지가 넓은 곳이기도 했지만 10명이 생활하기에는 과분할 정도로 넓다. 어차피 첫술에 배부를 수 없는 노릇이니 앞으로 차근차근 채워나가면 되는 일.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이자 박봉팔은 곧장 말을 이었다.
“두 건물은 앞서 말씀 드린 네 가지 성격을 모두 갖추고 있지만, 어떤 것을 우선하는지 정도로는 구분할 수 있습니다. 임시용을 제외하면, 지금 앞에 있는 건물은 목적용의 성격이 강합니다. 그에 반해서…. 끙.”
이윽고 계단을 올라 문 앞에 선 박봉팔은 몸을 돌려 별관을 가리켰다.
“저기 보이는 별관은 개인용, 공공생활용의 성격이 강하죠. 미리 알려드린다면 지하층과 1층은 공공 목욕탕 및 휴게 시설이, 2층과 3층은 숙소 그리고 4층은 임시용으로 비워두었습니다. 아쉽게도 원래 숙소용으로 지었는지 별관에 옥상은 존재치 않습니다.”
“그렇군요. 그럼 본관 구조는 어떻죠?”
내 물음에 박봉팔은 씩 웃고는 문 손잡이를 잡으며 대답했다.
“일단 안으로 들어가시죠. 내부를 직접 보면서 설명해드리겠습니다.”
박봉팔이 힘껏 팔을 잡아당기자 굳게 닫혀있던 문이 활짝 열렸다. 이윽고 우리들은 그의 안내를 받아 내부로 들어갔다.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꽉 막혀있던 1층의 벽면은 중간중간에 박아 논 거대한 창틀이었다. 그 안을 사각형 수정으로 채워 넣어 내부에서는 바깥이 보이도록 만들어놓은 상태였다. 그것을 보자 뭔가 답답한 분위기를 탈피해 시원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천장까지의 높이는 4미터 가량 될까? 반들반들 윤이 나는 매끈한 바닥이 보이는 1층은 상당히 길고, 넓었다. 천장은 연한 주홍빛을 띠는 라이스 스톤이 촘촘히 박혀있어 내부의 분위기를 깔끔하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중앙으로는 적 빛의 둥근 카펫이 커다랗게 깔려있었는데, 주위로 소파, 의자, 벽난로 등이 보기 좋게 배치되어 있는 걸로 보아 그곳이 로비인듯 싶었다. 옛 흔적들이 아주 약간 남아있기는 했지만, 내외로 모두 깨끗하게 개축해서 그런지 오히려 간간히 보이는 흔적은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로비에서 휴식을 취할 수도 있겠군.’
클랜원들 또한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달라진 내부를 보며 동시에 탄성을 터뜨렸다.
“여기는 제가 설명 드릴게요. 일단 이쪽을 보아주시겠어요?”
여태껏 조용히 침묵을 지키던 신예현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그녀는 가녀린 손가락을 들어 로비 옆에 붙어있는 곳을 가리켰다.
“머셔너리는 의뢰를 받아 운영하는 용병 클랜이라고 들었어요. 그렇다면 1층에는 그와 관련된 업무를 접수하고 안내하는 접수대가 필요해요.”
신예현이 가리킨 곳은 둥근 곡선을 그리는 커다란 안내 데스크가 세워져 있었다. 그 뒤로는 기둥에 짙은 자줏빛의 커튼이 예쁘게 둘러져 있었고, 중앙에 노출된 공간에는 황금색으로 빛나는 ‘Mercenary’라는 글자가 음각되어 있었다.
“그 다음은 계단에 대해 말씀 드릴게요. 1층에는 위아래로 통하는 계단이 총 4개가 있어요. 먼저 1층의 양 끝으로 위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고, 로비 너머로 두 개의 계단이 있어요. 하나는 똑같이 위로 올라가는 계단이지만 나머지 하나는 아래층. 즉 머셔너리 로드님께서 요청하신 지하 연무장으로 가는….”
신예현이 설명이 이어지고 클랜원들이 정신 없이 듣는 동안 내 옆으로 박봉팔이 다가와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알다시피 현대의 향기가 진하게 남아있는 건물입니다. 그래서 많은 고민을 해야 했지요. 홀 플레인과 현대의 건축 양식은 많은 차이가 있으니 말입니다. 뭐 솔직히 실생활에는 마정석, 마법 진이 쓰이긴 했지만요.”
“그러고 보니 그것들은 일체형인가요, 아니면 개별형인가요?”
“개별형입니다. 일체형이 관리는 편해서 좋긴 하지만, 퀄리티는 개별형으로 하는 게 훨씬 낫습니다. 관리가 귀찮다는 단점이 있지만, 마법 진에 자체 복원력이 있으니 고의로 훼손하지 않는 이상 크게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뭐, 마정석은 주기적으로 갈아주어야겠지만요.”
박봉팔의 설명을 들으며 나는 차분히 고개를 주억였다. 어차피 그것은 추후 고용인들을 고용하면 알아서 해결해주니 크게 신경 쓸 문제도 아니었다.
“자, 그럼 이번엔 식당으로 가보도록 할게요.”
이윽고 개략적인 설명을 끝냈는지 신예현이 앞장서서 걸어가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를 뒤따라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
그 후 우리들은 몇 시간을 걸쳐 클랜 하우스 내부의 안내와 설명을 받을 수 있었다. 평수가 넓은 만큼 그 내용도 굉장히 방대하고 복잡했다.
그것을 간단히 요약해보면 1층은 로비와 카운터를 제외하고 총 네 개의 공간으로 나눌 수 있었다. 카운터를 기준으로 왼쪽 통로에는 응접실, 휴게실, 대기실이 주를 이루었고 오른쪽 통로로는 커다란 내부 광장과 식당이 주를 이루었다.
그 중 가장 압권은 식당이었다. 일반적인 휴게소 식당이 아니라 흡사 하나의 주점을 뚝 떼어 갖다 놓은듯한 광경이었다. 수십 개의 테이블과 널찍한 주방이 자리잡고 있는 그곳은 마치 카페테리아 같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주방 내부에는 식량 저장고와 수납 공간도 충분하고, 기본적인 요리 기구들도 갖춰놨으니 아마 요리사들이 요리할 맛이 날 거라고 박봉팔은 호언장담했다.
1층 구석구석을 돌며 쉴 새 없이 들리던 설명이 조금씩 뜸해지기 시작한 것은 2층에 오르고 나서부터였다. 그도 그럴 것이 본관이 목적형 건물인 만큼 2층과 3층은 그에 준하는 공간이 들어서야 했기 때문이다. 즉 이곳은 임시용 공간들이 주로 몰려있는 곳이었다.
2층은 정보 처리, 내정 운영, 장비 창고를, 3층은 연금술사 공방, 마법사 연구실, 도서관, 소 회의실 등을 운영할 예정이었다. 그렇기에 소 회의실을 제외하고, 텅 비어있는 방에 해당하는 특수 기구들은 자체적으로 구매해야 했다. 해서, 어디에 어떤 공간이 있는지에 대해서만 간략히 설명하고 넘어갈 수 있었다.
3층에서 단 하나 특이한 점이 있다고 하면 비비앙이 3층에서 구경을 포기하고 바로 연금술사 공방으로 들어갔다는 것이다. 그녀는 박봉팔에게 공방용 공간이 어디 있는지를 묻더니, 신상용을 데리고 그대로 공방으로 들어가버렸다. 공방을 자신의 분신이나 다름없이 여기는 만큼 다른 장소에는 크게 관심이 없는 게 분명했다.
신상용은 조금 더 구경하고 싶은 듯 보였지만, 비비앙의 독촉에 빵빵한 카오스 미믹 두 개를 질질 끌며,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그녀를 따라갔다.
이렇게 3층 설명이 끝나고, 우리들은 대망의 4층으로 걸음을 옮겼다. 4층은 한마디로 클랜 로드 전용 공간이라고 볼 수 있었다. 이곳의 주 공간이라고 하면 집무실, 회의실(대), 귀빈실 정도랄까? 즉 애초에 목적용보다는 나만을 위한 공간이라 보는 게 옳았다. 그렇기에 공간 하나하나가 넓기도 했고 임시용 공간수도 훨씬 적었다.
그렇게 4층 또한 빠르게 탐사를 마치고 마지막으로 옥상에 들른 후, 우리들은 비로소 본관 탐사를 마칠 수 있었다.
*
어느덧 해는 완전히 저물고 어두운 밤이 찾아왔다. 박봉팔과 신예현은 본관을 끝내고 기어이 별관까지 설명을 마쳐주었다. 그리고 한 번 생활해보고 마음에 들지 않는 점이 있다면 언제든지 이야기하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그들은 클랜 하우스를 떠났다.
이곳에 들어오기 전까지만 해도 애들은 은연중에 투덜거렸는데, 막상 구경을 하고 난 후 잽싸게 행동을 개시했다. 솔직히 내가 보기엔 숙소는 거의 똑같았다. 그럼에도 먼저 방을 고르겠다고 달려나간 것이다.
그 후로 자유 시간을 줬으니, 아마 지금쯤 몇 명은 내부를 구경한다고 돌아다닐 테고 몇 명은 일찍 잠자리에 들었을 터. 나 또한 본관 4층 집무실로 되돌아온 상태였기에 일단 하루 이틀은 마음껏 구경하라고 놔둘 생각이었다. 나는 짧은 한숨을 내쉬고 지금 내가 있는 장소인 집무실을 둘러보았다.
집무실은 내 마음에 쏙 들 정도로 넓고 고급스러운 퀄리티를 보이고 있었다. 부드러운 카펫, 안락한 소파, 길쭉한 테이블과 결 좋은 책상 등등. 여러 가구들이 집무실을 차지하고 있었지만 그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책상 뒤로 보이는 테라스였다.
1층에서 보았던 것과 비슷한 수정이 창문 역할을 해주고 있었으며, 중앙에는 테라스로 나갈 수 있는 나무로 만들어진 문이 보였다. 그곳으로 나가면 클랜 하우스를 전체를 비롯해 모니카의 전경이 한눈에 잡힐 듯 보인다. 가끔 머리가 아플 때 밖으로 나가 휴식을 취하면 안성맞춤일 것이다.
테라스 밖을 보며 이대로 집무실에서 기다리고 있을까, 아니면 잠시 옥상으로 올라가볼까 고민이 들던 찰나였다. 이내 마음을 정하고 막 몸을 일으키려는 찰나, 복도에서 다급히 뛰는 소리가 들리더니 집무실 방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어이없는 마음에 고개를 돌리자 붉게 상기된 얼굴로 숨을 몰아 쉬는 비비앙이 보였다.
“헉, 헉. 김수현! 안자고 기다리고 있었네?”
“네가 그러라고 했잖아.”
“히히히. 그랬지!”
“후유.”
“응? 왠 한숨?”
밤이 깊었음에도 내가 잠자리에 들지 않고 있는 이유는 바로 비비앙을 기다리는데 있었다. 그녀는 3층에서 공방으로 가기 전, 내게 딱 두 마디를 던졌다.
‘김수현. 오늘 밤 너를 위해 완전히 승부를 보겠어.’
‘자지 말고 기다리고 있어. 알지? 오늘은 우리들이 그토록 고대하던 날이라는 거. 히히. 기대하고 있으라고~.’
사정을 아는 사람이야 그런가 하구나 하고 넘어가지만, 박봉팔과 신예현은 아니었다. 박봉팔은 “화끈한 여성분이군요. 부럽습니다.” 라고 말하며 부러워했고, 신예현은 얼굴을 붉히며 시선을 피했다. 그때를 생각하자 절로 주먹이 쥐어졌지만, 꼴을 보아하니 거사를 앞두고 있는 것 같아 간신히 참을 수 있었다. 괜한 짓을 했다가 부정 타는 것은 사양하고 싶었다.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비비앙을 응시했다. 그녀는 빠른 걸음으로 다가오더니 이내 내 옷깃을 잡아 꾹꾹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빨리 가자. 빨리 빨리. 지금 느낌 좋아.”
“준비나, 체력이나. 조금 더 만전을 기해야 하지 않을까?”
“이번 연단 과정은 신상용의 능력, 재료가 중요해. 기구는 완전히 설치하지는 않았지만 연단할 수 있을 정도는 충분하다 못해 넘치게 설치해놨어.”
비비앙은 뭐가 그리 급한지 한 손을 펄럭펄럭 흔들며 대답했다. 나는 지끈거리는 관저놀이를 꾹꾹 누르며 하나 더 질문했다.
“체력은.”
“난 참고로 밤 시간대가 최고조야.”
“너 말고 신상용씨.”
“치. 걔도 나 따라서 밤샘 많이 했으니 괜찮아. 아무튼 만전에 만전을 기했으니까 따라오기나 하셔.”
비비앙은 입을 삐쭉 내밀며 손을 팍 늘어뜨리고는 휙 소리가 날 정도로 몸을 돌렸다. 이윽고 문 밖으로 나가는 그녀를 보며 나 또한 책상을 벗어나 문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저토록 자신하니 뭔가 믿는 수가 있는 게 분명했다.
============================ 작품 후기 ============================
안녕하세요. 로유진입니다.
아. 오늘 첫 시작할 때 클랜 하우스 내부를 전부 묘사하리라 마음먹었는데요. 엌ㅋㅋㅋㅋㅋㅋㅋㅋ. 그거 다 묘사하려면 영단 작업을 못 들어갈 것 같아서요. 그러니까 이번 회는 어디에 뭐가 있는지 정도로만 파악해주세요. ‘ㅅ’ 나머지는 천천히 클랜 하우스에서 생활하면서 묘사로 보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리리플 』
1. 미월야 : 1등 축하합니다. 제가 아는 모 작가님이 1등 한 번 하시려고 벼르고 계십니다. 그래서 미월야 님을 보시고 전의를 불태우고 계십니다. ㅋㅋㅋㅋ.
2. 츄파츕스틱 : 지, 진정하세요. 세라프 알고 보면 불쌍한 아이입니다. ㅜ.ㅠ
3. 신유진 : 유니콘입니다. 네. 유니콘이요. 하하하. 앞으로 브레이크 댄스, 나이키도 보여드리겠습니다!(퍽퍽!)
4. zorney : 총 2개의 권능이 있습니다. 그 중 하나는 푸른 달의 마도사에 대한 설명에서 힌트를 찾으실 수 있을 거예요. 🙂
5. 눈물강 : 오호. 푸른 달을 품은 호수라. 그거 괜찮은데요? 한 번 고려해보도록 하겠습니다.
6. 유운처럼 : 오랜만에 뵙습니다! 쿠폰 감사합니다. _(__)_
7. 모리타시노부 : 그 어려운 공부를…. 고시 공부 파이팅입니다! 가끔 제 작품을 읽으시면서 머리를 휴식할 수 있다면 참 기쁠 것 같네요. 🙂
8. 가을왕 : 순간 애쉬를 떠올렸습니다. ㅋㅋㅋㅋ. 곧 프리딜 하는 애 한 명 올 예정입니다. 🙂
9. 스르오 : 하하. 한소영 히로인이요. 이건 노 코멘트를 하고 싶습니다. 결정은 됐습니다만, 미리 알아버리면 재미가 없잖아요. 🙂 그래도 괜찮으시겠어요?
10. 테샨 : 몸무게, 키 비율 검색해서 수정했습니다. 감사합니다. _(__)_
항상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의 추천과 코멘트는 큰 힘이 됩니다.
글은 언제나 편안한 마음으로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선작, 추천, 코멘트, 비평, 질문은 언제나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