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IZE RAW novel - Chapter 357
00356 바바라 =========================================================================
‘점을 봐준다고?’
선율의 호의 어린 제안에 나는 한순간 흥미가 동하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니 딱히 궁금한 게 떠오르지 않는다.
나는 한동안 고개를 갸웃 기울이다가, 결국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글쎄요. 딱히 궁금한 건 없어서…. 괜찮습니다.”
“어머. 지금 거절하시는 거?”
“거절이라기보다는…. 별로 궁금한 게 없어서요. 아무튼 호의는 감사합니다.”
“그러지 말고 한 번 보세요. 다음 기회는 없을지도 모르니까. 저, 남자들한테는 웬만해선 이런 얘기 안 꺼내거든요.”
선율의 목소리에 아주 살짝 가시가 돋쳤다고 느낀 것은 내 착각일까?
아니. 착각이 아니다. 선율은 내가 거절할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는지 샐쭉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좀 전의 현숙했던 태도는 점차 사그라져가는 게, 은근히 자존심이 상한 듯 보였다.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는데…. 또 거절하면 실례일 것 같네요. 알겠습니다. 그럼 한 번 보도록 하죠.”
“그래요. 잘 생각하셨어요. 그냥 하나의 소소한 재미라고 생각하시면 되요. 그렇게 오래 걸리지도 않으니까….”
그제야 원래의 표정을 회복하는 것을 보니, 말을 바꾸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후유. 남자를 상대로 보는 건 되게 오랜만인데….”
이윽고 선율은 한숨과 함께 혼잣말을 중얼거리더니, 사뭇 진중한 얼굴로 카드를 섞기 시작했다.
탁, 탁, 탁, 탁.
탁, 탁, 탁, 탁.
꽤나 규칙적인 소리를 내는 카드 셔플링. 아까까지만 해도 소소한 재미로 생각하라 말한 주제에, 카드를 섞는 손놀림은 신중하기 그지없다.
점을 준비하는 과정을 가만히 구경하고 있자, 문득 하나의 의문이 일어나는 것을 느꼈다.
“마탑 로드. 그런데 왜 남자를 상대로는 점을 봐주지 않는 겁니까?”
“아. 그거요?”
꽤나 집중하는 모습이라 말을 걸어도 될까 고민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다행히 담담한 목소리였다.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지어 보이고는 나직이 말을 이었다.
“아주 예전에 남녀 구별 없이 본적도 있어요. 그런데 안 좋은 사건을 한 번 겪은 이후로 남자를 상대로 보는 건 꺼려지더라고요.”
“안 좋은 사건이요?”
“네. 제가 아직 시크릿 클래스를 얻기 전 저 연차 시절의 일이었죠. 돈이 없어서 대충 만든 카드로 점을 쳐주는걸 부업 삼아 근근이 살아가던 시절이에요…. 아직도 기억나요. 그 놈은 저를 보자마자. 네가 그렇게 젖치기를 잘한다며? 이렇게 말하더니….”
‘젖? 아니 점치기?’
설마 점치기겠지. 분명 틀린 말은 아닌데 어딘가 모르게 어감이 이상하다는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탁, 탁, 탁, 탁!
그리고 그 순간 선율이 카드를 섞는 소리가 더욱 거세어지는 것을 느꼈다. 눈매가 살짝 치켜 올라간 게 그때를 회상하자 속이 끓는 모양이다.
약간의 시간이 흐르고 카드 셔플링은 다시금 원래의 리듬을 되찾았다. 그와 동시에, 선율의 입술이 떼어졌다.
“갑자기 바지를 벗어 성기를 꺼내더라고요.”
“?”
갑작스럽게 터져 나온 말에 나는 의아한 기분을 느끼며 고개를 들었다. 분명 점이 아닌 젖이라고 들은 것 같았다. 그러나 그녀의 얼굴은 여전히 차분했고 카드를 섞는 것에 집중하고 있었다. 어디 하나 장난하는 구석을 찾을 수가 없다.
‘진담으로 말하는 건가?’
머리에 미약한 혼란이 찾아올 즈음, 선율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알고 보니 점치기가 아니라 젖 치기를 얘기하는 거였어요. 젖 치기 모르세요? 전문 용어로는…. 우리 말로는 유방 성교. 일본 말로는 파이즈리.”
“미, 미친놈이군요. 그래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어떻게 하긴요? 저 연차 사용자가 무슨 힘이 있나요. 그냥 해달라는 대로 얌전히 쳐줬죠.”
“…예?”
어떻게 이런 얘기를 이리도 담담하게 할 수 있을까. 나는 멍한 기분을 느끼며 선율을 응시했다. 그녀는 어느새 카드를 전부 섞었는지 현란했던 손놀림을 멈춘 상태였다.
“…….”
“…….”
잠시간의 침묵이 흘렀다.
그사이 테이블 위로 착! 소리가 날 정도로 카드를 내려놓은 선율은 담담히 입을 열었다.
“농담이에요, 농담. 그러니 그렇게 심각한 표정 짓지 말아요. 그냥 잘랐으니까.”
“뭐….”
차르르르르르르륵! 텅!
내가 뭐라 말하기도 전, 카드 위에 손을 얹은 선율의 팔이 커다란 반원을 그린다. 이윽고 그녀는 부채꼴로 펼쳐진 카드 옆으로 자그마한 모래 시계 하나를 꺼내놓더니, 이내 예의 침착한 음색으로 입을 열었다.
“후. 그럼 시작해볼까요? 궁금하신 게 없다고 하셨으니, 점은 제가 임의대로 볼게요.”
“마법의 탑 로드.”
“아. 이 시계는 신경 쓰지 마세요. 그냥 점을 도와주는 도구에요.”
“…….”
‘진짜로 종잡을 수 없는 여성이다.’
갑작스레 긴장이 한꺼번에 풀린 탓인지 입술 사이로 노곤한 한숨이 흘러나온다. 나는 어이없는 기분으로 선율을 응시했다. 내 착각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녀가 입가에 미미한 미소를 머금었다고 느꼈다.
“그럼 지금부터 방법에 대해 설명할게요. 아주 간단해요.”
“예 예. 마음대로 하시지요.”
문득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선율이 왠지 모르게 무척 얄밉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런지 대답하는 목소리는 내가 들어도 불퉁함이 듬뿍 담겨있었다.
“쿡. 여기 펼쳐진 카드들이 보이시죠? 이걸 한 장씩 골라내시면 되요.”
“…그게 끝입니까?”
“네. 거의 대부분이 열두 장에서 끝나지만, 다른 경우도 드물게 있으니까요. 다만 지금부터 말하는 세 가지는 꼭 지켜주세요. 한 번에 한 장씩. 그리고 제가 그만두라고 말했을 때는 뽑는 것을 멈춰주셔야 해요. 마지막으로, 고른 카드는 왼쪽부터 순서대로 놓아주세요.”
“아. 예….”
그 말을 들은 순간 약간 김이 새고 말았다. 물론 애당초 재미로 보는 거라고 듣기도 했고, 스스로도 크게 의미를 둔 것은 아니었다. 그랬던 주제에 알게 모르게 기대한 게 있었던 모양이다.
해서, 나는 마음을 편하게 먹고 눈에 보이는 카드로 손을 옮겼다. 그리고 막 한 장을 집으려는 순간, 불현듯 하나의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런데 이것은 어떤 것에 관한 점입니까?”
“그냥 총체적인 거라고 보시면 되요.”
선율은 명료히 대답했다.
나는 잠시 고개를 갸웃했지만 이내 재미라는 말을 끝없이 되뇌며 가볍게 한 장을 골라내었다. 그리고 그녀를 응시하자, 선율의 시선이 모래시계로 향한 것을 볼 수 있었다.
이윽고 선율은 끄덕끄덕 고개를 주억였다.
“확인은 모든 카드를 골라낸 후에 할거예요. 뽑은 카드는 뒤집은 채 왼쪽부터 두시면 되요. 계속 골라내세요.”
선율의 확언에 나는 마주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한 장씩 빠르게 카드를 골라내기 시작했다.
1장…. 2장…. 3장…. 4장…. 5장…. 6장….
나는 신속하게 카드를 골라내었고, 이윽고 12장을 넘어 13번째 카드를 골라내려는 순간이었다. 문득 앞에서 묘한 시선이 느껴졌다. 잠시 뽑는 것을 멈추고 고개를 들자, 아까부터 계속해서 카드와 모래시계를 번갈아 보는 선율이 보인다.
아까와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현재 선율의 눈동자에 미묘히 당황한 빛이 보인다는 것.
문득 이상한 기분이 들어 고개를 돌리자 아까보다 제법 줄어든 모래시계를 확인할 수 있었다. 처음과 비교해보면 5분의 4정도 줄어들었을까.
나는 다시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왼쪽부터 가지런히 진열된 카드가 15장에 이르렀을 무렵, 비로소 선율이 나를 제지하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이, 이, 이, 이제 그만하세요!”
선율의 목소리는 이제 언뜻 들어도 알 수 있을 정도로 확연한 떨림을 담고 있었다. 모래시계에 채워져 있던 가루는 이제 완전히 아래로 내려간 상태.
선율은 마음을 추스르려는지 잠시 호흡을 가다듬었다가, 약간이나마 떨림이 잦아든 음색으로 말을 이었다.
“여, 열다섯 장이라니. 이 정도로 나온 건 저도 처음인데요. 아무튼…. 정말 궁금하네요. 그럼 일단 왼쪽 네 장부터 열어주시겠어요?”
원래 대부분 12장에서 끝난다고 했던가? 어쨌든 예외가 있다고 했으니, 나는 순순히 왼쪽부터 4장을 뒤집었다.
이윽고 테이블에는 커다란 피 웅덩이와 그 속에서 절규하는 남자. 거꾸로 돌아간 시계. 시꺼먼 것을 불태우는 맑을 불꽃. 그리고 가슴에 검을 꽂은 채 풍경화 속에 홀로 서 있는 남자 한 명이 그려져 있는 카드가 순서대로 펼쳐졌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4장의 카드 아랫면에 깨알 같은 글씨가 적혀있었다는 것이다.
선율은 굉장히 집중하는 얼굴로 하나씩 카드를 살피더니 침음과 함께 입을 열었다.
“으음. 어렵네요. 그래도 하나씩 차분히 해석해볼게요. 피 웅덩이. 당신은 원래 굉장히 험난한 운명을 타고났어요. 거꾸로 돌아간 시계. 하지만 그 운명에 뭔가 알 수 없는 존재가 개입했네요. 맑은 불꽃. 그것의 정체는 이 카드인데…. 태고, 세상? 정확히 뭘 의미하는지는 모르겠어요. 마지막으로 세상 속에서 가슴에 검을 꽂은 남자. 처음의 카드가 두 번째와 세 번째를 거치며 마지막 카드로 변했네요.”
“마지막 카드는 뭘 의미하는 겁니까?”
내 물음에 선율은 가느다란 한숨을 내쉬었다.
“앞의 세 장과 연관 지어 해석해보면…. 당신의 총 두 가지 요인이 개입했고, 그 결과 당신의 운명이 완전히 뒤바뀌었어요. 여기서 맑은 불꽃은 태고 또는 세상을 의미하며, 당신은 세상의 총애를 받고 있어요.”
“총애요?”
“네. 하지만 조심하세요. 이건 무조건적인 총애가 아니에요. 남자의 가슴에 검이 꽂혀있는 것 보이시죠? 이것은 양날의 검을 의미하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까닥 잘못하면….”
선율이 말끝을 흐리자, 문득 가슴이 서늘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잠시 동안 눈을 깜빡였다가 한두 번 목을 가다듬었다.
“흠. 재미있네요. 그럼 다음에도 네 장을 뒤집을까요?”
“네.”
앞선 4장에 대해서는 얼른 넘어가고 싶었기에, 나는 재빠르게 4장의 카드를 뒤집었다. 그리고 이번에 열린 카드는 매우 복잡한 형태를 갖고 있었다. 왜냐하면 각각의 카드에, 굉장히 복잡한 그림이 여러 개씩 그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먼저 첫 번째 카드로 시선을 돌렸다.
첫 카드는 정확히 네모난 사등분이 된 카드로써, 각 칸에 아름다운 여성이 한 명씩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여성의 주위로는 분위기를 나타내주는 배경들이 보인다.
‘피와 강철. 아름답지만 상처가 많은 검. 그림자. 그리고…. 마지막은 뭐지? 빛인가?’
그 중, 오른쪽 하단에 그려진 여성은 유독 특이했다. 배경을 보면 성스러운 분위기를 띠고 있었는데, 다른 여성들과 다르게 혼자서만 피눈물을 흘리는 중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빛이 배경임에도 불구하고 밝은 느낌이 아니라, 오히려 처연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그림이었다.
이어진 두 번째 카드는 알아볼 수가 없을 정도였다. 그림 자체가 작아 알아보기도 어려웠거니와 인간, 동물, 검, 날아다니는 용 등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그림들이 그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세 번째 카드는 비교적 그림이 적었지만 더욱 미묘하다.
카드의 중앙에 한 명의 아기가 그려져 있었는데, 아기의 주위를 맑은 불꽃과 시뻘건 불꽃이 정신 없을 정도로 휘감고 있었다. 둘 다 왠지 모르게 익숙한 불꽃으로 느껴졌는데, 시뻘건 불꽃을 보자 왠지 모르게 기분이 나빠졌다.
그리고 다행히도(?), 마지막 네 번째 카드는 앞선 카드들과 비교하면 굉장히 간단했다. 다른 복잡한 카드들에 비해 왕관을 쓰고 있는 남성 한 명이 그려져 있었을 뿐이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선율을 쳐다보았다. 해석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율의 얼굴을 보는 순간 뜻을 물어보려던 입은 절로 다물어졌다. 카드를 들여다보는 그녀의 표정이 가히 압권이었기 때문이다.
항상 차분하고 여유로운 태도를 보였던 것과는 다르게, 지금은 눈을 커다랗게 뜬 채 입을 쩍 벌리고 있다. 벌어진 입 사이로 당황, 황당, 혼란 등의 감정이 봇물처럼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니, 그런 느낌이었다.
한참의 시간이 흐르고, 선율은 더듬더듬 입을 열기 시작했다.
“머, 머셔너리 로드.”
“예.”
“여, 여자 관계가 왜 이렇게 복잡하세요? 왜, 왜 이래요 이거? 도대체 뭐죠?”
“예?”
순간 “그걸 왜 나한테 물으세요.”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왜냐하면 선율은 여전히 혼란스러운 얼굴로, 혼잣말을 중얼거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아니…. 그래 왕이니까. 네 명의 여왕은 그렇다 쳐도…. 아. 세 명인가? 한 명은 스스로 밀어냈네. 어머 불쌍해라….”
“…….”
“마법사. 궁수. 사제. 마녀 등등. 그래. 백 번 양보해서 여기까지는 이해할만해…. 인간이잖아. 그런데…. 검? 고양이? 거미? 용? 아니 신수인가? 아…. 모르겠어…. 아니 어떻게 검이 인간을 사랑해…?”
“…….”
“세 번째는…. 하나는 정화의 불꽃. 하나는 파괴의 불꽃. 정화와 파괴는 상반 속성인 게 당연한 이치. 그런데 왜 갑자기 새로운 생명의 탄생이 표현된 거야….”
듣는 내가 괴로울 정도로 선율의 정신이 서서히 붕괴되어가는 게 느껴졌다.
갑작스레 안쓰러운 느낌에, 나는 결국 손을 휘젓고 말았다.
“마탑 로드. 그만합시다.”
“머, 머셔너리 로드.”
“힘들면 그만해도 됩니다. 어차피 해석 나름이고, 재미잖아요.”
“…….”
선율을 일순 갈등하는 빛을 띠었지만, 이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도 얼굴에 발간 홍조가 피어오른 게 어지간히 창피한 모양이었다.
“저, 정말 미안해요. 제 카드가 일종의 마법 카드라 상황에 따라서 다르게 나오는데, 이런 카드가 나온 적이 처음이라…. 해석이 전혀 되지 않아요. 그, 그럼 나머지 네 장, 아니 일곱 장이라도….”
“일단 진정하세요. 나머지 카드들은 뭘 의미하는데요?”
한번 더 손사래를 치자 그제야 자신의 추태를 깨달았는지 선율은 가볍게 숨을 몰아 쉬었다.
“후, 후유. 그러니까 나머지는…. 다음 네 장은 머셔너리 로드가 원하는 것. 즉 일종의 미래라고 보시면 되요. 그리고 나머지 세 장은…. 일단은 분기점 또는 추가 해석으로 볼 수 있는데, 열어봐야 알 것 같아요.”
“그렇군요…. 그럼 됐습니다.”
“네?”
약간 실례가 될지도 모르지만, 나는 이만 몸을 일으키기로 결정했다. 다른 거라면 혹시 들을 마음도 있었겠지만, 미래에 관한 거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솔직히 말해서 궁금하다. 하지만 미래가 바뀌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부터 한 가지 맹세한 게 있었다. 그럼에도 지금 이 카드를 보아버리면, 겨우 다잡은 마음이 또다시 흔들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제 운명. 두 번째는 제 연애 운. 여기까지는 뭐 괜찮습니다. 하지만 미래는 보지 않는 게 좋다고 생각해서요.”
“…….”
“괜히 봐서 앞으로의 행보에 영향을 받느니, 그냥 처음 생각대로 쭉 밀고 나가는 게 좋지 않을까요.”
“그거야…. 그렇죠. 미래는 스스로 개척하는 것이니까요. 물론 원하는 것이랑 조금 다른 의미이기는 하지만. 알았어요. 머셔너리 로드의 뜻이 그렇다면 점은 여기서 그만둘게요.”
아직 조금 당황한 빛은 남아있었지만 다행히 선율은 내 의견에 동의해주었다.
나는 서너 번 고개를 끄덕이곤 바로 몸을 일으켰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나름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마탑 로드.”
“후유. 저는 미안한 마음뿐이네요. 그렇게 자신 있는 모습을 보였는데…. 부끄러워요.”
“당신의 프라이드를 이해합니다. 하지만 저는 정말 괜찮으니, 너무 신경 쓰지 마셨으면 합니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나는 살짝 고개를 숙였다가, 시선 아래 잠시 아직 열리지 않은 일곱 장의 카드를 응시했다.
‘…….’
“그럼.”
하지만, 이내 미련을 털어버리곤 곧바로 몸을 돌려 걸어나갔다.
*
다음날. 간밤에 여러 일을 겪기는 했지만, 나는 언제나와 같은 아침을 맞이했다. 그리고 의례적인 간단한 정비를 마친 이후, 드디어 동부의 바바라를 향한 마지막 행군에 참가했다.
이미 웬만한 지역은 거쳤다. 더 이상 버려진 들판도, 거친 숲도 보이지 않는다. 잘 닦여진 길들과 정돈된 초원이 사용자들의 주변에 드넓게 펼쳐져 있었다.
나는 가는 도중 제 3제대를 한 번 더 찾아간 것을 제외하고는 행군 진형의 자리를 지켰다.
아침에 제 3제대를 찾아갔을 때 신상용이 돌아온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말을 걸기에는 너무도 표정이 좋지 않아 보였고, 행군마저도 혼자서 멀찍이 걸어오는 중이었다.
그럼에도 내가 걸음을 돌린 것은, 신상용이 내가 온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 번 눈도 마주쳤다. 하지만 정중히 허리를 숙이고 시선을 피하는 것을 보아 머릿속이 복잡한 모양이었다.
해서, 나는 억지로 말을 걸기보다는 스스로 생각을 정리할 수 있도록 조금 더 기다려보기로 결정을 내렸다. 참가 전 신상용이 마지막에 보였던 의지를 믿어보고 싶었다.
내가 자리로 돌아온 이후 행군은 계속되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자, 어느덧 해는 서서히 저물어가고 있었다. 석양은 황혼 빛을 뿜어 초원을 진한 붉은빛으로 물들이고 있었고, 우리는 초원 사이로 난 길을 따라 붉은빛을 가로질렀다.
잠시 후, 길은 바바라의 부근 지역으로 연결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원래 지금 시간대라면 이 길은 탐험 또는 사냥에 나섰던 사용자들이 서로 웃거나, 또는 울거나 하면서 도시로 돌아와야 정상이다. 하지만 아주 조금씩, 천천히 어둑한 땅거미가 깔리기 시작한 길은, 끝없이 싸늘하고 고요한 전운만이 맴돌고 있었다.
그렇게 계속해서 시간이 흐르고, 세상을 붉게 물들이던 황혼 빛도 서서히 사라져갈 무렵.
“바바라 도착 5분전입니다! 모두 준비하십시오!”
눈 앞에 보이는 너른 평야에, 거대한 도시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게 서서히 잡히기 시작했다.
============================ 작품 후기 ============================
점이 많이 어렵네요. 원래 점에 대해서는 원래 나머지 일곱 장에 중점을 두려고 했습니다. 다만 그렇게 되면 바바라에 도착하지 못할 것 같아 일부러 잘랐습니다. 하하하. 다음에 회상 때 드러낼 생각이에요. 물론 그때 김수현은 없겠지요.
그리고 이번 점에 대해서 궁금하신 게 있다면 저에게 쪽지를 보내주세요. 그 부분에 대해서는 최대한 성실히 답변하겠습니다.
쪽지가 많이 쌓였네요. 제가 평일에는 워낙 바빠 확인할 시간이 없고, 주말에 몰아서 답신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아마 내일 오후 즈음에는 모든 쪽지에 답신이 들어가있을 거예요. 🙂
『 리리플 』
1. ROK1198 : 1등 축하합니다. ROK하니까 갑자기 예전에 서든 어택 칼 클랜이 생각나네요. 하하.(마, 맞나요?)
2. 갸갸겨겨 + 오리콘 : 쿠폰 감사합니다. _(__)_ 앞으로 더욱 열심히 적겠습니다!
3. Nodens : 히, 힘내세요. 토닥토닥. 저는 1등을 포기하니까 너무 마음이 편해요. 🙂
4. katalina : 이해가 되지 않으시거나, 궁금하신 부분 있으시면 쪽지 주셔도 됩니다!
5. SHarPº : 네. 맞습니다. 이번 회의 점도 비슷하게 해석하시면 됩니다. 어디까지나 해석하기 나름이니까요. 😀
6. hohokoya1 : 하하. 이번에 워낙 신청한 학점이 많다 보니 시험 때는 조금 양해를 구해야 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7. 이런남자이니까 : 헉~. 그러면 너무 많아져요! ㅋㅋㅋㅋ. 일단 선율은 계획에 들어있지 않아요!
8. 하얀불 : 김유현. 신상용. 이번 행군에 이 둘의 비중을 의도적으로 줄였습니다. 후후. 왜 그랬을까요?
9. chlghsk : 그 반대로 생각해주시면 됩니다. 저는 강하고 포근하고 자상하고 부드러운 연상 누나가 좋아요. 길들여지고 싶어요. 하아 하아.
10. 참수리358 : 아, 스파이는 그, 농담이었습니다. 우리 중에 스파이가있어, 이것을 패러디 한 후기였습니다. 그 정체는 노유미의 깜짝 출연이었지요. ㅜ.ㅠ
항상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글은 언제나 편안한 마음으로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