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IZE RAW novel - Chapter 665
00664 2. 지옥 왕. =========================================================================
갑자기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온 세상이 하얗게 칠해지고, 이 공간에 나와 지옥 대공 둘만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그 외에는 아무런 생각도 느낌도 들지 않는다. 오직 오른손에 닿은 살결의 감촉만이 시시각각 선명하게 느껴져 숨이 막혀올 지경이었다.
사실 젖가슴 한 번 쥐었다고 이러는 건 꽤나 웃긴 일이었다.
그러나 상대가 누군가. 바로 지옥 대공이 아닌가.
과연 그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그저 ‘공포’ 로만 각인돼있던 존재가 이렇게 스스로 젖을 내어줄 줄은.
…아니. 사실 그것보다는, 지금 느끼는 감촉이 그 정도로 감미롭다는 표현이 옳으리라.
“응? 갑자기 왜 그러느냐?”
내 반응을 확인한 걸까. 지옥 대공의 목소리가 아련하게 흘러 든다.
“그대. 어서 말을 해보래도. 내 겁화의 느낌이 어떻느냐 묻지 않았느냐.”
응?
‘겁화의 느낌?’
속으로 지옥 대공의 말을 되뇐 순간, 돌연 아까의 기억이 머리를 스쳤다.
‘태고의 격을 지닌 화정. 영원히 타오르는 정화의 불.’
이어서 지옥 대공이 내 가슴에 손을 얹었을 때, 그때 무어라 말했는지도 자동적으로 떠올랐다.
‘…….’
아차 싶은 기분이 들었다. 말인즉 지옥 대공도 나와 똑같은 장소에 겁화의 힘을 품고 있다는 소리였다.
‘가슴이 아니라, 겁화의 기운을 느껴보라는 뜻이었구나.’
그제야 한 줄기 이성이 되돌아와 간신히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정상으로 돌아온 시야로 나를 이상하다는 눈길로 올려다보는 지옥 대공이 보였다.
그러자 괜히 민망한 기분이 들어 얼른 눈을 감은 후, 나는 겁화의 기운을 느끼는데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아?”
손바닥으로 전해지는 뜨거운 기운을 느낀 순간, 나도 모르게 탄성을 질러버렸다.
화정은 딱히 한 의미로 정확하게 정의할 수 있는 기운이 아니다. 그것은 겁화도 마찬가지였다.
이곳저곳을 종횡무진 휘젓는 거칠고 거친 기운.
아주 짧은, 찰나의 순간을 연상케 하는 기운.
당장이라도 쾅 하고 터질 것 같은 활화산과도 같은 기운.
부글부글 진득하게 끓어오르는 용암을 떠올리게 하는 기운.
‘이게…. 진짜 겁화의 기운이구나….’
물론 겁화를 처음 겪어보는 건 아니었다. 지옥 대공과 싸울 때 질리도록 경험해봤으니까.
그러나 전투 때 느꼈던 겁화와 지금 느끼는 겁화는 어느 정도 차이가 있었다. 그러니까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조금 색다르다고나 할까? 단순히 ‘파괴적이다.’ 라고 알고 있던 나로서는 이번 경험이 상당히 신선했다.
“후후. 그럼 비교해보거라. 지금 느끼는 기운이 그대가 가진 힘과 어떠한 점이 다른 지를.”
지옥 대공의 말이 이어졌다.
“겁화와 화정은 아예 상극이라고 봐도 좋을 정도로 하나부터 열까지 다른 기운이다.”
지옥 대공의 말이 맞다. 두 기운은 정말 똑같은 염화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상반된 성질을 보이고 있었다.
“분명 나는 그 힘을 거둘 능력은 있으나, 그래 봤자 라는 말이다. 지극히 자연적인 방법이라면 모를까, 억지가 가미된 방법으로 두 기운을 강제로 섞으면…. 이후의 일은 나조차도 감히 예상할 수 없다. 왜 그런지는 그대도 이해하겠지?”
그래. 직접 느껴보자 지옥 대공의 설명을 이해할 수 있었다. 말인즉, 두 기운은 합일은커녕 공존마저도 불가능한 상반된 기운이라는 소리였다.
“아무튼 이쯤이면 대답이 되었겠지.”
“…….”
“…그런데 왜 자꾸 손에 힘을 주는 것이냐? 기분이 이상하구나. 이제 그만 놓거라.”
“…….”
“놓, 놓으라 하지 않았느냐.”
“…응? 아, 아.”
3번째로 채근하는 음성이 들려왔을 때 나는 겨우 반응할 수 있었다. 생각보다 너무 기분이 좋아 나도 모르게 계속 쥐고 있었던 모양이다. 오죽하면 하늘을 둥둥 떠다니는 행복한 기분까지 느꼈을까.
겨우 정신을 차리자 지옥 대공이 묘한 눈초리로 나를 응시하는 게 보였다. 나는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돌렸다. 쑥스럽고 창피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갑자기가 아니라 아까부터 그랬다. 지옥 대공과 눈을 마주할 때마다 이상할 정도로 내면의 무언가가 자극 받는 기분이 들었다.
여하튼 정신을 차리고서 아쉬운 마음을 뒤로한 채 서서히 손을 떼려고 할 즈음.
‘응?’
…착각일까? 문득 지옥 대공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 듯한 착시가 일었다.
그때.
화르르륵!
– 놀고 있네. 응? 아주 놀고 있어!
돌연히 뾰족한 목소리가 머릿속을 울렸다. 익숙한 음색이었다. 나는 아주 잠깐 멍한 기분을 느꼈다가 곧 음성의 정체를 떠올린 순간 크게 기함하고 말았다.
“화, 화정?”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지옥 대공이 의아한 눈초리를 보내와 곧바로 속으로 말을 걸었다.
‘깨, 깨어 있었던 거야?’
– 어. 네가 일어나기 전부터 깨어 있었는데?
‘그, 그럼 왜….’
– 시끄럽고. 정신이나 똑바로 차려 이 멍청한 자식아!
화정이 버럭 소리를 지르자 머릿속이 왕왕 울렸다. 어조가 굉장히 날이 서 있는 게 화가 난 게 분명했다. 지금껏 가만히 있다가 왜 갑자기 화를 내는 걸까?
‘야. 왜 화를 내는 거야?’
– 뭐? 왜 화를 내는 거야? 이러니까 암시에 걸렸다는 사실도 눈치 못 채지!
‘…암시?’
– 이 바보 멍청이야! 아까부터 너 질질 끌려 다니는 거, 알고는 있는 거야?
‘내가? 질질 끌려 다닌다고?’
– 그래! 처음에는 담판을 짓겠다고 해서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었는데, 하여간 가슴이라면 사족을 못 쓰니까…! 바보, 멍청이, 해삼, 멍게, 말미잘, 치한, 변태, 저질!
화정은 결국 분을 이기지 못했는지 다양한 단어를 동원해 나를 매도했다. 무어라 말을 하고는 싶었지만, 딱히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 나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될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또 왜 혼란스러워 하는 것이냐? 그리고 손은 언제쯤 거두어 주겠느냐?”
그때였다. 화정이 나를 계속해서 비난하고 있을 즈음, 또다시 감미로우면서도 색정적인 목소리가 들렸다. 시선을 들자 내 오른손을 꼭 부여 잡은 채 수줍게 미소 지은 지옥 대공이 보인다.
아까라면 지옥 대공의 저런 모습이 반칙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화정의 말을 듣고 보니 무언가 확실히 이상했다. 그러니까 마치 일부러 저러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아니. 애초 저렇게 붙잡고 있으면 손을 떼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지 않은가.
그렇게 생각한 순간 따발총처럼 쏘아붙이던 화정이 우뚝 험담을 멈추었다. 그리고는 씩씩 호흡을 몰며 말을 이었다.
– 야, 너. 이제부터 내가 하라는 대로 얘기해. 알겠어?
‘그건 좀….’
– 시끄러워시끄러워시끄러워! 어차피 별로 아는 것도 없고, 가슴이나 보면서 헬렐레 나 하는 주제에! 한시라도 빨리 돌아가고 싶으면 내 말을 따르란 말이야!
‘…알겠어. 알겠다고.’
확실히 그랬다. 지옥 대공의 말을 이해하고는 있었으나 애당초 나는 겁화나 화정에 관한 깊이 있는 지식을 갖추지 못했다. 도대체 어떤 방향으로 이야기가 흘러갈지는 모르나, 적어도 나보다는 화정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지금껏 화정의 말을 들어서 손해 본 기억은 없으니까.
– …좋아. 우선은 이렇게 말해. 헛짓거리는 적당히 하라고.
그 말을 들은 순간 나는 살그머니 지옥 대공을 살폈다. 무에 그리 즐거운지 싱글벙글 웃는 얼굴이다. 딱히 기분이 나빠 보이지는 않아, 나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헛짓거리는 적당히 하지 그래?”
그러자 지옥 대공이 두 눈을 살짝 치뜨며 나를 바라본다. 입가에 미소는 아직 살아 있었다.
화정의 말이 이어졌다.
– 나쁘지 않은데 말은 더듬지 말고. 그리고 이번에는 이렇게. 내숭 떨지 마. 이왕 이렇게 된 거, 나도 막 나가는 수가 있으니까. 여기서 어조는 비장하게.
무, 무언가 주문이 상당히 상세하잖아.
어쨌든 화정의 말은 내가 세웠던 전력과는 완전히 반대로 나가고 있었다. 사실 마음 한 켠으로 정말 잘하는 걸까 의구심이 일었으나,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일단 말을 따르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숭 떨지 마.”
“흐응? 그대여,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이냐?”
“내숭 떨지 말라고. 이왕 이렇게 된 거, 나도 막 나가는 수가 있으니까.”
“…킥! 어떻게 막 나갈지 꽤나 궁금해지는데, 한 번 해보지 그러느냐?”
화정의 주문대로 최대한 비장하게 말하려 애썼으나 지옥 대공의 반응은 예와 같았다. 그저 싱겁게 입술을 터뜨리고는 심드렁히 중얼거릴 뿐.
– 이번에는….
이어서 주문을 마친 화정은 전체 어조는 웅장하게, 그리고 말을 끝내면 아랫입술을 천천히 깨물며 눈동자에 힘을 주라는 요구까지 덧붙였다. 그뿐만이 아니라 적당한 애드립을 구사하라기까지.
‘…왜. 아주 그냥 물구나무서서 말하라고 하지 그래?’
– 괜찮아. 그렇게 말해도 쟤 절대 너 못 죽인다니까. 지금 나를 못 믿겠다는 거야?
전하라는 말의 내용은 둘째치고서 라도, 나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분명 화정은 나름 속사정을 알고 있는 것 같은데 나는 그걸 모르니 갑갑해 죽을 지경이었다.
그저 한숨만 나온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모르는 게 죄지.
나는 결국 자포자기한 마음으로 입을 열었다.
“얕보지 마. 나도 산전수전 공중전 시가전까지 겪은 몸이야. 그러니까 말이나 암시로 어떻게 조종할 생각은 그만두고, 얌전히 요구 조건이나 말하지 그래?”
“…무어라?”
그 순간이었다. 시종일관 태연한 기색을 보여오던 지옥 대공이 갑자기 아미를 찌푸렸다. 물론 아주 약간이기는 했지만, 처음으로 표정 변화를 보인 것이다.
화정은 마치 때는 이때라는 듯 계속해서 조잘거리며 나를 채근했다.
그래. 여기까지 왔는데 이제 될 대로 되라지.
나는 화정에게 들은 그대로,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말을 꺼냈다.
“네가 단순히 더 높은 경지를 원하든, 죽은 무간 지옥의 재구성을 원하든, 아니면 1군단의 부활을 원하든…. 좌우간 도대체 뭘 원하는지는 잘 모르겠어. 하지만 그 어떤 생각을 갖고 있든 간에…. 에….”
– 왕으로 내세울 생각 말라고.
하도 말이 긴 탓에 까먹을 뻔 했으나, 마침 화정이 핵심적인 문장을 되짚어줘 도로 기억해낼 수 있었다.
“네 목적을 이루려는 일환으로 나를 왕으로 세울 생각이라면, 크게 착각하고 있는 거라고 말해주고 싶어.”
– 좋아. 자연스러웠어.
그러자.
“네, 네놈! 도대체 어떻게…?”
지옥 대공이 한껏 놀란 얼굴로 어탑에서 벌떡 몸을 일으켰다. 두 눈이 더없이 커진 게 마치 이건 예상치 못했다는 듯한 반응이었다.
“베히모스가 알려주었나? 아니면 그 아이가?”
“…….”
“아니 아니. 그럴 리가 없다. 그, 그러면….”
“…저기.”
그 순간 화정의 목소리가 한 번 더 머릿속을 울렸다. 나는 바로 내뱉지 않고 곰곰이 화정의 설명을 되새겼다.
더 높은 경지.
무간 지옥의 재구성.
1군단의 부활.
왕의 소멸과 내세움.
사실 지금의 나로서는 하나도 이해하지 못하는 말들이다. 그러나 무언가 다르다. 화정이 한 말을 그대로 뱉어내기 시작한 이후, 이야기가 더 이상 빙빙 돌지 않고 조금씩이나마 진전되기 시작한 느낌을 받고 있었다. 무엇보다 지금 지옥 대공의 저 반응이 명백한 방증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한 나는 처음으로 맑은 기분을 느끼며 지옥 대공을 응시했다. 내 손은 아직도 지옥 대공의 오른 젖가슴을 쥐고 있었다.
이윽고 천천히 손을 빼내려는 순간.
꽈악.
돌연 지옥 대공이 내 손을 더욱 강하게 부여잡았다. 그리고 눈을 강렬히 빛내며 나를 쳐다보았다. 자세한 설명을 요구하는 눈빛이었다.
나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하나 더 전할게 있으니까, 이거 하나만 제대로 대답해줘.”
“…전한다고?”
“화정의 질문이야. 너는 스스로 지옥의 왕이 되려고 한 적이 있나?”
“그, 그건 2천 년도 더 전에 포기한 일이다만. 나로서는 왕의 자격이…. 아!”
지옥 대공은 당황해 하는 와중에도 대답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탄성을 지르며 두 눈을 크게 떴다. 아마 ‘화정의 질문’ 이라는 말에서 방금 질문들이 어디서 나왔는지 깨달은 모양이다.
“그분이 무어라 말씀하셨지?”
지옥 대공이 급해 보이는 얼굴로 물었다.
“자기도 확신할 수는 없다고. 하지만 네가 왕이 되는데 실패했다면 나 또한 마찬가지일 거라고.”
“어째서?”
“너와 나는 동격의 힘이니까. 네가 실패했다면 나 또한 실패할 가능성이 높으니까.”
“하…. 하지만…. 나야 파괴니 실패했다손 쳐도, 화정의 힘은 분명 정화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을 터…. 그러면….”
그러자 지옥 대공의 낯에 멍한 빛이 그늘지었다. 무언가 큰 충격을 받았는지 말도 제대로 잇지 못하고 있다. 그 사이 나는 손을 이리저리 비틀어 기어코 빼내는데 성공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서 가볍게 손을 털은 후, 나는 나직한 목소리로 화정의 마지막 말을 전했다.
“정화 하나만으로는, 부활이나 재구성을 정의할 수 없어. …라는군.”
============================ 작품 후기 ============================
안녕하세요. 로유진입니다.
독자 분들. 어제 오후에 글을 올리겠다 해놓고 결국 올리지 못했습니다. 우선 이 점은 진심으로 사과를 드리며 용서를 구하고 싶습니다.
이후의 일은 말씀을 드릴까 말까 고민을 했는데…. 아무래도 제 코멘트 하나만 보고 기다린 분들을 생각해 사정을 말씀 드리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설령 변명으로 들릴지라도 그게 예의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사실 사정 자체는 아주 간단합니다.
어제 잠을 잔 이후, 아침에 병원에 다녀왔습니다. 이미 코의 출혈은 멎은 상태였고 가끔 목으로 넘어오는 것만 제외하면 큰 이상함은 없었습니다. 피로가 쌓여 코에 점막이 약해졌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돌아와서 글을 쓰는데…. 써지지가 않았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크게 이상하게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글이 안 써진 적이 한두 번도 아니고, 그때마다 나름 해결해왔으니까요. 그런데 문제는 원인 분석에 들어갔을 때부터였습니다.
1. 글 자체가 막혔다.
2. 체력이 떨어졌다.
1, 2번 어느 것도 해당 사항이 없었습니다.
글이 막힌 경우는 노트를 보며 구상을 점검하는 편입니다. 이전에 구상에 조금 변화를 주기는 했으나 큰 문제는 없었습니다. 그냥 짜놓은 대로 적으면 될 일이었습니다. 체력이 떨어졌다고도 생각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1주일 전부터 새벽 운동을 병행하고 있으며 아침에도 개운하게 일어났으니까요.
여기서부터 정말 미칠 것 같더라고요.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해봐도, 잠깐 산책을 해봐도, 데스크 탑에서 울트라 북으로 옮겨 봐도, 형 방으로 환경을 바꿔봐도, 누워서 써봐도, 결국 다시 원래 방법으로 돌아와도.
결국 하다 하다 안 돼서 벽에 머리를 쿵쿵 찧기까지 해봤는데도 똑같더라고요. 정말 별 짓거리를 다 했는데도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초조감은 더해가고 가슴이 갑갑해졌습니다. 오죽하면 폭탄 하나 삼키고 펑 터뜨리면 시원해지지 않을까, 이런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그냥 써놓은 것만 올릴까 생각도 해봤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러기는 싫었습니다. 아무리 외전이라고는 하나 지옥으로 오는 강수까지 뒀는데, 의미 없는 파트로 기억되고 싶지는 않았거든요.
결국 500단어(2000자)까지 적은걸 날리고 다시 적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그런데 그 내용조차도 마음에 들지 않고, 비슷한 부분에서 집중력을 잃었습니다.
그러는 동안 원래 오늘 조아라와 만나는 약속이 있었는데, 그것도 연락도 드리지 못하고 펑크를 내고 말았습니다.
결국 오후까지 끙끙 앓다가, 오후에 조아라에서 전화 한 통이 왔습니다. 오늘 약속도 있었으나, 연재도 안 올라와 있어 걱정하시는 마음에 전화를 주셨더라고요. 그래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상황을 말씀 드렸습니다.
그리고 다행히도 어느 정도 적절한 조언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한 번 까지는 내용을 엎으셔도 좋습니다만, 그 이상으로 엎지는 마세요. 그러는 순간부터 연중으로 들어가는 수순을 밟게 됩니다.”
“우선 안 써지는 부분은 놔두세요. 그리고 쓰고 싶은 부분, 이후의 부분을 먼저 적으시고요. 그 다음에 두 내용의 연결 고리를 생각해보세요.”
저에게는 천금과도 같은 조언이었습니다. 이후로 연락을 끊고 다시 집필을 시작해, 다행히 1회를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상 지금도 내용은 크게 만족스럽지는 않습니다. 초고보다 나아지기는 했지만, 어느 분의 말씀처럼, 아직도 소설이 아닌 설정의 나열이 주를 이루는 설명문이라는 느낌이 강하지요. 이 부분은 제가 노력해서 해소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상이 어제 하루 동안 있었던 일입니다. 솔직하게 밝힌다는 생각에 길게 적어놓기는 했는데 읽고 보니 조금, 아니 많이 부끄럽고 창피하네요. 이렇게 못난 저임에도 응원해주시는 독자 분들이 있다는 사실에 항상 감사하고, 또 죄송함을 느낍니다.
언젠가 제가 다시 페이스를 찾을 수만 있다면. 어제 지키지 못한 약속은, 불시에 연참으로 갚도록 하겠습니다.
독자 분들 모두 행복한 그리고 편안한 밤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로유진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