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IZE RAW novel - Chapter 681
00680 4. 약속된 이별. =========================================================================
“와. 오빠. 이것 좀 보세요.”
김한별이 작은 탄성을 지르며 손을 내밀었다. 가녀린 손에는 붉은색과 흑색이 어우러진 큼지막한 광석이 잡혀 있었다. 전체적으로 짙은 색조를 띠고 있어 예쁘다기 보다는 음침하다는 느낌이 강했지만, 김한별은 상당히 마음에 들어 하는 표정이다. 가만 보면 얘도 참 취향이 독특하다는 말이지.
하지만 이 생각을 그대로 겉으로 드러낼 수 없어 나는 머리를 끄덕였다.
“응. 보고 있어.”
“엄청 예쁘죠? 빛깔도 되게 곱고….”
“그런가? 의외네.”
“응? 뭐가 의외에요?”
고개 돌린 김한별이 나를 보며 살짝 눈을 떴다.
“그냥. 여자애들은 그래도 예뻐 보이거나 사랑스러운 색을 좋아하지 않나 싶어서. 예를 들면 분홍색이라던가.”
“그건 오해에요. 여자라고 무조건 분홍색을 좋아한다는 건 사회가 만들어낸 일종의 편견이죠. 그래야지 여성스럽다는 생각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으니까요.”
김한별은 핀잔조로 말하고는 팔짱을 더욱 강하게 껴오며 몸을 밀착시켰다. 좋긴 좋은데 무언가 부담스럽다는 기분이 가시지를 않는다. 무언가 어색하다는 기분에 인중을 긁으며 스리슬쩍 팔을 빼려고 했을 때였다.
“아. 여기 계셨군요. 조금 찾아 다녔습니다. 하하.”
어디선가 웅웅 울리는 듯한 걸걸한 음성이 들려왔다. 흘끗 시선을 돌리자, 아니나 다를까. 두터운 장갑을 낀 두 손을 싹싹 비비며 걸어오는 베히모스가 보였다.
“어떻게…. 우리 흑승 지옥의 명물인 흑열석은 마음에 드시는지요.”
“네. 우선 겉보기로는 상당히 마음에 드네요. 하지만 겉모습만 예쁜 건 아니겠죠?”
김한별은 고개를 까닥이더니 자못 거만한 어조로 말했다.
“암요. 그러믄요. 흑열석의 장점은 어떤 방식으로 사용하든 효능을 얻을 수 있다는데 있습죠.”
“어떤 방식으로 사용하든 이라고요?”
“예이 예이. 본디 광석이라 함은 제련을 거치고 물건으로 만드는데 의의가 있잖습니까. 허나 이 흑열석도 똑같느냐? 아니죠. 이 흑열석은 입에 넣어서 녹여 먹든, 가루로 빻아 타서 먹든, 여러 방식으로 좋은 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물론! 가장 좋은 방법은 물건으로 만드는 건데요. 이때도 흑열석이 상당히 경제적이거든요. 이 광석은 특히 장악하려는 성질이 강해서요. 예를 들어 검을 만든다고 가정해보면, 중앙에 요만큼만 박아 넣어도 통짜로 만들었을 때와 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지요.”
“비슷하다고요. 어쨌든 통짜로 만들었을 때보다는 성능이 떨어진다는 말씀이네요?”
“에이. 그거야 아가씨께서 이해를 해주셔야죠. 그래도 최소 6할에서 최대 8할까지는 엇비슷하게 낼 수 있습니다.”
“음. 그 정도면 괜찮네요. 아무튼 많이 챙겨주세요.”
김한별은 가볍게 콧숨을 흘리고는 새침한 얼굴로 종알거렸다. 그러자 베히모스는 “아이고. 여부가 있겠습니까. 오늘도 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라고 말하며 꾸벅 허리를 숙이기까지. 그렇게 하하 호호 웃는 둘을 보고 있으려니, 뭐랄까. 참 잘들 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어떻게든 물건을 파려는 약장수와 어떻게든 넘어가지 않으려 의연한 체하는 사모님을 보는 기분이다.
“저 그런데 말입니다. 챙겨드리는 건 문제가 되지 않는데….”
그때 계속 손을 비비며 꾸벅거리던 베히모스가 갑자기 다가와 은근한 음성을 울렸다.
“왜, 왜요? 문제가 되지 않으시면 가서 챙겨오시면 되잖아요.”
“그렇기는 한데. 워낙 양이 많아서요.”
“그래서요?”
“좀 도와달라는 뜻이죠.”
한순간 김한별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나를 한 번 쳐다봤다가 베히모스가 누구를 바라보는지 깨닫고서는 번갈아 시선을 돌렸다.
“저, 저보고 도와달라고요?”
살짝 떨리는 음성으로 묻자 베히모스는 그렇다는 듯 크게 투구(?)를 끄덕인다.
“마, 말도 안 돼요. 그럼 오빠도 같이…!”
“아. 도와주시는 건 한 분이면 충분할 것 같습니다. 그 이상은 인력 낭비라고 생각해요.”
“군단장이라면서요! 그럼 휘하 마수들을…!”
“공교롭게도 지금 다들 목숨을 걸고 임무 수행 중이라서요. 차마 빼올 상황이 못됩니다.”
연이은 공격에도 구변 좋게 대꾸한 베히모스는 딱딱 이 부딪치는 소리를 내며 성큼 다가왔다. 문득 김한별이 나를 꽉 붙잡는 감촉이 느껴졌다.
“엇차. 자자. 너무 빡빡하게 굴지 마시고 좀 도와주십쇼. 다 누이 좋고 매부 좋자고 하자는 일 아니겠습니까. 하하하.”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히모스는 나를 붙잡은 김한별을 솜씨 좋게 빼내고는 한 번에 들쳐 업었다.
“저는 아가씨와 다녀오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부디….”
이윽고 베히모스는 음흉하게 말끝을 흐리며 어딘가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뜻밖에도 김한별은 심하게 반항하지 않았다. 이제는 그냥 포기하기로 했는지 생각보다는 얌전히 베히모스의 어깨에 걸쳐진 채 서서히 멀어졌다. 그러나 업어진 모습으로 나를 보는 눈초리만큼은 날카롭기 짝이 없었다. 마치 ‘저는 오빠가 이제부터 무슨 짓을 하려는지 알고 있어요.’ 라는 듯한 눈으로 나를 노려본다. 거기다 억지로 웃으며 가볍게 손을 흔들어주자 볼을 빵빵하게 부풀리며 시선을 홱 돌리기까지. 저런 태도로 미루어봐도 그렇고, 아마 김한별 정도면 충분히 눈치를 채고도 남았으리라.
잠시 후.
“흠. 흑열석은 마음에 드느냐?”
역시나. 베히모스가 김한별을 데리고 사라지자 게헨나가 홀연히 모습을 드러냈다. 아마 어디선가 김한별이 사라지기를 기다리고 있었겠지.
그러니까 언제나 똑같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해보면 대 초열 지옥부터 시작된 이 레퍼토리는 초열, 대 규환, 규환, 중합 그리고 흑승 구간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반복되고 있었다. 각 구간의 명물을 소개해주고, 나와 김한별이 감탄하고, 그러면 베히모스가 어떤 이유를 붙여서든지 김한별을 데려가고(사실은 나와 떼어놓고.), 마지막으로 게헨나가 등장한다. 말인즉 나와 게헨나 둘만 남기려는 모종의 작전이랄까.
한두 번이면 모를까. 이런 일이 계속해서 반복되는데 그 김한별이 눈치를 채지 못할 리가 없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아예 작정하고 내 옆에 남으려는 마음을 먹은 것 같은데…. 베히모스는 조금도 아랑곳 않고 되레 강제로 몰아붙여 김한별을 데려가 버렸다. 예를 들어 중합 구간에서는….
‘저는 항문을 좋아하는 여자만 보면 호감을 가지는 버릇이 있어서요!’
‘가, 갑자기 무슨 개소리에요!’
‘자! 같이 놀러 갑시다!’
‘놔! 놓으란 말이야!’
…그래. 아무리 그래도 그때는 조금 심했지. 하필이면 그런 헛소리를 지껄이며 데이트를 신청하다니.
아무튼 아마 그때부터 김한별도 포기했을 것이다. 즉 절대 불변의 진리를 깨달았다고나 할까. 자신이 얼마나 논리적으로 베히모스의 행동을 논파해도, 결국 끌려가는 건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무슨 생각을 그리 하는 것이냐?”
뒷감당은 어떡하나 라는 생각에 무심코 쓴웃음을 짓고 있자, 돌연 나를 살짝 건드리는 감촉이 느껴졌다. 바로 옆에 게한나가 미묘하게 달뜬 눈으로 나를 물끄러미 응시하고 있다. 나는 차분히 머리를 가로저었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그것보다 흑열석 고맙다. 잘 사용할게.”
“음? 아무튼 마음에 들었다니 다행이구나. 그럼 이제….”
게헨나가 은근히 말끝을 흐리며 눈을 슬쩍 내리깔았다. 전날 밤 그렇게나 뜨거운 밤을 보내고서도, 또 몸이 가만 있지를 못하겠는 모양이다. 그러고 보면 며칠간 겪어온 바로 느끼건대 게헨나는 색녀 기질이 다분한 것 같다. 항시 달아오른 눈초리로 나를 보는 것도 그렇고, 관계 시 반응도 180도 달라진다.
허나 항상 먼저 말을 꺼내기가 어려운지, 게헨나는 아무 말도 않은 채 꼼지락꼼지락 손장난만 하고 있었다. 나는 싱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우리 잠깐 이야기 좀 할까?”
“아니. 싫다.”
그리고 게헨나는 아주 단호하게 거부했다.
“왜? 나랑 이야기하는 게 싫어?”
“그게 아니라…!”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 걸까. 게헨나가 눈을 게슴츠레 뜨더니 나를 곱게 흘겨본다.
“이, 이제는 안 속는다.”
“……?”
“이야기하자는 핑계로 말을 이리저리 빙빙 돌리면서…. 또, 또 내가 애타는 모습을 보고 즐기려는 속셈이 아닌가.”
“…이런.”
들켰나. 게헨나의 표정을 보니 아무래도 확실히 알아차린 모양이다. 아쉽다. 얼른 하고 싶어서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 한 번은 더 보고 싶었는데 말이지.
“미안.”
어쩔 수 없다는 생각에 나는 결국 양손을 들어올리는 항복 의사를 표시했다.
“정말. 그대의 가학적인 성격에는 진정 맞추기 힘들구나.”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게헨나는 곧 팔짱을 풀고 두 손을 살그머니 내렸다. 그러자 온몸에서 빛나는 붉은빛이 사그라지고 천연절경을 보는 듯한 환상적인 나신이 수줍게 모습을 보였다. 이내 어색한 헛기침을 한 게헨나가 무언가 굉장히 기대하는 눈초리로 나를 바라본다.
“그, 그래서. 오늘은 어떻게 나를 갖고 놀 생각이냐?”
“갖고 놀다니. 너무하잖아.”
나는 실없이 대꾸하며 허리띠를 끌렀다. 사르륵, 태양의 영광이 풀리는 동시에 하늘의 영광도 하릴없이 아래로 흘러내린다.
게헨나가 저렇게 말하는 데는 모두 이유가 있었다. 어떻게 보면 모두 내 탓이라고나 할까. 다른 게 아니라, 그냥 최선을 다한다는 의미에서 관계를 맺을 때마다 여러 체위를 시도했는데, 게헨나가 거기에 맛을 들려버린 게 문제였다. 말로는 나보고 가학적인 성격이라고, 자기를 갖고 논다고 하면서도 게헨나 스스로도 즐기고 기대하는 게 훤히 보인다. 그렇잖은가. 지금도 ‘자기야. 오늘은 어떻게 즐겁게 해줄 거야?’ 라는 듯 반짝반짝 눈을 빛내고 있는데.
‘그러고 보니 오늘은 어떻게 하지.’
안에 받쳐입은 셔츠와 바지를 벗으면서 나는 고심에 고심을 거듭했다. 사실 성에 관해서는 매우 빈약하고 빈약한 지식을 갖고 있는 터라, 이제는 서서히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다.
‘정상위, 후배위, 측위, 굴곡위, 선녀강림, 69, 가위 치기, 돌려 치기, 펠라티오, 파이즈리, 부카케, 커닐링구스….’
그동안 6개의 구간을 거치며 해왔던 체위들을 하나하나 생각하고 있자, 어느새 나 또한 알몸이 돼버렸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우선은 나한테 와서 안겨볼래?”
잠시 고개를 갸웃하기는 했으나 게헨나는 스스럼없이 다가와 살며시 안겼다. 부드러우면서 따뜻한 살결이 찰싹 달라붙자 자연스레 잡생각이 가라앉고 집중력이 올라온다.
가늘고 탄력적인 허리를 어루만지다가, 나는 게헨나의 양 허벅지를 받치듯이 안고서 천천히 들어올렸다. 그러자 엉덩이가 올라오는 동시에 게헨나의 다리가 뱀처럼 내 등허리를 살그머니 둘러 감는다.
이제는 서로 익숙한 만큼 더 이상 말이 필요하지 않다.
그렇게 게헨나의 허벅지를 든 자세로, 페니스의 끝부분을 음부의 중앙 부분으로 조준했다. 벌써 흥건하게 젖어 물을 뚝뚝 떨어트리는 하복부를 느끼며 나는 맞춘 구멍 안으로 조심스레 페니스를 밀어 넣었다. 이내 뜨거운 살을 파고들어가는 감촉에 이어, 게헨나의 엉덩이와 내 허벅지가 무리 없이 맞닿는다.
“아앙…!”
그 순간 게헨나가 입을 벌리며 작은 비음을 터뜨렸다. 어깨에 얹은 팔이 스르르 미끄러지듯이 흘러와 목을 감싸 안는다. 흘끗 시선을 내리자, 내 가슴에 맞닿아 부드러이 짓눌려진 젖가슴과 눈을 꼭 감은 채 파르르 떠는 속눈썹이 들어온다. 아닌 게 아니라, 지금 페니스에서도 미미한 진동을 느끼고 있었다. 진입이 그렇게나 기쁜지, 어디 샐 틈도 없이 단단하게 옥죄며 환영해준다.
이윽고 간신히 눈을 뜬 게헨나는 잔잔히 웃으며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만족한 모양. 나는 다행이라고 가슴 한 켠을 쓸어 내리며 녹아 내릴 듯한 끈적끈적한 게헨나의 나신에 온 신경을 몰입했다. 한 손으로는 여전히 엉덩이를 받치며 다른 한 손으로 등을 껴안자, 코끝으로 달콤한 살 내음이 물씬 풍겨왔다.
잠시 후.
“으음…. 하악…!”
조금씩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한 찰나, 게헨나가 달뜬 신음을 뱉으며 한껏 고개를 젖혔다. 그에 따라 드러난 사슴 같은 목선을 바라본 순간 나도 모르게 불끈거리는 욕망이 치솟았다. 슬슬 시동을 걸어 허리를 더욱 강하게 올리자, 게헨나의 풍만한 젖무덤과 용암 빛 머리카락이 물결치듯 출렁인다.
숨 가쁜 열풍이 주변으로 삽시간에 몰아치기 시작했다.
============================ 작품 후기 ============================
지옥은 총 8개의 구간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8열 지옥이라고도 하는데요. 아래서부터 무간, 대 초열, 초열, 대 규환, 규환, 중합, 흑승, 등활 지옥으로 부른다고 하네요. 그리고 지금 김수현이 있는 장소가 흑승 지옥, 즉 2번째 구간입니다. 내일이면 최상층인 등활 지옥으로 올라가고, 김수현이 인간 세상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외전은 끝이 납니다.
그리고 이건 조금 다른 이야기인데…. 혹시 여러분은 메모라이즈에서 보고 싶으신 외전이 있으신가요? 예전에 말씀드린대로 현재 비주얼 노벨을 작업 중인데요. 클리어 보상 격으로 외전에 관한 내용을 넣을까 논의 중에 있습니다. 어떤 내용이라도 좋아요. 1회 차 내용이든 2회 차 내용이든 좋으니, 혹시 이걸 보고 싶다라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으시면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_(_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