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IZE RAW novel - Chapter 879
00878 Battle Of The East Continent, Four. =========================================================================
처음 눈에 들어온 건 나무가 심히 우거진 삼림이었다. 전체적으로 어두운 빛을 띤 수림이 영상을 가득 채웠는데, 왜인지 낯설지가 않다.
그러나 정작 시선을 빼앗는 건 풍경이 아니었다. 어두침침한 숲 속, 울창한 수풀을 줄지어 헤치고 나오는 이들이 있었다.
중요한 건 한두 명이 아니라는 것이다. 얼마나 수가 많은지, 하늘 높이서 영상을 비추는 것 같음에도 행렬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못해도 수천 명은 넘어 보인다.
그때 문득 영상이 사용자 무리를 확대해 비췄다. 아는 얼굴은 없으나, 하나는 알 수 있었다. 영상 속의 인간들은 북 대륙 사용자가 아니었다. 이놈들은….
“누군지 아시겠습니까?”
“…서 대륙 놈들이잖아.”
“맞습니다. 영상 속 인간은 전원 서 대륙 사용자들이며.”
“장소는 칠흑의 숲…. 이라는 건가?”
혹시나 싶어 넘겨짚자, 세라프는 살짝 끄덕였다.
“정확히는 칠흑의 숲 최외곽 지역입니다. 평균 행군 속도로 계산해봤을 때, 여드레 후면 뮬에 도착합니다.”
세라프의 말인즉, 서 대륙 놈들이 곧 이 차 침공을 해온다는 소리였다. 이 년 전, 뮬을 기습 공격으로 점령했을 때와 똑같은 루트로.
순간 가슴이 쿵쾅 요동쳤으나, 심안 덕분인지 가까스로 가라앉았다. 적어도 남 대륙이 넘어갔다는 소식보다는 덜 충격적이니.
아니, 서 대륙 침략은 그나마 이해 가는 점은 있다. 부랑자와 연합해 침범해온 전력도 있거니와, 애초 악마의 뜻대로 돌아가는 식민지와 같은 곳이니까. 오죽 회생 가능성이 없었으면 천사가 폐쇄라는 극단적인 선택까지 했을까.
단지 이해와는 별개로, 석연찮은 구석이 있기는 하다.
“그런데, 반드시 아셔야 할 정보가 있습니다.”
의문을 가진 찰나, 공교롭게 세라프가 입을 열었다.
“수현도 아시겠지만, 서 대륙은 저번 사건 이후 저희 손을 떠났습니다.”
“손을 떠난 게 아니라 뗀 거겠지. 그나마 정상적인 사용자는 저번에 데려오게 했고, 나머지는 버렸잖아?”
“…그 이후로, 서 대륙 인구는 일만 명이 채 안 되는 수준으로 떨어졌으며, 예비 사용자의 보충은 일절 없었습니다. 한데, 현재 칠흑의 숲에서 확인되는 인원은 약 오륙천 명에 가깝습니다.”
“오륙천 명?”
세라프의 말을 듣자 의문이 점차 증폭되는 기분이다. 수가 너무 많아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였다. 갑절의 인원으로 왔을 때도 박살이 나서 도망가지 않았는가.
게다가 그때와 현재는 상황이 판이하다. 서 대륙은 아마 아이리스 공략도 못 했을 텐데.
물론 서 대륙이 약하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약육강식의 극을 달리는 곳이니만큼 살아남은 놈들은 그럭저럭 무력을 갖췄을 터.
허나, 그렇다고 해도 북 대륙과는 비교하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인구, 전투 사용자의 수, 장비의 질, 사용자의 수준 등등. 전 부문에서 우리가 훨씬 앞서는데, 고작 그 병력으로 왔다고? 전체를 끌고 와도 한참 모자랄 판에?
놈들이 죽고 싶어 안달 나지 않은 이상, 믿기 힘든 일이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다.
“혹시 끊임없는 내전으로 인구가 감소한 건가?”
“사실.”
세라프는 잠시 뜸을 들였다. 살그머니 눈치를 살피더니 조심스레 말을 잇는다.
“서 대륙에는 현재 이천 명에 가까운 사용자가 남았습니다.”
“이천 명이나?”
“근 몇 달간, 저희는 서 대륙에 특별한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가끔 확인할 적은 있었으나, 간간이 도시를 확인하는 선에서 그쳤을 뿐이지요.”
“……?”
“이러한 결과, 서 대륙의 움직임을 사전에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즉 속임수라고, 저희는 그렇게 결론을 내렸습니다.”
“속임수?”
“그게 아니라면, 굳이 이천 명이나 되는 사용자를 남길 필요가 있을까요?”
“잠깐, 잠깐만.”
갑자기 얘기가 치고 나갔다. 일단 침착하게 생각을 정리해보자.
현재 확인한 사실은 두 개. 우선 남 대륙이 악마와 손을 잡았다는 것. 그리고 서 대륙이 우리를 공격하러 오고 있다는 것.
여전히 이해가 안 되는 건 서 대륙의 입장이다.
세라프의 말은, 도시가 갑자기 휑하니 비어버리면 의심할 수도 있으니 일부러 이천 명을 남겼다는 소리였다. 말인즉 천사의 눈을 최대한 피하려 했다는 건데….
왜?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시기도 묘하다. 왜인지 두 사태가 연관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엄습한다. 톱니바퀴가 하나씩 맞물려 돌아가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여기까지 정리해보면, 서 대륙이 움직인 것에는 모종의 목적이 있는 게 분명하다. 최악의 경우 시몬이 부활했을 가능성도 있다. 아니면 비슷한 놈이 나타났거나.
“여기서 가브리엘 님이 가능성 높은 가설을 제기하셨습니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세라프의 말이 이어졌다.
“수현도 느끼셨을 겁니다. 뒤늦게 알아차리기는 했지만, 어떤 수를 써도 서 대륙이 북 대륙을 이길 수 없다는 건 명약관화입니다. 전력 차이가 어마어마하니까요. …그럼에도 굳이 왔다는 건.”
“건?”
“아마 미끼가 아닐까 싶습니다.”
“미끼?”
“네. 북 대륙의 관심이 서 대륙에 쏠려 있는 동안, 남 대륙을 이용해 무언가를 이루려는 게 아닐까….”
“…….”
세라프가 흐린 말이 여운처럼 남아 뇌리를 스친다. 그 순간, 얽히고설켜 헝클어졌던 생각이 일시에 정리되는 듯했다. 동시에 내가 수호자를 맡아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불현듯 들었다.
아마 다른 사용자가 맡았다면 그게 뭔 소리냐며, 일단 서 대륙부터 막겠다고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적어도 나만큼은 세라프의 말을 이해한다. 천사는 말할 것도 없고, 나도 악마와 싸워본 경험이 있으니까. 그래서 사탄이 어떤 식으로 일을 벌이는지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래, 사탄이라면 말이다.
이로써 현 사태의 전말이 어느 정도 확실해졌다.
“그럼 남 대륙의 움직임이 중요해지잖아.”
그러자 세라프가 살며시 아미를 찡그리며 고개를 가로젓는다.
“송구합니다. 갖은 수를 동원하고 있으나, 상황이 심히 여의치 않습니다.”
결국에는 알 수 없다는 뜻인가.
“단, 짐작 가는 것은 있습니다.”
“오. 뭔데?”
“동 대륙입니다.”
“동 대륙?”
이건 또 의외인데. 아닌 밤중에 홍두깨도 아니고, 왜 동 대륙을…?
“들은 바로는, 연결이 끊기기 전, 남 대륙에 갑자기 동 대륙을 정벌하겠다는 소문이 돌았다고 합니다.”
“이해가 안 가는데. 중앙 대륙으로 가는 거라면 모를까. 왜 악마가 동 대륙을 노린다는 거지? 그럴 이유가 없잖아.”
“이유라면, 있습니다.”
“있다고?”
강한 확신을 담은 음성에 나도 모르게 반문했다.
“동 대륙 점령에 성공할 경우, 악마는 총 두 가지 막대한 이득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인간이 아닌, 악마의 입장에서.”
되묻듯이 말하니 세라프는 조용히 긍정했다.
“그런데, 그전에.”
그게 어떤 이득이냐고 물으려는 찰나, 세라프가 먼저 말을 잇는다.
“바로 이 시점에서, 수현의 결단이 필요합니다.”
그렇게 말한 세라프는 주먹 쥔 손을 앞으로 내밀어, 둘째 손가락과 셋째 손가락을 동시에 폈다. 그리고 말했다.
“수현은, 두 갈림길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 순간이었다.
‘갈림길’이라는 말을 들은 순간, 묘한 기시감이 느껴졌다.
언제였더라. 비슷한 말을 들은 기억이 있는 것 같다.
아마 용이 잠든 산맥 공략이 끝나고, 가네샤한테서였나?
‘악마와 마족을, 지워버리고 싶다.’
맞아. 비석 안에서 그렇게 물어봤었다.
그리고 가네샤는….
‘아쉽다만, 그 질문은 내가 정확히 답변할 수 없는 성질이구나.’
‘단, 예언 하나 정도는 해줄 수 있겠어.’
‘후후. 뭘 그리 놀라느냐. 그러니까….’
‘그대가 걸어가는 길의 끝은, 두 갈래로 나뉘어 있단다.’
============================ 작품 후기 ============================
죄송합니다.
업데이트 시간도 늦었는데, 용량도 평소보다 적네요.
오늘 집필 시작 시간에 제가 까무룩 잠들었습니다.
일어나니 새벽 3시가 넘어서, 그때부터 허둥지둥 적기 시작했습니다.
어지간하면 용량이라도 맞추고 싶었는데, 변명의 여지가 없네요.
앞으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최대한 노력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_(_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