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d Demon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143
광마전생 (143)
놀랍게도 그 이후로 설백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설백을 생각하면 그날의 눈물이 떠올라 왠지 모르게 미안해졌지만 깊게 생각지 않기로 했다.
“이쯤에서 떨어져 나간 게 오히려 다행일지도 몰라.”
“뭐가요?”
내 혼잣말을 들은 건지 흑련이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그것보다 그 이후 석가장의 동태가 어떤지나 말해.”
“뭐, 똑같습니다. 당연히 석산우는 크게 분노했고 단서를 찾기 위해 호북을 샅샅이 뒤지고 있는 중입니다.”
“우리가 드러날 가능성은?”
“없습니다. 가야허 님의 보고에 따르면 이렇다 할 무공을 쓰지 않아도 제압할 정도로 쉬웠다고 하니까요.”
“흐음…… 그래?”
무공도 쓰지 않고 제압했다라…….
내 생각보다 우리 흑천파가 강한 건지 아니면 반대로 석가장이 너무 약한 건지…….
솔직히 이번 무한석가장의 습격은 내 화풀이였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흑천파의 강함을 실험해 보고자 일으킨 일이었다.
솔직히 나는 아무리 조종려가 있다고 해도 이렇게 쉽게 무한석가장을 제압하리라곤 생각도 못 했다.
천금표국은 사실상 중원 제일의 표국이라고 해도 거짓이 아니었고 무한석가장 역시 하북에 있는 본가에 비교하면 두 번째 가는 규모를 자랑하는 곳이었다.
그리고 규모가 큰 만큼 돈도 많이 굴리고 있고 돈이 많다는 것은 그것을 지킬 무사들도 많다는 것이었다.
오죽하면 그 무력이 제갈세가를 가볍게 뛰어넘을 정도라는 말까지 나돌 정도였는데 흑천파의 정예 몇 명에게 쉽게 무너지다니.
물론 우리 애들이 질 거라는 생각은 안 했지만 적어도 수적 차이로 고전은 할 거라 생각했었기 때문에 더욱더 의외였다.
“우리 애들이 그렇게 강한가…….”
“네?”
“아니. 사실 난 그렇게 쉽게 무한석가장이 털릴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거든. 게다가 금천표국까지 상주하고 있었다는데…….”
그러자 내 말에 흑련이 무슨 말을 하냐는 듯한 표정을 짓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농담이시죠, 흑제 님?”
“응? 뭐가?”
“흑천파의 정예가 약할 리가 없잖아요. 비록 은월신보를 가벼이 만들어 그 깊이는 얇으나 흑제 님이 직접 만드신 은산신보를 익혔고, 이화신공을 개량한 열화신공이랑 흑제 님이 만드신 도법인 열악도까지. 신기에 가까운 무공 세 가지를 매일 같이 단련하는 그들이 약할 리가 없잖아요. 그 사천당가조차 혀를 내두를 정도인데 고작 석가장 따위가 막을 수가 없죠.”
“음…….”
흑련의 말을 들으니 왠지 납득이 가는 것 같았다.
“내가 우리 애들을 너무 과소평가하고 있었나……?”
그런 생각을 하며 살짝 미래에 대한 고민에 빠진 그때.
누군가가 문 앞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똑똑.
“누구십니까?”
“제갈적입니다. 시간이 있으시면 잠시 봬도 되는지 여쭈고자 왔습니다.”
“아, 들어오셔도 됩니다.”
내 말에 곧바로 문이 열리며 제갈적이 들어왔는데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그의 뒤를 따라 들어오는 다소곳한 옷차림의 여인.
조금 앳되어 보이지만 그래도 상당한 미인인 여성이었다.
제갈적은 흑련을 보고 잠시 놀라더니 나를 쳐다봤고, 나는 고개를 저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남녀가 방 안에 단둘이 있다고 해서 매번 큰일이 나는 것은 아니니까요.”
내 말에 제갈적의 표정은 급격히 밝아지더니 흑련을 향해 고개를 숙였고 여인과 함께 자리에 앉았다.
“이렇게 귀중한 시간을 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여립 대협.”
“제갈적 님이라면 시간이 없어도 만들어서 내야지요. 그런데 여기 이분은…….”
“아! 죄송합니다. 뭐 하느냐! 어서 대협께 인사드리지 않고.”
제갈적의 부추김에 여인이 내 눈을 잠시 쳐다보더니 이내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십니까, 이여립 대협님. 저는 제갈중화라고 합니다.”
“하하. 그때 말씀드린 제 여식입니다. 오늘은 우리 중화가 우연히 나들이를 와서 이렇게 대협께 인사를 드리고자 한 것입니다.”
제갈중화.
요즘 들어 제갈적의 입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이름이었다.
근래 제갈세가는 똥줄이 많이 탄듯했다.
그 이유는 딱 두 단어로 설명이 가능했다.
‘설백’.
제갈세가는 매일 드나드는 설백의 모습에 혹시라도 내가 그녀와 혼인하겠다고 할까 봐 노심초사하고 있는 중이었다.
솔직히 외모상으로는 설백은 완벽 그 자체였으니까.
그래서 그런지 제갈적은 매일 나에게 여식의 이름을 거론하며 어떻게든 관심을 끌려고 했다.
내가 그녀에 대해 들은 정보는 꽤나 많았다.
우선 그녀는 용봉지회(龍鳳支會)에서 아름다운 것으로 눈에 띄어 ‘현미(玹美)’라는 별호를 얻었다고 한다.
어디서 들어 본 곡식의 이름 같은 별호라 기억에 똑똑히 남아 있다.
참고로 용봉지회란 사신무와 비슷한 것인데 차이점이 있다면 급의 차이가 있었다.
사신기제에서 진행되는 사신무는 후기지수라면 누구나가 다 참여가 가능했지만 용봉지회는 달랐다.
이름 있는 문파 그중에서도 명문정파들의 후기지수만이 참여할 수 있었고 그마저도 용봉지회를 개최하는 무림맹에서 선별한 인원만 참가가 가능했다.
아무튼 우리 현미 제갈중화께서는 오뚝한 콧날과 새하얀 피부 그리고 여성치곤 큰 키와 아름다운 각선미를 가지고 있다고 하는데, 이는 모두 제갈적이 이야기해 준 것들이었다.
그는 자신의 딸을 소개시켜 주기 전에 나에게 그녀에 관한 모든 것을 주입시켜 놓은 것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직접 마주하니 생각보다 제갈적의 말에 거짓은 없다시피 했다.
제갈중화는 확실한 미인이었으니까.
이야기와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가슴 정도랄까.
하지만 여성의 가슴 크기는 붕대로 조절이 가능하니 모르는 일이지.
하여튼 지금 그런 건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제갈적은 당장이라도 그녀와 나를 혼인시키고 싶어 하는 것 같았으니까.
그리고 나는 그 뜻을 존중할 생각이었다.
“총관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정말 아름다우신 분이시군요.”
“감사합니다, 대협.”
보통 이렇게 답을 한다면 자신이 예쁜 줄 아는 사람이다.
그리고 자신이 예쁜 것을 안다면 그걸 이용할 줄도 안다는 뜻이지.
다행이었다.
결국 상처를 입어야 할 사람이 그런 사람이라서.
“대협 옛말에 쇠뿔도 단김에 빼라는 말이 있습니다. 저희 중화도 대협을 마음에 두고 있는 듯하여…….”
“좋습니다.”
“예?”
“소저께서 제가 마음에 드신다면 저는 당장 식을 올려도 상관이 없습니다.”
식을 올리겠다는 말에 둘은 크게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떴고 믿지 못하겠다는 듯이 제갈적은 계속해서 질문했지만 나는 그때마다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첫눈에 소저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다만 지금 식을 올리고자 하면 준비할 것도 너무 많고 절차도 복잡하니. 이렇게 언약으로만 남기고 식은 무호제가 끝난 뒤에 제갈세가에서 올리는 것이 어떻습니까.”
내 말에 제갈적은 뛸 뜻이 기뻐했고 제갈중화의 표정은 어딘가 미묘했다.
잠시 그들과 쓸모없는 잡담을 나눈 나는 수련을 핑계로 그들을 돌려보냈다. 방을 나가는 제갈적의 표정은 여태껏 본 표정 중에 가장 밝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제갈적이 떠나자 곧바로 눈에 들어온 것은 굳은 표정의 흑련이었다.
“왜, 또. 뭐가 맘에 안 들어서 그래?”
“정말로 저 여성과 혼인할 생각이신 겁니까?”
“흐음, 글쎄……?”
“그럼 저희 령주는요?”
“갑자기 성아는 왜?”
“왜라니요? 저희 령주님이랑 그렇고 그런 사이 아니셨어요?”
너무나도 뜬금없는 질문과 대답에 나는 할 말을 잃어버렸다.
언제부터 성아랑 내가 그렇고 그런 사이가 되어 있었던 거지?
“아니, 잠깐만. 일단 확실하게 말하고 갈게. 난 딱히 성아랑 그렇고 그런 사이가 아니야. 정말로. 그러니 왜 그런 말이 나왔는지 설명해 줄 수 있을까?”
내 말에 흑련은 잠시 입술을 깨물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그 이야기에 대한 것을 설명해 주었다.
은월령에서 나와 성아가 그렇고 그런 사이가 되어 있던 이유.
그것은 놀랍게도 모두 성아가 벌인 일이었다.
은월령이 감숙 월곡을 떠날 때 성아가 사자들을 설득시키기 위해서 나와 그렇고 그런 사이가 되었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성아는 나와 좋은 가정을 이루고 살고 싶지만 차마 은월령을 떠날 수 없어서 모두 함께 떠나자며 그들을 설득한 것이었다.
“그래서 저는…… 흑제 님이 언젠가 저희 령주와 혼인을 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어쩐지 너무나도 쉽게 은월령이 흑천파에 들어오는 것을 승낙하더니…….
이런 생각지도 못한 비화가 뒤에 숨어 있을 줄이야.
살짝 충격적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걸로 성아에게 화를 낼 수도 없는 일이었다.
왜냐하면 그녀는 나를 위해 거짓말을 해서라도 은월령을 끌어들이려고 한 것이었으니까.
오히려 이는 고마운 일이었다.
은월령에 흑천파가 들어오게 되면서 내 계획이 확실히 좀 더 쉬워지게 된 것은 사실이었으니까.
나는 마음속으로 살짝 고심을 한 뒤 흑련을 보며 부탁했다.
“이 일은 비밀로 해 주지 않을래? 중요한 시점에 계획에 차질이 생기면 안 되니까. 무슨 뜻인지 알겠지?”
내 말에 흑련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고맙다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역시 우리 흑묘는 착하단 말이지.”
“흥. 아무튼…… 그럼 제가 이건 비밀로 해 드릴 테니 제갈세가의 여식에 대한 것이라도 알려 주세요. 정말로 혼인하실 거예요, 그 여자랑?”
흑련의 말에 나는 가볍게 고개를 내저었다.
“당연히 할 리가 없지. 내가 뭐가 아까워서? 그냥 적절히 이용할 뿐이야.”
“그건 다행이네요.”
한숨 돌렸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는 흑련.
그녀가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왜냐하면 그녀에 관해서 세세하게 조사해 온 것이 바로 흑련이었기 때문이었다.
하도 제갈적이 여식에 대해 언급하길래 나에게 혼인을 목적으로 소개시켜 줄 여성이 제갈중화라는 것을 미리 눈치채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나대로 알아보기 위해 흑련을 통해 그녀를 조사해 봤는데, 럴수 럴수 이럴 수가.
아름다운 장미에는 가시가 있는 것처럼 그녀 역시 가시가 잔뜩 나 있는 여자였다.
그것도 시퍼런 독이 묻어 있는 장미.
제갈중화는 굳이 말하자면 머리가 매우 좋은 악녀였다.
남자를 가지고 놀다 버리는 것을 밥 먹기처럼 하며 그 좋은 머리를 이용해 이리저리 뜯어먹기도 많이도 뜯어먹은 사람이었다.
게다가 좀 더 파고 들어가 보니 아름다움의 이면에 추악함이 너무나도 많은 여자였다.
그러니 그렇게 아름다운 외모를 가졌음에도 아직 혼인을 못 했을지도 모른다.
아니, 스스로 안 했을 수도 있지만.
“여튼 오늘 보니 확신했어. 네가 가지고 온 정보들이 모두 사실이라는 것을 말이야.”
“점쟁이예요? 얼굴만 보고 알게?”
“다 그런 게 있단다.”
내가 다시 머리를 만지려 하자 흑련이 내 손을 가볍게 피하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시 나갔다 올게요.”
“어디 가게?”
“꽃 보러 갈 거예요. 그러니까 따라오지 마세요!”
쿵!
저도 모르게 문을 세게 닫고 나온 흑련은 살짝 붉어진 얼굴로 한숨을 내쉬더니 자신의 가슴에 손을 얹었다.
“진짜 내가 고양인 줄 아시는 건지…….”
오늘 이야기에서 그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제갈중화도 석가장도 아니었다.
모용진과 령주가 아무런 사이도 아니었다는 것.
그게 흑련의 마음을 크게 흔들었다.
“그럼 아직…… 나도 가능성이 있다는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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