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d Demon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283
광마전생 (283)
“온다.”
인달의 짧은 한마디.
하지만 그 한마디에 움직인 것은 명교 전체였다.
“맞서 싸우는 건 어떻습니까? 어차피 죽여야 할 상대라면 다소의 피해는 있겠으나 저희의 힘이라면…….”
현초월은 맞서 싸우는 것을 원했지만 인달은 매몰차게 고개를 저었다.
“천기린, 그자는 쉽게 볼 사람이 아니다. 지금은 도망칠 때야.”
“그럼 어디로 도망가야 합니까? 역시 천용현님이 향한 광동으로…….”
“아니 의식을 방해할 수는 없다. 우리가 광동으로 간다면 적에게 본거지를 가르쳐 주는 것과 마찬가지니까. 고로 우리는 적이 생각지도 못한 곳으로 이동할 것이야.”
“생각지도 못한 곳?”
“저기.”
현초월의 질문에 인달이 가리킨 곳은 바로 명교의 앞마당이었다.
인달이 장난을 치는 건가 싶어 현초월이 인상을 찌푸리는 그때.
콰직!
굉음과 함께 허공에 금이 가기 시작하더니 그 틈이 점점 벌어졌다.
그리고 잠시 후, 동그란 형태가 된 균열의 틈 속에서 한 인영이 튀어나오더니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균열 속에서 갑자기 나타난 그녀의 정체는 바로 천마손.
그녀는 열심히 주변을 둘러보더니 이내 현초월이 있는 곳을 보며 고개를 숙였다.
“오랜만입니다, 절악명 님. 그간 잘 지내셨는지요.”
그녀가 갑자기 절악명을 부르며 고개를 숙이자 놀란 현초월이 고개를 돌렸는데 그곳엔 어느새 절악명이 인달의 뒤에 서 있었다.
“절악명님…… 천용현님과 함께 움직이시는 것 아니었습니까?”
“혼자서도 충분하다더군. 천마손, 준비는 끝난 것이냐?”
“예, 언제든지 말씀만 해 주십시오.”
“좋아, 현초월.”
“예?”
“한시진 이내에 명교의 모든 이들을 소집해라. 우리는 천마손의 균열을 타고 곧바로 신강으로 갈 것이니까.”
* * *
명교(明敎).
원래도 악한 사파에 속하지만 모용진에게 있어서 이보다 더 악한 이들은 없을 거라고 생각될 정도로 악인 중의 악인이었다.
모용진에게 있어서는 어떻게 보면 그들이 이 모든 일의 시작점과 마찬가지 였으니까.
그렇기에 명교를 향하는 모용진의 발걸음은 무척이나 가벼웠다.
오랜 시간 동안 기다려 왔던 복수를 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흠, 흠흠.”
콧노래까지 부르며 귀주를 향해 경공을 발휘하며 날아가는 모용진.
보통 복수를 꿈꾸는 자들이 복수에 성공했을 때, 그 끝엔 결국 허무함을 많이 느낀다고 하지만 모용진은 달랐다.
팽여운을 시작으로 하여 최근에 잡았던 석산우까지.
모용진은 그 복수의 과정에 있어서 단 한 번도 허무함을 느끼지 않았다.
오히려 성취감마저 느끼고 있는 그는 이미 복수의 끝과 그다음까지 생각하고 있었다.
그에겐 아직 하고 싶은 것이 많았고 못 해 본 것도 많았으니까.
이번 생을 오로지 복수 하나에만 몰두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던 모용진이었다.
그러니 지금 그가 행하는 복수는 인생의 끝이 아니라 과정일 뿐이다.
새로운 무언가를 하기 위해 거쳐 가야 하는 과정.
그렇기에 그는 이처럼 복수를 즐길 수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명교의 앞에 도착한 모용진은 잠시 그 즐거움을 접어 둘 수밖에 없었다.
“……한발 늦은 건가.”
명교가 있는 귀양성.
그곳에 들어선 모용진은 저도 모르게 인상을 쓸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입구부터 그를 반기고 있던 것이 빗물에 섞여 흘러내려 가는 피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들어선 마을은 온통 피투성이였다.
마을 어딜 둘러봐도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고 더 놀라운 것은 그 피를 뿜어냈을 시체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사람 한 명 보이지 않는 유령 마을이 된 귀양.
그곳에 있는 것이라곤 누군가가 흘렸을 붉은 피뿐이었다.
모용진은 여기저기 형성되어 있는 피 웅덩이를 봤을 때 이곳 마을 사람들은 모두 몰살 당했을 거라 생각했다.
“피가 강물처럼 흐르는데 시체는 보이지 않는다라…….”
그 끔찍한 피비린내는 비가 와서 몇 배 더 강해졌지만 모용진은 인상조차 찡그리지 않고 무덤덤한 표정으로 마을을 가로질러 걸어갔다.
그렇게 그가 향한 곳은 명교가 있는 산의 초입 부분.
으리으리한 외관을 자랑하는 명교의 대문은 활짝 열려 있었고 문을 지키는 자들 역시 보이지 않았다.
마을과 똑같이 명교는 전혀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지만,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그 어디에도 피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여기만 깨끗하다는 것은 마을의 그 짓거리는 명교가 했다는 뜻인가.”
모용진은 명교의 내부로 들어가 샅샅이 뒤졌지만, 그곳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다급했던 흔적만이 남아있을 뿐.
아무것도 건지지 못한 모용진이 인상을 찌푸리며 명교의 밖으로 나가려는 그때.
휘이잉.
한 공터에서 부는 바람에서 이상함을 느꼈다.
주변과는 전혀 다른 느낌의 바람.
바람이 어떻게 느낌이 다르냐고 할 수 있겠지만 모용진은 현경에 오른 고수였다.
자연의 기를 그대로 느낄 수 있었고 바람 역시 그 자연의 기에 포함되는 것이었는데 그 기운이 주변의 다른 공기와는 너무나도 이질적인 느낌이 들었다.
저절로 멈춘 발걸음은 모용진을 그 공터로 향하게 했고 그곳에서 모용진은 발견했다.
미세하게 갈라진 공간을.
그 갈라진 공간은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틈이었지만 공아(空我)를 사용한 모용진의 눈엔 선명하게 그 기의 흐름이 눈에 들어왔다.
어딘가를 향해 쭉 뻗어 있는 기의 흐름은 그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길었고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다.
“이 방향이라면…… 사천과 청해 그리고 마교가 있는 신강 쪽인가.”
문득 마교를 떠올린 모용진은 천마가 사용했던 그 술법을 떠올렸고 흐름의 행선지를 정확하게 알아냈다.
“마교로군. 천마가 그 술법을 이용하여 명교를 모두 옮긴 것이 틀림없다.”
그 사실을 알아낸 모용진은 망설임 없이 균열의 틈을 향해 손을 찔러 넣었다.
콰작!
모용진의 손가락 끝에서 다시 깨어지는 공간의 틈.
하지만 이미 흐름은 거의다 끊어져 사라져 가고 있었고 그 깨어진 틈 역시 빠르게 사라지고 있었다.
“쳇, 역시 안 되는 건가.”
혹시나 자신도 그 틈을 이용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던 모용진이었지만 안 된다는 것을 알고는 빠르게 체념했다.
하지만 체념이 빨랐던 만큼 그가 결정을 내리는 것 역시 빨랐다.
“명교가 우리를 피해 마교로 대피했다. 역시 명교는 천외천이랑 연관이 있었던 건가.”
모용진의 추리는 간단했지만 사실적이었다.
왜냐하면 명교는 마교에서 갈라져 나온 종교였고 당연히 그 둘의 사이는 좋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천마가 자신의 술법을 쓰면서까지 명교를 모두 대피시켜 준 것으로 봤을 때 그 연결 고리가 될 수 있는 것은 천외천 딱 하나밖에 없었다.
“천마손이 마교에 있으니 그럼 명교에 천용현 그자가 있었던 것인가. 흐음…… 그럼 내가 향할 곳은 딱 한 곳 뿐이군.”
모용진의 발걸음이 향한 방향.
그곳은 바로 마교가 있는 신강이었다.
원래 맛있는 건 맨 마지막에 아껴 먹는 주의의 모용진이었지만 그가 지금 신강을 향하려 하는 것은 촉 때문이었다.
“왠지 모르게 찝찝하단 말이지. 천외천, 대체 무슨 짓을 꾸미는 것이냐.”
* * *
“죽여!”
“죽여라!”
푹!
“끄아아악!”
“으히히히힛, 죽어!”
천용현.
그가 세상에 태어났을 때 중원은 전란에 휩싸여 있을 때였다.
황제는 존재했지만, 그 힘이 미미하였고 그 아래의 제후들이 각각 땅을 차지하고 서로 전쟁을 벌이던 시절.
천용현은 전쟁이 한창 벌어지고 있는 초야에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는 화살에 맞아 큰 치명상을 입었지만 천용현을 낳았고 이후 곧바로 사망했다.
그렇게 태어나자마자 죽을 위기에 처했던 천용현을 구해 준 것은 다름 아닌 적의 장군이었다.
장군은 전장에서 태어난 천용현을 거두어들였고 그를 양자로 두었다.
그렇게 생겨난 천용현이란 이름.
천용현은 장군의 이름 아래 부족할 것 없이 자라났다.
그는 영특한 머리는 물론 뛰어난 무골을 가지고 있어 자신의 아버지처럼 장군이 되는 것을 꿈꿨고 그 꿈은 너무나도 쉽게 이루어졌다.
그가 뛰어든 전장은 연전연승.
그 공로를 인정받아 순식간에 육신장(六神將) 중에 한 명이 된 천용현은 처와 첩을 열이나 거느리고 수십명의 아이를 낳아 거대한 세가를 이루게 되었다.
대장군이라 불리며 팔순까지 윤택한 삶을 보낸 천용현.
그에게도 죽음이 찾아왔고 그는 미련 없이 그 죽음을 받아들이려 했다.
뭐 하나 부족한 것 없었던 완벽한 삶.
하지만 죽기 직전 그는 개안하고 말았다.
명안(命眼)이라는 저주스러운 눈을.
그로 인해 명계로 간 그의 영혼은 기억을 온전히 보유하고 있었다.
그리고 명계에 도착하자마자 그는 원하지 않는 부활을 해야만 했다.
명계가 그를 거부하며 밀어낸 것이었다.
그렇게 다시 눈을 뜬 천용현은 땅에 묻혀 있었다.
죽었던 자신의 몸으로 다시 환생한 천용현.
그는 힘겹게 무덤을 파헤치고 나왔으나 세상은 이미 많이 바뀐 뒤였다.
짧은 줄로만 알았던 명계로의 여행.
하지만 그가 무덤을 파고 나왔을 땐 이미 30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뒤였다.
30년이 지난 세상은 달라도 너무나도 달라져 있었다.
자신이 모시던 왕의 나라는 이미 사라진 뒤였고 그가 남긴 세가와 자식들은 뿔뿔이 흩어진 상태였다.
그렇게 모든 걸 잃은 채 다시 시작하는 삶.
하지만 이 삶은 노인으로부터 시작되는 삶이었다.
육체는 다시 건강해진 듯하나 외모가 노인인 자의 삶은 생각보다 힘겨웠다.
사람들은 그를 노인이라고 하여 일꾼으로 쓰지 않으려 했고 부담스러워했다.
하지만 그도 생계를 이어 나가야만 했기에 일거리가 있다면 뭐든 했고 그렇게 자신의 능력을 십분 발휘한 덕에 시간이 조금 지나자 정착한 마을에서도 그를 알아주기 시작했다.
그렇게 안정적으로 정착한 새 삶을 시작하나 싶을 때쯤.
또 전쟁이 일어났다.
병사들은 마을을 무참히 농락했고 천용현은 그런 병사들에게 필사적으로 맞서 싸웠다.
하지만 그 결과는 죽음.
천용현은 목이 베였고 죽는 순간 생각했다.
‘이것도 나쁘지 않다.’라고…….
하지만 목이 잘려 나갔음에도 그는 죽지 않았다.
명계에서 그를 거부했으니까.
왜 그가 거부당한 것인지는 아직도 알지 못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다시 살아났을 때 그의 목이 붙어 있었다는 것과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천용현은 마을을 떠나 산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생각했다.
자신이 왜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
지금 삶은 그가 원해서 계속되는 삶이 아니었다.
그는 삶에 더 이상 미련이 없었고 이제는 그저 쉬고 싶었다.
하지만 다들 평범하게 맞이할 수 있는 죽음을 그는 맞이할 수가 없었다.
그는 그 이해할 수 없는 의문을 가지고 중원 여기저기를 떠돌았다.
혹시나 자신의 이 의문에 대답해 줄 수 있는 누군가를 만날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가지고…….
그리고 놀랍게도 그 희망은 하나의 기적처럼 이루어졌다.
되살아나고 산천을 떠돌아다닌 지 50년이 되는 어느 날.
깊은 숲속의 폭포에서 천용현은 그를 만났다.
자신과 똑같은 의문을 가지고 있는 자.
그의 스승 절악명(節握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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