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e Reign RAW novel - Chapter 183
갑작스러운 공격이었기에 몸을 비틀었음에도 완전히 피해 내지 못했다.
아니, 피하지 않았다면 치명상을 입었을 것이다.
“이익! 놔라!”
윤안로가 두 손으로 검을 움켜쥔 채 불신이 가득한 눈으로 쳐다보자, 황병찬이 당황해 검을 빼려 낑낑거렸다.
“자네가 왜……”
“왜? 왜냐고? 그걸 몰라서 묻는 건가?”
“……”
“삼십 년, 아니 훨씬 더 오래되었지. 이 빌어먹을 짓거리를 해 온 세월이.”
“병……찬……”
“그래서 뭐가 남았나? 결국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어.”
“……”
“너의 그 말도 안 되는 이상 때문에!”
윤안로가 꽉 박힌 검을 단단히 움켜잡고 있었기에 결국 빼내지 못한 윤안로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우우웅!
그 손에 몰려드는 기운.
“죽어라!”
퍼어억!
하지만 터진 것은 그의 머리였다.
윤안로의 몸에 검이 박히는 것을 보자마자 삼무보를 펼친 능운비의 주먹에 의해…….
머리가 사라져 버린 황병찬의 몸뚱이가 그 자리에 털썩 쓰러졌다.
“아아……”
붉은 피와 허연 뇌수를 뒤집어쓴 윤안로의 눈빛은 허망할 따름이었다.
믿었던 이의 배신. 이상향을 꿈꾸며 고난과 시련을 마다하지 않고 자신을 따라 주었던 이의 배신은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의 충격일 터였다.
“으아악!”
윤안로와 신예랑, 김산을 제외한 이들이 경악을 금치 못하고 저마다 비명을 질러 대며 자리를 이탈했다.
겁이 났던 것이다. 황병찬의 행동은 그들로서도 예상치 못했던 것이고, 또한 모든 것이 틀어졌다고 생각했으니까.
투항하려는 듯 포위망 쪽으로 달려가는 그들의 모습이 보였지만, 지금은 그들을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윤 단주님!”
능운비가 검에 꿰인 채 비틀거리는 윤안로의 몸을 부축했다.
“단주님!”
뒤이어 김산과 신예랑이 윤안로의 곁에 다가왔다.
“황병찬이…… 어째서 그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는 윤안로의 모습에 모두의 눈이 일그러졌다.
검에 꿰인 충격보다, 그의 배신으로 인한마음의 충격이 더 거셌던 것이다.
하나, 위로하고 자시고 할 겨를이 없었다.
능운비는 재빨리 윤안로의 수혈을 짚었다.
충격 속에 헤매게 놔둬서는 안 된다.
심적 충격이 깊어지면 상세는 더욱 심각해질 것이다.
또한, 그 몸에 박혀 있는 검을 빼서도 안 된다. 터져 나오는 피를 막을 수 없을 테니까.
일단은 안전한 곳으로 이동해 치료할 때까지 그대로 두는 수밖에…….
“결국 물들어 버린 것인가? 결국 버티지 못하고 돌아선 것인가? 우려했던대로……”
신예랑이 머리 없는 시신을 멍하니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자신이 우려했던 것처럼, 황병찬은 결국 근묵자흑의 이치를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또한, 이상향을 지키며 산다는 것은 너무도 어려운 일이다.
윤안로의 명으로 정무맹의 장로가 되었을 때, 그는 심각하게 고민했을 것이다.
이대로 뜻을 지켜야 하는가? 잠시 모르는 체하면 부귀와 영화가 펼쳐질텐데?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일에 평생을 매진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 무엇이라도 바뀌기는 할 것인가?
결국, 윤안로의 몸에 박힌 검이 황병찬이 긴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이었던 것이다. 그는 거짓이 아니라 정말로 변절했던 것이다.
거짓 변절이라 생각했던 것은……오직 그를 믿고 있었던 자들뿐.
“빌어먹을!”
능운비가 처참함에 주저앉아 버린 이들의 모습에 욕설을 뱉어 냈다.
“신예랑! 김산! 정신 차려라!
“……”
“이대로 포기할 셈이냐! 살아야지! 너희가 해 온 일들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세상에 알려야지!”
“우리가 해온……”
“아직 기회는 있어!”
“……”
“이곳에서 살아 나가는 거다. 나가서 알리는 거다. 저 빌어먹을 놈들의 추악함을 낱낱이 까발리는 거다.”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이었다.
자신에게 다짐하는 말이었다.
살아 나갈 것이다.
다시는 놈들에게 당하지 않을 것이다.
부리부리한 눈동자에 불꽃마저 튀어오르는 능운비의 모습에, 신예랑이 아랫입술을 베어 물었다.
“무엇을, 나는 무엇을 하면 되겠소?”
억지로 정신을 부여잡은 신예랑의 말에 능운비는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김산!”
“……예?”
“지금으로선 삼무보를 익힌 네가 단주님을 모셔야 한다.”
“알겠습니다.”
능운비의 말에 김산이 곧바로 대답하며 윤안로의 몸을 받아 들었다.
갑작스러운 반말 따위가 뭐 그리 중요하겠는가?
지금은 그의 말을 따르는 게 최선이었다.
“부탁한다. 검이 단주님의 몸을 해칠 수 없도록……”
“예.”
단단히 당부한 능운비가 몸을 일으켰다.
“큭큭큭, 이거 진짜 걸작이네. 아주 걸작이야. 눈물이 앞을 가려서 봐 줄수가 없어. 아니 그렇습니까, 남궁 장로님?”
“그러게나 말일세.”
손뼉까지 쳐 대며 비웃는 제갈민의 말에 남궁학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갈민, 네놈……”
능운비는 이를 꽉 문 채 그를 노려보았다.
제갈의 씨를 품은 놈. 비록 어리다하나, 그 독기와 추악함을 그대로 물려받았다.
“이봐, 능 공자.”
“……”
“모든 것이 들통난 마당에, 아직도 그러고 있는 겐가?”
능운비는 답할 가치도 없다는 듯 그를 노려보며, 한편으로는 도주할 시기를 가늠했다.
“아서게. 자네들이 빠져나갈 구멍은 없어.”
“그건 니 생각이지.”
“아니야. 객관적인 분석이 그래.”
“……”
“정무맹 근처에 있었다는 이유로 갑자기 이번 일을 맡게 되었다지만, 설마하니 내가 자네에 대해 조사도 하지 않았을까?”
“조사?”
“그래. 제갈세가를 너무 만만히 보지 말게.”
“……”
“삼문협에서 자네에게 수치를 당한 이후에 상세히 조사해 보았지. 천주문, 종남, 화산, 소림까지.”
“그랬나? 아주 사방팔방에 눈과 귀를 깔아 둔 모양이군.”
“당연한 소릴? 그 정돈 해야지. 명색이 마교의 삼공자님인데.”
“……”
“물론 자네가 이곳에 있었던 것은 꽤 의외였지만, 그렇다고 해도 포위망을 빠져나갈 방법은 없어. 내가 아는 자네 실력은 그 정도가 못 되니까.”
꼴 보기가 싫었다.
모든 것을 알고 제 뜻대로 주무르고 있다고 생각하는 저 자신감이.
“그래서? 내 실력이 어떤데?”
“나쁘진 않지.”
“……”
“하나, 범은 토끼를 잡을 때도 최선을 다하는 법이지. 변절한 황병찬이 있었다지만, 우린 혹여 모를 사태에 대비해 포위망을 탄탄히 구축하는 데 최선을 다했네.”
“최선을 다했다?”
“그렇고 말고. 아마 맹주나 검선에 필적할 만큼 강한 무인이 아니라면 도망치긴 불가능할 거야.”
“……”
“그러니 힘 빼지 말고 얌전히 그들을 넘기게. 그럼 우리도 그 사정을 참작해서 마교로 추방하는 선에서 끝내주겠네. 자네와 자네의 수하들 전부를.”
제갈민이 회유하듯 말해 왔다.
그리고 능운비는 그의 말을 냉철히 곱씹었다.
명분이니 대의니 할 땐 언제고 거래를 제시하는 것을 보니…….
그럼에도 신경 쓰이는 것이다.
마교가, 아니 제천마제라는 거대한 존재감이.
그리고 놈은 아직 원하는 게 남은 것이다. 누군가를 한 번씩 곁눈질하는 눈빛이 말해 주고 있었다.
그 대상은…… 신예랑?
어째서?
생각해 보면, 그들은 황병찬을 완벽하게 회유했을 때 윤안로를 잡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가 가지고 있던 치부를 전부 손에 넣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기다린 이유.
그들이 끝내 파악하지 못한 무언가.
“……신예랑.”
“예?”
“혹시…… 척월린이 남겼던 것을 가지고 있나?”
“……!”
그 말에 신예랑의 눈이 화들짝 놀란듯 동그래졌다.
그걸로 충분하다.
즉, 놈들이 지금까지 버티고 있었던 이유는 자신이 신예랑에게 남겼던 것을 확보하기 위함인 것이다.
그럼 윤안로가 가지고 있던 것들이 사라져도 놈들에게 타격을 줄 수 있는 치부는 여전히 남아 있다는 뜻.
물론 신예랑이 이곳을 무사히 빠져 나가야겠지만.
그리고 또 한 가지, 놈의 말에서 깨달은 바가 있었다.
놈들이 놓친 것.
자신이 이곳에 있는 것이 의외라는 것으로 보아, 등봉현에 머물고 있는 왕천과 삭월대의 신변은 안전하다. 곧 그에 대한 대비가 있겠지만, 적어도 당분간은 괜찮을 것이다.
또한, 놈들은 자신만 보았을 뿐 그곁은 보지 못했다.
바로 향이의 존재다.
하긴, 시비 따위가 사실은 엄청난 고수라는 것을 누가 알겠는가?
그것이 놈들이 범한 실수다.
[미끼가 필요하다. 부탁할게. 이 빚은 언젠가 반드시 갚겠다. 포위망을 뚫고 곧장, 삭월대와 합류해라.]
능운비의 전음에 향이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게 무슨 소리야! 난 널 지켜야 한다고!”
“향아!”
“……”
향이가 대번에 반박해 왔지만, 능운비는 아무도 듣지 못하게 그녀에게 전음을 보냈다.
“제기랄…… 제기라알!”
“……”
전음이 끝나자 향이가 고함치듯 욕설을 내뱉었다.
하나 방법은 그뿐이다. 곧 놈들의 포위가 더욱 거세질 것이 분명하니까.
“후우, 알겠다. 대신, 반드시 살아있어라. 삭월대와 합류하면, 반드시 구하러 오겠다.”
“큭, 걱정 마라. 향아.”
“……”
능운비의 웃음에 향이는 더 이상 답하지 않았지만, 그 눈빛이 매섭게 빛나는 것을 보니 전력을 다해 도울 것이 분명했다.
“이봐, 제갈민.”
“……?”
능운비가 별안간 웃음을 머금자, 제갈민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넌 스스로가 정말로 똑똑하다고 생각하지? 하긴, 제갈씨 놈들은 전부 그러니까.”
“……”
“그런데 그거 아나?”
“무슨 소리를 하고 싶은 거냐?”
“세상은 가끔 뜻대로 되지 않을 때가 있다는 거 말이지.”
“뭐?”
제갈민이 능운비의 말뜻을 이해하려 고심하던 순간.
“향아!”
능운비의 힘찬 외침과 동시에 향이가 포위망의 좌측을 향해 상상도 하지 못할 속도로 쏘아져 나갔다.
“이게 뭔?”
그 속도에 당황한 제갈민과 남궁학의 눈이 동시에 휘둥그레졌다.
“막아라!”
다급히 외치는 목소리에 능운비의 미소가 짙어졌다.
막아?
말도 안 되는 소리 하고 있네.
니가 말했지? 맹주나 검선에 필적할 만큼 강한 무인이 아니면 도망치긴 불가능하다고.
안타깝게도 쟤가 그런 녀석이다.
콰아앙!
거대한 성벽과도 같은 포위망이 거친 폭음과 함께 부서졌다.
“뛰어!”
그때를 놓치지 않은 능운비의 외침에 김산과 신예랑이 곧바로 움직였다.
그사이에도 향이는 산발이 된 머리칼을 휘날리며 상상을 초월하는 신위로 포위망을 유린했다.
양손에 들린 비수가 허공을 가를 때마다 피가 튀었고, 신체의 일부를 잃어버린 이들의 비명이 산자락을 가득히 울렸다.
“크크크, 빌어먹을 것들! 모조리 죽여 버리겠다!”
막는 것은 불가능했다.
모두가 경외하다시피 하는 제천마제의 목숨을 노리던 그녀 아니던가?
게다가 하필이면 밤이다.
어둠이 내려앉은 산자락은 울창한 숲으로 인해 달빛이 거의 스미지 않았고, 짙은 어둠은 그녀의 무위를 더욱 흉포하게 만들어 놓았다.
암천우(暗天雨).
검은 밤하늘을 가르는 향이의 비수에, 혈우가 쏟아져 내렸다.
“대열을 유지해라!”
당황한 남궁학의 외침.
그러나 포위망이 흩어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나아가, 인원이 한정되어 있는데 그중 일부가 자리를 이탈하면?
약한 곳이 생긴다.
“김산! 자홍과 내가 길을 열어 주겠다!”
“예!”
능운비가 외침과 동시에 방향을 틀었다.
“자홍!”
눈치 빠른 여인이라 굳이 다른 명은 필요 없었다.
치이익!
불붙은 착화탄이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갔고, 거친 폭음과 함께 산자락을 뒤흔들어 놓았다.
쿠아아앙!
화탄이라 하기엔 작은 폭발.
하지만 놀라 흩어지는 포위망 사이로, 능운비가 잔인한 미소를 머금은 채 날아들었다.
월식, 월광살무!
콰드드득!
“끄아악!”
사방에 난무하는 고통스러운 비명.
그 속으로 운안로를 업은 김산이 뛰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