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e Reign RAW novel - Chapter 208
“뭣이? 창랑 그놈이?”
“그렇습니다. 선두의 나룻배에 막청주가 타고 있으며, 황화의 수적들이 전부 그 뒤를 따라 북쪽으로 향하고 있다고합니다.”
“이런……”
별안간 황하에서 날아든 급보에 정무맹이 들썩이기 시작했다.
갑자기 막청주라니?
그가 어째서 대선단을 이끌고 북쪽으로 향하고 있단 말인가?
좋지 않은 상황이었다.
윤안로는 황하에 배만 남겨 두고 홀연히 사라져 버렸고, 능운비는 난데없이 섬서 쪽으로 향하고 있다고 했다.
와중에 검제 남궁무위가 제멋대로 그를 쫓아 섬서로 이동하는 바람에 개방의 경계선 일부가 무너졌다.
그런 상황에서 개방이 또다시 쪼개진다면?
공백이 생긴다.
“설마 창랑이 능운비와 손을 잡은건가?”
“……지금의 움직임을 보면 가능성이 있습니다.”
군사부 학사들과 제갈청인의 대화를 듣던 제갈민의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
자신도 생각을 안 해 본 것은 아니다.
수적들의 도움 없이 갑자기 사라지는 건 불가능했고, 사방을 수색하고 있는 개방이 꼬리를 잡지 못할 리도 없으니까.
하지만 연관성이 부족했다.
막청주, 그 늙은 여우 같은 놈이 지금의 판세를 읽지 못할 리가 없지 않은가?
정마 협약의 파기로 인해 마교와의 교류는 득보다 실이 많음을 알고 있을것인데…….
“개방은 어찌하고 있나?”
“수색조의 일부가 막청주의 선단을 뒤따르며 예의주시하고 있습니다.”
“잘했다. 아직 막청주의 정확한 의도를 파악하지 못했으니…….”
“예.”
막청주는 자신을 미끼로 정무맹의 시선을 북쪽으로 돌려놓을 생각이었지만, 정무맹은 그리 쉽게 걸려들지 않았다.
상대가 막청주였기 때문이다.
비록 수적이지만, 사파를 대표하는 맹주(盟主)중 한 사람이다. 의심만으로 그의 배를 멈춰 세우고 수색을 하게되면, 틀림없이 싸움이 벌어질 것이다.
막청주의 강함이야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니 그 피해가 만만치 않을 터.
게다가 그보다 더 큰 문제가 따로 있었으니, 바로 사파의 여론이다.
본시 팔은 안으로 굽는 법이라 하지 않았는가?
막청주가 이유 없이 정무맹에게 핍박당했다는 소문이라도 퍼지게 되면, 사파 전체가 들고일어날지도 모를 일이다.
이미 정마 협약을 파기하고 마교와 척을 져 버린 시점에서, 그와 같은 상황을 만드는 것은 정무맹에게 매우 불리한일이었다.
하나 그렇다고 점점 북쪽으로 향하는 막청주를 지켜만 볼 수는 없었는 노릇이었다.
“음, 명분이 필요한데……”
제갈청인이 막청주의 배를 수색할 구실을 생각하던 그때, 기다리던 소식이 들려왔다.
“군사님! 통천각의 급보입니다.”
“들어오라!”
“예!”
제갈청인의 명에 안으로 들어온 이는 최근 고의적인 지연 보고로 목이 잘린 전임자 대신 새로 임명된 통천각주였다.
“급보라니? 어디서 온 것인가?”
“섬서에서 날아온 정보입니다.”
“섬서?”
북쪽 물길을 따라간 개방 쪽에서 온 정보이길 기대했던 제갈청인의 얼굴에 실망감이 어렸다.
“검제께서 보내신 것이냐?”
“예.”
“그래, 무슨 내용인가?”
“섬서 쪽으로 이동한 능운비의 행적은 가짜였다고 합니다.”
“……뭐, 뭣이?”
듣는 둥 마는 둥 하던 제갈청인의 눈이 번쩍 뜨일 만한 보고였다.
“그게 무슨 소리냐? 개방의 오결이 검제께 직접 고한 내용이 아니었더냐?”
“그렇습니다. 하나, 검제께서 알려오신 바로는……”
“속히 말하라! 아니, 이리 가져오라. 내가 직접 보겠다!”
별안간 마음이 급해진 제갈청인이 통천각주의 손에 들린 전서를 빼앗듯이 받아 읽었다.
섬서로 갔다던 능운비.
하지만 그것은 개방의 오결 제자가 놈에게 놀아난 결과였다.
“섭혼술?”
“그렇습니다. 막 정신을 차린 개방도가 횡설수설하는 것을 보고 검제께서 살펴본바, 섭혼술의 일종에 당한 것이 분명하다고 합니다.”
“……!”
제갈청인의 얼굴이 환해졌다. 복잡했던 머릿속이 한순간 정리되는 듯했기 때문이었다.
윤안로의 흔적은 사라졌고, 능운비의 행적은 가짜로 판명 났다.
그리고 막청주가 북쪽으로 움직이고있다?
“큭큭, 드디어 명분이 생겼구나. 막청주의 배를 세울 명분이!”
“그렇습니다. 틀림없이 막청주가 능운비라는 놈과 손잡고, 그를 북쪽으로 탈출시키려는 것입니다.”
“그렇지! 그렇고말고! 하니 대선단을 동원한 것이야!”
군사부 학사의 맞장구에 제갈청인이 무릎을 치며 기뻐했다.
“저 기, 다른 보고도 있사온데……”
“대충 정리해 두거라!”
“예?”
“이놈! 내 말이 들리지 않느냐! 지금 상황이 이리 시급하거늘! 나머지 보고는 네놈이 종합해 올리면 될 것 아니냐!”
“죄, 죄송합니다.”
제갈청인의 호통에 통천각주가 목을 움츠리며 손에 들고 있던 다른 전서를 갈무리했다.
“군사들은 방책을 세우고 있으라. 나는 지금 즉시 태장로님께 보고하고 막청주와의 일전에 대한 재가를 받아오겠다.”
“알겠습니다.”
검제에게서 온 전서를 움켜쥔 제갈청인이 바쁘게 걸음을 재촉하려던 그때.
“숙부님.”
“응?
제갈청인을 불러 세운 것은 제갈민이었다. 능운비가 윤안로를 데리고 도망쳤을 때, 그 상황을 역이용해 이옥상을 쳐 낸 계략을 세운 공로로 군사부에 배치되었던 것이다.
하나 제갈청인은 그것이 제갈천우 특유의 인재 등용 방식임을 알고 있었다.
군사인 자신의 옆에 그를 둔 것은 보고 배우라는 표면적 이유를 가졌으나, 그 속에는 서로를 경쟁시키려는 뜻이 숨어 있었다.
혈육이라도 능력이 안 되면 내치는 성격이 아니었던가?
하니, 제갈민을 바라보는 제갈청인의 눈빛이 곱지 않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왜? 할 말이 있느냐?”
“일단은 좀 더 살펴보시지요. 무턱대고 보고를 했다가……”
“쯧!”
“……”
“무엇을 더 확인하란 말이냐? 누가봐도 막청주가 능운비를 돕고 있음이 확실한데!”
제갈청인의 일갈에 제갈민이 입을 꾹다물었다.
“얼떨결에 이옥상을 쳐 낸 계략을 세운 터라 뭔가 착각하고 있는 모양이다만, 너는 아직 견습 군사다. 어디서 감히 충고란 말이냐!”
“……죄송합니다.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아둔한 녀석. 작은 공 하나 세우고는 하늘 높은 줄을 모르고……. 앞으로 언행에 항시 주의를 기울이라.”
“알겠습니다, 숙부님.”
제갈청인의 타박에 제갈민이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조용히 기다리고 있거라. 막청주를 잡을 대책을 세우는 군사들을 방해하지 말고.”
“예.”
못마땅한 눈으로 그를 째려본 제갈청인이 홱 하니 몸을 돌려 제갈천우가 머무는 후원으로 달려갔다.
이어 눈치를 살피던 군사들이 지형도를 살피며 본격적으로 대책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후우……. 이거 참.”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 괜히 욕만 먹은 제갈민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욕을 먹긴 했지만,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아직 이른 보고다.
제갈청인은 지금 조급해하고 있다. 지난번 실패로 인해 제갈천우의 눈 밖에 났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능운비를 그리 호락호락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나이는 약관밖에 되지 않았으나, 교활하기가 천년 묵은 능구렁이 같은 놈이다.
삼문협에서 놈에게 한차례 당한 이후, 지금까지 놈이 중원에서 해 온 일을 주도면밀하게 살펴보지 않았던가?
때론 거칠고, 때론 종잡을 수 없고…….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이 많은 놈이다.
해서 좀 더 깊이 살펴봐야 한다.
우선 놈이 가진 의외성.
애초에 놈은 윤안로와 아무런 연관도 없었다.
하지만 소림에 머무르며 정무맹을 속이고, 윤안로를 구했다. 뒤이어 두번이나 천라지망을 교란하며 도망쳤고, 공들여 준비한 덫을 빠져나갔다.
마치 자신들의 계략을 훤히 들여다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와중에 개방도에게 섭혼술을 펼쳐 검제 남궁무위를 섬서로 꾀어내기까지…….
그런 놈이 이리 생각 없이 행동한다고?
누구라도 제갈청인처럼 막청주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아니던가?
결코 보이는 게 다가 아닐 것이다.
무언가 다른 계략이 숨어 있음이 분명하다.
고민하던 제갈민의 눈에, 나갈까 말까를 고민하며 눈치를 살피고 있는 통천각주가 보였다.
“이보게.”
“예?”
“보고가 더 있다고 했지?”
“아!”
제갈민의 말에 통천각주가 제 손에 갈무리한 전서를 내려다보았다.
“이리 줘 보게.”
“하지만…….”
“괜찮네. 그저 보기만 할 것인데 무슨 문제야 있겠는가?”
“알겠습니다.”
제갈민의 푸근한 웃음에 통천각주가 전서 뭉치를 내밀었다.
“호오, 많이도 왔군. 자네들이 고생이 많겠네.”
“알아주시니 감사합니다.”
“양만 봐도 보통이 아닌 것을……. 어디 보자, 서쪽의 봉쇄 지역에서 온 전서도 있고…… 응? 화음현?”
“아, 그건 규화들에게서 온 보고입니다.”
“규화라면?”
“아직 개방에 속하지 못한 길거리거지들이죠.”
“그렇군.”
고개를 끄덕인 제갈민이 전서를 넘기려다 눈길을 끄는 내용 하나에 멈칫했다.
“어?”
“어찌 그러십니까?”
“……”
통천각주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지만, 제갈민은 화음현의 규화가 보냈다는 전서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하, 역시…… 내 이럴 줄 알았지.”
“예?”
“아, 아닐세. 잘 보았네. 나중에 따로 종합해서 군사부에 보고하시게.”
“예.”
전서를 받아 든 통천각주가 공손히 인사를 올리곤 물러 났다.
그리고 그를 배웅하겠다며 나선 제갈민의 손에는, 어느새 규화가 보냈다는 전서가 들려 있었다.
“녹림왕이라…… 녹림왕과 닮은 인물을 화음현 인근 산자락에서 본 것 같다……”
제갈민의 입가에 싸늘한 미소가 어렸다.
역시 자신의 생각대로였다. 어쩌면 막청주의 대선단은 능운비 놈의 계략일지도 모른다.
와중에 검제의 전서가 너무 시기적절하지 않은가?
막청주의 눈치를 보느라 움직일지말지 고민하던 정무맹을 단숨에 꾀어 내었으니까.
마치 하늘이 돕고 있는 듯했다.
“하면 두고 볼수 없지. 네게 천운이 닿았다면, 내가 불운을 더해 주어야 균형이 맞겠지.”
제갈민은 천천히 제갈천우가 머무는 후원으로 향했다.
제갈청인이 보고를 마치고 물러난 뒤의 시간을 맞추기 위해서.
* * *
“그게 무슨 소리냐?”
“들으신 대로입니다.”
제갈천우와 독대한 제갈민이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앉아 대답했다.
“들은 그대로다?”
“예.”
“막청주가 미끼라는 말을 나더러 믿으란 말이냐?”
“아니요.”
“……뭐?”
“미끼일지도 모른다는 말입니다.”
담담히 웃는 제갈민의 모습에 제갈천우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자신을 앞에 두고 저런 당당함이라?
제갈청인의 옆에 두고 찬찬히 그 자질을 지켜보려 했는데, 그저 공 하나 세운 애송이라 생각했는데…… 아니 었단 말인가?
“그리 의심하는 이유를 자세히 말해보라.”
“녹림왕이 화음현에서 모습을 드러내었습니다.”
“녹림왕이?”
“예, 막청주와 종리강은 둘도 없는 친구 사이 입니다. 또한 화음현은 삼문협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흐흠……. 그래서? 그들이 손잡고 무언가를 꾸미고 있다?”
“무리한 추측이지만, 제 생각에는 막청주가 미끼가 된 것 같습니다.”
“음.”
“윤안로가 강 위에서 사라지고, 별안간 막청주가 대선단을 이끌고 북상했습니다.”
“……”
“누구라도 그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 아닙니까? 만약 제가 능운비라면, 굳이 북쪽으로 가진 않을 것입니다.”
잠시 제갈민을 바라보던 제갈천우가 나지막이 말했다.
“근래에 녹림왕이 중원 곳곳에서 모습을 드러내었다. 알고 있느냐?”
“예. 증원의 상단들과 직접 연을 맺고 영역을 넓히고 있더군요.”
“그렇지.”
“물론 그가 화음현에 나타난 것은 이번 사태의 책임을 통감하고 봉문한 화산의 이권을 차지하기 위함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지요.”
“한데 어째서 의심한 것이냐?”
“의심이 아니라 확인해 볼 것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확인이라…….”
“정말 막청주의 배안에 능운비와 윤안로가 타고 있다면 모를까, 아니라면 정무맹은 큰 손실을 볼 것입니다.”
제갈천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좋다. 단, 막청주 쪽이 더 확실한 상황이니, 병력을 뺄수는 없다. 확인해볼수 있겠느냐?”
“병력은 필요치 않습니다.”
“뭐라?”
“이미 검제께서 섬서에 계시지 않습니까? 제가 그분을 설득해 녹림왕 쪽을 확인해 보겠습니다.”
잠시 고민하던 제갈천우가 이내 종이를 펼쳐 그 위에 빠르게 글을 써 내려갔다.
“검제에게 전하면 너를 도와줄 것이다. 가거라.”
“감사합니다.”
서신을 받아 든 제갈민은 후원을 나와 곧바로 말 위에 올랐다.
능운비에게 주어진 천운 다음에 이어진 불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