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e Reign RAW novel - Chapter 260
머리를 벅벅 긁어 대는 강자서의 모습에 모두가 어안이 벙벙한 얼굴이었다.
대역이…… 대역이 아니라 진짜였다고?
모두를 감쪽같이 속인 것도 모자라, 들키자마자 태도가 완전히 달라졌다.
“아가씨, 좀 놔주면 안 될까? 생각보다 손목이 약한 편이거든.”
강자서가 눈을 찡긋하며 여유를 부리자 향이가 슬며시 손을 놓았다.
“고마워, 예쁜 아가씨.”
예쁜…… 아가씨?
와중에 능글맞은 표정에 말투까지.
이런 놈이 성화곡의 혜안존자가 되어야 한다고?
화화공자 같은 그의 태도에 향이의 얼굴이 살짝 찡그려졌지만, 이내 그녀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 모습에 빙긋이 웃은 능운비가 월대를 내려갔다.
긴장? 두려움?
강자서의 얼굴에 그 같은 감상은 보이지 않았다. 피가 홍건하고 부상자로 가득한 전장 속에 있으면서도 전혀 긴장하지 않은 것이다.
마치 익숙한 것처럼.
“화비가 칭찬을 늘어놓길래 혹시나 했는데…… 과연 잘 보았던 모양이군. 생각보다 강단이 있는 인물이라 다행이야.”
“칭찬 고마워, 삼공자. 아니, 일월마교의 교주랬나?”
“뭐든 편하게 불러라.”
능운비가 픽 하니 웃음을 지으며 강자서의 앞에 섰다.
“한데 어떻게 내가 진짜라는 걸 알았지? 티가 났나?”
“……찍었어.”
한 치의 거짓도 없는 능운비의 답변에 강자서는 일순 말문이 막혔다.
“뭐? 찍어?”
“그래.”
“말도 안 되는 소리!”
“왜 말이 안 되지?”
“아니, 아무 근거도 없이 그냥 찍었다고?”
“근거는 있지.”
“……”
“느낌 이랄까?”
“느낌?”
“그래, 느낌. 뭔가 이상했거든. 아무리 패색이 짙다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게 이상했지.”
“……”
“그렇게 싸한 느낌에 너를 살폈더니 나와 눈을 마주치자마자 곧바로 겁먹은 듯 연기를 하더라고.”
“허!”
강자서는 헛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찰나나 다름없는 순간을 읽었다고?”
“그런 훈련을 죽도록 한 적이 있었거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습관처럼 굳어졌지.”
“뭐?”
“때론 작은 것 하나가 생사를 결정짓는 법이라서 말이야.”
능운비가 암살자로 행동할 때의 버릇을 떠올리며 실소를 머금었다.
뛰어난 암살자가 되려면 눈썰미가 좋아야 하는 법이다. 주변 환경을 빠르게 읽어서 머릿속에 담아야 하고, 그 안에서 일어나는 작은 변화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
또한 임무의 특성상 강적과 싸우는 경우가 많기에, 상대의 무공을 세밀하게 살펴야 한다.
그 빠른 움직임 속에서 자신에게 유리한 무언가를 찾아내려면.
다른 무엇보다 관시를 빨리 깨달은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나아가, 그런 능력이 있었기에 정파가 눈에 불을 켜고 쫓아다니는 상황에서도 오랫동안 살아남을 수 있었다.
물론, 나중에서야 깨달은 사실이긴 하지만.
“하하…… 이건 정말 미친놈이군.”
강자서가 어이없다는 듯이 웃자, 주변의 분위기가 대번에 싸늘해졌다.
“감히!”
“말을 삼가라!”
“……”
험악해진 분위기에 강자서가 얼굴을 찡그렸다.
“젠장할, 말도 제대로 못 하겠네.”
“이놈이!”
강자서의 투덜거림에 참고 있던 향이마저 화가 난 듯 품고 있던 비수를 움켜쥐었다.
“향아.”
“……?”
“너 이제 신녀야.”
능운비의 만류에 향이가 강자서를 째려보며 이를 갈다가 고개를 홱 돌려버렸다.
“다들 물러나. 대화하는 중이잖아.”
“죄송합니다, 교주님.”
담담한 질책에 화비를 비롯한 모두가 공손하게 답하고는 기세를 거두었다.
“좋은 수하들이네.”
“믿음직한 수하들이지.”
“그래도…… 아쉽네. 눈썰미가 좋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더 조심하는 건데.”
“큭…… 설마 눈썰미만이겠어?”
“뭐?”
“화비가 그러더군. 자네 잘 도망친다며?”
“……”
“그래서 생각해 봤지. 만약 나였으면 어떤 쪽이 더 도망치기 쉬웠을지.”
“무슨 소리냐?”
“무슨 소리긴? 모두가 진짜인 척하는 놈에게만 집중하고 있으면 대역 행세나 하다가 상황 봐서 도망치기 좋잖아.”
빙긋이 웃으며 한 말에 강자서의 눈동자에 놀람이 스쳤다.
설마? 처음부터 염두에 두었던 것인가?
고작 느낌이나 눈썰미만이 아니었다. 한번도 만나본 적은 없었지만, 능운비는 주변에서 자신을 평한 말들을 흘려듣지 않았던 것이다.
“허, 허허…… 이것 참.”
강자서는 허탈함에 웃음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마교에서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다음 대의 교주가 누가 될지에 대해 왜 관심이 없겠는가. 비록 권력의 틈에 속해 있지 않다고 해도 예상은 해 보기 마련이다.
특히나 강자서 같은 지자(智者)들은 더욱 그러하다. 각각의 세와 인물의 됨됨이를 분석하고, 결과에 근접한 추론을 이끌어 낸다.
하지만 능운비를 염두에 둔 적은 한번도 없었다.
실력?
진짜로 검제를 죽인 것이라면, 개인적인 능력에서는 다섯 중 최고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과장은 되었겠지. 분명 누군가의 도움이 있었을 테고.
그러나 어찌 되었든 정파 대부분이 가담한 봉쇄진을 뚫고 마교로 돌아온 것은 정말로 대단한 일이었다.
심지어 오직 호위만을 대동했다 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그것만으로 권좌를 노린다는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이유인즉, 세력 때문이다.
그에게는 뒤를 받쳐 줄 인물이 부족했다. 그저 혼자 잘난 놈인 것이다.
비록 설산장이 그의 편에 섰다고는 하나, 등룡제에서 죽어 버리면 무슨소용이란 말인가?
“하아, 이것 참.”
강자서가 주변을 힐끗 둘러 보았다.
대략…… 삼백여 명.
능운비와 함께 음랑문을 습격한 이들의 숫자였다.
좀 전에 일백 정도가 외부를 지키기위해 밖으로 빠져나갔으니, 사백이 조금 넘는 숫자다.
고작 사백. 턱없이 부족한 숫자였다.
다른 제자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각자의 영역을 만들고 휘하에 여러 거대 문파와 수천의 무인들을 거느렸다. 싸움이 될 리 없다는 뜻이다.
더욱이 일월신교라는 이름까지 내걸고 교주임을 참칭(僭稱)했으니, 이는 역모나 다름없다. 마교 전체를 적으로 돌린 셈이었다.
즉, 능운비가 권좌를 차지할 가능성은 전무했다. 당장에 음랑문을 손아귀에 넣는다고 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능운비라는 인간에게 관심이 생겼다. 순간적으로 상황을 읽어 내고, 곧바로 판단을 내려 자신을 찾아낸 그의 기지가 묘하게 신경 쓰였다.
하지만…… 개인적인 관심일 뿐이었다.
강자서는 고개를 휘휘 저어 복잡한 생각을 떨쳐 버리고는 능운비를 쳐다봤다.
“그래, 좋아. 날 찾았으니 이제 어찌할 셈이지?”
“글쎄…… 일단은 고민 증이다.”
“고민?”
“화비의 말을 듣고 찾아오기는 했는데, 나도 확신이 서질 않아서 말이야.”
잠시 뜸을 들이던 능운비가 재차 입을 열었다.
“한 가지 물어도 될까?”
“당장 목이 달아날지도 모르는 상황에 찬밥 더운밥 가릴 이유가 없지. 말해 봐, 뭐든 대답해 주지.”
“대역을 세운 이유는?”
“응?”
“누군가 찾아오리란 걸 이미 알고 있었다는 뜻이잖아.”
“음…….”
능운비의 질문에 강자서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내 생각을 말해 볼까?”
“……”
“아마도 넌 지켜보고 싶었을 거야.”
“무슨 말이지?”
“실은 좀 전에 그런 생각이 들었거든.”
“……”
“누군가 찾아올 것을 예상했는데 굳이 대역을 세워야 했을까?”
그 말에 강자서의 눈동자가 잘게 떨렸다.
설마 이자?
“어차피 식객인데, 일찌감치 도망쳐 버리면 그만이잖아.”
“……”
“그럼에도 대역까지 써 가며 자신을 감춘 이유는 고작 일신의 안위를 위한 것만은 아니었을 거야.”
능운비의 말이 이어지자 강자서의 얼굴이 점차 딱딱하게 굳어졌다.
“이미 음랑문이 중립을 선언한 마당에 누군가 찾아왔다면, 목표는 너야.”
“……”
“그렇기에 보려 했던 거겠지. 널 찾아온 사람이 과연 미래를 맡겨도 될 만한 인물인지를. 대역인 척 뒤에 숨어서 말이야.”
능운비의 말이 끝났을 때, 강자서는 놀람을 감추지 못하고 눈을 부릅뜬 채 그를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거기까지 읽었다고?
“그런데 또 생각해 보니까 음랑문주도 한통속이 아니었을까 싶네.”
“뭐라고?”
“이상하더라고. 그와 손속을 겨루었을 때, 아무리 중립을 선언했다지만 북부의 패자를 자처하는 음랑문의 문주치곤 힘이 약했어. 일부러 져 주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와중에 늑대 한마리 쓰러뜨렸다고 곧바로 패배를 인정하다니…… 웃기지 않아? 아무리 영물이라고 해도 결국엔 길들인 짐승에 불과한데 말이야.”
“……!”
“손잡은 거지? 일단은 중립을 선언해 놓고, 당신이 가려는 쪽을 선택하려고.”
그 말에 음랑문주의 몸이 움찔거렸다.
“큭, 크핫핫핫!”
그리고 능운비를 뚫어지게 바라보던 강자서가 머리를 뒤로 젖혀 가며 웃기 시작했다.
생각 이상이었다. 설마하니 자신의 머릿속을 훤히 들여다보고 있을 줄이야.
정말이지 완벽하게 패배한 것이다.
그리고 왠지 쓰라린 패배감보단 시원한 느낌이 들었다.
복잡하던 머릿속이 깨끗하게 정리된 것처럼.
“교주께선 정말로 대단한 분이셨군요.”
“……?”
웃음을 그친 강자서의 말투가 가벼움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정중한 존대로 변했다. 표정도 진지하기 그지없었다.
“교주의 말이 전부 다 맞습니다.”
“역시……”
능운비가 히죽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해서, 이제 어찌하시겠소?”
“음, 어찌할까?”
“……”
“지금 내겐 당신이 무척이나 필요하거든.”
“글쎄…… 과연 그럴까요? 이리 제 속을 훤히 꿰뚫어 보시는 것을 보면 혼자서도 충분하실 듯한데.”
“그건 아니지. 잠깐의 상황을 보고 이것저것 짜 맞춰서 결론을 내리는 것과 거대한 전쟁의 판세를 읽고 전략을 세우는 건 다른 문제란 말이야. 난 내 능력이 그 정도는 되지 못함을 알고 있거든.”
“하고 싶은 말이 뭡니까?”
“그대도 알지? 내게 가능성이 없다는 거.”
“……조금도 고려하지 않았었습니다. 적어도 조금 전까진.”
“그건 다행이네, 조금 전부터는 고려하기 시작했다는 뜻일 테니까.”
“부인하지 않겠습니다.”
“좋아, 그럼 자네가 선택할 수 있는 방책에 대해 논해 보자고.”
“……”
“먼저, 이공자는 혜심정 출신이니 애초에 선택할 이유가 없지. 너를 필요로 하지 않을 테니까. 그와 함께한다면 옳은 말을 한다 해도 무시당하거나 내쳐지겠지.”
“……”
“대공자? 아마 그쪽이 좋겠지. 지금으로선 권좌에 가장 가까우니까. 하지만 고집이 센 주군을 모신다는 건 생각보다 어려워.”
“음…….”
“남은 건 넷째와 다섯째. 아주 좋은조건이야. 우직한 녀석들이라 다루기가 쉽거든. 하지만 세가 약하지. 그들 중 하나를 권좌에 앉히려면 연합을 할 수밖에 없을 거야. 거기서부터 문제가 되겠지. 자존심 강한 그 녀석들이 서로에게 양보해 줄 리 없으니까.”
“……”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 사실 가능성만 놓고 보면 권좌에 앉을 확률이 가장 희박하지. 와중에 충동적이고, 사고뭉치에, 가는 곳마다 난장판을 만들어. 심지어 지금은 역도임을 자처하고 있고. 젠장, 말해 놓고 보니 날 선택하지말란 소리네.”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평가하던 능운비가 쓴웃음을 머금었다.
“그런데, 그럼에도 도와줘. 난 당신의 도움이 필요해. 나를 권좌에 앉히는게 아니라, 당신이 가진 꿈과 내 꿈을 함께 이루는 거야. 스스로의 힘으로.”
“거부하면…… 어쩔 겁니까?”
“그건…… 생각 안 해 봤는데?”
능운비는 아이처럼 활짝 웃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모습에, 강자서는 자신도 모르게 따라 웃고 말았다.
미친놈…….
하지만 왠지 그 미친놈이 마음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