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e Reign RAW novel - Chapter 281
“이런, 썅!”
자신이 힘으로 밀린다는 사실에 화가 난 구양휘의 눈동자가 황금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어? 압쇄?”
그 변화의 의미를 아는 소선화가 화들짝 놀랐다.
천력탑의 압쇄공(壓碎功).
짓눌러 부순다는 그 이름처럼, 어마어마한 힘을 발휘해 상대를 압박하는 거력의 무공이었다.
대대로 천력탑의 직계들만이 익혀온, 아니 오직 그들만이 체득할 수 있는 무공이다. 거한의 육체를 타고나지 않으면 몸이 버티질 못하니까.
그리고 구양휘는 그런 천력탑의 인물 중에서도 손에 꼽게 뛰어난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바로 역신(力神)의 신체.
그는 굳이 다른 이들처럼 근육을 키우고 힘을 기르기 위해 노력할 필요도 없었다. 늑대와 호랑이가 타고난 힘 자체가 다르듯, 애초부터 그리 태어나 저절로 그리 자랐으니까.
“하압!”
구양휘의 입에서 거친 기합성이 터져나왔다.
그리고 능운비는 일순간 그의 몸이 두 배로 부풀어 오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어 자신이 잡고 있는 주먹에 더해지는 막대한 힘.
“큭!”
급격한 속도로 중첩되는 힘에 능운비의 몸이 밀리기 시작했다. 애써 버텨보려 했지만, 발이 바닥을 부수며 파고들었다.
“으아아압!”
쩌어엉!
이내 또 한 번의 기합성과 함께 주먹이 휘둘러졌고, 더 이상 버티지 못한 능운비가 뒤로 훌쩍 날아갔다.
콰드득!
안 그래도 낡은 주루의 벽이 능운비가 날아든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그대로 뚫려 버렸다.
“사형!”
밖으로 튕겨 나간 능운비의 모습에 소선화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후우…….”
단번에 내력을 끌어올린 구양휘가 천천히 숨을 내쉬며 흥분을 가라앉혔다.
“야, 인마! 꼭 이렇게까지 해야겠어?”
“닥쳐. 먼저 선을 넘은 건 사저야.”
“휘야…….”
구양휘가 번들거리는 황금빛 눈동자로 소선화를 바라봤다.
차갑고 싸늘하다.
그 안에 담겨 있는 짙은 실망감에 소선화는 가슴이 아릿해지는 것을 느꼈다.
“소선화.”
그러나 이내 이어진 얼음장 같은 목소리에, 그녀의 미간이 와락 찌푸려졌다.
사저나 누이가 아닌 이름이다. 마치 한때 친남매처럼 지내 온 기억들을 모조리 지워 버린 듯한 느낌이었다.
“싸울 수밖에 없는 운명으로 길러진 우리였지만…… 너만큼은 다를 줄 알았다.”
콧등을 씰룩거리며 말하는 그의 분노한 음성에 소선화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독혈오조를 봤을 때, 황당하기는 했지만…… 기뻤다. 너는 여전히 나의 누이로 남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
“하여 아무 걱정 없이 만나러 온 걸음이었다. 적이기 이전에 누이라고 여겼기에.”
“휘야…….”
“그런데 능운비를 데려와? 나를 포섭해 보겠다고?”
“휘야! 일단 진정하고 내 말부터 들어 봐.”
“닥쳐!”
구양휘의 고함이 사방을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이 자식…….”
귀가 먹먹하여 더욱 찌푸려진 소선화의 눈에, 주먹을 힘껏 움켜쥔 구양휘의 모습이 보였다.
물론 그가 느낀 배신감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오해였다. 구양휘에게 위해를 가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고, 그저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눌 자리를 만들어주고 싶었을 뿐이었다.
“넌 이제 누이도 뭣도 아니다. 소선화…… 지금부터는 오직 적으로 여겨주마.”
살기를 풀풀 날리며 다가오는 구양휘의 모습에 소선화가 한숨을 내쉬었다.
설득?
이미 꼭지가 돌아 버린 놈에게 말이 통할 리가 있겠는가?
누구보다 구양휘를 잘 아는 그녀였다. 한번 틀어지면 절대로 고집을 꺾지않는 녀석이 자신의 말 몇 마디에 설득당해 줄 리 없었다.
예전이라면 화가 풀릴 때까지 힘을 빼놓은 다음에 찬찬히 대화를 나눠 봤겠지만, 지금은 시간이 없었다.
아무리 외곽지라고는 하나, 객점의 한쪽 벽이 허물어질 정도의 소란이 있었으니 금세 구경꾼이 생길 것이다.
그리고 이내 백웅방의 무인들도 사방에서 몰려들 것이다. 양 세력 간에 정상적인 절차를 통한 만남이 아니었으니, 칼을 겨누어 올 것은 당연하다.
즉, 설득보단 도주가 우선인 상황이었다.
능운비도 능운비지만, 강자서가 함께 있지 않은가. 청안흑호를 불러 서둘러 빠져나가야만 했다.
곧바로 추격이 따라붙겠지만, 화전현만 빠져나가면 될 것이다. 자신에겐 뭇짐승들을 부리는 만수영안이 있으니까.
“선화.”
“……?”
소선화가 강자서의 위치를 확인하며 도주를 준비하던 그때, 벽을 부수며 날아 갔던 능운비가 다시 주루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사형! 군사를…….”
“군사를 왜?”
“예?”
“도주할 생각 없다.”
“사형!”
“선화야.”
“……?”
“괜찮겠어?”
“예?”
“이대로 가면 내내 마음이 아플 거야.”
능운비의 말에 소선화의 눈동자가 잘게 떨렸다.
“가더라도 오해는 풀고 가야지. 앙금을 남겨 두고 가는 건 좋지 않아.”
“하지만 곧 백웅방이…….”
“그럼 어쩔 수 없지.”
“예?”
“누가 그러더라. 패도란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자신이 품은 뜻을 굽히지 않은 채 올곧게 나아가는 것이라고.”
“……”
“게다가 니가 어렵게 만든 자리잖아. 사형이 돼서 사매의 노력을 걷어차 버릴 순 없지.”
“사형.”
능운비가 웃으며 소선화의 어깨를 툭 치고 지나갔다.
어차피 다른 선택은 없었다. 지금 구양휘를 놓치면 다음 기회는 없을 테니까.
“그리고…… 왠지 좀 고쳐 놓고 싶어졌다. 대화나 좀 하자니까 주먹부터 날리는 버르장머리를 말이지.”
“……!”
자신을 지나치는 능운비를 바라보던 소선화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입가에 머문 미소하며, 눈빛까지.
고집쟁이가……둘이라니…….
도망치긴 글렀다.
“하아, 젠장할.”
이 마당에 그녀가 달리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아무리 말해도 안 들어 처먹을 두 놈이 이미 마주 서 버렸는데.
“군사!”
“……?”
“절대로 움직이지 마세요.”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강자서를 지키는 것뿐이었다.
이제 곧 나타날 구양휘의 호위와 백웅방의 손에서.
독혈오조와 청안흑호?
필요하다면 화전현에 돌아다니는 개나 고양이까지 전부 동원해야 할 판이었다.
“젠장, 이젠 나도 모르겠다.”
소선화가 만수영안을 극한으로 끌어올려 강자서를 지키며, 서로 마주 보고선 구양휘와 능운비를 바라보았다.
“허, 이것 참……제법이네?”
“뭐가 말이냐?”
“도망치지 않고 싸워 보겠다고?”
“왜? 도망쳐 줄까?”
“아니지. 그랬다면 무척 실망했을 거야. 네게도, 소선화에게도.”
구양휘가 이죽거리며 웃자, 그 얼굴을 바라보던 능운비가 미간을 찌푸렸다.
“사제야.”
“……?”
“아무리 적으로 만났다고 해도 사형에게 네가 뭐냐? 그리고 사내자식이 옹졸해서는 겨우 한 번 실망했다고 누이라 부르던 사람에게 소선화라니?”
“뭐가 어째!?”
“뭐, 그 문제는 나중에 짚고 넘어가기로 하고…… 하나만 약속해라.”
“야속?”
“그래.”
“쥐새끼처럼 숨어 들어온 너 따위와 무슨 약속을 해!”
구양휘가 버럭 소리를 질렀지만, 능운비는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차분해진 표정이었다.
“압쇄공이라지?”
“……?”
“천력탑이 자랑하는 거력의 무공이라고 들었다.”
“그래서?”
“힘으로 승부를 내면 되겠느냐?”
“뭐야?”
“만약 내가 너를 힘으로 누른다면, 그땐 대화라는 걸 해 보는 것으로 하자.”
황당하기 그지 없는 제안이었다.
자신을 상대로 힘 싸움을 하겠다니?
“왜? 자신이 없는 거냐? 혹시나 질까봐?”
능운비가 슬쩍 떠보자, 구양휘의 눈동자에 맺혀 있던 황금빛이 더욱 짙어졌다.
“져? 내가?”
“그게 아니면 어째서 고민하는 거냐? 네가 자신 있다면 바로 승낙하면 될 것을.”
“이 자식이……”
“대신, 내가 지면 너를 주군으로 모시마.”
“뭐?”
“내가 이기면 그저 대화. 네가 이기면 나의 세력을 전부 가져가는 거다. 그리되면 굳이 여진강의 도움 없이도 권좌에 앉을 수 있겠지.”
“너, 그거 진심으로……”
“당연한 소리. 난 약속을 소중하게 여기는 편이거든. 그리고 만약 내가 이겨 대화를 나눈 후에도 네 생각과 맞지 않는다고 여겨지면, 그땐 내 포섭 제안을 거절해도 된다.”
능운비의 말에 구양휘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능운비.
구양휘는 그를 상대로 이길 자신이 없었다.
소문에 그 위명이 자자한 검제를 죽였다 했다.
그뿐 아니라 다섯 제자 중 누구도 넘보지 못했던 위지혁을 넘은 이였다.
하지만 힘의 승부라면?
와중에 조건 자체가 자신에게 너무 유리하지 않은가?
“큭, 좋아. 그렇게 해 주지. 두말하지 않길 빈다.”
구양휘가 이를 악문 채 웃으며 자세를 취했다.
“멍청한 녀석.”
“……?”
“여기서 싸우잔 말이냐?”
“어?”
“너와 내가 발산하는 기파에 주변이 남아나겠느냐? 안그래도 낡은곳인데?”
“아!”
능운비의 말에 구양휘가 퍼뜩 깨달았다.
그 말대로 자신들이 힘겨루기를 하며 기운을 터트려댔다가는 일대가 난장판이 될 게 뻔했다.
“나가자. 마을안에 쓸만한 공터가 있다.”
“좋다.”
앞서 나가던 구양휘가 문득 부서진 주루의 벽을 쳐다보았다.
이내 그의 시선이 겁을 먹고 한쪽 구석에서 떨고 있던 주인 노인에게로 향했다.
“미안하게 됐소.”
“예?”
“나중에 전부 변상해 드리리다.”
“……”
그리 말하고는 불쑥 밖으로 나서는 구양휘.
노인은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당황스러운 듯 눈만 끔벅거릴 뿐이었다.
그리고 그 광경을 지켜보던 능운비는 이내 피식 웃으며 구양휘의 뒤를 따랐다.
나쁜 심성을 가진 녀석이 아니라 다행이다.
* * *
주루 밖은 흉흉한 기세로 가득했다.
구경꾼들을 밀어 낸 무인들이 검을뽑아 능운비를 겨누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호풍대주 이광제에게 소란의 중심에 구양휘가 있다는 말을 들은 백웅방주와 수뇌부들까지 전부 몰려나와 있었다.
“주군!”
이광제가 매서운 눈길로 능운비와 소선화를 쏘아보며 구양휘의 곁으로 다가왔다.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손님.”
“예?”
“내가 아까 만나러 간다고 했잖아.”
“저자는 능운비입니다!”
“나도 아니까 굳이 말해 주지 않아도 돼.”
“주군!”
“쓸데없는 참견하지 말고, 다들 물러나라고 해.”
“예?”
“두 번 말해?”
“아, 아닙니다.”
“지금부터 그는 손님이야.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져도 나서지들 말라고 해. 알겠어?”
구양휘의 말에 이광제가 찌푸린 얼굴로 능운비를 쳐다봤다.
도대체 무슨 일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능운비와 소선화가 어째서 화전현에 있단 말인가?
그리고 적이 아니라 손님이라니?
“저쪽으로 가지.”
구양휘가 손가락으로 근처에 자리한 우물가 옆 공터를 가리키자, 능운비가 웃으며 발걸음을 옮겼다.
그 당찬 발걸음에 구양휘는 저도 모르게 피식 웃고 말았다.
주위의 모두가 그를 노려보고 있는데.
정작 당사자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이지 않은가?
“뭐 해? 안 와?”
“간다!”
되레 능운비의 재촉을 받은 구양휘가 서둘러 공터의 중앙으로 나섰다.
그렇게 마주한 두 사람의 주위를, 화전현에 머무는 이들이 커다란 원을 그리며 에워쌌다.
“약속 지켜.”
“너야말로.”
“좋아, 그럼 시작하지.”
재차 다짐을 둔 능운비가 천천히 패왕수라결을 운용하기 시작했다.
천천히 몸을 채우는 기운에 근육이 팽팽하게 부풀었고, 두 눈이 흑요석처럼 새까맣게 물들었다.
“하압!”
우렁찬 기합성과 함께 두 사람의 양손이 깍지를 끼듯 포개지고, 이내 서로의 팔을 꺾어 버릴 듯 용을 쓰자 발바닥이 땅을 깊숙이 파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