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e Reign RAW novel - Chapter 32
마교가 중원과 맞닿은 곳은 두 군데, 감숙과 청해다.
하나 길은 정해져 있었다.
곤륜의 도사 놈들이 좀 드세야 말이지.
뭐, 그들의 심정도 이해는 한다.
오랫동안 반목하며 서로를 향해 칼끝을 겨누어 왔기에, 들판이며 이름 없는 산자락에서 죽어 간 동문들이 어디 한둘일까?
묘비도 세우지 못한 그들의 한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고, 그 원독이 골수에 사무쳐 마(魔), 아니 귀(鬼)라는 글자만 봐도 경기를 일으키며 칼부터 꺼내 드는 이들이 태반이다.
해서 아무리 뒤 없이 사는 마교도라 할지라도 청해는 피해 간다.
관도는 물론이고, 산길이나 샛길도 마찬가지였다.
뭔놈의 도사들이 산중에서 도는 안닦고 길 막기에 그리 심혈을 기울이는지…….
이러니 곤륜 도사 중에 전장에서 죽어 추앙받는 놈은 많아도, 도의 극치에 이르러 등선했다는 놈은 드물지.
일전에 청해 인근에 자리한 암시장에 도포를 구하러 갔을 때 보았던 살벌함이 아직도 머릿속에 선했다.
어쨌든, 그런 이유로 대부분의 마교인들은 감숙을 통해 중원을 오간다.
물론 감숙도 관부와 무림인들이 이곳저곳에 초소를 만들어 놓고 지키기는 하지만, 청해와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마차를 타고 가는 것이 아닌이상 길이야 널렸으니 말이다.
다만, 경계선을 넘기 전 신분 위장은 필수다. 성기다고 해도 그물은 그물인법이니까.
감숙과 맞닿은 곳에 도착한 능운비 일행도 잠시 여장을 풀고 경계를 넘을준비를 하고 있었다.
“……상단입니다.”
“……”
“교역품도 가져왔습니다. 차입니다.”
주승이 일행이 메고 있던 등짐을 풀어 바짝 마른 차 가루가 담긴 통을 내보였다.
그래 보인다.
빛깔이 고운 것이 천산이 자랑하는 설차가 틀림없고, 비단옷으로 한껏 멋을 낸 주승과 총관이나 호위로 분한 삭월대 일 조원들의 모습도 그럴듯하다.
더하여 차 상자가 등짐마다 가득하니 누가 봐도 상인이다.
고개를 끄덕인 능운비가 옆에 있던 이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니들은 산적이냐? 그거 짐승 털 옷이지?”
“사냥꾼 패거리입니다.”
“아……”
능운비가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이쪽도 제법 그럴싸하다.
어찌나 위장이 감쪽같은지, 언뜻 보면 녹림의 산적 패라고 해도 믿겠다.
더욱이 저놈은 왜 앞섶을 풀어 헤친채 상체를 그대로 드러내 놓고 있단 말인가?
“춥겠다.”
“괜찮습니다.”
이 조장 웅기가 훤히 드러난 가슴 근육을 불끈거린다.
자랑하는 거냐?
“……여며, 고뿔든다.”
“옙!”
능운비의 지적에 웅기가 황급히 앞자락을 여몄다.
제 놈도 줍긴 했던 모양이다.
어쨌든 위장은 이 정도면 충분할 듯했다.
“삼 조는?”
“그……”
“……”
말 안 해도 알겠다.
이미 과거의 무공을 수련한 터라 기감이 한층 예민해진 능운비가 느끼지 못할 리 없었다.
저쪽 나무에 두 놈, 저기 바위에도 하나.
다행히 머리카락은 안 보인다.
아주 꼭꼭 숨었다.
“살수 패거리? 뭐 그런 걸로 위장한건 아니지?”
“……!”
주승이 움찔한다.
맞네. 하아…….
“삭월대주.”
“예, 주군.”
“은신해서 뒤따르며 호위할 생각인건 알겠는데…… 살수는 좀 그렇지 않냐?”
“그게…… 삼장로부에서 이미 정해준 신분이라서요.”
“……”
“위장 신분을 다시 청할까요?”
주승이 머쏙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마교의 장로부는 교주가 처리해야할 수많은 업무를 위임받아 수행하는 곳이다.
조직과 재정을 관리하는 일장로부와 각종 보급을 책임지는 이장로부, 혜심정이 주축이 되어 전략적인 부분을 담당하는 사장로부와 무인들의 훈련을 담당하는 오장로부, 대외 협력 기관인 육장로부와 은혜로우신 마의께서 맡고계신 칠장로부까지.
업무를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도록 세세히도 구분해 놨다.
이러니 교주가 일할 생각은 안 하고 매일 탱자탱자 놀기만 하지. 쓸데없이 제자나 괴롭히고 말이야.
어쨌든 삼장로부는 마교의 모든 정보를 총괄하는 곳이다. 중원과 비교하자면 개방 같은 역할이랄까.
중원에 잠입한 세작들은 구 할 구 푼 구 리의 확률로 그들의 손을 거친다고 보면 된다.
하니 위장 신분을 만들어 내는 것쯤은 일도 아닌…… 게 아니라 살수라니!? 이런 미친놈들 같으니라고.
은신술이 자신에게도 걸리는 놈들인데 뭘 믿고 그따위 신분을 지정해 줬단말인가?
“하아……”
정말 한숨이 절로 나온다.
“삭월대주.”
“예?”
“살수는 아니지 않냐?”
“하지만 주군의 곁에 머물기 위해서는……”
“……”
충성하려는 것은 알겠는데…… 이건 뭐, 멍청한 건지 생각이 없는 건지.
“이거 멕이는 거네요.”
“내 생각도 그래.”
왕천의 말에 능운비는 실소를 흘렸고, 주승은 고개만 갸웃거렸다.
아는 게 주군에 대한 충성뿐인 착한 주승 놈 같으니.
하긴, 그들이 무슨 죄가 있을까?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도록 훈련받아온 이들인데.
“흠, 아마도…… 혜심정의 간보기겠죠?”
“그럴 확률이 높지.”
왕천의 말에 능운비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일행 중에 멍청이들만 있는 게 아니라서 다행이다. 주승이나 삭월대의 무인들과는 달리 자신의 곁에 십 년 넘게 붙어 있던 왕천이기에 교내 세력 동향정도는 어느 정도 알고 있다.
차 상단과 사냥꾼.
그들 사이에 교집합 따윈 존재하지 않으니, 한데 뭉쳐 다닐 수 있을리 만무하다.
즉, 일부러 떨어뜨려 놓은 것이다.
자신의 목숨을 노리기 쉽도록.
거기에 살수?
이건 정말 개소리다.
자신과 왕천이 위장한 신분은 어느 시골에 자리한 번듯한 문파의 소생이었다. 가문의 역사며 내력이며, 아주 치밀하게도 만들어 왔다.
천하를 유랑하는 공자님과 호위.
눈에 띄지 않고 딱 좋다. 누구도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주위에 살수가 득실거리면 얘기가 달라진다.
시골 가문의 공자가 살수의 위협을 받아?
누가 봐도 이상하잖아?
이건 필시 혜심정의 사주를 받은 삼장로의 개수작일 게 틀림없었다.
엿 먹어 보라고.
모르면 당하는 거고, 알아도 어쩔 수 없는거다.
“내 참, 아무리 교주님께서 관여치 않겠다고 말씀하셨다지만 이따위 조잡한 개수작을 벌일 줄은 몰랐네?”
“그러게…… 예?”
능운비의 투덜거림에 왕천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아니, 좀 전에 하신 말씀요. 교주님께서 관여치 않겠다고하셨다는게…… 대체 무슨 말씀이신지?”
“들은 그대로야. 중원지부 감찰 임무만 내리셨지, 그 과정에는 절대로 개입하지 않겠다고 하시던데?”
“……”
대수롭지 않게 꺼낸 말에 왕천이 멍하니 눈을 끔벅였다.
“저기, 그게…… 무슨 개소리세요?”
“……”
주군과 수하 간에 쓸 만한 말투는 아니다.
하지만 원체 격 없이 지내 온 사이고, 이 상황이면 누구나 보일 법한 반응이니 능운비는 그냥 넘어가 주었다.
“주군! 대체 어떤 개자식입니까? 어떤 씨부럴 놈의 자식이 그런 미친 안건을 내걸었냐고요!”
“교주님이라니까?”
“교…… 이런 씨앙!”
“……”
재차 확인이 끝나자마자 왕천이 벌떡 일어나서 고함치듯 욕설을 뱉었다.
성격하곤…….
그런데 씨앙이라니?
귀가 어두운 거야? 그 개자식이 교주라고 몇 번을 말했구만.
교를 떠나왔기에 망정이지, 누가 들었으면 당장에 잘린 머리가 설산장 정문에 걸렸을 망발이다.
“왕천.”
“왜요!”
“교주님이라니까?”
“아무리 교주님이라도 그렇지, 그런 미친 소리가 어디 있단 말입니까? 이건 대놓고 반대파한테 주군을 죽여도 좋다고 허락한다는 소리잖습니까!”
“뭐, 그렇지.”
“그렇지라니요? 이게 지금 그렇게 태연할 상황입니까?”
“……”
분기탱천한 왕천을 보니 모전자전(母傳子傳)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어차피 교주 앞에서는 아무 말도 못 할 거면서…….
하지만 내버려 두자.
지금의 왕천이 주군으로 모시는 것은 교주가 아니라 자신이다. 없는 자리에선 왕한테 욕 좀 할 수도 있는 거 아니겠는가.
그리고 이렇게라도 분풀이를 해야 심중에 화가 쌓이지 않을 터다.
“그런데 왕천.”
“왜요!”
“태연하지 않으면 다른 수가 있어?”
“그야……”
없지. 없을 거다.
고작해야 항의 정도?
물론 항의해 봤자 업무 처리에 실수가 있었다는 말 한마디나 돌아올 터였다.
“젠장! 주군을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 그들이 중원지부 감찰 임무를 반대하지 않은 게 이상하다 싶었는데, 그런일이 있었다니……”
왕천이 애꿎은 발 앞의 돌멩이를 걷어차며 툴툴거렸다.
하지만 설마 아무 생각도 없이 중원행에 나섰을까? 자칫 ‘그분’을 만나기도 전에 뒈질지도 모르는데?
반대파가 보낸 살수에게 노려질 게 뻔하지만, 중요한 것은 행동에 자유가 생겼다는 사실이다. 임무를 받았으되, 경로를 통제받진 않았으니 어디로 가든 무조건 내 맘이다.
“얘들아.”
“……?”
“나한테 방법이 하나 있는데 들어볼래?”
“방법이요?”
“그래.”
“어떤?”
잠시 말을 멈추고 호흡을 고른 능운비가 음흉해진 눈빛으로 입을 뗐다.
“저들은 끊임없이 우릴 노릴 거야. 어떻게든 나와 너희를 죽이려 하겠지.”
“맞습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저들 역시 우리만큼이나 행동이 자유롭지 못해. 저 경계만 넘어서면 중원이니까.”
“그야 그렇지만, 이 좋은 기회를 놓칠 놈들이 아닙니다.”
“맞아. 대신 섣불리 움직였다간 주목받을 수 있으니 살행할 장소를 고르고 고를 테지.”
“음…….”
구구절절 옳은 말이다.
“해서, 지금부터 삼장로부에서 정해준 위장 신분을 버린다.”
“……예?”
“우리가 저들이 정해 준 신분을 이용하면 어떻게든 행적이 드러날 수밖에 없지.”
“그건 그렇죠.”
“그러니까 버려야지.”
“하지만 그리되면……”
“감찰 임무를 위한 기본적인 지원조차 받기 어렵겠지만 상관없어. 교주께서 관여치 않겠다고 하신 이상, 우리에게 지원되는 모든 것에 저들의 의도가 섞여 있을 거야. 도리어 발목만 잡히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꼬리가 붙을텐데요?”
“당연하지. 죽이려고 혈안이 된 놈들이 꼬리를 안 붙이면 이상하지. 아마 경계선을 넘는 순간부터 본격적으로 움직일 거야.”
“그럼?”
“내게 다 방법이 있다니까? 저들의 움직임을 완벽하게 묶어 둘 그런 방법.”
“……”
능운비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하자, 왕천과 삭월대의 눈에 기대감이 어린다.
“지금부터 우린 정파의 영역으로만 다닌다.”
“……”
획기적이다.
너무 획기적이라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마교도가, 교주의 삼공자씩이나 되는 양반이 정파의 영역을 돌아다녀?
버젓이? 얼굴다까고?
“주군……”
“왜?”
“무례를 용서하십시오.”
왕천이 진지한 표정으로 다가와 능운비의 이마를 짚었다.
“이상하네요. 열이 있으신 건 아닌데……”
“……”
미친 줄 아는 모양이다.
하지만 안 미쳤다. 아픈 곳도 없다.
“주군.”
“뭐?”
“재수 없이 걸리면 죽습니다.”
“재수가 없으면! 하지만 안 들키면 그만이지. 세상에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내 얼굴을 일일이 확인하겠어? 딱히 사고를 칠 것도 아닌데.”
“……”
뻔뻔하기 짝이 없는 대답에 주승이 할 말을 잃고 만다.
이놈들아, 너희가 몰라서 그런 거다.
미친 소리로 들리겠지만, 이쪽 방면으로는 예전부터 달통하다시피 한 자신이었다.
정파의 인물을 죽인 뒤에는 사파에, 사파의 인물을 죽인 뒤에는 정파에 숨는 게 정석이다.
쫓아올 것 같아?
까딱하다가는 세력전으로 번질지도 모르는데, 어떤 놈이 그런 미친 짓을 하겠는가?
조사를 위해 서로 간에 협조 공문을 발송하고 설득하는 사이에 내빼 버리면, 제 놈들이 어찌 찾겠는가?
“안됩니다!”
“뭘 자꾸 안된대? 굳이 중원으로 나와서까지 이래야겠어? 아주 사사건건이 반대야!”
“그럼 누가 반대합니까?”
“뭐?”
“보세요. 주승도 그렇고, 삭월대도 그렇고. 주군이 하자고하면 전부 ‘네.’만 할텐데!”
“……”
“저라도 반대해야죠, 저라도!”
황당했다.
무슨 반대에 책임 의식이라도 있는 것인가?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 반대 속에는 능운비를 향한 걱정이 가득한 것을.
혹시나 그가 잘못된 결정을 내려서 위험해질까봐.
하지만 결정을 바꿀 생각 따윈 눈곱 만큼도 없었고, 이럴 때 어찌해야 하는지 여러 번의 경험을통해 배운바 있는 능운비는 씩 웃으며 말했다.
“이건…… 명령이야. 부탁이 아니라. 또한 나는 니들 주군이고.”
“……”
“싫으면 돌아가, 잡지 않을게.”
능운비가 쐐기를 박아 넣듯 말하고는 생글거리며 웃었다.
왕천만이 아니고 차라리 전부 다 꺼졌으면 좋겠다. 자신의 행보가 좀 더 자유로워질 수 있도록.
하지만 그 누구도 입을 떼지 않았다.
이 순간만큼은 교주의 가르침이 너무나 감사한 능운비였다. 덕분에 반발을 잠재우지 않았는가.
“크크크……”
“……”
“어디 따라올 테면 따라와 보라고해! 크핫핫핫!”
어떻게 얻은 자유인데! 내가 니까짓것들에게 발목이 잡힐 것 같아?
음산하게 웃어 대는 능운비의 모습을 쳐다보던 왕천이 땅이 꺼지도록 한숨을 내쉬었다.
능운비를 주군으로 정한 게 처음으로 후회가 되고 있었다.
빌어먹을…… 정파의 영역으로 가기싫어도 가게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