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098
#1097.
처리하다 (2)
“너, 뭐 하냐?”
“응?”
“왜 그렇게 달달 떨고 있어?”
고개를 돌려보니 주영기가 한심하다는 듯이 박유민을 바라보고 있었다.
“뭐 이상해?”
“뭐가 이상하냐고?”
주영기가 헛웃음을 흘렸다.
이상하지 않은 점을 찾는 게 더 빠를 것이다. 다리는 쉴 새 없이 달달거리고 있고, 눈은 갈 곳을 모르고 이곳저곳을 헤맨다.
그것까지야 그냥 그러려니 하겠지.
하지만 메뉴판을 이십 분 동안 들여다보고 있는 건 확실히 이상하지 않은가.
나름 다양한 메뉴를 서비스하기 위해 노력하는 주영기지만, 그의 메뉴판에 20분을 투자할 가치가 없다는 것 정도는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진호 온다며?”
“어…….”
“그럼 그냥 시키던 거나 시키면 되는 거 아냐?”
“아, 아니, 오늘은 다른 사람이 한 명 더 오거든.”
“다른 사람?”
“응. 옛날 친……구.”
박유민이 살짝 입술을 핥았다.
친구라는 단어가 입술에 걸려 좀체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 느낌이었다.
친구, 친구라…….
애매한 말이다.
“친구? 무슨 친구?”
“있어. 고등학교 때부터 친구였다가 얼마 전에 유학 갔다 돌아온 친구.”
“글로벌하네.”
주영기가 입가를 실룩였다.
“근데 친구 만난다는 애가 왜 그렇게 달달대고 있냐? 누가 보면 빚쟁이 기다리는 사람인 줄 알겠다.”
“그게 사실…….”
박유민이 한숨을 내쉬었다.
‘말해도 되겠지?’
강진호도 주영기에게 딱히 숨기는 것이 없으니까 괜찮을 거다.
‘이 정도 투정은 부려도 되겠지.’
박유민이 살짝 고개를 들어 시계를 바라보았다. 아직 약속 시간 까지는 이십 분 정도가 남아 있었다.
“잠깐 앉을 수 있어?”
“뭐…….”
슬쩍 고개를 돌려 주방의 눈치를 본 주영기가 허락을 구하고는 자리에 앉는다.
“뭔 일인데?”
“그게 어떻게 된 거냐면…….”
이야기를 다 들은 주영기가 뚱한 얼굴로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어떻게 생각해?”
박유민의 물음에 주영기가 대답없이 앞에 놓인 콜라를 쭉 들이켰다.
“크!”
콜라잔을 내려놓은 주영기가 오만상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아니, 나는 도무지 이해를 못하겠는게!”
“응?”
“강진호, 그 새끼가 뭐가 좋다고 다들 그러는 건데?”
“진호가 왜?”
“아니, 그게…….”
주영기가 한숨을 푹 내쉰다.
“야, 친구로 보기에는 좋지. 남자가 보기에는 좋지. 그런데 그건 남자가 보기에 그런 거잖아. 솔직히 진호가 뭐 유머가 있냐, 아니면 매너가 있냐? 애초에 그런 재미도 없는 놈한테 왜 여자가 자꾸 생기는 거야? 차라리 내가 낫지!”
“진호는 잘생겼잖아.”
“…….”
주영기가 명치를 움켜잡았다.
팩트가 명치를 뚫고 등으로 튀어나왔다.
“어, 얼굴 파먹고 사냐?”
“요즘은 얼굴 파먹고 사는 시대잖아. 진호가 모델이나 연예인으로 먹고살려고 하면 얼마든지 그럴 수 있을걸? 돈도 어마어마하게 벌지 않을까?”
“…….”
주영기는 아무런 반박도 하지 못했다.
남자가 보기에도 강진호는 잘생겼다. 강진호의 얼굴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건 강진호 본인밖에 없다.
“야, 씨! 최연하가 강진호 얼굴 보고 그러겠냐?”
“왜? 최연하 씨도 여자잖아. 같은 거 아냐? 이왕이면 잘생긴 게 낫지.”
“하?”
주영기가 부들부들 떨었다.
“걔는 잘생겨도 재미가 없잖아.”
“그렇긴 하지.”
“그럼 금방 질릴 거 아냐!”
“늘 새롭다는데? 잘생긴 게 최고라잖아.”
“에이, 더러운 세상.”
빌어먹을 외모지상주의.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억울한 일이었다.
“그래서 감상이 그거밖에는 없어?”
“그럼 나한테 뭘 바라는데?”
“……너한테 말한 내가 바보지.”
“어쭈? 박유민이 많이 컸는데?”
박유민이 한숨을 내쉬자 주영기가 피식 웃었다.
“그걸 니가 왜 고민하냐?”
“응?”
주영기가 혀를 찬다.
“너나 강진호나 오지랖이 너무 넓어서 문제다. 야, 남녀 관계는 이혼 전문 변호사도 모르는 거야. 내가 아는 형님이 이혼 전문 변호사라 온갖 상담은 다 하고 다니는데, 그 형도 이혼하더라.”
“…….”
“남녀 관계를 잘 알고,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놈치고 제대로 된 놈이 없는 거야. 커플의 사정은 커플밖에 몰라. 그리고 사람이 사람이 왜 좋은지도 아무도 모르는 거 아냐.”
“그렇지.”
“그러니까 넌 다른 생각 하지 말고 그냥 뒤로 쭉 빠져. 니가 왜 가운데서 껴서 고민하고 있냐? 지들이 알아서 하겠지.”
“둘 다 내 친구니까 그러지.”
“그럼 너는 둘 다 친구하면 되잖아.”
“응?”
주영기가 한심하다는 눈으로 박유민을 바라보았다.
“야, 걔들 둘이 무슨 일이 있다고 너는 둘 중 하나랑 인연 끊을 거냐?”
“그건 아니지.”
“근데 뭔 상관이야. 지들이 지지고 볶고 알아서 하겠지. 그럼 너는 상황 보다가 따로 만나면 되잖아. 둘이 따로 만나면 지구가 폭발하냐? 코스피가 폭락하기라도 한대?”
“표현력이 찰지네.”
“냅 둬라, 냅 둬. 유민아, 인생은 고달픈 거야. 내 인생 하나 붙들고 사는 것도 힘든 게 삶이다. 남이 뭐 하는지까지 머리 싸매고 고민하면 니 머리가 터져요. 그리고…….”
주영기가 테이블로 바짝 다가왔다. 그러고는 의미심장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니가 뭔 대책을 세운다고 강진호가 그 말을 듣겠냐?”
“…….”
주영기가 등을 쭉 빼고는 팔짱을 킨다.
“그런 걸 사서 고생이라 그러는 거다. 의미도 없는 짓 하지 말고, 그냥 냅 둬. 괜히 짜증만 나니까. 너는 니 플옵이나 잘 준비해, 인마. 나중에 괜히 이것 때문에 신경 써서 성적 못 냈다고 징징대지 말고.”
“안 그래.”
“마, 걱정돼서 그런다, 걱정돼서. 어차피 그 나이에 영국 유학 다녀온 여자나, 최연하나, 강진호나 지 인생 고속열차에 올리고 쭉쭉 갈 애들 아냐. 우리가 누굴 걱정해? 유민아, 우리 인생이나 걱정하자. 형이 요즘 장사가 안 돼서 잠이 안 온다, 잠이.”
박유민이 슬쩍 고개를 돌렸다.
테이블에 사람이 꽉꽉 차 있다. 뚱한 얼굴로 다시 바라보자 주영기가 헛기침을 한다.
“저녁 시간이라 잠깐 붐비는 거야.”
장사하는 사람의 입에서 장사 잘된다는 소리가 나오는 일은 없는 법이다.
“언제 온대?”
주영기가 슬쩍 말을 돌렸지만, 박유민은 따지지 않고 호응해 주었다.
“이제 곧 올 거야.”
“그럼 나는 일어나야겠네. 야, 유민아.”
“응?”
“제발 오버하지 말고 냅 둬라. 속 시끄러우면 그냥 둘이 놔두고 너는 가버려.”
“……알았어.”
“알긴 개뿔이.”
주영기가 코웃음을 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것도 병이다, 병.’
주영기가 고개를 내저으며 카운터로 향했다.
박유민은 저런 점이 너무 과하다. 자신의 일이 아닌데도 자신의 일처럼 생각하고 고민한다. 하기야 그게 박유민의 좋은 점이기도 하지만.
주영기가 카운터에 앉아 앞을 입구를 바라보았다.
‘슬슬 올 때가 된 거 아닌가?’
아니나 다를까.
문이 열리더니, 젊은 여자가 안으로 들어온다. 주영기는 직감적으로 저 여자가 박유민이 말한 한세연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강진호, 이 새끼.’
한세연의 얼굴을 보자마자 부아가 치민다.
예쁘다.
확연히 눈에 들어오는 느낌이었다.
‘이 새끼는 고딩 때부터!’
안 그래도 강진호의 여자 친구가 최연하라는 것 때문에 부아가 치미는데, 예전에 사귄 여자 친구마저 예쁘니까 부들거림이 두 배로 높아진다.
‘확실히…….’
최연하를 실물로 보고 눈이 높아진 주영기가 보기에도 한세연은 예뻤다. 눈에 확 뜨이는 외모라고 해야 할까? 길을 가다 마주쳤으면 자신도 모르게 뒤를 돌아보게 만드는 얼굴이었다.
“여기.”
박유민이 손을 들어 보이자 한세연이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든다. 그러고는 박유민이 있는 테이블로 가 앉았다.
“뭐 시켰어?”
“아니, 아직. 그냥 음료나 하나 시켜 먹고 있었어.”
“여기 피자집 아냐? 그래도 돼?”
“친구가 하는 데라.”
“응?”
한세연이 살짝 고개를 돌려 카운터를 바라보았다. 주영기가 슬쩍 시선을 피했다.
“와, 친구면 우리랑 동갑?”
“……어, 어?”
“대단하다. 젊은 나이에 이 큰 피자집 사장이라니.”
‘여기 사장 진호야.’
그런데 그 말이 입으로 나오지 않는다. 왜 나오지 않는지는 박유민도 잘 몰랐다.
“그렇지 뭐.”
그저 어색한 웃음으로 넘길 뿐이었다.
“진호는?”
“어. 아직 안 왔네. 곧 오겠지 뭐.”
박유민이 슬쩍 고개를 돌려 시계를 바라본다. 아직 시간이 오분 정도 남아 있었다. 강진호가 약속에 늦는 경우가 거의 없으니, 이제 곧 도착할 것이다.
“아, 그래?”
한세연이 살짝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응?”
“진호가 껄끄러워한다거나 그러지는 않아?”
“으음…….”
박유민이 고개를 내저었다.
“딱히 그런 느낌은 못 받았는데? 대수롭지 않은 것 같았어.”
“그렇구나.”
한세연이 살짝 입을 오물거렸다.
어느 쪽이 나은 건지 알 수 없다. 강진호가 신경을 써주는 쪽이 나은지, 아니면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쪽이 나은지.
직접 만나보기 전에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다.
한세연이 생각에 잠기자, 박유민이 그녀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렇게 미련 철철 넘치는 얼굴을 하고는 친구로 지내겠다니.’
거짓말도 거짓말 같은 걸 해야지.
하기야 그 거짓말을 듣고 이 자리를 주선한 사람이 박유민이다. 누굴 욕하겠는가.
‘나도 못할 짓이지.’
박유민이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너 요즘 연습 바쁠 텐데, 괜히 시간 뺏어서 미안해.”
“아냐. 그렇게 안 바빠.”
물론 거짓말이다.
이 시간을 쪼개려고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모른다. 심지어 그가 하는 일이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믿고 지원해 주던 감독 형에게까지 한 소리 들은 판이다.
‘그래도 이게 낫지.’
이렇게라도 정리하는 쪽이 박유민에게도 낫다. 어정쩡한 상황이 계속 이어진다면 위가 못 버틴다.
그때였다.
짤랑.
문이 열리는 소리에 두 사람의 고개가 동시에 돌아갔다.
“아!”
강진호가 무표정한 얼굴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온다. 두 사람 모두 아무런 말을 하지 못하고 그런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두리번거리던 강진호가 박유민과 한세연을 발견하고는 걸어온다.
“좀 늦었나?”
“아냐. 아직 안 늦었어.”
“음.”
강진호가 시계를 확인하고는 박유민의 옆자리에 앉았다.
한세연이 입을 꾹 닫고 있다가 강진호와 시선이 마주치자 반사적으로 입을 열었다.
“오랜만이야.”
“얼마 전에 본 것 같은데?”
“응. 그때는 제대로 이야기를 못했으니까.”
한세연이 슬쩍 고개를 돌려 박유민을 바라보았다.
“일단 피자부터 시키자.”
“어? 그래. 뭐 먹어야지. 메뉴는? 뭘로 할래?”
“나 여기 잘 모르잖아. 유민이 네가 잘 알겠지.”
“그럼 내가 고른다?”
“응.”
박유민이 메뉴판을 들고는 주영기를 불렀다.
주영기가 뾰로통한 얼굴로 테이블로 온다.
“……야, 종업원 있잖아.”
“니가 편해.”
“에이.”
주문을 받은 주영기가 메뉴판을 가지고 주방 쪽으로 향하자, 한세연이 낮게 심호흡을 했다.
천천히 깊이 호흡을 빨아들인 한세연이 빙긋 웃으면서 강진호에게 물었다.
“어떻게 지냈어?”
박유민이 자신도 모르게 숨을 들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