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212
#1211.
종결짓다 (1)
돌아선다.
강진호가.
그 생각지도 못한 반응에 수령이 멍한 얼굴로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이해하지 못한 얼굴.
하지만 곧 강진호의 뜻을 이해한 수령의 얼굴이 형용할 수 없는 형태로 일그러졌다.
“으…….”
무너진다.
그를 지탱하고 있던 무언가가 마음속에서부터 우르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이!”
하지만 말이 나오지 않는다.
단호한 등.
무심한 등.
수령을 버려두고 돌아서는 그 등에는 조금의 망설임도 보이지 않았다.
수령의 눈에서 실핏줄이 터져 나간다.
모욕.
이건 뭐라 말로 할 수 없는 모욕이었다.
“……신야.”
신야가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어물거렸다.
하지만 수령은 그런 신야를 배려해 주지 않았다.
“저자가 뭐라고 한 것이냐?”
이미 반쯤은 알고 있다. 하지만 확인해야 한다.
신야가 수령을 한 번 슬쩍 바라보고는 시선을 아래로 낮춘다.
“대답해라.”
“저자는…….”
신야가 낮게 심호흡을 했다. 차마 그 사실을 수령에게 말할 수 없다는 듯 말이다.
하지만 결국 수령의 눈빛이 주는 압박을 이겨내지 못한 신야가 입을 열었다.
“수령께서 무인이 아니라고…….”
우드드득.
수령의 주먹이 뒤틀릴 듯 꽉 쥐어졌다.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며 진득한 핏물이 손을 타고 아래로 흘렀다.
전신이 사시나무 떨리듯 덜덜 떨린다.
이가 파고든 입술에서 고통을 느끼지 못할 만큼의 모멸감.
“무인이 아니라고?”
수령의 손이 덜덜 떨린다.
무인이 아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말이 있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수령에게 이보다 더 큰 모욕을 줄 수 있는 말은 없을 것이다.
그는 무사.
일본 최고의 무사다.
스스로 정도에서 벗어났다는 생각은 몇 번이고 했지만, 스스로가 무인이 아니라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다. 아니, 누구보다 위대한 무인이라 자부해 왔다.
그런데 무인이 아니라니.
“……나를 모욕할 셈이냐!”
그건 고함이라기보다는 차라리 비명이었다. 그리고 비명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절규에 가까웠다.
미학을 가슴에 품고 사는 일본의 무인에게 무인이 아니라는 말은 세상 그 어떤 욕과도 비견될 수 없는 욕설이다. 물론 강진호가 그걸 알고 한 말은 아니겠지만 말이다.
저벅.
저벅.
등 뒤에서 무슨 소란이 벌어지든 강진호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딱히 비장한 느낌도 없다. 그저 장난감에 흥미를 잃은 아이 같은 얼굴로 걸어 나올 뿐이다.
“로드?”
“돌아가자.”
“……마무리를 짓지 않으실 겁니까?”
강진호가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형용할 수 없는 얼굴을 한 수령이 그를 노려보고 있다.
“저건 껍데기야.”
“…….”
“딱히 마음이 생기지 않는군. 알아서 처리해.”
위긴스가 자신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악마가 따로 없군.’
적의 계략에 말려 목숨이 위험한 상황이다. 강진호가 이곳에 등장한 시점부터 수령은 목숨을 내놓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혼신의 힘을 다해 적을 노렸건만, 적의 강대함을 이기지 못하고 패한 상황. 진정한 무인이라 자부하는 이라면 지금 상황에서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다.
쓸개를 핥는 심정으로 달아나 재기를 노리거나, 아니면 승복하고 깨끗한 죽음을 맞이하거나.
하지만 강진호는 그에게 어떤 것도 허락하지 않았다.
달아날 수도 없고, 적의 검에 베이는 영광도 누릴 수 없다.
이 이상의 모욕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걸 의도해서 하지 않았다는 게 로드의 무서운 점이지.’
강진호는 딱히 수령에게 모욕을 주고 싶은 생각은 없었을 것이다. 몰아칠 때는 상대의 정신조차 남겨두지 않고 짓밟아 버리는 강진호이기는 하지만, 지금 강진호의 표정은 정말 흥미를 잃은 표정이니까.
하지만 그 단순한 행위에 수령은 무너지고 있었다.
“강진호오오오오오오오!”
절규하며 강진호를 부르는 수령의 모습에서는 일본을 지배하는 신니치카이의 수령다운 위엄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생을 마감하며 믿어온 모든 것을 잃어버린 자의 절망과 고통만이 가득할 뿐이다.
이 순간, 위긴스는 진심으로 수령을 동정했다.
그는 존중받을 가치가 있는 사람이다.
비록 적이고 결코 용서할 수 없는 이이긴 해도, 신니치카이란 구미를 이끌며 일본의 무인계를 지배하고 이끌어왔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지 않은가.
적을 증오하는 것과 적을 존중하는 것은 공존할 수 없는 게 아니다.
적을 증오해도 인정할 수는 있다.
하지만 강진호는 수령을 인정하는 걸 거부했다.
스스로 검을 들어 수령의 목을 베는 것조차 의미가 없다는 듯 몸을 돌려 버렸다.
더없이 비정하고…….
더없이 잔인하다.
하기야…….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무인을 상대하는 강진호와 정치인을 상대하는 강진호는 같으면서도 다른 존재다. 무인에게는 흥미와 야성을 드러내는 반면, 정치인에게는 이성을 드러내는 게 강진호다.
그런 강진호에게 검을 맞댈 흥미가 들지 않는 적은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못할 것이다.
수령에게는 안된 일이지만.
“돌아간다.”
“로, 로드, 저자를 어떻게 처리할 건지는…….”
강진호가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죽여.”
“…….”
“한 짓을 생각하면 살려둘 수는 없지. 죽여서 목을 가져와라.”
“알겠습니다.”
위긴스가 살짝 억눌린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 순간, 수령이 괴성을 질렀다.
“강진호! 도망갈 수 있을 것 같으냐!”
도를 뽑아 든 수령이 그대로 강진호를 향해 달려들었다.
멍청한 짓이다.
이곳은 이미 원탁이 장악하고 있다. 수령이 일본 제일의 고수일지라도 이들을 동시에 상대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는 강진호가 아니니까.
최소한의 이성이라도 있다면 그는 자중했어야 한다. 달아나는 길을 택하지 않더라도 기회를 엿보았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 수령에게는 그 작은 이성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읏차.”
마스터가 검을 뽑아 들고 수령의 앞을 막아섰다.
카아아앙!
마스터의 검과 수령의 도가 맞부딪치며 날카로운 금속음을 만들어냈다.
일그러져 있는 수령의 얼굴과 다르게 마스터의 얼굴에는 여유가 가득했다.
제아무리 마스터가 강하다고 해도 검술만으로 수령을 대적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그럼에도 수령의 얼굴에는 여유가 없고, 마스터의 얼굴에는 여유가 넘쳤다.
무인의 마음가짐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광경이다.
머리는 차갑게, 가슴은 뜨겁게.
무학을 쓰는 이들에게 언제나 전해지는 격언이다. 빤한 것이 전해진다는 건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
마음가짐을 지킨다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지금 수령이 전신으로 증명하고 있었다.
“강진호오오오오오!”
수령이 마스터와 검을 맞댄 채 강진호를 부르짖는다. 그의 눈은 마스터를 넘어 강진호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어쩌면 마스터의 입장에서는 기분이 나쁠 수도 있는 일이지만, 마스터는 되레 수령을 동정하고 있었다.
백번 죽어도 수령과 같은 상황에 처하고 싶지는 않다. 강진호를 겪으며 그도 지옥 같은 상황에 여러 번 굴러 떨어졌지만, 지금의 수령처럼 영혼이 부서지는 고통을 느끼지는 않았다.
무인으로서, 그리고 한 세력을 지배하는 수장으로서 동정을 금할 수 없는 마스터였다.
강진호가 몸을 돌려 수령을 바라본다.
마스터의 검에 막혀 전진하지 못하는 수령이, 핏발이 터져 붉게 변한 눈으로 피눈물을 뿌리고 있었다.
울분.
분노.
그리고 억울함.
감정이 몸을 뚫고 나올 것 같다.
부들부들 떨리는 전신과 입가에서 흘러나오는 침이 지금 수령이 얼마나 흥분했는가를 말해준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강진호는 여전히 무심하기 짝이 없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조금 귀찮다는 듯 눈을 찌푸린 강진호가 입을 열었다.
“위긴스.”
“예, 로드.”
“먼저 간다.”
“예.”
위긴스가 슬쩍 수령을 돌아보았다.
그러고는 양손을 모아 캐스팅을 시작했다. 강진호의 몸이 순식간에 새하얀 빛으로 둘러싸였다.
“머, 멈춰라! 멈추라고 했다!”
수령의 목소리가 다급해진다.
강진호는 저 빛과 함께 나타났다. 그렇다는 말은…….
저 빛과 함께 사라질 것이다.
수령은 자신의 몸이 베이는 것조차 불사하고 손을 뻗었다. 빈틈투성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그 목을 갈라 버릴 수 있을 만큼 빈틈 가득한 동작이었다.
하지만 마스터는 수령을 베는 대신 그를 막아선 검에 힘을 꽉 주었다.
수령이 손을 뻗는다.
간다고?
이렇게 가버린다고?
자신을 벌레처럼 무시하고 돌아가 버린다고?
그렇다면 뭐였단 말인가.
지금까지 그가 살아온 삶은 대체 무엇이었단 말인가.
최후의 적에게도 무시받는 무인에게 대체 무슨 가치가 남는단 말인가.
모멸감.
끔찍한 모멸감이 전신을 짓누른다.
배를 갈라도 목을 쳐줄 이가 없다. 할복을 해도, 목을 찔러도, 그 어떤 짓을 하더라도 무너진 자긍심은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수령이 피눈물을 뿌리며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무심한 눈빛.
차라리 증오였다면…….
살기를 품은 분노한 눈이었다면 이런 기분은 아닐 것이다.
강진호는 아무것도 아닌, 마치 무생물을 바라보는 듯한 눈으로 그를 보고 있다. 수령을 대적자로 인정하지 않는다. 수령을 적으로 인식하지 않는다.
그리고 수령을 무인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 무심한 눈빛과 함께…….
강진호의 모습이 사라졌다.
“…….”
수령이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비어버린 공간.
위긴스의 옆에 존재하던 강진호는 이곳에서 사라졌다. 남은 것은 강진호가 서 있던 공간과 동정 어린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는 이들뿐이다.
털썩.
수령이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 짧은 시간 사이에 십 년은 더 늙어버린 얼굴을 한 수령이 바닥에 손을 짚었다.
한마디쯤은 할 줄 알았다.
그를 모욕하기 위해.
그의 화를 더 돋우기 위해.
씹어뱉듯 모욕적인 말로 그를 욕하고 갈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강진호는 그 최소한의 온정조차 베풀어주지 않았다. 자신의 모든 것을 모아 상대하려 한 상대가 수령을 적으로도 보지 않는다.
“크흐…….”
수령의 어깨가 흔들렸다.
무너진다.
일본을 떠받들고, 신니치카이를 이끌던 거인이 무너져 내렸다.
“크흐으으…….”
바닥을 부여잡고 흐느끼는 수령을 보며, 위긴스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더는 저 모습을 보고 있을 수 없다.
적아를 떠나 저 모습은 너무도 비참하다. 차라리 강진호의 검에 전신이 갈기갈기 찢겨 죽는 쪽이 좀 더 나을 것이다. 육체를 베는 검보다 영혼을 베는 검이 더욱 날카롭고 잔인한 법이니까.
위긴스가 고개를 들었다.
그의 시선이 마스터와 마주했다.
강진호는 수령을 벌레 보듯 하고 떠나 버렸지만, 그들은 그럴 수 없다. 조금 전까지는 그럴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그럴 수가 없다.
그러니 이 중에서 가장 뛰어난 이가 목을 베어주는 온정이라도 베풀어야 한다.
위긴스의 눈짓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한 마스터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검을 들었다. 그러고는 한 걸음 수령을 향해 다가갔다.
그때.
흐느끼던 수령이 입을 열었다.
“나는…….”
수령이 고개를 치켜들었다.
영혼이 빠져 나가 버린 얼굴.
살아 있지만 이미 죽어버린 모습이 된 수령이 자조하듯 말했다.
“나는 뭘 잘못한 거지?”
위긴스가 나직한 한숨을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