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401
#1400.
거래하다 (5)
눈꺼풀이 절로 감긴다.
‘피곤하군.’
언제부턴가 피로가 풀리지 않고 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다. 잠을 거의 자지 못하고 있으니까.
잠만 자면 자꾸 악몽을 꾸고, 눈을 감으면 자꾸 그의 눈빛이 생각난다.
김명찬은 충혈된 눈을 벌리고 인공눈물을 한 방울 떨어뜨렸다.
떨리는 손이 제대로 조준을 못해서인지 인공눈물이 눈가를 적시고는 볼을 타고 흐른다.
몇 방울의 인공눈물을 낭비한 끝에야 눈을 적신 김명찬이 연신 눈을 깜빡였다.
‘뻑뻑하군.’
아마 거울을 보면 두 눈이 새빨갛게 충혈되어 있을 것이다.
‘늙었구나.’
예전에는 한 달 동안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해도 그리 힘들지 않던 시절도 있었다. 최루탄을 마시면서 항거하고, 안기부에 쫓기면서도 가슴 안에 뭔가 불타던 시절이.
그때, 그의 가슴속에서 타오르던 것들은 다 어디로 가버렸을까?
김명찬이 차창 밖을 바라보았다.
“저 사람들은 뭐지?”
“아,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간단한 시위입니다.”
간단한 시위라…….
김명찬이 헛웃음을 흘렸다.
세상에 간단한 시위라는 건 없다. 제 발로 길로 나와 목이 터져라 소리치는 이들 중 간절하지 않은 이가 누가 있겠는가.
민주화를 요구하던 그의 피맺힌 외침도 당시의 위정자들에게는 별것 아닌 소란쯤으로 들렸겠지.
그럼에도 비서를 혼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 것은 이제 와 정도를 논하기에 김명찬이 너무도 멀리 와버렸기 때문이다.
오늘 차가 이곳을 지나지 않았다면, 김명찬은 이곳에서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도 몰랐을 것이다.
먼저 해결해야 할 일들이 산적해 있어서.
일단은 더 중요한 일들을 해야 하니까.
변명은 끝도 없이 불어나 그를 삼킨다.
‘언제부터였을까?’
이 가슴 안에서 불타던 열정이 꺼져 버린 게.
재조차 남지 않아버린 게 말이다.
몸이 한없이 가라앉는다.
언제부터인가 침대보다 차 시트와 집무실 의자가 좀 더 익숙해졌다.
나약해지고 더뎌지는 육체 대신에 명함에 써넣을 직위만 덕지덕지 붙고 있지 않은가.
‘나는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는데.’
세상은 말한다.
변했다고.
권력을 얻고 바뀌었다고.
웃기는 소리.
인간은 그리 쉽게 변하지 않는다. 김명찬은 바뀐 게 아무것도 없다. 그저 저들이 김명찬을 오해했을 뿐.
서는 곳이 달라지면 시선도 달라지는 법. 이런 직위에 오른 뒤에야 저들이 보지 못한 김명찬이 보이기 시작한 것뿐이다.
“총리님, 거의 도착했습니다.”
“그래.”
지금 일정이 뭐였더라?
생각이 잘 나지 않는다.
늙어 기억력이 흐려진 게 아니다. 대한민국 총리를 원하는 자리는 너무도 많다. 때로는 이게 대체 무슨 행사인지도 모른 채 그저 웃음 지으며 장단을 맞춰주는 경우도 흔하디흔하다.
아마 지금 가는 곳도 그런 경우겠지.
딱히 참석한다고 뭐가 달라질 것도 없는 자리.
하지만 참석해 주면 모두가 좋아하는 자리.
오늘 그가 해야 할 일은 사람이 아닌 트로피가 되어주는 것이다. 총리가 참석해 자리를 빛내주었다는 한 줄기 글귀를 남겨주는 걸로 충분하다.
김명찬이 눈을 살짝 감았다가 재빨리 떴다.
눈을 감을 때마다 자꾸 그때의 눈빛이 보인다.
‘이게 섭혼인가 뭔가인가?’
하루하루 말라 죽어가는 느낌이다.
김명찬은 직감적으로 알 수 있다. 강진호가 완전히 매장되지 않는 이상, 이 눈빛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저 국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가 살기 위해서라도 강진호를 재기 불능까지 몰아붙여야 한다.
그러면서도 너무 과해서는 안 된다. 강진호가 정말 참지 못하고 판을 뒤집어 버리면 최악의 사태가 벌어질 테니까.
아슬아슬하기 짝이 없는 줄타기.
단 한 발자국만 잘못 디뎌도 천 길 낭떠러지로 추락하는, 목숨을 건 줄타기다.
아직까지는 그 줄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다만, 이제 이 줄타기의 스릴을 즐기기에는 너무 나이가 들어버렸다.
김명찬이 입술을 질끈 깨문다.
‘내 인생의 마지막 줄타기가 되겠지.’
강진호의 문제만 해결한다면 더는 그를 막을 이가 없다. 이번 일을 성공시킬 수 있다면, 그는 대한민국 정계의 막후 실력자로 죽는 그날까지 권력을 손에 쥘 수 있을 것이다.
“노년에 권력욕이라…….”
김명찬이 나직하게 웃었다.
혹자들은 말한다.
다 늙어서 권력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 것에 추하다고.
‘멍청한 소리.’
그럼 늙은이가 권력 말고 무엇을 탐해야 한단 말인가.
부는 더 이상 의미가 없다.
명예?
노인이 가진 명예는 죽어 비석에 한 줄 추가될 글귀에 불과하다. 감각이 무뎌지고 너무 많은 것을 겪어버린 이들에게 남은 유일한 쾌락이 권력이라는 걸 왜 모른단 말인가.
김명찬이 통제된 도로를 달리며 시트에 몸을 기댔다.
원래라면 차로 가득해야 할 도로를 통제하고 편안히 달리는 이 기분은 겪어보지 않은 이들은 상상도 하지 못할 것이다.
아무리 맛좋은 음식을 먹어도, 아무리 훌륭한 곳으로 여행을 가도 이런 기분은 느낄 수 없다. 심지어 마약이라고 해도 이런 충족감을 줄 수는 없을 것이다.
“구치소에서 온 연락은 없나?”
“예, 없었습니다.”
“그런가…….”
김명찬이 시트에 머리를 기댔다.
차창을 내린 김명찬이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강진호를 생각하면 이상하게 담배 생각이 난다. 그가 담배를 피우던 모습이 인상적이어서인지, 아니면 강진호의 존재 자체가 그에게 답답함을 주기 때문인지.
‘어쩔 셈인가, 강진호.’
이제는 서로 결론을 내려야 할 시점이다.
하지만 김명찬은 이미 결론이 났다고 생각했다. 지금 이 순간까지 강진호가 그를 찾아오지 않은 이상, 더는 움직일 수 없다.
‘이미 조금 늦은 것 같은데, 강진호?’
돌이킬 방법이 없으니까.
강진호가 지금 결단을 내린다면, 감수해야 할 피해가 너무도 크다. MK는 무너질 것이고, 총회는 바깥세상과 완전히 단절될 것이다.
그들을 무력으로 밀어낸다는 선택지는 김명찬 역시 고려조차 불가능하겠지만, 그렇다 해도 저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지금 총회가 있는 곳에 자신들만의 왕국을 세우고 곪아 죽어가는 일뿐이다.
‘MK가 독이 됐지. 그렇지?’
과거의 총회였다면 이런 상황이 그리 부담스럽지 않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MK로 수입 창구를 일원화해 버린 총회는 MK를 압박하는 것만으로 극심한 자금 부족에 시달릴 것이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일본에서 벌어들이는 돈뿐.
그것 역시 정권의 비호 없이는 한국으로 가져오는 게 쉽지 않다.
정권은 그저 가만히 그들의 숨통을 조여놓고, 언젠가 저들이 제풀에 지쳐 쓰러지길 기다리면 그만이다.
이런 상황에서 김명찬을 죽이러 온다?
그야 가능하겠지.
하지만 남는 것은 상처뿐인 승리와 주변인들의 몰락뿐이다. 강진호는 절대 그 선택지를 고를 수 없을 것이다.
초췌하기 짝이 없는 김명찬의 얼굴에 처음으로 승리의 미소가 피어났다.
‘내가 이겼어.’
저 중국도, 그리고 일본도 어쩌지 못한 동아시아의 왕을 다름 아닌 김명찬이 잡아냈다. 머리끝이 오싹오싹해질 만큼의 쾌감이 김명찬의 몸을 뒤흔든다.
그때, 비서가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총리님…….”
“알고 있네. 샴페인은 일찍 터뜨리는 법이 아니지.”
“예?”
김명찬이 헛기침을 했다.
“아니야. 잠시 딴생각을 했구만. 그래, 이제 도착한다는 거겠지?”
“그, 그게 아니라…….”
“……그럼?”
비서가 손에 든 휴대폰을 김명찬에게 내밀었다. 김명찬은 비서의 손끝이 덜덜 떨리고 있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무슨 일인가?”
“……직접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김명찬이 살짝 고개를 갸웃했다. 그의 비서가 이런 행동을 하는 건 처음이다. 평소에는 아무리 심각한 일이 있어도 예의를 잃지 않았는데…….
살짝 미간을 좁힌 김명찬이 휴대폰을 받아 들었다.
그러고는 휴대폰에 나오고 있는 뉴스를…….
꾸우우욱.
김명찬의 손이 휴대폰을 부러질 듯 움켜잡았다.
“이, 이게 뭔…… 이게?”
그의 시선이 갈 곳을 찾지 못하고 허공을 헤맨다. 귀가 멍하고, 심장이 미칠 듯이 두방망이질 친다.
“이…….”
덜덜 떨리는 몸을 억지로 가눈 김명찬이 가쁜 숨을 내쉬었다.
“여, 여기 어디야? 어디서 이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이고 있느냐고! 어느 방송국이야?”
비서가 창백한 얼굴로 대답한다.
“……거기만이 아닙니다. 지금 특보가 연속으로 뜨고 있습니다.”
“그게 말이나 된다고 생각하나? 이게 특보라고? 어찌 그런 일이 벌어질 수가 있어! 기자들이 한 번에 소스를 받은 게 아닐 텐데!”
“지, 지금 확인해 본 바로는…….”
비서의 목소리에도 숨길 수 없는 떨림이 묻어났다.
“주석이 직접 CNTV를 통해 발표를 했답니다. 소스를 받고 말고 할 것도 없습니다. 공식 채널을 통해…….”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냐고!”
김명찬이 휴대폰을 앞으로 집어 던졌다. 차창에 부딪친 휴대폰이 튕겨 나와 바닥으로 떨어졌다.
“후욱! 후욱! 후욱!”
김명찬이 금방이라도 사단이 날 듯 가쁜 숨을 내쉬었다.
“어, 언론 통제해!”
“총리님…….”
“이런 말도 안 되는 내용을 멋대로 방송한다는 게 말이나 되냐, 이 말이야! 전부 다 명예훼손으로 고소할 테니까! 소송하고 싶지 않으면 기사 다 내리라고 해! 게재 중단 걸라고!”
비서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이미 국민들이 모두 뉴스를 보고 기사를 봤습니다. 그런 식으로는 막을 수 없습니다. 차라리 긴급 기자회견을 통해 해명을 하시는 게…….”
“해명?”
김명찬이 멍한 얼굴로 비서를 바라보았다.
‘해명이라고?’
그래, 해명해야지.
당연히 해명해야지. 그래야지.
그런데…….
‘대체 뭐라고 해명을 해야 하지?’
김명찬이 떨리는 손으로 다시 자신의 휴대폰을 열어 인터넷을 켰다.
메인에 떠 있는 기사를 확인한 김명찬이 아무 말을 하지 못하고 몸을 떨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이제 끝이 날 일이라 생각했다. 더는 방법이 없을 테니까. 그와 정권이 법원을 통제하고 국가를 움직이는 이상 빠져나갈 방법 따위는 없다.
그래.
대한민국 내에서라면 말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이 아니라면?
“강진호! 강진호오! 으아아아아아아! 강진호오오오오오오!”
이 모든 일이 어떻게 벌어졌는지를 직감한 김명찬이 괴성을 지르며 허벅지를 내려쳤다.
“이 더러운 놈이 중국까지! 국가의 일에 외세를 끌어들여? 이 똥물에 튀겨 죽일 놈 같으니! 으아아아아아아!”
김명찬은 자신이 뭐라 말하는지도 모른 채 나오는 대로 소리치고 발악했다.
비서가 그 광경을 보며 참혹하게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이, 일단…….”
그때였다.
목적지에 도착한 순간, 차량 주변으로 일련의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뭐, 뭐야?”
“기자 같습니다.”
“기자? 기자가 왜 여기 있어!”
“……파악이 조금 늦었습니다. 아마도 저희가 여기 참여한다는 것을 알고 미리 대기를…….”
찰칵! 찰칵! 찰칵!
짙게 선팅된 차창 너머로 연이어 플래시가 터진다. 마치 폭죽이라도 터뜨리는 것처럼 말이다.
“총리님! 한 말씀 해주십시오!”
“중국의 발표가 사실입니까?”
“총리님! 총리님!”
김명찬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출발해.”
“하, 하지만…….”
“밀어버리고 출발하라고! 당장!”
반쯤은 광기에 물들어 버린 김명찬의 얼굴을 본 기사가 입술을 질끈 깨물고 액셀을 밟았다.
기자들이 비명을 지르며 좌우로 밀려난다. 인파를 돌파한 차가 다시 도로로 거칠게 진입했다.
“총리님, 그럼 어디로…….”
김명찬이 멍한 얼굴로 시트에 머리를 기댔다.
어디라니.
대체 어디로 가야 하지?
김명찬의 머리가 생각을 끝내기도 전에 입이 먼저 열렸다.
“……강진호가 있는 구치소로.”
“예?”
“당장!”
“예!”
차가 속력을 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