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425
#1424.
재건하다 (4)
“미국?”
“예.”
위긴스가 살짝 황망한 얼굴로 이현수를 바라본다.
“이렇게 갑자기?”
“그건 저도 불만이지만, 여하튼 회주님이 원하시니까요.”
“흐음, 미국이라…….”
위긴스가 볼을 긁었다.
“지금 이 시점에서 미국을 방문하는 건 그리 추천하지 않네만.”
“문제가 있습니까?”
“문제라기보다도…….”
위긴스가 수염을 쓸어내렸다.
“상황이 좋지 않은 거지. 세상에서 중국을 가장 싫어하는 나라가 어디라고 생각하는가?”
“한국이요.”
“……미국일세.”
“아, 그래요? 그 부분에서는 안 질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상한 데서 경쟁심 가지지 말고.”
위긴스가 고소를 머금고는 말을 이어갔다.
“여하튼 미국은 중국을 좋아하지 않지. 무인계 외적으로도 자신들을 추격하는 국가를 좋아할 리 없고, 무인계를 포함해도 마찬가지네. 모든 부분에서 세계제일이 되고 싶어하는 국가가 중국이 확실한 우위를 가지고 있는 부분을 그냥 간관할 리가 없잖은가.”
“아, 그렇죠.”
이현수는 그제야 위긴스가 말하는 부분이 무엇인지 이해했다. 아예 무인계가 존재하지 않으면 몰라도, 미국에도 무인계가 존재하는 이상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다.
국방비에 너무 많은 돈을 투자해서 천조국이라고 불리는 곳이 바로 미국 아닌가.
만약 그들이 무인계조차 국방력의 일부로 생각한다면 투자를 하지 않을 이유가 없고, 타국을 견제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러니까…… 어, 그래서 회주님을 견제한다구요?”
“정황을 보면 로드가 중국과 손을 잡았다는 건 모를 수가 없는 일이지. 특히나 정보에 밝은 저들이라면 로드와 중국 간에 오간 거래에 대해 이미 파악하고 있을 확률이 높지.”
“으음.”
이현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생각지도 못한 문제다.
강진호가 유명하다는 건 그가 한 말이지만, 그 유명함이 이런 식으로 작용할 줄이야.
“그럼 취소를 해야 합니까?”
“글쎄…….”
위긴스가 턱수염을 쓸어내리고는 이현수를 보며 물었다.
“로드와는 이야기가 어디까지 끝났나?”
“표 다 끊고, 비행기 대절하고, 숙소 잡았는데요?”
“…….”
위긴스의 얼굴이 미묘하게 일그러졌다.
“이런 일이 있으면 좀 빨리! 어? 좀 빨리 말하라고 하지 않았느냐?”
말투가 바뀐다.
쭈글해진 이현수가 고개를 푹 숙였다.
“로드의 성정상 여기까지 진행이 됐으면 무슨 말을 해도 듣지 않으시겠지.”
“그럴 확률이 높습니다.”
“흐음, 그럼 어쩔 수 없나.”
위긴스가 영 불안하다는 눈으로 소파에 목을 기댔다.
“문제가 될 소지는 다분하지만, 그렇다고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매번 피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 언젠가는 해결을 해야 하는 문제고.”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럼 어쩔 수 없지. 추진하게. 나도 동행하겠네.”
이현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렇게 알고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이현수가 자리에서 일어나 나가려고 하자, 위긴스가 손짓을 해 이현수를 불렀다.
“아, 그리고…….”
“예?”
“자리 한 열 개만 더 만들어보지.”
“……예?”
아니, 자리는 또 왜?
“이 기회에 미국에도 포탈을 하나 열어두면 나중에 유용하게 쓸 수도 있으니까.”
“그거 건너편에서 열어줘야 한다고 했잖습니까?”
“그건 설정하기 나름이지. 원탁 쪽은 이쪽에서 쳐들어갈 걸 우려했으니까 그렇게 만든 거고. 다 방법이 있네.”
“음, 그러면 나쁘지 않은 시도겠군요. 알겠습니다.”
뒤돌아 나가려던 이현수가 다시 고개를 돌렸다.
“저, 그런데요…….”
“음?”
“……걔들, 여권은 있답니까?”
“……나야 모르지.”
아, 네.
그렇겠죠.
일이 또 늘어났다는 생각에 한숨을 내쉬는 이현수였다.
* * *
“미국이요?”
최연하가 반색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전화를 든 그녀의 손이 살짝 떨리고, 그녀의 동공이 불신의 빛을 품는다.
“저랑요? 둘이?”
[둘은 아니고.]“…….”
그럼 그렇지.
이 무드라고는 전생에 팔아먹고 온 인간이 그럴 리가 없지.
살짝 맥이 빠진 최연하가 넌지시 물었다.
“미국에서 할 일이 있는 거예요?”
[아뇨. 할 일은 없어요.]어라?
그래?
“그럼 미국은 왜 가는데요?”
“아…….”
최연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기야 박유민쯤 되는 일이니까 강진호가 회사일도 아닌데 해외를 나가는 거겠지.
음…….
이거, 은근 열받는데?
“그럼 또 가는 사람들이 누군데요?”
[보육원 애들요.]아, 그 정도면 뭐…….
[그리고 이 실장이랑 총회 사람 중 할아버지 한 명, 그리고 또 한 열 명…….]“잘 다녀오세요.”
[…….]“아니! 회사에서 가는 거구만! 거기에 나를 왜 데리고 가요! MK 일도 아니고!”
[자기들이 따라오겠다는데.]이 인간은 인기가 너무 많다. 여자들과는 거의 상종하지 않아서 불안함은 적지만, 남자들에게 인기가 많다는 건 또 다른 빡침을 불러왔다.
‘뭐, 어디 갈 때마다 사람이 안 들러붙는 경우가 없어.’
저래서야 사생활이라는 게 존재하겠는가.
나중에 결혼해서도 집에서 같이 살겠다고 찾아오는 게 아닌가 걱정이다.
헐, 무슨 결혼까지 걱정을.
“여하튼 저는 거기에는 따라가기 좀 그러네요. 유민 씨를 응원하고 싶은 마음은 큰데, 거기에 끼기는 좀…….”
[음, 그러면 어쩔 수 없죠.]강진호의 목소리에 최연하가 입술을 삐쭉 내밀었다.
‘그래도 한 번은 더 잡아보지.’
에이, 됐어.
이 인간에게 뭘 더 바라겠어.
그때, 최연하의 귓가에 상상하지 못한 말이 들려왔다.
[주말 끝나면 애들이랑 회사 사람을 귀국시키고 며칠 더 쉬다 오려고 했는데, 안 되겠네요.]뭐?
지금 뭐라고?
최연하의 두 동공이 지진을 일으켰다.
“두, 둘이?”
[그렇죠?]“자, 잠깐만요. 그럼 다음 주 초까진 있는단 말이니까. 아, 잠시만, 잠시. 스케줄이…… 어…….”
최연하가 고개를 돌려 한은솔을 바라보았다.
한은솔이 힘차게 양손으로 엑스 자를 그린다. 스케줄이 있어서 안 된다는 말이다.
최연하가 그 모습을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 마침 스케줄이 비네요.”
“…….”
한은솔이 기겁을 하며 달려들었지만, 최연하는 정확한 동작으로 한은솔을 걷어차 밀어냈다.
그러고는 태연하게 통화를 이어갔다.
“운이 좋네요. 스케줄이 있으면 안 갔을 텐데. 그리고 사실 유민 씨를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너무 커서 안 되겠네요. 생각을 해보니, 어…….”
말이 잘 지어내지지 않는다.
“여하튼 그거 둘이 좀 보낸다고 눈 돌아가서 그러는 거 아니니까, 이상한 오해는 하지 마세요.”
한은솔이 탄식을 했다.
차라리 그 말을 하지 말지.
하기야 연애 고자가 어디 가겠는가.
얼굴은 저렇게 생겨서 30년 동안 남자 친구가 없던 사람이 아닌가. 정상적인 반응을 바라는 게 이상하지.
[그럼 가는 건가요?]“네! 갈게요!”
[그럼 일단 그렇게 알고 진행하겠습니다. 여권이나 비자 같은 부분은 이 실장이 해결한다고 하네요.]“그 사람은 무슨 X라에몽인가. 해결 못하는 일이 없네.”
최연하가 피식 웃고는 입을 열었다.
“그럼 저도 스케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전화할게요.”
[알겠어요. 그럼.]강진호가 전화를 끊자, 최연하가 멍한 얼굴로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세상에, 이게 무슨 일이야?”
중국으로 간 이후로 여행이고 나발이고 다시는 바라지도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미국 여행이라니. 물론 불순물들이 다채롭게 끼어들기는 했지만, 며칠만 있으면 필터로 걸러준다지 않는가.
회사 사람들만 같이 있다면 아무리 그래도 따라가기 힘들었겠지만, 성심 보육원은 최연하에게 홈그라운드나 마찬가지인 곳이다.
이제는 집보다 보육원이 더 편하다. 그런 아이들과 같이 가는데 거리낌이 있을 리가.
강진호는 회사 사람들과 놀라고 하고, 최연하는 보육원 아이들과 다니면 그만이다.
그럼 이제 따뜻한 아메리카에서 즐거운 여행…….
“CF 어쩌실 건데요!”
……에, 불순물이 또 끼어든다.
최연하가 떨떠름한 시선으로 고개를 돌려 한은솔을 바라보았다.
“뭐?”
“CF 어쩌실 거냐구요! 다음 주 화요일에 촬영 일정 잡혀 있잖아요! 이거 어렵게 다시 잡은 건데!”
“어렵게는 개뿔이! 걔들이 먼저 연락했다며!”
“……그건 그렇지만, 여하튼 이거 큰 건이란 말이에요. 통신사예요, 통신사!”
최연하가 콧김을 내뿜었다.
“통신사 CF 한물간 지가 언젠데. 예전처럼 그렇게 목매고 어쩌고 할 필요 없어.”
“이게 얼마나 좋은 기횐데! 여자 연예인 최고령 통신사 모델 기록을 갈아 치울…….”
“이게 미쳤나!”
최연하가 쿠션을 한은솔에게 집어 던졌다.
이번에는 막지 못한 한은솔이 악 소리를 냈다.
“너, 지금 내가 나이 많다고 괄시하는 거지? 연예인으로 전성기 지나간다고?”
“아, 아니에요. 말이 그렇다는 거지. 제가 그러면 여기 있겠어요? 벌써 젊은 애로 갈아탈…… 아니, 이 말을 하려던 게 아니라…….”
“……호랑이 새끼를 키웠어.”
최연하가 도끼눈을 뜨고 한은솔을 노려보았다.
“야! 미국에는 나이 40 넘은 여자 배우가 최고액 받으면서 주연하는데, 나는 걔보다 훨씬 어려! 아직 한참 남았어! 알았어!”
“아니, 그 말이 아니라니까요. 어쨌든 이건 해결해야죠.”
“촬영 미루라고 해.”
“……예?”
“저번엔 지들이 마음대로 취소했잖아. 그러니까 이번에는 내가 한 번 미뤄도 되지. 안 그래?”
한은솔이 격하게 고개를 저었다.
“‘안 그래’는 무슨 ‘안 그래’예요. 그래서 모델료 올렸잖아요! 이게 역대 최고액이라구요!”
“그럼 일주일 미뤄도 되지. 내가 최고액 받는 배운데, 그 정도는 할 수 있잖아?”
아니, 이게 왜 그렇게 되나.
모든 말이 블랙홀처럼 일정을 미루는 이유로 빨려 들어간다.
“휴, 야! 감독 전화 줘봐.”
“예?”
“제작사든 감독이든, 책임자 연결해서 나한테 넘겨.”
“……네.”
한은솔이 휴대폰을 열어 전화번호를 누른 뒤, 최연하에게 휴대폰을 넘겼다. 최연하가 그 폰을 받아 들고는 영업용 미소를 지었다.
“어머! 감독님, 안녕하세요오?”
그를 대할 때와는 전혀 다른 목소리를 들으며 한은솔이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세상 사람들이 저 가식을 알아야…… 아니, 아는구나. 아는데 왜 인기가 있는 거지?’
알다가도 모를 곳이 연예계였다.
구석으로 가 전화를 하던 최연하가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었다.
“미뤘어.”
이렇게 간단하게?
“뭐, 뭐라고 하셨는데요?”
“일주일 촬영 미뤄주면 촬영할 때 화 안 낸다고 했지.”
“……그게 그걸로 미뤄져요?”
“해준다는데?”
그놈의 성질머리가 얼마나 부담이 됐으면.
뭔가 잘됐다 싶으면서도 이상하게 서글퍼지는 한은솔이었다.
“그러니까 말해서 일정 다시 잡아. 다음 주중으로 대충 잡아놨으니까, 네가 시간 보고 정하면 될 거야.”
“……누나.”
“응?”
“그럼 저도 데리고 가야죠.”
“뭘? 미국에?”
“네!”
“아니, 내가 없으면 너는 휴가잖아. 왜 굳이 따라와?”
“바늘 가는 데 실 가야죠.”
“니가 왜 내 실인데?”
“에이, 이제 와서 무슨 소리를. 어쨌든 저도 가고 싶습니다. 미국! 아메리카!”
“…….”
사서 일하는 사람이 여기도 하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