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433
#1432.
접촉하다 (2)
“흐음.”
위긴스가 미묘한 시선으로 창밖을 바라본다.
“왜 그러십니까?”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이현수의 물음에 위긴스가 고개를 내저었다.
“적당한 곳에 포탈을 설치해야 할 텐데, 그런 곳을 물색하는 일이 쉽지 않아서 그러네. 원탁에 정보를 요청했는데, 마스터께서 최근 미국과 사이가 그리 좋지 않아서 돕기가 어렵다고 하시는군.”
“미국과 사이가 좋지 않다구요?”
“원래 미국과 영국의 관계는 미묘한 편이니까. 둘도 없는 동맹이기도 하지만, 둘도 없는 앙숙이기도 하지. 사안과 시기에 따라서 대응이 확 달라지는 게 둘의 관계지.”
위긴스가 살짝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지금은 관계가 저점을 찍는 상황 같더군.”
“저점이요? 딱히 별일은 없던 것 같은데요?”
“미국은 원탁이 총회와 손을 잡은 걸 탐탁찮게 여기네.”
“설마…… 인종차별?”
“미국이라는 사회에 인종차별이 완전히 없다고는 말할 수 없겠지. 하지만 이건 그것과는 다른 문제네. 미국은 무인계의 패권마저도 자신들이 쥐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나라니까. 그저 원탁이 자신들이 아닌 총회의 손을 잡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겠지. 예전부터 구애해 왔거든.”
“미국이요?”
“당연한 것 아닌가. 아무리 미국이라고 해도 자신들의 힘으로 모든 걸 할 수는 없는 법이지. 그러니 동맹을 만드는 거고.”
“아뇨. 그 부분이 아니라…….”
이현수가 고개를 갸웃했다.
“미국이 구애를 하는데, 원탁에서는 미국의 손을 잡지 않았다는 뜻 아닙니까. 굳이 거절해야 할 이유가 있습니까?”
“그건 또 미묘한 이야기지.”
위긴스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일단 자네는 이해하기 힘든 말일지도 모르지만, 유럽인들은 미국에 대해 복잡한 감정을 가지고 있네. 지금의 미국은 인정하지만, 그 미국이 유럽에서 나왔다는 우월감과, 지금 당장은 미국에게 확연하게 밀린다는 좌절감을 동시에 느낀다고나 할까?”
“……저, 그거 이해하겠는데요?”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인데, 그거?
“그렇다면 이야기가 쉽지. 게다가 특히나 원탁은 유럽의 전통을 고수하는 면이 있네. 좋게 말하면 전통을 지켜 나가는 거고, 나쁘게 말하자면…….”
“꼰대겠죠.”
“……적절한 표현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 이상의 표현을 찾기도 어렵겠군. 여하튼 그렇다네. 그래서 미국과 동등하게 손을 잡는 걸 그리 반기지 않아.”
“흐음.”
이현수가 그래도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했다.
“원탁이 그런 경향을 가질 수 있다는 건 이해했습니다. 하지만 마스터께서는 실리주의자 아니십니까. 명분보다 이득을 우선시하시는 그분이 그런 사소한 감정적 요소 때문에 미국이라는 거대한 국가와 손을 잡지 않는 건 상상이 가지 않습니다만?”
“미국의 시스템이 문제인 거지.”
위긴스가 한숨을 내쉬었다.
“미국이라는 나라는 역사가 없어.”
“그것도 어디서 많이 들은…….”
“아니, 아니야. 비하하는 게 아니라 상황을 설명하는 걸세. 자네, 무인계의 기본적 요소가 뭐라고 생각하는가?”
“무학이요?”
“그렇지. 하지만 좀 더 디테일하게 말하자면, 아직 과학이 발전하기 전에 무학이 퍼져야 한다는 거지. 무학을 모르는 이에게 무학과 총,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면 뭘 고르겠나?”
“저는 총이요.”
“그렇지. 대부분은 그렇단 말일세. 초심자가 무학을 익혀 총을 이기기 위해서는 최소 십 년 이상의 고련이 필요하지. 그것도 개활지가 아니고, 거리가 가깝다는 전제가 있어야 겨우 붙어볼 만해진단 말이야.”
위긴스가 작게 ‘마법은 다르지만’이라 중얼거렸지만, 이현수는 깔끔하게 그 말을 무시했다.
“그런데 미국은 총이 생겨난 이후 세워진 국가네. 그러니까 다시 말해서…….”
“다른 국가들처럼 무인계의 체계가 생겨날 수가 없었다?”
“정확하네.”
위긴스가 창밖을 바라보며 말했다.
“화려하지. 더없이 화려하게 꽃핀 국가네. 자꾸 내가 이런 식으로 말을 하니 열등감에 사로잡혀 미국을 비하하는 것 같은데…….”
“무인계 같은 거 없어도 미국의 대단함은 전혀 변함이 없죠.”
“……그렇지.”
위긴스가 턱을 쓰다듬었다.
“문제는 그 대단함일세. 미국인들은 스스로가 대단하다는 것을 알아. 그리고 대단함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더욱 노력해야 한다는 것도 알지. 탐욕이지. 좋은 의미로 탐욕이야. 더 강해지고, 더 위대해지고, 더 큰 영향력을 원하지. 그게 드러난 세계든 드러나지 않은 세계든 말이야.”
위긴스가 어깨를 으쓱한다.
“냉전 시대에 소련과 정보 전쟁을 치르던 미국 아닌가. 그런 이들이 무인계에 대한 정보를 모으지 않았을 리가 없지. 그나마 그들이 전쟁을 한 상대가 똑같이 무인계의 영향력이 미미한 소련이기에 망정이지, 중국이었다면 세계는 지금쯤 지금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을 걸세.”
“그 말은…….”
이현수가 미묘한 표정으로 말했다.
“국가 차원에서 무인들을 키운다는 겁니까? 중국 놈들이 그런 것처럼?”
“거꾸로지. 미국이 중국을 배운 게 아니라 중국이 미국을 벤치마킹한 거지. 미궁에 있어서 무인은 군인에 지나지 않아. 국가에서 직접 육성하고, 국가에서 직접 관리하지. 우리처럼 독자적인 생태계를 구축하지 못했단 뜻이네.”
이현수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군인과 같은 무인.
이건 이현수도 몇 번이나 생각해 본 문제다. 언젠가 무인계는 그런 식으로 세상에 편입되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카드를 거의 쓰지 않은 중국이 일반 화폐에서 카드를 건너뛰고 바로 모바일 결제 시스템으로 전환하고 있는 것처럼, 현존하는 무인계를 처리할 필요가 없는 미국은 다음 세대의 무인계의 모습을 지금 이 순간 만들어내고 있는 건지도 몰랐다.
“그럼 그게, 음…….”
이현수가 밖을 바라보며 말했다.
“회주님이 미국에 들어온 사실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건 미국의 무인계가 아니라 미국 정부, 그 자체가 된다는 말씀이시군요.”
“그렇지.”
“아니, 그건 좀 무서운데…….”
이현수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미국의 무인계라는 말은 딱히 감흥을 주지 못한다. 무인계로 한정하자면 한국은 그래도 동아시아 삼국의 말석이나마 차지하고 있는 국가다.
실제 국력도 마찬가지지만, 동아시아가 아니라 다른 곳에 붙어 있었다면 지역의 깡패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는 힘이 있다.
딱히 알려지지도 않은 미국의 무인계를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상대가 미국의 무인계가 아니라 미국이라면 다르다.
확고부동한 전 세계 원톱 국가.
전 세계와 전쟁을 벌여도 승리할 가능성이 높다고 불리는 곳이 바로 미국이 아닌가.
그런 이들이 강진호를 주시한다?
‘나원, 살 떨려서.’
이현수가 상상하기도 싫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그럼 지금도 회주님이 감시를 받고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까?”
“입국 심사가 들어간 순간부터 감시가 시작되었을 거네. 말하지 않았는가, 그들이 로드의 입국을 막지 않은 데는 분명 이유가 있을 거라고 말일세.”
“……그럼 위험한 것 아닙니까?”
“글쎄.”
위긴스가 턱수염을 쓸어내렸다.
‘위험이라…….’
미국이 강진호를 제거하려 들거나, 위협을 가할 생각이 있다면 그렇겠지. 하지만 위긴스는 그럴 가능성은 전무하다고 생각했다.
우선 강진호는 건드려서 이득이 될 사람이 아니다. 지금 미국의 입장에서 강진호를 공격해서 얻을 수 있는 이점은 단 하나도 없다.
일본이 무너진 이상, 한국은 중국의 옆에서 그들을 견제할 수 있는 단 하나의 국가다. 물론 무인계의 세상에서 말이다.
현실에서 미국이 괜히 일본과 한국에 주일미군, 주한미군을 두고 있는 게 아니다. 모두가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서가 아닌가.
무인계에서는 한국의 무인계가 그 역할을 해주고 있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강진호가 중국에 쉽게 당하지 않도록 보호해야 할지도 모를 판인 것이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합리적인 이성으로 움직이는 나라라면…….”
“그럼 위험하겠네요.”
“말을 정정하지. 미국이라는 나라가 국익에 민감하다면…….”
“그럼 안전하겠네요.”
너무 찰떡같이 알아들어서 조금 짜증 나는 것 같은데?
위긴스가 헛기침을 하고는 말을 이어갔다.
“여하튼 내 생각은 그렇다네. 미국의 입장에서는 로드께서 중국의 정부와 관계를 맺는다는 건 탐탁찮게 여기겠지만, 그것 때문에 로드를 제거하려 들지는 않을 걸세.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제공하여 로드를 자신들의 편으로 끌어들이려 하겠지. 그게 미국의 방식이니까.”
“으음.”
이현수가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이거, 뭐라고 해야 하지? 외부 세계랑 상황이 비슷해져 가는 것 같은데?’
미국과 중국이라는 두 초강대국.
그리고 그 사이에 끼어 있는 한국.
중국은 중국대로, 미국은 미국대로 한국에게 어느 편에 설 건지 확실하게 노선을 정하라고 으르렁대는 상황.
그나마 외부 세계보다 상황이 나은 것은, 한국의 무인계가 그래도 미국이나 중국에게 경제적으로 휘둘리지는 않는다는 점이겠지만…….
‘그것도 알 수 없지.’
미국이 제재를 가해 한국의 경제가 흔들리기 시작하면, MK나 총회도 무사할 수 없을 테니까.
여하튼 미국과 척을 진다는 것은 생각하기도 싫은 일이었다.
“그럼 사이좋게 잘 지내면 되겠죠.”
“나도 그게 최선이라고 생각하지만 말이네…….”
위긴스가 떨떠름한 얼굴을 턱수염을 쓸어내렸다.
“돌이켜 보면 모든 일은 항상 그렇게 시작했지. 서로 좋게좋게 대화로 풀면 된다고 말이야. 그런데 결과는 항상 어땠지?”
“전쟁이 났죠.”
“……이유는 뭐지?”
“회주님이 뒤집어엎으셨죠.”
위긴스가 더는 설명할 필요가 없다는 듯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았다.
“세상의 이치를 탐구하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 아닐세. 하지만 회주님의 광기를 예측하는 건 너무도 어려운 일이지.”
“극히 공감합니다.”
이건 총회의 간부라면 누구라도 공감할 수밖에 없는 말이었다.
“분명 저쪽에서 로드께 먼저 접촉을 시도할 텐데, 로드가 그걸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걱정이로군.”
“흐음.”
이현수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럼 일단은 회주님께 사정을 설명해야겠네요.”
“그런다고 뭐가 달라지겠나?”
“크게 달라질 건 없겠지만, 하나는 달라지겠죠.”
“뭐가?”
“……모르고 사고 치는 것보다는 알고 사고 치는 게 속은 편하지 않겠습니까?”
“…….”
“가시죠.”
위긴스가 피식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 그래도 강진호와 따로 이야기를 한 번 나눠봐야겠다고 생각한 참이었다.
“친구가 우승을 했으니, 오늘 밤만은 감격에 빠지게 내버려 두고 싶었건만, 상황이 영 사람을 불편하게 하는군.”
“괜찮습니다.”
이현수가 단호하게 말했다.
“회주님은 그런 감상에 오래 빠져 계시는 분이 아니니까요.”
“그건 그렇지.”
“그리고 이걸 알아두는 게 회주님이 휴식을 하는 데도 훨씬 나을 겁니다.”
“으음.”
위긴스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앞장서서 방을 나섰다.
‘일이 크게 번지지만 않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어차피 언젠가는 마주해야 할 일이지만, 지금은 당장은 아니길 바라는 위긴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