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914
#1913.
내리밟다 (3)
“요격 중입니다!”
이현수의 말에 이사들이 눈을 크게 떴다.
“아, 아니, 그게 정보가 바로 들어오나?”
위긴스의 물음에 이현수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어치피 차이커창, 그놈이 우리한테까지 연락을 해줄 정신이 없을 것 같아서 미리 상황실 내에 저희 쪽으로 상황 전파를 할 인원을 보충했습니다.”
“…….”
위긴스가 헛웃음을 지었다.
‘진짜 이럴 때 보면 제정신이 아닌 놈인데.’
한 조직의 상황실이란 뇌와도 같다. 그런 곳에 태연하게 보고책을 밀어 넣는 이현수나 그걸 허락하는 차이커창이나 둘 다 일반인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이들이다.
큰 것을 보고 상황을 이끌어 나가는 능력은 위긴스도 이현수에 못지않지만, 이런 괴상한 디테일은 도무지 따라잡을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래서 요격 상황은?”
“광저우에 대량의 병력을 투입한 모양입니다.”
“대량의? 아무리 홍왕계의 수가 넘쳐 난다고는 하지만 중국 역시 더럽게 넓을 텐데, 한쪽으로 대량의 병력을 투입하고도 다른 곳을 방어할 수 있나?”
“버린 모양입니다.”
“……버려?”
“예.”
이현수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상대의 공격이 올 만한 범위를 크게 잡고 그 중앙에다가 병력을 모아둔 모양입니다. 주변에 공격이 들어오면 바로 반격할 수 있도록.”
“특정을 한다는 건 포기하는 범위가 생긴다는 거고, 그럼 그쪽으로 들어오는 공격에는 손을 놔버리겠다는 건가?”
“그런 듯합니다.”
“그 지역에 있는 지부를 뒤로 물리는 건?”
“그랬다가는 다른 곳이 함정이라고 광고하는 꼴이 되겠죠. 지부의 병력 정도는 미끼로 내어줄 생각인 겁니다.”
“…….”
위긴스가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일견 타당하다. 아니, 그냥 타당하다.
십이비도의 특성을 감안했을 때, 피해 없이 상대하는 건 불가능하다. 상대의 몸에 피를 흘리게 하기 위해서는 이쪽도 피를 흘릴 각오를 해야 한다.
지부 몇 개 정도 날아가는 대가로 상대에게 상처를 입힐 수 있다면 남는 장사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못한다.’
전략은 머리로 짜는 것이지만, 그 실행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다.
당장 눈앞에 있는 어린아이를 죽이는 대가로 어른 열 명을 구할 수 있다면 서슴없이 손을 쓸 수 있겠는가?
머리로는 손익을 따지지만, 가슴으로는 그 손익을 추구할지를 정하는 법.
아무리 상대를 쓰러뜨리기 위한 방책이라지만, 한솥밥을 먹은 이들 수백, 어쩌면 수천에 달할지도 모르는 이들을 희생양으로 내놓는다는 건 위긴스로서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어쩌면 위긴스와 차이커창이 생각하는 수의 스케일이 달라서 그런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수가 열 배, 아니, 백 배로 줄어든다고 해도 위긴스는 쉽사리 이 작전을 실행할 수 없었을 것이다.
상대를 쓰러뜨리겠다는 살기를 넘어 어떻게든 칼 하나는 박고 죽겠다는 독기가 느껴지는 작전이다.
“하지만 설사 십이비도를 포위한다고 해도 잡아내기 위해서 치러야 할 희생을 생각하면, 이건 손해 보는 일이 아닌가.”
“손해는 봐도 됩니다.”
“뭐?”
“동등한 가성비로 교환할 생각 따위는 하지 않을 겁니다. 천 명을 때려박아서라도 하나만 잡아낼 수 있으면 됩니다. 마지막에 이쪽이 한 명이라도 더 많이 살아남으면 승리하는 거니까요.”
“…….”
이현수가 자신은 차이커창의 생각을 짐작할 수 있다는 듯 빠르게 말을 이었다.
“창왕이 살아 있었다면, 혹은 홍왕계에 도전할 만한 세력이 하나라도 남아 있었다면 절대 이런 작전은 쓰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 중국은 완전한 일통을 이룬 상태. 기껏해야 소수의 창왕계 잔당들이 남아 저항해 대고 있는 상황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살아남을 수만 있다면 재건은 일도 아니라는 거죠. 애초에 저들에게는 다른 어떤 나라와도 비교할 수 없는 가공할 인구와 생산력이 있습니다. 지금만큼의 힘을 복구하는 건 어려운 일이겠지만, 타국을 압도할 전력 따위는 제로에서 시작해도 십 년이면 만들어낼 수 있을 겁니다.”
이현수의 생각으로 십 년.
차이커창이라면 더 짧은 기간을 생각할 것이다.
“우리와는 동맹과 불가침을 맺었다, 이거로군.”
“……애초에 회주님은 중국 땅에는 관심도 없으니까요.”
“그걸 이렇게 이용해 먹히다니……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로군.”
위긴스가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내가 차이커창이라는 자를 잘 아는 건 아니지만, 그자가 서로 간의 약속이라는 걸 믿고 일을 진행할 타입은 아닌 것 같은데?”
“예. 그래서!”
이현수가 이를 악물었다.
“홍왕이 직접 요격에 나섰습니다.”
“홍왕이?”
“뭐?”
그 말에 지금껏 딱히 관심을 보이지 않던 바토르와 장민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홍왕이 나섰다고?”
“예! 지금 아마도 교전 중인 것 같습니다.”
“시작부터 홍왕이…….”
바토르가 믿을 수가 없다는 얼굴로 연신 이현수의 얼굴을 확인했다. 이현수의 입에서 헛소리가 나올 일은 없으니 믿을 수밖에 없지만, 혹여나 정보가 잘못되지 않았냐는 의미다.
“몇 번이고 확인했습니다.”
“……그쪽도 지금 벼랑 끝이로군.”
바토르는 아마 이곳에 있는 이들 중 홍왕을 가장 많이 겪어본 이다.
그가 아는 홍왕은 딱히 대단히 권위적이거나 거드름을 떨어 대는 타입은 아니지만, 적어도 왕이라 불리는 이가 함부로 움직여서는 안 된다는 지론을 가지고 있는 이였다.
그런 이가 아직 제대로 된 전투도 벌어지지 않았는데 말단 지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해결하기 위해서 직접 움직인 것이다.
“차이커창이 홍왕을 움직였나?”
“아니, 절대 그럴 수는 없지요. 이건 홍왕의 의지일 겁니다.”
“옮았군.”
바토르가 이건 확정적이라는 듯 강진호를 슬쩍 바라보았다.
“…….”
“일단 싸울 일이 있으면 불 본 나방처럼 달려들고 보는 인간 옆에 좀 머무르더니…….”
“그거…… 욕 같은데?”
“맞다, 주인.”
“…….”
강진호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
하지만 이건 뭐라 반박할 수 없는 말이다. 실제로 강진호가 싸울 일만 있으면 일단 선두로 달려 나가서 미쳐 날뛰는 건 사실이니까.
“그보다는 최고 전력이 발 빠르게 움직였을 때, 희생을 줄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는 게 맞겠죠.”
이현수가 다급한 얼굴로 말했다.
“지금 들어오는 정보대로라면 두 군데에서 전투가 벌어지는 중입니다. 광저우에서 홍왕계가 투입한 타격대가 십이비도 중 하나를 포위하고, 항저우에서는 홍왕이 십이비도 중 하나와 전투를 벌이는 모양입니다.”
“다른 쪽은? 다른 십이비도들은?”
“……거긴 전투라고 부를 수 없겠죠.”
학살이다.
이현수가 한 말의 의미를 이해한 이들이 굳은 얼굴로 지도를 바라보았다.
“피해가 얼마나 클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한 군데는 잡아내야 수지타산이 맞겠군.”
“그럴 겁니다.”
“홍왕, 홍왕이라…….”
광저우가 어찌 될지는 알 수 없다. 지금의 정보로는 광저우에 얼마나 많은 병력이 투입되었는지 확인할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병력의 질도, 그 수도 모르는 상황에서 승부를 논하는 건 의미가 없다.
그러니 남은 곳은 한 곳!
“홍왕 대 십이비도라……. 적어도 백연홍 정도의 수준으로 봐야겠지?”
“아마도 그럴 겁니다.”
“그럼…….”
바토르가 입술을 살짝 깨물고는 고개를 들었다.
“누가 이기는 거냐?”
“…….”
그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들은 이미 홍왕을 겪어보았고, 백연홍도 겪어보았다. 이곳에 있는 이들 중 몇몇은 그 둘 모두와 싸워보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두 사람의 승부를 예측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어린아이가 어른 둘과 각각 싸워 진다고 해서 그 두 어른 중 누가 더 강한지 알 수 있는 건 아니다.
격차라는 건 그런 것.
지금 그들을 상대한다면 짐작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안타깝게도 이사들이 그들과 싸울 때의 수준은 지금에 미치지 못했다.
이곳에서 그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이는 오직 하나뿐이다.
“주인!”
바토르가 강진호를 보며 물었다.
“누구냐! 누가 이기는 거냐?”
그러나 강진호는 고개를 내저었다.
“무리야.”
“…….”
“나라고 해도 짐작할 수 있는 게 아니야. 우선 상대의 실력을 모른다.”
“백연홍과 비슷하다고 친다면?”
“그래도 마찬가지야. 설사 지금 홍왕이 상대하는 십이비도의 실력이 백연홍과 완전히 같다고 해도 사용하는 무학의 상성이 다르고, 그날의 컨디션이 다르다.”
“으음…….”
“위로 올라갈수록 승부란 결국 종이 한 장 차이로 결정이 나기 마련이야. 변수가 너무 많아서 누가 이긴다고 확실하게 말할 수 없다.”
바토르가 입을 다물었다.
‘만약…….’
상상하기 싫은 질문이 그의 뇌리를 휘감아 돈다.
‘홍왕이 지면 어떻게 되는 거지?’
그건 말 그대로 붕괴다.
홍왕계라는 초거대 문파가 모래성처럼 무너질 것이다.
“이건 너무 심한 모험이로군.”
“아니. 그렇게 생각할 건 아닙니다.”
이현수가 딱 잘라 말했다.
“십이비도가 다들 초인의 영역에 접어든 건 사실이고, 홍왕급의 무인이 열둘이라는 것도 이제는 부정할 수 없지만, 홍왕급이라는 말이 정말 홍왕과 동등하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
“최소한 우리보다는 지부가 박살이 난 홍왕계 쪽이 그들의 실력에 대해 조금 더 잘 파악하고 있겠죠. 그런데도 홍왕이 나서는 걸 막지 않았다는 건, 최소한의 우위를 확보할 수 있다는 계산이 있었을 겁니다.”
백 퍼센트의 확률은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그 확률을 백 퍼센트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 홍왕.
홍왕계라는 거대한 문파를 이끄는 수장에게 주어진 의무다.
“최악의 사태는 일어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건가?”
바토르가 살짝 안도하려는 찰나였다.
찰칵.
짧은 금속음과 함께 강진호가 문 담배 끝에 불이 붙는다.
“후…….”
담배연기를 길게 뿜어낸 강진호가 고개를 들어 모두를 바라보았다.
“잘 들어.”
“예?”
“이 승부는 홍왕계가 진다.”
“……예?”
강진호의 말에 이현수가 눈을 부릅떴다.
“아, 아니, 지금 단계에서?”
“더 볼 것도 없어. 차이커창이 마음이 조급해져 실수를 저지른 것뿐이야.”
강진호가 몇 모금 빨아들이지도 않은 담배를 미련 없이 비벼 껐다. 마치 홍왕계의 운명을 암시하는 듯 말이다.
“더는 지켜만 보고 있을 수 없겠군. 위긴스.”
“예, 로드!”
“항저우에서 가장 가까운 게이트가 어디지?”
“그야 당연히 상하이입니다.”
“가지.”
강진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개를 건드리면 주인이 나오는 법이지. 차이커창이 너무 성급하게 주인을 내보냈어.”
“서, 설마…….”
이현수의 턱이 덜덜 떨린다.
“홍왕이 위험하다. 함정에 빠진 건 십이비도가 아니라 바로 홍왕이야.”
“…….”
“벌써 균형이 무너지게 만들 수 없지. 최소 인원으로 간다!”
“예!”
이해를 한 이도, 아직 돌아가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이도 더는 생각할 게 없다는 듯 단호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청마에게 알려줘야지.”
강진호의 입꼬리가 비릿하게 말려 올라간다.
“이제부터 나를 상대해야 한다고.”
강진호를 비롯한 이사들이 바람처럼 밖으로 달려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