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2106
#2105.
돌아오다 (5)
살면서 부상을 입은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보름이라는 시간 동안 깨어나지 못하는 것은 그의 기억에도 처음 있는 일이지만, 며칠 동안 혼수상태에 빠질 정도의 부상은 흔하다고는 말하기 어려워도 그리 드물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이번 전투로 인해 강진호가 입은 부상은 이전까지의 부상과는 그 궤를 달리했다.
무려 보름이라는 시간 동안 혼수상태에 빠져 있었음에도 아직 격한 통증을 느껴야 할 정도로 말이다.
이쯤 되니 제 몸뚱아리를 적당히 내버려 두면 알아서 수복하는 도마뱀 꼬리쯤이라 여기는 강진호라 할지라도 안정을 취해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게 강진호의 마음대로 되는 일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진호야!”
그가 깨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단번에 달려온 백현정이 연신 강진호의 얼굴을 쓰다듬어 댔다.
눈물을 훔치는 백현정과 그 뒤에서 어색한 얼굴로 서 있는 강유환의 모습은 누가 보더라도 참 따뜻함이 느껴지는 광경이었다. 이게 벌써 30분째 반복되고 있는 상황이라는 점만 제외한다면 말이다.
“저기…… 여보.”
“왜요?”
“진호도 좀 쉬어야…….”
“당신은 좀 조용히 하고 있어요!”
“…….”
아버지란 존재는 언제나 자식에 대한 사랑으로 넘쳐 나지만, 옆에 어머니가 존재할 때는 그 사실에서 살짝 거리를 둬야 하는 존재가 아니던가.
아니, 어쩌면 강유환은 그 사실을 변명으로 점점 하얗게 질려가는 강진호를 내다 버린 건지도 모른다. 강진호가 필사적으로 도와달라는 시선을 보냈지만, 강유환은 그저 고개를 돌려 외면하고 있었다.
‘나도 살아야지.’
사람은 눈치라는 게 있어야 한다.
여기서 한마디만 더 했다가는 강유환은 지금부터 한 달 정도는 집에서 숨소리도 내지 못하게 될 것이다.
결국 강유환의 도움을 포기한 강진호가 제 스스로 살길을 찾아내기 시작했다.
“어머니, 저는 괜찮…….”
“어떻게 괜찮아, 어떻게! 사람이 보름 동안 의식이 없다가 깨어났는데! 어떻게 괜찮아!”
“…….”
그건 맞지.
상식적으로 봐서 그 말이 백배 맞지.
“의사는 뭐래?”
“어, 엄마. 의사가 검사 결과로는 딱히 큰 문제가 없어 보인대.”
“정말?”
“응, 엄마.”
강은영도 강진호가 슬슬 불쌍해지기 시작했는지, 열심히 지원사격에 나섰다.
“그 의사 놈, 진호 못 깨어날 수도 있다고 한 돌팔이잖아! 그런 인간 말을 어떻게 믿어?”
“……그치. 그것도 맞지.”
하지만 백현정은 말 그대로 난공불락의 성이었다.
“그러게 뭐 한다고 거기서 싸움박질을 하고 있어!”
그 전투를 과연 싸움박질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는지는 모두가 가진 의문이지만, 지금 그 사소한 표현으로 딴지를 걸 용기를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자식이 상처 입는 모습을 본 어머니만큼 무서운 건 없으니까.
“자식 놈 키워봐야 아무 소용 없다더니! 내가 속이 상해서! 내가!”
식은땀을 뻘뻘 흘리던 강진호가 최후의 보루로 최연하를 돌아보았다.
저 현명한 여자라면 그가 탈출할 구석을 마련해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면회 시간이…….”
“아, 면회 시간?”
최연하가 그러고 보니 생각이 났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면회 한 시간이지, 면회는.”
“한 시간 다된 것 같은데…….”
“그러니?”
백현정이 슬쩍 최연하를 돌아본다. 이 중에서 백현정이 그래도 조금의 불편함이라도 가진 사람은 최연하가 유일하다. 그러니 희망이 있다며 오직 그녀가…….
그때, 최연하가 더없이 화사하게 웃었다.
“그런데 여기는 VVIP 병실이라서 괜찮아요, 어머니. 마음껏 하세요.”
“그래?”
반색하는 백현정을 보며 강진호가 눈을 질끈 감았다.
‘그냥 다시 기절했으면 좋겠다.’
하지만 강건한 육체는 그의 간절한 소망을 단호하게 거절했다.
걱정하고, 우려하고, 당부하고, 화를 내기를 수십 번 반복한 백현정이 결국에는 지쳐 집으로 돌아갔다. 무려 세 시간에 달하는 잔소리와 울음소리에서 겨우 벗어난 강진호가 떨리는 손으로 물을 찾을 때 즈음, 강진호 토벌대의 2진이 들이닥쳤다.
“야, 이 새끼야!”
“진호야!”
병실 문을 박차고 들어오는 주영기와 박유민을 본 강진호의 얼굴이 핼쑥해졌다.
물론 두 사람은 감히 백현정에 비할 정도는 아니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파괴력은 백현정에 확실히 미치지 못했다.
문제는 이들은 둘이라는 점이었다.
“야, 이 씨발! 껍데기를 벗겨서 회를 칠 새끼야! 그동안 잘도 그런 짓거리를 하고 돌아다녔네. 내가 씨발, 살다 살다 내 친구 면상이 전 세계에 생중계되는 꼬라지를 다 처보네. 유명 인사 되셔서 아주 좋으시겠다, 이 개새끼야! 내 사인은 미리 해뒀냐?”
“진호야, 몸은 정말 괜찮아? 정말 많이 다친 것 같던데, 의사가 후유증은 없대? 그러니까 왜 그랬어? 그걸 굳이 네가 할 필요가 없었잖아. 내가 진짜 심장이 멎는 줄 알았어. 아니, 왜 네가 굳이…….”
강진호의 얼굴이 더욱 핼쑥해졌다.
왼쪽에 선 주영기가 쉬지도 않고 욕을 해 대고, 오른쪽에 선 박유민이 쉴 새 없이 울어 댄다. 양쪽 귀에 전혀 다른 말과 감정이 동시에 파고들자, 천하의 강진호도 반쯤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그…… 얘들아, 내가…… 그…… 정말 미안한데…….”
강진호가 없는 힘을 짜내서 말했다.
“지금 내가 컨디션이 너무 안 좋아서 그러는데…… 이거 좀 나중에 해주면 안 될…….”
“컨디션? 컨디션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이 새끼야! 그게 컨디션이 안 좋은 거냐? 야, 이 새끼야. 너는 거기서 뒈졌어도 사고사가 아니라 자연사예요. 지가 죽겠다고 제 발로 걸어 들어갔는데, 뭐? 컨디션? 시체 조각이라도 건져 나온 걸 다행이라고 생각해야지. 욕 처먹기 싫었으면 그냥 뒈지지, 왜 살아 돌아와 가지고, 이 개새끼야.”
“진호야, 컨디션이 많이 안 좋니? 몸이 많이 상한 거 아니야? 검사라도 다시 받아봐야 하는 거 아니야? 내가 들어봤는데, 이게 검사 결과에는 이상이 없다고 나오는데도 후유증이 있어서 고생하는 사람이 많다고 하더라. 그러게 왜 그랬어?”
“영기야.”
“왜?”
“가게 문은 안 열어도 돼?”
“오늘 문 닫았어, 이 새끼야! 내가 이 기분에 지금 장사하게 생겼어?”
“……유민이는 오늘 경기 없니?”
“지금 경기가 중요한 게 아니잖아, 진호야. 그리고 경기 있어도 저녁에 있으니까 네가 신경 안 써줘도 돼.”
“…….”
체념한 강진호가 눈을 감아버렸다.
‘그냥 죽여라.’
걱정해 주는 건 참 감사한 일이다. 그를 위해서 화를 내주는 것도 정말 고마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 그 걱정 속에 그가 보름 만에 의식을 되찾은 환자라는 사실을 조금만 섞어주면 더 고마울 것 같은데.
그렇게 주영기와 박유민도 거의 두 시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욕과 울음을 늘어놓다가 돌아갔다. 나중에는 거의 핏기가 가셔 버린 강진호를 보고 강은영이 두 사람을 쫓아내지 않았으면 밤이 될 때까지 계속할 기세였다.
“죽을 것 같…….”
물론 거기서 끝날 일은 결코 아니었다.
“마존이시여어어어어어!”
문을 부수고 안으로 뛰어드는 장민을 본 강진호가 풀려 버린 동공으로 천장을 바라보았다.
“마존이시여! 마존이시여어어어어! 마존을 보필하지 못한 속하를 죽여주십시오! 마존께서 의식을 잃고 계시는 동안 속하는 단장의 고통이 무엇인지 절절히 깨달았습니다. 무엇이 진정으로 마존을 모시는 방법인지 진즉에 알지 못한 이 무능한 속하를 마존의 그 존귀하신 손으로 단박에 쳐 죽여주시옵소…….”
“비켜라, 영감!”
바토르가 강진호에게 달라붙어 오만가지 말을 늘어놓는 장민의 얼굴을 잡아 뒤로 던져 버린다.
“괜찮나, 주인?”
“……괜찮았는데, 이제 안 괜찮다.”
“괜찮아 보이는군.”
“…….”
이 인간에게 언어라는 건 대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바토르가 얼굴을 실룩인다.
“나약하기 짝이 없다. 아무리 부상이 심했다고는 하나, 보름이나 잠들어 있다니.”
“……너는 괜찮나?”
“그깟 부상 따위야 이틀이면 낫지.”
“…….”
이쯤되면 사람이 아니라고 봐야 한다.
“이 기회에 외공을 좀 익혀봐라. 몸을 보호하는 데는 그만한 것이 없다.”
“이상한 소리 하지 마십쇼, 이사님. 바이크 타고 다니는 분이 전기 자전거를 왜 삽니까?”
“지금 외공을 비하하는 거냐?”
“사실이 그렇잖습니까. 그놈의 외공도 필요한 사람이 따로 있는 거지, 어디 그 조잡한 걸 회주님한테 들이댑니까? 역대급으로 업적 찍고 오신 분인데.”
“업적? 이게 뭔 게임이야?”
저들끼리 투닥대고 싸우기 시작하는 바토르와 방진훈, 그리고 어느새 다시 달려들어 방언을 쏟아내는 장민 속에서 강진호가 양 손으로 제 얼굴을 감쌌다.
“저기…… 다들 좀 꺼져. 제발.”
하지만 이들이 꺼진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었다. 시간이 채 얼마 지나기도 전에 부서진 문으로 이명한을 위시로 한 마염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회주님, 괜찮으십니까?”
“의식이 드셨습니까!”
병실은 또 뭐 이렇게 넓은지, 수십 명이 무리 없이 안에 들어온다.
병실을 채운 이들이 하나하나 늘어날 때마다 강진호의 안색이 점점 더 창백해졌다. 이내 MK의 대표로 이현주가 방문했을 때 즈음에는 강진호는 거의 널브러진 생선 쪼가리 꼴이 되어버렸다.
“왜…… 이렇게 많이들 왔어?”
“무슨 소리이십니까, 회주님?”
“어?”
“고르고 골라서 올라온 겁니다. 지금 밑에 애들 다 몰려와 있습니다.”
“…….”
이명환이 태연하게 말했다.
“그 새끼들도 온다는 것 시범 삼아 두어 놈 조져 놓고 저희만 올라왔습니다. 괜히 회주님 쉬시는 데 방해되면 안 되니까요.”
“……고맙네.”
정말 눈물나게 고맙다.
“아아, 거기 밀지 말아봐.”
“야, 간호사가 이거 문짝 왜 부서졌냐고 화내는데?”
“몰라. 그거, 바토르 님이 들어오다 부쉈겠지. 그 몸이 통과할 사이즈가 아니잖아.”
“내가 아니라 영감이 한 짓이야, 이 새끼들아!”
한숨을 푹푹 내쉬던 강진호가 움찔하고 고개를 돌렸다.
“애들이 어디에 있다고?”
“병원 밑에 있습니다. 저 창으로 보시면 다 보일 겁니다. 손 한 번 흔들어 주십시오. 지금 다들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
그러니까 병원에 총회 사람들이 몰려와 있다고?
“다?”
“예. 다 왔죠.”
“왜?”
“당연히 회주님 뵈러 온 거죠.”
“그러니까 왜?”
“……에이, 당연히 걱정되니까 그런 거죠. 다들 간다는데 뭘 어떻게 합니까?”
“…….”
“다들 그만큼 회주님을 생각하는 겁니다. 아, 듣자하니 좀 있으면 마교 새끼들도 다 온다던데. 저희가 먼저 온 거 잊으시면 안 됩니다. 그 새끼들은 만날 입으로만 충성이지.”
“…….”
강진호가 멍한 얼굴로 바라보자, 이명환이 생긋 웃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감동하실 것 없습니다. 다 당연한 거죠. 회주님이 다치셨는…….”
“……시켜.”
“예? 고맙다고요?”
“……해산시켜, 당장.”
“예?”
“……다 죽여 버리기 전에.”
“…….”
강진호의 오후 진료 과목에 신경외과가 추가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이현수 불러와.”
……또 이현수가 맞아야 할 이유도 하나 더 추가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