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284
#283.
발휘하다 (8)
방진훈을 돌려보낸 강진호가 조규민을 바라보며 물었다.
“어떤 것 같습니까?”
“무슨 말씀이신가요? 방진훈 씨요?”
“예.”
“흐음.”
조규민이 고민된다는 투로 잠시 입을 닫고 있다가 고개를 돌려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제 생각입니다만, 기본적으로 조직 내에서 세력을 모아 반기를 들려고 하는 사람이 고분고분 강진호 씨의 말을 들으려 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사람 보는 눈이 뛰어나다고 자부할 수준은 아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감이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조규민이었다.
“음…….”
“천성적으로 중심이 되기를 좋아하는 타입입니다. 지금이야 힘에 눌려 굴복하고 있다고는 해도 마지막까지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 보이지는 않습니다.”
강진호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생각도 조규민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방진훈 씨를 선택한 이유도 그것 때문이겠죠. 그렇지 않습니까?”
“예.”
강진호는 미소를 지었다.
그는 이래서 조규민이 마음에 들었다.
굳이 말하고 설명하지 않아도 알아서 강진호의 의도를 파악하고, 그에 따라 움직이고 안배를 한다.
방진훈을 선택한 이유는 그가 중심이 되기를 원하는 사내이기 때문이다. 강진호는 직접 총회나 대한민국의 무인들을 컨트롤할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해야 할 필요성은 있다.
그렇다면 적절한 사람을 찾아내서 그에게 맡기는 것이 최선이다.
“확실히 수동적인 타입보다는 방진훈 씨 같은 타입이 일을 맡기기에는 좋아 보입니다. 하지만…….”
조규민이 걱정된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마지막까지 확실하게 컨트롤할 수 없다면 되레 화를 부를 수도 있는 타입입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예.”
강진호는 태연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저를 배신하지 못할 겁니다.”
“사람 일이라는 건…….”
“배신하지 못할 겁니다.”
조규민의 말을 끊고 확신에 찬 목소리를 내는 강진호였다. 그런 강진호를 보며 조규민도 납득하고 말았다.
“안배를 해두셨군요.”
“네. 적당히.”
“그렇다면 괜찮을 겁니다. 자기 목숨 귀한 줄은 아는 사람 같으니까요.”
“예.”
“다만, 걱정이 되는 건…….”
조규민이 자리에 앉고는 커피를 살짝 들이켰다. 반쯤 식은 커피에서 풍기는 커피향이 조규민의 코끝을 간질였다.
“이번 일에 관여하게 된다면, 강진호 씨는 이제 대한민국의 이면에 깊숙이 관여하게 됩니다. 지금까지처럼 살 수는 없을 겁니다.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강진호는 대답하지 않고 가만히 소파에 등을 기댔다. 잠시 생각에 잠긴 듯 고민하던 강진호가 입을 열었다.
“피할 수 있다면 피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죠.”
“예. 저도 동감합니다.”
“하지만 피할 수 없는 것을 피하려 하다 보면, 결국에는 파국을 맞게 됩니다.”
강진호는 이제 더 이상은 피하지 않기로 했다.
평범하게 산다는 것.
그건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을 외면하며 겉으로 보이는 삶에 전념한다는 뜻이 아니었다. 외면하면 외면할수록 그의 삶은 무너지고 있었다.
‘정말 평범하게 살 생각이었다면, 처음부터 무학을 익히면 안 되는 것이었어.’
이 세계로 처음 돌아왔을 때, 그는 무공을 익히지 않으려 했다. 그 결심이 깨진 것은 그가 먼저 타인을 건드리지 않는다고 해서 다른 이들이 그를 내버려 두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적당히 순응하고 적당히 숙이면서 살 수 있다면 그리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이상, 지금까지처럼 소극적으로 움직이는 것은 의미가 없었다.
“피할 수 없다면 부숴 버려야죠.”
조규민이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그는 이래서 강진호가 좋았다.
항상 침착한 듯 조용한 듯 움직이려 하지 않지만, 막상 움직이기 시작하면 지금까지의 침착함이 거짓이었다는 듯 화끈해진다. 이제까지 강진호가 나선 일은 항상 그랬다.
‘어쩌면 대리만족일지도 모르지만.’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강진호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참을 만큼은 참지만, 그 한계를 넘는 순간 확 달라져 버리는 사람.
그 통쾌함은 다른 곳에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것이었다.
단순히 그런 면 때문에 강진호를 따르는 것은 아니지만, 이것이 그가 강진호를 따르는 이유 중의 하나임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그럼.”
강진호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조규민이 붙잡았다.
“아, 잠시만요, 강진호 씨.”
“네?”
“차 도착했습니다. 몰고 가시죠.”
“아…….”
강진호가 기뻐하는 기색을 드러내자 조규민이 빙그레 웃었다.
“예전에는 차는 필요도 없다고 하시더니, 막상 없으니 불편하시죠?”
“그렇더라구요.”
차라는 게 그렇다.
처음부터 없을 때는 왜 필요한지 모르지만, 막상 있다 없어지면 수많은 것들이 불편하고 귀찮아진다.
“지하 주차장에 세워뒀으니 가져가시죠. 보험 쪽은 제가 처리해 뒀습니다.”
“예.”
“세단은 좀 더 걸릴 겁니다.”
“……거창한 차는 아니었으면 좋겠는데요.”
“아뇨. 오는 데 시간이 걸리는 게 아니라 제가 어떤 차로 해야 할까를 고민하다 보니까…….”
조규민이 머리를 벅벅 긁었다.
“제 차면 어떻게든 해보겠는데, 강진호 씨가 타야 할 차라고 생각하니 걸리는 게 너무 많더군요. 후보군 많이 좁혀뒀으니까 조금만 더 기다리시죠.”
“네.”
강진호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문으로 향했다. 사실 그는 차종에 관해서는 문외한이나 다름없다. 조규민이 차를 골라주면 잘 타고 다닐 뿐이다.
“내려가시죠.”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주차장으로 향한 강진호는 컴컴한 주차장을 둘러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자꾸 이런 거 하지 마세요.”
“얼굴이든 물건이든 조명발이 절반인 법이죠.”
“…….”
조규민이 불을 켜자 빨간색의 람보르기니가 강진호의 눈에 들어왔다.
“같은 거네요?”
“네. 페라리나 부가티로 갈까 생각도 해봤습니다만, 파가니 쪽도 마음에 들구요. 그래도 이번에 새 차도 한 대 뽑으시는데 이것까지 바뀌면 좀 그러니까요. 같은 모델로 준비했습니다.”
강진호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색은 저것밖에는 없나요?”
“빨간색 잘 타고 다니셨잖아요?”
“래핑은 이해하겠는데, 애초부터 빨간색이다 싶으니까 좀 부담스럽긴 하네요.”
“스포츠카는 빨간색이죠. 아니면 지금이라도 다른 모델로 바꿔 올까요? 하늘색 이번 게 예쁘게 빠졌던데.”
“이걸로 하겠습니다.”
하늘색의 스포츠카를 떠올려 본 강진호가 격렬하게 고개를 저었다.
‘차라리 빨간색이 덜 튀겠네.’
옷이라면 몰라도 차는 빨간색이 그리 튀는 색이 아니라는 것을 실감하는 강진호였다.
“몰고 가실 거죠?”
“예.”
조규민이 주머니에서 키를 꺼내 짤랑짤랑 흔들었다.
“나중에 회장님께 감사하다는 말이라도 해주세요. 회장님이 돈이 썩어날 정도로 많기는 하지만, 몇 억짜리 차를 선물하는 것은 아무래도 부담이 되는 일이니까요.”
“한 번 찾아뵈어야겠네요.”
조규민의 말뜻을 알아들은 강진호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사람이 이 정도 물건을 선물하고 생색을 낼 사람은 아니었다. 그러니 얼굴이라도 한 번 보여주라는 뜻일 것이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황정후는 손자 찾는 할아버지처럼 강진호를 보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었으니까.
어릴 적 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조부의 존재를 느껴본 적 없는 강진호도 황정후에게서 할아버지의 정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예?”
“예전에 말씀하신 황정후 회장님의 자제분들은 지금 뭘 하고 있나요?”
“……글쎄요?”
조규민이 아차 하는 얼굴로 머리를 긁었다.
예전에 한 번 황정후 회장의 집 대문에서 난동을 부렸다는 소식을 듣기는 했는데, 그 이후로는 딱히 소식을 들은 적이 없었다.
“솔직하게 잘 모르겠습니다.”
조규민의 말에 강진호가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끊어내려 한다고 끊어지는 게 아니더군요.”
“예?”
“혈육이라는 게 말입니다.”
“음…….”
조규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게도 가족이 있으니 강진호가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었다.
“그렇게 해야만 해서 한 일이기는 하지만, 자식들이 힘들게 사는 걸 안다면 마음이 편치는 않을 겁니다.”
“하지만 회장님께서는…….”
“자신이 쌓아낸 이미지를 지켜야 할 때가 있는 법이죠. 스스로는 그리하고 싶지 않더라도요. 황정후 회장 정도 되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래야 할 때가 있을 겁니다.”
조규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강진호의 말이 맞았다.
“조사해 보겠습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설사 황정후가 그것을 원치 않는다고 하더라도 상관없다. 이제 그가 명을 들어야 할 대상은 황정후가 아니라 강진호였으니까.
‘이거, 은근히 월급 루팡하는 기분인데…….’
돈은 재경에서 받고 있는데 황정후가 아닌 강진호의 명을 받고 일을 하려니, 양심이 슬그머니 머리를 들고 있었다.
‘아니, 애초에 강진호 씨를 보좌하는 게 재경에서 바라는 거니까 이게 딱히 잘못된 건 아닌 것도 같고.’
조만간 입장 정리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강진호가 운전석에 올라 시동을 걸었다.
우르르릉!
12기통 엔진에서 뿜어져 나오는 묵직한 소음에 조규민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언제 들어도 쩐다니까.’
강진호를 따라 열심히 일하다 보면 언젠가는 자신도 저런 차를 탈 수 있는 시간이 올까를 고민하며 조규민이 고개를 숙였다.
“조심해서 가십시오.”
창문이 열리더니 강진호가 창밖으로 손을 내밀었다.
“아, 그리고 강진호 씨!”
슬그머니 움직이던 차가 멈춘다.
“앞바퀴 들고 올라가십시오. 바닥 다 긁힙니다.”
“…….”
지잉, 하는 소리와 함께 차체 앞부분이 살짝 들린다. 강진호가 천천히 차를 몰아 위로 올라가자 조규민이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보다 몸을 돌렸다.
‘앞으로는 바빠지겠어.’
한국 무도 총회.
조규민이 재경의 이름으로 상대하려 했다면 그 답이 보이지 않는 곳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드러난 세력을 움직여 총회에 대해 조사하려는 시도는 모두가 실패로 돌아갔다.
동시에 차마 밝힐 수 없는 높은 곳에서 은근히 그들의 조사를 방해하려는 움직임마저 벌어졌다.
‘그런데 어려워 보이지가 않으니 큰일이지.’
호가호위라고 해야 하나.
등 뒤에 강진호가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무도 총회라는 곳이 딱히 겁나지 않는 조규민이었다.
총회의 2인자인 방진훈마저 어린아이 다루듯 하는 강진호가 그의 곁에 있는데, 무서울 것이 뭐가 있겠는가.
어쩐지 어깨에 힘이 실리는 것을 느끼며 조규민이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진정해야지.’
그가 마음껏 움직일 수 있는 것은 그가 강하기 때문이 아니라 강진호가 강하기 때문이다. 그 힘이 자신의 것이라 오판하고 움직인다면 언젠가는 파멸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등 뒤에 호랑이가 있다면 적절히 이용해야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만 믿고 설치다가는 자신이 여우라는 것을 자각하는 날도 올 테니까.
호랑이가 복수야 해주겠지만, 그가 당하고 난 뒤에 복수를 해주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일단은 시킨 일부터 잘 해결해야지.”
어디서부터 조사를 해야 황정후의 아들들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조규민이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