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286
#285.
발휘하다 (5)
“……반응이 생각보다 괜찮더라고.”
“그래?”
“최연하 씨가 한 말이 맞는 모양이야. 매출이 엄청 늘었어.”
“얼마나?”
“한 두 배 가까이?”
강진호는 조금 뚱한 표정이었다.
매출이 늘었다는 것은 좋은 소식이지만, 그가 팔던 피자의 인기가 떨어졌다는 말처럼 들려서 조금은 언짢았다.
“테이블당 피자 한 판씩은 꼭꼭 나가고는 있는데, 그동안 피자가 한 판씩 나가던 테이블에 파스타와 음료가 추가되니까 매출이 엄청 는다.”
“그……렇겠지.”
생각해 보면 아무리 피자를 좋아하는 사람이더라도 한 테이블당 피자를 두 판씩 시키지는 않을 테니, 사이드가 추가되면 매출이 늘어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테이블당 시키는 음식 수가 늘어나면 회전율이 줄어들지 않을까 했는데, 다행히 지금까지는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은 모양이었다.
“파스타도 잘나가나?”
“엄청 잘나가는데. 반응도 좋아.”
“흠…….”
강진호는 가만히 고개를 돌렸다.
정수연이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태연한 척하고는 있지만, 살짝 들썩이는 어깨와 옆얼굴만으로도 느껴지는 우쭐한 표정이 그녀의 마음을 충분히 짐작하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수고했어요.”
“네.”
왠지 말해주지 않으면 큰일이 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야, 피자 안 팔고 파스타만 팔아도 되겠더라. 사람들이 피자보다 파스타가 맛있대.”
주영기의 말에 박유민이 인상을 썼다.
“그건 피자를 네가 구워서 그런 거잖아.”
“……말 다 했냐?”
박유민이 심각한 얼굴로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진호야, 자꾸 자리 비우지 마라. 네가 만든 피자랑 영기가 만든 피자 차이가 너무 심하다. 사람들이 피자 재료 상했냐고 묻더라.”
“…….”
정수연도 적극 동의했다.
“오죽하면 나중에는 제가 피자 구웠어요. 해도 해도 너무하더라구요.”
상처받은 얼굴을 한 주영기가 구석으로 가서 무릎을 감싸고 앉았다.
사나이 주영기. 다른 일도 아니라 피자 제대로 못 굽는다고 구박을 받는 처지가 되니 눈가가 시큰해져 온다.
“그런데 아무리 레시피대로 따라 해도 그 맛이 안 나더라구요. 시간 나시면 저 피자 굽는 방법 좀 전수해 주세요.”
“……노력은 해볼게요.”
가능성은 없겠지만 말이다.
강진호가 굽는 피자는 일반인이 따라 할 수가 없다. 화덕에서 잘 굽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열양지력으로 내부를 한 번에 구워내는 것이 포인트다.
일정한 수준에 오르지 않은 무인이라면 따라 하기도 힘들 것이다.
‘무인들을 동원해 볼까?’
이왕 총회와 얽힌 김에 나중에 적당한 무인 하나를 데려다 놓고 피자를 굽게 시켜도 괜찮을 것 같다. 자존심 높은 무인들이라 하려 들지는 모르겠지만, 그 많은 무인 중에 피자 구울 사람 하나 없겠는가.
“그럼 어제 매출이?”
“네가 있을 때만큼은 나왔어. 지금까지 네가 빠졌을 때 매출이 반의반으로 줄었던 걸 생각하면 엄청 나온 거야.”
“음…….”
강진호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군.’
그동안은 자신이 있을 때와 없을 때의 매출 차이가 너무 심하게 났다. 출근을 좀 더 자주하면 해결될 일이긴 하지만, 그 방법으로는 강진호가 복학을 한 이후가 문제였다.
가게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는 굳이 강진호가 가게에 나오지 않아도 일정 이상의 매출이 지속되어야 하는데, 피자에만 매달리다 보면 답이 나오지 않는 것이다.
“이제 피자만 좀 해결하면 슬슬 가게에는 손을 떼도 되겠다.”
“그게 제일 문제잖아.”
“……그렇긴 하지.”
다른 사람들이 피자를 만들어도 강진호와 비슷한 맛을 내게 해야 하는데, 그게 쉽지가 않았다. 고민에 빠진 강진호가 턱을 괼 때, 등 뒤에서 태연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뭘 그리 어렵게 생각해요?”
“음?”
탕비실에서 태연하게 걸어 나오는 최연하를 본 강진호가 눈을 꿈뻑거렸다.
저 여자가 왜 저기서 나오지?
의문에 대한 해답을 구하는 표정으로 바라보자, 박유민이 답도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안 바쁘신가 보더라. 요즘 자꾸 나오시네.”
“촬영 안 하세요?”
강진호의 물음에 최연하가 ‘너 잘 물었다’라는 기세로 강진호를 타박하기 시작했다.
“말 잘하셨어요. 안 그래도 그거 때문에 할 말 있는데, 시간 좀 내주실 수 있어요?”
“이제 가게를 열어야 해서…….”
“……이봐요, 강진호 씨.”
“네?”
“가게 매출을 올려준 게 누구예요?”
“정수연 씨죠.”
강진호의 말에 정수연의 고개가 조금 더 들어 올려졌다. 조금 더 올라가면 아예 천장이랑 수직이 될 기세였다.
“……그 정수연 씨를 고용하게 된 계기가 누구냐구요. 제가 말을 안 했으면 가능이나 한 일이에요?”
강진호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최연하의 한마디가 아니었다면 메뉴를 추가할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고, 그랬으면 정수연을 고용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내가 최소 가게 매출을 두 배는 올려준 것 같은데?”
“……인정합니다.”
“그 이전에 망해 자빠질 가게를 살려준 건 누구예요? 강진호 씨가 드라마에 출현하지 않았으면, 이 가게가 지금까지 살아남아 이만큼 성공했을까요?”
“…….”
물론 살아남기는 했을 것이다. 강진호는 이 가게에서 반드시 수익을 얻어야 하는 사람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드라마에 나오지 않았다면 지금 이 순간까지도 파리만 날리고 있었을 것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시간을 못 내주신다는 거예요? 와, 저는 강진호 씨가 이렇게 매정한 사람인 줄은…….”
“아뇨, 아뇨.”
강진호는 손을 내저었다.
은원이 확실한 것은 그의 장점이 아니던가. 최연하에게 은혜를 입은 이상 그것을 갚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시간 내겠습니다.”
“사장님, 이제 가게 열어야 하는데 시간을 내다니요.”
하지만 등 뒤에서 사정없는 백태클이 들어왔다.
정수연이 뚱한 얼굴로 말했다.
“어제도 안 나오셨는데, 오늘도 일 안 하신다구요? 사장님이 그냥 사장님이면 자리를 비우셔도 상관은 없지만, 사장님은 그냥 사장님이 아니라 조리장이시잖아요. 음식점은 맛이 가장 중요해요. 그냥 괜찮겠지 싶어서 며칠 자리를 비우다 보면 손님 끊기는 건 금방이라구요.”
“뭐 그렇게까지…….”
“어머? 요리하시는 분이 그런 말씀을 하시면 안 돼요. 사장님에게는 수많은 손님 중의 하나일지 몰라도 방문하시는 분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구요. 맛이 변했다 싶으면 굳이 다음에 다시 와서 맛이 돌아왔는가를 확인하지 않아요. 그냥 다음에 안 오고 말죠. 그렇게 끊기는 손님이 하나하나 쌓이다 보면 가게를 찾는 사람들이 줄어드는 거예요.”
열정을 담아 설명하는 정수연의 목소리를 듣자 이상하게도 식은땀이 났다.
강진호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자 최연하가 입을 열었다.
“뭐, 아주 데려가는 것도 아니고, 잠깐 할 말 있어서 자리 비우는 건데, 그런 것도 못하겠어요? 사장인데?”
강진호에게 말을 하고 있지만, 그 대상은 명백하게 정수연이었다. 하지만 정수연도 잠자코 듣고만 있지는 않았다.
“사장님은 자리 비우셔도 되죠. 하지만 조리장님은 자리를 비우시면 안 되죠.”
“원래 유명한 가게는 셰프가 자리 비우고 TV도 나가고 그러잖아요. 안 그래요?”
“그런 데는 셰프가 자리를 비워도 맛을 낼 수 있으니까 비우는 거구요. 우리는 사장님이 계시고 안 계시고에 따라서 맛이 달라지는데, 자리를 비우시면 안 되는 거죠.”
두 여자가 불꽃을 튕기며 설전을 벌이자 강진호의 몸이 점차 쪼그라들었다.
간절하게 구원의 눈길을 보내보았지만…… 박유민도, 주영기도 이런 상황에 끼어들기 싫다는 듯이 강진호의 시선을 외면했다.
‘나쁜 놈들.’
내가 너희를 얼마나 생각했는데, 너희가 이렇게 나를 버리다니!
배신감에 치가 떨려왔다.
‘미안하다, 진호야.’
‘우리도 살아야지.’
고통받는 친구가 안쓰럽기는 하지만, 저 혼돈 속에 몸을 던졌다가 무슨 꼴을 당할지 모른다. 어설프게 말을 보탰다가는 오히려 그들이 갈가리 찢겨 나갈 것이다.
그들은 강진호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보이지 못했지만, 다행스럽게도 슬퍼할 필요가 없었다.
“오라비!”
문이 벌컥 열리더니, 강은영이 안으로 들어왔다.
강진호는 반색하며 강은영을 맞았다. 지금 이 상황을 끝내줄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게 누구라도 좋았다.
전역 이후 이렇게 강은영이 반갑던 적이 있었던가.
강진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입구로 들어오는 강은영을 맞아갔다.
“어서 와라.”
강은영이 조금 묘한 눈으로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반응이 이상한데?”
“뭐가?”
“보통 내가 아는 오라비라면 ‘이럴 때 여기는 웬일이냐’라든가, 아니면 ‘촬영은 어쩌고 여기를 왔냐’는 말부터 했을 텐데, 이상하게 환영하는 기색이네?”
“…….”
강진호가 뭐라 대답을 하지 못하고 우물쭈물대자 강은영이 고개를 옆으로 쏙 빼고는 안쪽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이내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내가 동아줄을 내린 모양이니, 오늘 집에 올 때 메로나를 사 오시오.”
“……오냐.”
여하튼 눈치가 빠른 강은영이었다.
“그런데 무슨 일이야?”
“무슨 일이기는. 저번에 내가 한 말 잊었어?”
“응?”
“우리 매니저 한 번 만나 달라고 했잖아.”
“……그랬나?”
“모르는 척하지 마. 내가 오빠 기억력 잘 알거든. 일 년 전에 가져간 오백 원도 기억하는 사람이 그걸 기억 못할 리가 없어.”
예리한 기집애.
강진호가 뒤로 슬금슬금 물러나자 강은영이 바짝 달라붙어서는 그의 팔을 움켜잡았다.
“남자가 한입으로 두 말할 생각은 아니겠지?”
“나는 원래 두말하는 사람이야.”
“떨어진다! 그거!”
“……재수없게.”
이 세계로 와서는 딱히 사용한 적이 없기는 하지만, 남자라면 누구나 치를 떨 만한 발언이었다.
“그걸 이리 급하게 정하면 어쩌자는 거야?”
“급하기는 뭐가 급해? 애초에 오빠보다 우리 매니저 오빠가 더 바쁘니까 이쪽에서 정하는 게 맞지.”
“그럼요.”
기회를 잡았다는 듯이 최연하도 강은영을 거들기 시작했다.
“애초에 약속 잡을 시간 같은 게 있을 리가 없잖아요. 그런 시간이 있으면 매니저라고 할 수 없죠. 엄마 얼굴도 못 보는 게 톱스타 매니전데.”
“…….”
그런 것치고는 당신들 둘은 엄청 한가한 것 같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지금 그런 말을 꺼냈다가는 불에 기름을 붓는 것과 그리 다르지 않을 것이다.
“가자!”
“저도 같이 가요.”
양팔을 잡혀 질질 끌려 나가는 강진호가 처연한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지만, 그의 친구들은 해맑은 얼굴로 손을 흔들고 있을 뿐이었다.
“잘 다녀와.”
“……갔다 와서 보자, 너희 둘.”
“올 때 메로나.”
태연하게 손을 흔드는 박유민을 보며 강진호는 간만에 시큰해지는 눈가를 훔쳤다.
친구고 뭐고 인생은 원래 혼자 사는 법이다.
강진호가 빠져나간 후 썰렁해진 매장에서 주영기가 불만스레 입을 열었다.
“그런데 저리 보내줘도 되는 거냐? 매장은 어쩌고?”
“맞아요!”
정수연까지 불만을 토하자 박유민이 빙긋 웃으면서 말했다.
“슬슬 매장도 안정화가 되어가니 그만 잡고 있어야지. 할 일 많은 놈이잖아.”
“헐…….”
주영기가 눈을 부렸다.
“나는 할 일 없냐, 인마!”
“할 일 있어?”
“…….”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