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405
#404.
해결하다 (4)
“……끔찍한 하루였어.”
한진성은 전신이 노곤노곤해져 있었다.
아침부터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그다음부터 시작되었다.
‘내가 무슨 게슈타포도 아니고.’
김동민이 돌아간 이후로 반은 마치 국정원 요원이라도 강림한 것처럼 조용하기 짝이 없었다. 반에 걸려 있는 벽시계가 초침 소리를 낸다는 것을 처음으로 깨달을 수 있을 정도였다.
그도 그렇지만, 다른 아이들은 상황이 왜 이리 급격하게 변해가는지 도무지 이해를 못하는 눈치였다.
그것만이면 다행이게.
진짜 문제는 시간이 조금 흐른 다음에 일어났다.
밥을 먹기 위해서 식당으로 이동한 한진성은 그의 주변이 빠르게 채워지는 것을 깨달아야 했다. 처음에는 그러려니 했는데, 평소에는 그에게 말도 걸지 않던 이들이 별것 아닌 말을 물어오는 것에서 이상을 감지할 수밖에 없었다.
그게 시작이었다.
“정신이 하나도 없어.”
무슨 궁금한 게 그리 많은가.
그렇게 궁금한 것이 많은데 지금까지 대체 어떻게 참고 지냈다는 말인가.
이건 뭔…… 나라에서 호구조사하는 것도 아니고, 가만히 있었다가는 한진성이 입고 있는 팬티 색깔까지 물어볼 판이었다.
점심시간부터 지금까지 쉬는 시간만 되면 아이들에게 시달리던 한진성은 수업이 끝나자마자 가방을 집어 들고 도망치듯이 반을 빠져나왔다.
“……진짜 미치겠네.”
지금껏 한 번도 없던 일이라 도무지 적응할 수가 없었다.
물론 이해는 한다. 갑자기 김동민이 등장을 하지 않나, 어제 그와 함께 불려간 유다빈이 등교를 하지 않았으니 당연히 궁금하겠지. 하지만…….
한진성이 인상을 쓰는 찰나, 그의 귀에 날카로운 클랙슨 소리가 들려왔다.
빠앙!
고개를 들어보니 교문 앞에 대어진 스포츠카에서 강진호가 내리고 있었다.
‘제발! 제발 형!’
그 람보르기니 몰고 사람 데리러 오지 말란 말이에요. 애들이 지금 다 보잖아요!
“여기다!”
한진성은 그 순간, 저 사람을 모른 척하고 지나가는 것이 그의 인생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가를 계산하기 시작했다.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본 한진성이 한숨을 푸욱 내쉬더니, 강진호가 서 있는 스포츠카를 향해 터덜터덜 걸어가기 시작했다.
“……형.”
“응?”
“세상에는 요란함이라는 단어가 있어요.”
“응?”
강진호가 무슨 말이냐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보통 그 요란함이라는 말은 화려함에 또 화려함을 끼얹었을 때 하는 말이거든요.”
“그런데?”
“이 시커먼 색으로 도색을 해놔도 어디에서든 눈에 띄는 차에 빨간색을 끼얹는 게 요란함이라는 생각은 안 해보셨어요?”
강진호가 굳은 얼굴로 대답했다.
“적어도 색이라도 다른 걸로 타고 싶다고 말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요?”
“그러니까 그건 비겁한 타협이란다.”
“누가요?”
“조규민 실장님이.”
“……답도 없네, 진짜.”
한진성은 자신에게 꽂히는 수많은 시선들을 보면서 얼굴을 붉혔다.
지금 그를 보고 있는 이들은 그가 이런 차 옆에 서 있다는 것을 신기하게 여기는 것일까, 아니면 이 얼굴로 잘도 강진호 옆에 서 있는 용기에 감탄하는 것일까?
더 이상 자신의 얼굴이 무척추동물에 가까워 보이기 전에 한진성은 서둘러 차에 올랐다. 강진호가 차에 오르는 한진성을 보고는 피식 웃으면서 운전석에 타 문을 닫았다.
“출발한다.”
“예.”
강진호가 가만히 액셀을 밟았다.
부아아아아아앙!
하지만 엔진은 결코 액셀을 밟는 강진호의 발처럼 조심스럽지 않았다. 온 동네에 ‘우리 지금 출발합니다’를 알려야 한다는 듯이 있는 힘껏 굉음을 뿜어낸 엔진이 바퀴를 돌리기 시작했다.
한진성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아, 쪽팔리기도 하고, 나름 으쓱하기도 하고, 그리고 민망하기도 한 이 감정을 대체 뭐라고 표현해야 하지?’
들어줄 사람이 없으니 굳이 표현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차가 학교 주변을 벗어나자 그제야 한숨 돌린 한진성이 입을 열었다.
“왜 데리러 오셨어요?”
“데리러 가라던데?”
“누가요?”
“조 실장님이.”
그 사람이 모든 원흉이다.
한진성은 직감했다. 그동안 자신의 주변을 촘촘하다시피 옭아맨 그물들은 결코 강진호나 박유민이 생각해 낼 수 있는 것들이 아니었다.
‘우리 형들은 좋게 말하면 순진하고, 나쁘게 말하면 단순무식하단 말이다.’
문제가 있으면 쳐들어가서 뒤집어엎을 사람들은 돼도, 이런 식으로 해결할 깜냥은 없는 이들이었다. 강진호가 말하는 저 조 실장이라는 사람이 아마 이 모든 일을 기획한 사람일 것이다.
‘그리고 그게 사실이라면 엄청 무서운 사람이겠네.’
강진호 주변에서 이용할 수 있는 것을 확실하게 파악하고, 활용할 수 있는 것들을 모두 활용하여 상황을 여기까지 끌고 왔다는 것만으로도 그 조규민이라는 사람은 대단한 사람일 수밖에 없다. 그 결과는 지금 한진성이 몸으로 겪고 있지 않은가.
“조금 나아졌어?”
“…….”
한진성이 대답을 하지 않자 강진호가 말을 이었다.
“표정이 그리 좋아 보이지는 않아서 말이야.”
“음…….”
한진성이 조금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좋아졌어, 형.”
“그래?”
“응. 좀 과할 정도로 좋아졌어. 좀 부담스럽기도 하고, 귀찮기도 한데, 매일이 이렇기만 하다면 학교 다닐 맛이 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좋아졌어.”
“그런데?”
아직 한진성이 정말 하고 싶은 말은 나오지 않았다는 것을 파악한 강진호가 가만히 다음에 이어질 말을 기다렸다.
“그런데 형.”
“그래.”
“솔직히 기분이 그리 좋지는 않아. 이게 뭐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는데, 내 상황이 나아지고 있는 반면에 속에는 무슨 돌 하나가 들어앉은 것처럼 무겁고 불편해.”
“왜?”
“……잘 모르겠어.”
강진호는 한진성을 재촉하지 않았다.
“네 기분이 나쁜 이유를 다른 사람들이 알아줄 수는 없지. 그 이유를 찾아내야 하는 것은 너니까.”
한진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말을 그리 잘하는 편이 아니라 설명이 조금 조악해질 수 있는데…….”
“그래, 느긋하게 말해봐.”
한진성은 고민하는 표정으로 전방을 바라보고 있다가 가만히 입을 열었다.
“뭐가 그리 다른 걸까?”
“다르다니.”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
“…….”
한진성이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나는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거든. 평소 고아라고 무시당하던 나와 오늘 애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은 나는 똑같은 사람이란 말이야. 그런데 뭐가 달라졌기에 이렇게 취급이 달라지는 걸까?”
강진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싫다는 건 아냐. 싫다는 건 아닌데, 뭔가 좀 회의가 들어. 결국 지금 나한테 친한 척을 하는 애들은 내가 아니라 내 주변을 보고 나를 다시 봤다는 거잖아. 그게 아니면 나한테서 뭔가 떨어질 게 있다고 생각을 했든가.”
“그렇겠지.”
“진짜 내가 아니라 내 주변의 뭔가를 보고 다가오는 애들을 보고 기뻐해야 하는 건가? 그런 애들은…… 그냥 내게 뭔가 다른 게 사라지면 원래대로 돌아가거나 다시 내게서 관심을 끊을 애들이잖아.”
강진호는 대답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진성은 앞을 바라보는 자세 그대로 빠르게 속삭이듯이 말했다.
“그래서 그냥 그래, 형. 내가 최연하 씨를 안다는 게, 형의 동생이라는 게, 주먹 잘 쓰는 사람을 안다는 게…… 그게 그리 중요한 거였을까? 쟤들에게는? 지금까지의 태도를 완전히 바꿔야 할 만큼?”
한진성의 목소리는 살짝 떨리고 있었다.
억울하다.
그래. 이 감정은 억울함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동안 그를 그토록이나 괴롭혀 오던 모멸적인 시선과 은근한 괴롭힘이 이리 간단히 해결될 수 있었다는 게, 이 별것 아닌 소동만으로도 시선이 이리도 달라질 수 있다는 게…….
그게 너무 억울하고 화가 나서 몸이 떨린다.
강진호는 가만히 한진성의 말을 듣고 있다가 입을 열었다.
“너는 달라진 게 없는데 말이야.”
“그러니까.”
“예전의 너와 같은데.”
“……응.”
강진호가 피식 웃었다.
“그게 아닌 거야.”
“응?”
강진호의 얼굴은 조금 냉정했다.
“사람이 겉모습과 그 사람의 주변 관계, 그리고 경제력 등을 보지 않고 그 사람의 내면과 인품을 보고 친해질 수 있다면 이상적인 거겠지.”
“그러니까 내 말이…….”
“그래서 너는 네 반에 있는 친구들의 인품을 다 파악하고 있어?”
“…….”
한진성은 순간 말문이 막히는 것을 느꼈다.
“네가 반에 있는 다른 아이들에게 주는 것만큼의 관심을 다른 아이들이 네게 주었다면 그 아이들은 네 성격이나 속마음을 제대로 알고 평가할 수 있을까?”
한진성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겠지.
그럴 수는 없겠지.
“진성아.”
“응, 형.”
“세상을 살다 보면 이상과 현실의 차이를 알게 돼. 그걸 충분히 알게 되면 어른이 되는 거야. 네가 말하는 것은 그냥 이상적인 이야기일 뿐이지. 하지만 사람이라는 건 다른 사람의 내면을 볼 수 없어. 그저 짐작할 뿐이지.”
강진호가 씁쓸하게 말했다.
“서로의 마음을 볼 수 없는데 어떻게 서로의 마음을 알겠어. 그러니 보는 거야. 말투, 태도, 옷차림, 표정.”
강진호가 액셀을 밟은 발에 조금 더 힘을 주었다.
“네가 말하는 속마음과 인품이라는 것도 결국 어떤 말이나 대화, 그리고 사건에 대처하는 태도를 통해서 짐작하는 것뿐이지, 그 사람이 정말 어떤 마음을 품고 있는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잖아.”
“그렇겠지.”
“그러니 사람은 스스로를 꾸미는 거야. 주변을 꾸미고, 자신을 꾸며 ‘내가 어떤 사람이다’를 드러내는 거지.”
“으응…….”
강진호가 어깨를 으쓱했다.
“우리가 이번에 한 일은 그 녀석들에게 알려준 것뿐이야. 실제로 ‘나는 이런 사람이니까, 지금까지 너희가 이쪽을 잘못 보고 있었던 거니까, 어서 제대로 다시 평가하고 태도 고치는 게 좋을 거야’ 하고 말이야.”
한진성이 낮게 한숨을 쉬었다.
“씁쓸한 이야기네.”
“그렇지.”
강진호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사회에 나가면 알게 될 거야. 사회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나를 치장하는 일이야. 웃는 낯의 가면을 쓰고 자신의 감정을 속이게 되지. 때로는 그게 더 자연스러운 것처럼 느껴지기도 해. 그런 나날들이 오래되다 보면…… 알 수 없게 되는 거야. 지금 웃고 있는 게 정말 내가 꾸며낸 모습인지, 아니면 정말 나의 모습인지.”
“너무 오래 그 모습으로 지냈으니까?”
“음.”
강진호는 씁쓸하게 말했다.
“서로의 마음을 노력 없이 알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어. 하지만 그게 쉽지 않은 거다. 그러니 이런 일을 벌여야 하는 거고. 사실은 네 말이 맞아. 이런 일 없이도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다면 좋았겠지. 하지만 형은 다른 방식으로도 이 일을 해결할 만큼 능력이 좋지가 못하네. 네가 좀 이해해라.”
“아니야, 형.”
“그래.”
한진성은 말없이 운전을 하는 강진호의 옆얼굴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이 형은 한 번씩 보면 참 멍청하다니까.’
서로의 마음을 알 수 없다니.
그럴 리가 있나.
이렇게 옆에 타고 있는 것만으로도 알 수 있는데. 자기 일도 아닌데도 사색이 되어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모습만 봐도 알 수 있는데 말이다.
‘참…….’
멍청한 형이다.
참 멍청한.
한진성은 고개를 돌려 쏟아지는 햇살을 바라보았다. 창을 통해 보조석을 비추는 따뜻한 햇살을 느끼며 한진성은 말없이 눈가를 훔쳤다.
“겨울이…… 끝나가는 것 같아.”
“뭔 소리야, 여름인데. 정신 안 차릴래?”
“…….”
멍청한 형이다.
진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