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787
#786.
창안하다 (1)
“……웬일이십니까?”
방진훈의 꼬락서니를 본 강진호의 볼이 파르르 떨렸다.
“뭐 하는 거야?”
“보면 아셔야죠. 연구하고 있잖습니까.”
아니, 연구를 하는 건 알겠는데…….
“이건 다 뭔데?”
“보시다시피 비급들입니다.”
“어, 음…….”
방 안에 낡은 고서들이 널려 있었다. 책에서 풍겨 나오는 먼지 냄새와 먹 내음이 사람의 코를 찌른다.
“죽간?”
“뭔 골동품이라도 되는지, 있는 그대로 보존하던 사람들도 많더군요. 좀 옮겨 써서 보내주면 나을 텐데. 쯧.”
대나무에 활자를 기록한 죽간까지 보인다. 이쯤되면 거의 박물관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지경이었다.
“그래서 지금 이것들을 보고 있다고?”
“예. 워드에 옮겨볼까 했는데, 이게 참 뭐랄까…… 쉽지가 않더군요.”
“왜?”
방진훈이 가만히 강진호를 보다가 물었다.
“회주님.”
“응?”
“중국어 잘하시죠?”
“어느 정도는.”
“그럼 중국어로 타자 칠 수 있으십니까?”
“…….”
못하지.
그런 건 못하지. 그건 중국인이나 하는 거지.
“한 자, 한 자 쳐서 한문으로 변환하다 보니, 내가 지금 이게 새 무학을 창안하는 건지, 아니면 번역 노가다를 뛰는 건지 현자 타임이 와서 말입니다. 차라리 그냥 눈으로만 보기로 했습니다. 컴퓨터로 옮긴다고 뭐가 다를 것 같지도 않고.”
물론 강진호도 방진훈의 입장을 이해했다. 그가 같은 작업을 했다 한들 다를 게 없었을 것이다.
문제는 그런게 아니었다.
“……그럼 복장은 왜 그런데?”
강진호의 시선은 방진훈의 옷에 고정되어 있었다. 평소와 다르게 방진훈은 한복을 차려입고 있었다. 문제는 방진훈의 풍채가 워낙 좋고 인상도 험악한 편이다 보니, 무슨 산적 같은 느낌이 난다는 것이다.
“이상하게 복장을 갖춰야 할 것 같은 강박관념이 들어서…….”
“…….”
강진호는 아연한 얼굴로 고개를 내저었다.
‘이 양반도 멀쩡한 사람은 아니야.’
강진호의 주변에 이상한 사람이 모이는 건지, 아니면 강진호가 이상한 사람만 골라 모으는 건지 모르겠다.
따져 뭐 하겠는가, 결과야 같은데.
제대로 참여하기 전에 상황이 어찌 돌아가는지 파악해 보겠다고 들른 것뿐인데, 이곳의 상황만 봐도 뭐가 제대로 돌아가는 것 같지는 않았다.
“잘되어가나?”
“……죽겠습니다.”
방진훈이 머리를 움켜잡았다. 나름 고뇌하는 자세였겠지만, 사냥감을 놓친 산도적 같아 보인다.
“이게 만들어야 하는 거라 만들고는 있는데, 뭐가 잘 안 됩니다. 너무 쉽게 생각한 것 같습니다.”
그렇겠지.
무학을 창안한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그게 쉬웠으면 개나 소나 제 무학을 만들어 쓰지, 미쳤다고 사부한테 얻어맞고 사문에 갈취당하면서 무학을 배우려고 하겠는가.
심지어는 사문의 무학에 통달한 이들도 제 사문의 수준을 능가하는 무학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소림이 천 년의 역사를 이어갔다지만, 그 천 년 동안 ‘내가 그 달마 대사보다 뛰어난 무공을 창안했소’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실제로 역근경 이상의 무학이 나오지 않은 것도 사실이고.
“그런데 왜 오셨습니까?”
“도와주려고.”
“……예?”
“도와주려고.”
방진훈이 세상 허무하다는 얼굴로 강진호를 위아래로 훑었다.
‘눈으로 말하지 마라.’
방진훈은 그 눈빛만으로 ‘이 인간이 뭘 잘못 처먹었나? 지금 뭔 소리를 씨부리는 거지?’라는 뜻을 전하고 있었다.
“회주님.”
“음…….”
“의도는 무척이나 감사합니다. 안 그래도 머리가 빠개질 지경이었는데, 도와주신다니까 힘이 좀 납니다. 다만, 이건 회주님께서 도와주실 수 있는 부분이 아닙니다.”
방진훈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회주님이 추구하는 무학과 제가 추구하는…… 아니, 총회가 추구하는 무학은 다릅니다. 물론 회주님의 무학을 부정하는 건 아닙니다. 단지 방향이 다르다는 거지요. 애초에 제가 회주님의 힘을 빌릴 생각이었다면 그냥 적당한 마공 하나 내달라고 했을 겁니다. 하지만 이건 마공이어서는 안 됩니다. 총회의 무학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말씀은 감사하지만, 이건 저 혼자 해야 할 일입니다.”
강진호가 태연하게 대답했다.
“마공으로 만들 거 아닌데?”
“…….”
방진훈의 눈이 다시 멍해졌다.
“마인이신데?”
“그렇지.”
“그런데 정공을 만들겠다?”
“그렇지.”
씰룩.
방진훈의 눈가가 연신 씰룩인다.
“이게 무슨 파티쉐가 된장 담그는 소립니까! 전문 분야가 다른데!”
“만류귀종(萬流歸宗)이지.”
“…….”
“그리고 내가 마공만 익힌 건 아냐. 오히려 베이스가 되는 무학은 한없이 정공에 가깝지.”
“진짭니까?”
“거짓말을 할 이유가 있나?”
“믿기기 힘들어서 그럽니다. 뭐랄까, 제빵 기능사 자격증으로 요리 시작한 사람이 미슐렝 쓰리 스타 한식집 주방을 꿰차고 들어갔다는 말 같아서…….”
이 사람, 먹는 걸 좋아하는구나.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
“아니, 뭐, 그게 말이 안 되는 거 같기는 한데, 말이 또 되는 것 같기도 하고……. 눈앞에 그런 사람이 있다는데 아니라고 말하기도 뭐하고…….”
방진훈이 혼란스러운지 혼자 한참을 중얼거렸다. 강진호는 가만히 방진훈이 생각을 정리하기를 기다렸다.
“그래도 되겠습니까?”
그러나 확실한 결론은 내리지 못한 듯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있지.”
“뭡니까?”
“혼자서는 못해.”
방진훈이 입술을 꾹 다물었다.
그도 지금쯤이면 알고 있을 것이다. 이 일은 방진훈의 능력을 벗어났다. 노력과 근성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노력과 근성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일이 있다. 이 일은 명백히 후자에 속하는 일이다.
“자부심을 가지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방진훈의 눈이 진지해졌다.
“휩쓸리니까요.”
방진훈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 것 같았다.
“처음 이중걸 전 회주와 대립하며 회주님을 만났을 때는 일이 여기까지 커질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결국 이렇게 되어버렸습니다. 더 강해져야 하고, 더 노력해야 한다는 것 압니다. 하지만 그 강해지는 방향이 지금까지와는 다른 것을 받아들이는 것밖에 없다면…… 너무 서글프지 않습니까.”
강진호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집단에 소속감을 가지는 타입이 아니다. 하지만 세상에는 그런 종류의 사람도 많았다. 만약 이 일이 벌어지는 대상이 총회가 아니라 강진호의 가족이나 친구들이라면 강진호 역시 담담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제가 뭐, 바토르 님이나 위긴스 님에게 불만이 있다는 건 아닙니다. 회주님이 애들에게 마공을 가르치는 것도 별로 불만 없습니다. 그건 분명 좋은 기회이고, 총회의 입장에서도 환영할 만한 일이지요. 하지만…… 그게 전부인 건 좀 떨떠름합니다.”
방진훈이 고개를 들어 강진호를 똑바로 보았다.
“그래서 애들에게 주고 싶었습니다. 굳이 마공을 익히지 않아도, 해외의 무학을 받아들이지 않아도 강해질 수 있는 방법을요. 제가 너무 나이브하게 생각한 겁니까?”
“아니.”
강진호가 고개를 저었다.
“훌륭하다. 당연히 해야 할 생각이지.”
총회에 대한 애정으로 따지자면, 강진호나 이현수들은 감히 방진훈 앞에서 입을 열 수 없다. 총회를 가장 아끼는 이가 하는 말이다. 그 방향이 어쨌든 인정해야 할 말이었다.
“회주님이 도와주시면 할 수 있습니까?”
“…….”
“다른 무학이 아닌, 총회만의 특색이 확연한 우리만의 무학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까?”
강진호가 가만히 방진훈을 보았다.
다들 같다.
바토르는 마공을 익혀서라도 강해지려 하고, 위긴스는 의수를 바탕으로 한 새로운 전투법을 고려하고 있었다. 그리고 방진훈 역시 더 강해질 수 있는 방법을 필사적으로 찾고 있다.
느슨해 보이지만, 그 누구도 느슨하지 않았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노력하고 또 노력해 강해지는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는 것이다.
“확신할 수는 없는 일이지.”
“……그렇습니까?”
“하지만 적어도 지금보다는 나은 수준까지는 확실하게 도달할 수 있다.”
“어정쩡하네요.”
“다 그런 거지.”
방진훈이 피식 웃었다.
“그게 어딥니까.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채우면 되는 거죠.”
“…….”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는 거죠.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나아지다 보면 어느 순간 돌아봤을 때, 멀리 가 있는 게 사람 아닙니까. 모자란 부분이 있다면 제가 노력해서 채우겠습니다. 그러니 도와주십시오, 회주님.”
강진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회주님?”
다른 생각을 하는 게 아니다. 방진훈의 말에 불만이 있는 것도 아니다. 강진호의 시선은 방진훈을 조금 넘어선 어딘가에 고정되어 있고, 그의 눈은 방진훈이 아닌 무언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방진훈이 입을 꾹 닫았다.
그러고는 전신을 팽팽하게 긴장시키고 공기의 흔들림마저 조심하며 뒤로 슬그머니 물러났다.
‘여기서 깨달음이 온다고?’
어이가 없다.
짙투도 난다.
하지만 감탄이 먼저였다.
이 한계 없이 돌진하는 것 같은 사내에게도 벽은 있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 이 사내는 그 벽을 뛰어넘고 있었다. 결코 이 순간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
방진훈이 기운을 끌어 올려 주변을 탐색했다. 접근하는 이가 없다는 것을 확인한 방진훈이 방으로 들어서는 문 앞에 섰다. 누구도 들어올 수 없게 말이다.
한참이나 멍하니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던 강진호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채우면 된다.”
방진훈은 그 광경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조금씩 나아가다 보면 언젠가는 원하는 곳에 도달해 있다.”
강진호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되찾는 게 아냐. 나아가는 거지.’
그는 영원히 적천마존을 능가할 수 없다.
적천마존의 무학은 완성되었다. 적천마존의 발자취를 쫓다 보면 결국 그가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는 과거 적천마존이 오른 곳, 그곳에 불과하다.
그것만으로도 대단하고 굉장하다.
하지만…….
‘뒤쫓는 게 아니라 나아가는 것이다.’
일천 년간 소림에서는 역근경을 능가하는 무학이 나오지 않았다. 다른 문파들이 새로운 무학을 만들어내고 천하를 위진할 때, 평균 수준이 가장 높은 소림만은 끝내 달마를 능가하지 못했다.
왜일까?
‘뒤쫓았으니까.’
그 거대한 그림자를.
새로운 길로는 결코 앞지를 수 없다고 생각하고, 선대가 닦아놓은 길을 그저 따르기만 했으니까.
강진호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스스로가 적천마존과는 다르다고 생각하면서도 무학에 있어서 그와 달라야 한다고는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에게 있어 무학의 끝은 적천마존이었고, 그의 무위를 되찾는 것만이 무학적 목표였다.
‘비웃을 만도 하군.’
적천이 어째서 강진호는 결코 강진호일 수 없다고 했는지 이해할 것 같았다. 그리고 인정한다. 그의 말이 맞다. 그가 적천에게서 벗어나 강진호이기 위해서는 그와는 다른 길을 가야 한다.
조금 더 험난할지는 모르겠지만, 조금 더 높이 오를 수 있는 길을.
“회주님?”
의문 가득한 목소리로 묻는 방진훈을 돌아보며 강진호가 환히 웃었다.
“생각보다 오래 걸릴지는 모르겠지만…….”
“……예?”
“생각보다 굉장한 게 나올지도 모르겠어.”
“…….”
방진훈은 도무지 영문을 몰라 고개를 갸웃했다.
‘새로운 길, 새로운 무학, 새로운 삶.’
나아간다.
그게 비록 더딘 발걸음이더라도.
나아가고 또 나아가다 보면…….
언젠가는 도달해 있을 것이다.
그가 강진호로서 당당할 수 있는 그 어딘가에.
언젠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