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king a world on your own with an infinite capital RAW novel - Chapter 223
3화 협박이 뭔지 알아요?
“우와악!”
“그만, 미리내 놀라잖아!”
“오! 필승 코리아! 오! 필승 코리아, 오! 필승 코리아! 오, 오, 레오레!”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세계 정복이라도 한 줄 알겠네. 에이고, 쯧!”
결과를 알면서도 짜릿하다.
온몸이 펄펄 끓는 듯 달아올랐다.
그럼! 남자는 힘 그리고 축구지.
2002 월드컵 16강에서 연장까지 가는 접전 끝에 안정환의 골든골이 터지는 순간, 시혁은 엠파이어 빌딩이 흔들릴 정도로 고함을 질렀다.
이건 못 참는다.
짝짝, 짝짝짝, 짝짜짝, 짝짝-
“대~ 한민국!”
대학들도 월드컵 시합이 있는 날은 조기 종강을 하는 판이다. 덕분에 02학번들의 여름 방학이 앞당겨졌다.
88올림픽이 대한민국의 존재를 세계에 각인시키는 효과를 거뒀다면, 2020 월드컵은 전 국민을 하나로 뭉치게 만들었다.
서울시청 광장과 광화문 일대를 가득 채운 붉은 물결.
‘붉은 악마’라는 새로운 응원단이 전국을 떨쳐 울렸다. 이미 승패는 문제가 아니었다. 항상 본선 무대에서 첫 승조차 올리지 못했던 변방의 대한민국 축구가 예상을 뒤엎고 16강에 올랐다는 것만으로 국뽕이 가득 차올랐던 것이다.
이게 스포츠의 진정한 힘이다. 모두를 한마음으로 묶을 수 있게 하는 것.
우리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 주는 것.
8강전에서는 이운재 골키퍼의 눈부신 선방으로 스페인까지 찟어 버렸다.
설마… 했던 바람이 현실이 된 것이다.
4강 신화가 이뤄졌다.
광장은 바늘 하나 꼽을 곳이 없을 정도로 붉은 악마의 응원 인파가 미어 터졌다.
하지만 시혁은 4강전을 볼 수 없었다.
“이렇게 불쑥 찾아와서 미안합니다.”
말은 미안하다고 하지만, 전혀 그런 표정이 아니다.
“놀랐습니다, 이한창 원장님.”
“아, 감사원장을 그만둔 지 제법 되었습니다.”
“그럼 뭐라고 불러 드릴까요?”
“…지금은 한누리당 총재를 맡고 있습니다.”
맞다.
한국대학교 법대를 졸업하고 법관으로 시작해서 명판결을 수없이 남겼던 사람.
워낙 고집스럽게 법과 원칙을 강조했던 ‘대쪽 판사’.
대법관을 지냈고, 중앙선거관리위원장, 감사원장, 국회의원, 국무총리를 거쳐 지금은 한누리당의 총재로 재임 중이다.
대통령 빼고는 대한민국에서 누릴 수 있는 모든 자리를 다 해 본 사람이 이한창이었다.
왜 예고도 없이 시혁을 찾아왔는지 뻔하다. 그래도 고국에서 이 정도 인물이 찾아와 잠시 보자는데 거절하기 힘들었다.
다만, 만나는 장소가 일 층 로비의 한쪽에 있는 카페였다는 게 시혁의 소소한 복수가 아닐까 싶다.
“멋진 곳이군요. 소문으로 듣던 102층이 아닌 게 조금 그렇습니다만…….”
“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모시겠습니다. 지금은 그렇군요. 집도 아이 때문에 어수선하고.”
“허허허, 자그마치 천 평에 이르는 집이 다 아이를 위한 놀이터도 아닐 텐데.”
어쭈! 도발을?
예고도 없이 찾아온 자신의 결례에 대해서 미안한 기색이라곤 개똥만큼도 없다.
이런 사람의 특징이다.
평생을 서민으로 살아 본 적이 없다. 원하는 모든 것을 가졌다. 구름 위에서 세상을 내려다보고 살아왔다. 산책하는 것을 제외하면 땅을 밟아 본 적이 없는 초엘리트의 전형.
당연히 특별 대접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무슨 일로 이 먼 길을 오셨습니까?”
“모르셨습니까?”
“네, 모르겠군요.”
“우리 당에서 공식 면담 요청을 아마 열 번 이상 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실제로 몰랐다.
그런 요청은 하루에도 수백 건이 들어온다. 최소한 각국 정상이거나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치는 기업의 회장들이다. 모두 비서실 차원에서 걸러진다. 그렇다고 항의하는 곳은 단 하나도 없었다.
이를 다 만나려면 시혁은 백 명이 있어도 모자란다.
“총재님, 로비를 한번 보시겠습니까?”
“……?”
“저기 로비에는 대충 봐도 각국 대사급 인물이 몇 명 있습니다. 아! 저분은 골드만 삭스, 아시죠? 거기 부회장입니다. 또 대기용 소파에 앉아 기다리는 안경 낀 저분… 스페인의 외교부 장관입니다.”
“……!”
“저분들도 자신이 면담하기 위해 온 것이 아닙니다. 그 위의 정상과 미팅을 주선하려고 하겠죠.”
“…….”
“하루에도 몇백 건의 면담 요청서가 들어옵니다. 대부분 여기로 대리인이 방문해서 접수를 하는 편이죠.”
“…….”
“그런데 한누리당에서 면담 요청서만 달랑 보내면 어떻게 될까요? 저는 몸이 하나밖에 없거든요.”
“흐음, 커험!”
“제가 102층에서 여기 로비로 잠시 내려오는 데도 300명 정도의 비서실과 보안실 요원들이 움직입니다. 제가 여기 있다는 것을 로비에 있는 분들이 모를까요? 알지만 직접 다가와 면담 요청을 하는 분이 없네요? 다들 예의를 알기 때문입니다.”
말이 없다. 기가 찬 것이다.
직접 눈으로 보니 무어라 반박을 못 하겠다. 여기서 ‘내가 누군지 알아?’를 시전했다간 바로 쫓겨날 판이다.
“험, 험. 진심으로 유감을 표합니다, 김 회장님.”
“네, 사과는 받겠습니다. 그래도 고국에서 오신 손님인데 차 한잔 대접하는 건 가능합니다, 총재님.”
선을 확실히 그었다.
대한민국의 제1당 총재가 직접 찾아왔으니 만나는 주지만, 딱 거기까지… 그러나 사과를 받아들일 테니 선을 넘지 말라는 뜻이다.
“대단한 위용입니다. 우리 한민족 역사에 김 회장 같은 분이 나올 줄 몰랐습니다. 제 어깨가 저절로 으쓱해집니다.”
“네.”
칭찬을 해 주는 데도 ‘네’라는 대답 한마디.
빨리 본론으로 들어가시죠… 이거다.
“험, 험, 곧 조국에서 큰 선거가 치러집니다.”
“네.”
“미욱한 내가 한누리당의 대선 후보로 나설 예정입니다.”
“네, 그러시군요.”
“…….”
뻘쭘하다.
이 정도 말했으면 눈치채지 못했을 리 없는데, 여전히 짧은 대답만 돌아온다.
하지만 이미 꺼낸 칼. 무라도 썰어 볼 생각으로 대시하는 이한창 총재.
“짐작하고 있겠지만 좀 도와주구려. 내 잊지 않으리다.”
“제가 무슨 힘이 되겠습니까? 저는 정치인이 아닙니다.”
“김시혁 회장은 세계적인 거물 아니오? 거기다 한국인들 입장에서 보자면 구국의 영웅이요. 그 살 떨리는 IMF를 조기에 막은 걸 전 국민이 다 압니다.”
“네. 그렇게 볼 수도 있겠습니다.”
“거기다 김 회장이 설립한 K 미르 희망 재단의 영향력은 서민과 기업들에게 절대적입니다.”
“네. 그렇군요.”
“…….”
틀렸다. 이한창은 이 자리가 너무 어려웠다.
잘못 판단한 것이다.
“총재님.”
“예?”
“저는 불가근불가원 원칙을 버릴 생각이 없습니다. 정치에 개입하고 싶지 않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김 회장, 대한민국의 미래를 결정하는 중요한 순간이오. 당신도 한국인아닙니까?”
‘하아… 요즘 이상하게 선을 밟다 못해 넘는 사람이 왜 이렇게 많지?’
참으려고 무진 노력을 해 왔던 시혁이 터져 버렸다.
“이한창 총재님, 거기까지 하세요. 한 발이라도 더 넘어오면… 그때는 각오하셔야 합니다.”
“뭐? 나한테 협박하는 거요? 도움을 주지는 못할망정, 그 무슨 소리야?”
이한창도 다혈질에 외고집. 바로 거친 반응을 보이고.
그래,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라 했는데…….
“이게 협박으로 들려요?”
“뭐?”
“협박이 뭔지나 아셔? ‘겁을 주면서 하기 싫은 일을 하도록 강요하는 행위’ 이게 협박이죠. 그런데 내가 당신에게 하기 싫은 일을 하라고 했습니까?”
“…….”
“대법관까지 지낸 분이 그것도 몰라요?”
“으으음.”
“경고하는 겁니다, 선을 더 넘지 말라고.”
“…….”
“사자를 잡아야 성인 취급을 받는 마사이족이 있습니다. 다섯 명이 도전하면 세 명 꼴로 죽는다네요. 사자는 사람이나 비비 같은 작은 짐승, 귀찮아서 잡지 않는데 말입니다.”
“…….”
“저는 총재께서 대통령이 되시건 말건 관심 없습니다. 아! 당선되면 축하 난은 보내 드리죠. 그러나 저를 아사리판으로 끌어들일 생각, 이 순간 버리세요. 그게 정신 건강에 이롭습니다.”
모욕적인 말을 들었지만, 왠지 편안한 표정의 이한창.
여론은 거의 이한창이 다음 대통령이라고 호들갑을 떨고 있었다. 김다중 대통령의 뒤를 이을 뚜렷한 거물이 없기 때문이었다.
이변이 없다면 이한창으로 굳어지는 분위기. 아직 그에게 맞짱 뜰 정도의 스타가 탄생하지 않았다.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 출마하려면, 선거일을 기준으로 현재 5년 이상 국내에 거주해야 하고, 만 40세를 넘긴 국민이라야 한다. 다만, 국내에 주소를 두고 외국에 체류하는 경우는 국내 거주로 여긴다.
시혁도 법적으로는 대통령에 출마할 수 있다는 말이다. 실상 이한창은 김시혁이 출마할까 봐 걱정하지는 않았다.
이미 급이 다르다.
솔직이 유엔 사무총장도 맘만 먹으면 당장 할 수 있는 사람이다. 안 할 뿐이다.
그러나 가장 무서운 변수가 아직 남아 있었던 것이다.
그게 뉴욕까지 날아온 진짜 이유였다.
그럴 리 없지만, 절대 그래서도 안 되지만, 시혁이 다른 후보를 지지하면… 그 순간 판이 바뀌니까.
어리버리한 초선 국회의원이라도 김시혁이 지지를 표명하는 순간, 바로 스타 플레이어로 등극할 것이다. 이한창에게 그건 재앙과 같은 시나리오였다.
김시혁이 이룬 국난 극복의 영웅이라는 이미지에, 사회 곳곳에 스며든 엄청난 자본의 희망 재단, 여기에서 자유로울 사람이 얼마나 될까?
모르긴 몰라도 몰표가 쏟아질 것이다. 김시혁과 같이 사진이라도 찍고, 공식적인 지지 성명 하나만 받으면 바로 그 사람이 다음 대 대통령 당선증을 받는 것이다.
“알겠소, 김시혁 회장. 그럼 국내 정치와는 전혀 무관한 것으로 생각해도 되겠소?”
“저는 지금까지 어떤 정치인에게 단돈 1원도 후원한 적이 없어요. 대답이 되셨길 바랍니다.”
“믿겠소. 김 회장의 지지를 얻어 내지는 못했지만, 다른 사람도 지지하지 않겠다는 말, 꼭 지켜 주길 바라오.”
“약속하죠, 제 이름을 걸고.”
아저씨… 저는 알거든요.
당신은 결코 대통령이 되지 못합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치명적인 약점, 자식의 군면제… 이건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역린입니다. 당신은 그 허들을 끝내 넘지 못하고 낙마합니다.
전에는 김다중에게, 이번에는…….
하여튼 시원하다. 진짜 한국의 정치판에 조금이라도 발을 들여놓고 싶은 생각, 1도 없었으니까.
시혁은 고개를 돌려 버렸다.
무너진 월드 트레이드 센터 쌍둥이 빌딩 자리에서 하늘을 향해 레이저 빔을 쏘는 장면이 보였다.
* * *
“가능하겠나?”
“네, 칼리프. 수백 번 도상 훈련을 했습니다.”
“그놈, 살 떨리도록 무서운 존재야.”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놈의 약점을 낱낱이 분석한 겁니다.”
“걸려 들까?”
“네, 백 퍼센트 먹힐 것입니다.”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의 경계 지역. 아보타바드에 있는 대저택.
5미터가 넘는 높은 담장으로 둘러싸인 저택은 전화선도 인터넷 선도 없었다. 특이한 일이다.
그곳 깊숙한 골방에서 마주한 두 사람의 대화는 점점 깊어지고 있었다.
“목표물의 경호 상태는?”
“만만치 않습니다. 신분도 그렇지만, 그녀의 약혼자가 보통이 넘습니다.”
“전사인가?”
“네, 데브그루 팀장 출신으로 이미 전설이라 불리는 놈입니다.”
“항상 같이 붙어 있겠군.”
“네, 24시간 떨어지지 않습니다.”
“방법은?”
“칼리프, 동양의 책략 중에 ‘성동격서’라는 게 있습니다. 동쪽을 흔들어 시선을 끌어 놓고 실제는 서쪽을 친다는 것이죠.”
“좀 자세히.”
“네, 독일에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산드라 총재가 영국으로 무조건 가야 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다음 달에 할아버지 몽고메리 장군의 탄생 100주년 기념식이 열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영국은 적이 많습니다. 특히 IRA(아일랜드 공화국 독립을 위한 저항 단체)가 대표적입니다. 작년에 영국과 극적인 휴전협정을 맺으면서 무장해제를 했습니다만, 여전히 일부 과격파들은 음지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호오! 재미있군.”
“그들과 연계할 생각입니다. 그들이 동쪽을 공격해 주면 우리는 산드라를 잡을 기회를 얻게 됩니다.”
“음…….”
“산드라는 마이다스 킴의 초창기 보드 멤버입니다. 지금도 유럽 중앙은행 총재를 맡길 정도로 신뢰하는 핵심 인물. 거기다 약혼자 윌슨이라는 놈도 오랫동안 마이다스 킴의 경호원을 지낸 특별한 관계입니다.”
“그 정도라면… 미끼로서 가치는 충분하겠어.”
“네. 둘만 확보하면 마이다스 킴을 영국으로 끌어들일 수 있습니다. 우리가 파 둔 함정으로 말입니다.”
“과연 올까?”
“칼리프, 마이다스 킴의 유일한 약점이… 친구들을 위해 목숨을 건다는 것입니다. 정에 약한 스타일이죠. 옵니다, 킴은.”
엉뚱한 곳에서 음모의 연기가 피어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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